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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30년대 말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 마을, 매안의 그늘에는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 거멍굴이 공존한다. 매안과 거멍굴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청암 부인이다. 청암 부인은 신랑 이준의와 혼인한 지 1년 만인 열아홉살에 청상이 되었다. 그리고 25세에 남편의 동생 이병의의 장자(長子)인 이기채를 양자로 맞아 홀로 쓰러져 가는 이씨 문중을 오천 섬지기로 일으켜 세운다.
청암 부인이 매안 이씨로 시집오자마자 청상과부가 되었음에도, 아랑곳 않고 매안 이씨의 실질적 가장이 되어 매안 이씨를 이끌어 가는 여장부의 면모를 보인다. 웃대 대대로 이어지는 불행으로 쓰러져가던 매안 이씨를 새롭게 세우는데 전력을 다한다. 매안 이씨가 사는 원뜸 마을 뿐만 아니라 상민 마을 거멍굴까지 다 마실 수 있는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농사만 해도 오천석이 넘는 대지주 집안으로 만든다. 조선 말, 일제 시대를 거쳐 폐쇄된 사회에서도 청암 부인은 여인으로 자신의 ‘혼불’을 활활 불태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이기채는 비록 양자이나 청암 부인을 극진히 모시고 아들을 낳아 며느리를 보았으나 가세가 점점 기울어간다. 이기채의 아들 강모는 종가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강실이라는 사촌 동생을 마음 속으로 좋아하지만 결국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허효원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강모는 마음 속에 있는 강실이를 잊지 못하고 효원은 강모에게 정을 주지 않아 5년이 다 되도록 합방을 하지 못한다. 천성이 유약한 강모는 가문의 대를 잇는 일을 버거워하다 징병을 피해 만주로 떠나고 병세가 깊어진 청암 부인은 죽음을 맞는다. 청암 부인의 죽음은 자신의 ‘혼불’이 다한 축복 받은 죽음이었다.
청암 부인이 죽은 이후의 이야기는 대부분 강모의 시점을 통해서, 효원과의 결혼식날 왜 그토록 강실이를 그리워했는지, 먼 친척인 죽은 강수의 혼을 결혼시키는 혼례날, 온통 비워버린 동네, 그 틈을 타 강실이를 강간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후 강실이의 강모에 대한 사모의 정은 깊어만 가는데, 강모는 장손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가까이 하고 싶으나, 가까이할 수 없는 강실이에 대한 심리적 갈등 속에서 일본 여인 오유끼를 사랑하게 된다. 오유끼를 돕기 위해 잠시 차용한 공금이 공금횡령으로 밝혀지고, 그 후 강모는 홀로 만주로 떠난다. 뒤이어 오유끼도 따라간다. 역사학자인 심진학을 따라다니는 강태, 강호가 합세해 만주에서의 생활이 펼쳐진다.
강모에 대한 사모의 정이 깊어감에 따라 강실이는 상실과 상심을 통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간다. 강모가 강실이를 강간했다는 소문은 옹구네의 입을 통해 매안 이씨의 하인들과 상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상민의 신분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불타는 춘복은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자신의 욕망을 강실이를 통해 이루고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상사의 정으로 극도로 쇠약한 강실이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흡월을 하던 날, 역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흡월차 산에 갔던 춘복이 강실이를 만나고, 강실이 그 자리에서 기절, 기회를 잡은 춘복이 기절한 강실이를 데리고 숲 속으로 간다. 깨어난 강실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춘복이를 받아들인다. 이후 강실이는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했다는 소문을 들은 강실이 어머니 오류골댁은 강모의 처 효원이와 의논, 서둘러 병을 핑계로 먼 곳으로 피접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방물장수에게 부탁한다. 방물장수와 강실이 함께 떠나는 날 춘복이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옹구네가 강실이를 가로 채, 자신의 집에 숨긴다. 강실이는 옹구네 집에서 얹혀 살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된다. 청암 부인의 별세 이후 가문을 지키는 일은 이제 3대 종부인 강모의 아내 효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작가 최명희>
■ 핵심 정리
갈래: 대하 소설
배경: 시간적 ― 조선 말엽부터 일제 강점기(주로 1930년대)
공간적 ―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마을
경향: 사실주의, 민족주의
성격: 풍속적, 민속적, 사실적
시점: 전지적 작가시점
주제: 가문을 지켜 나가는 여인의 삶과 한(限)
■ 등장 인물
• 청암 부인: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 이기채: 청암 부인의 시동생의 아들이나 청암 부인의 양자가 됨
• 강모: 청암 부인의 손자. 이씨 문중의 장손
• 강실: 강모의 사촌 누이
• 허효원: 강모의 부인. 청암 부인에 이어 종부가 됨.
• 강태: 강모의 사촌 형
• 춘복: 이씨 문중의 지배를 받던 상민이나 후에 강실을 겁탈함.
■ 이해와 감상
‘혼불’은 원고지 1만 2천장 분량의 대하 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 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 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 낸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의 뒤안채에서 소리 없이 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혼불을 지키고 쓰다듬어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혼불’은 세기 말의 혼돈과 방황 속에 빛나는 한 줄기 불빛처럼 한국 문단을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이 작품은 대하 서사시적인 규모를 지닌 일대 거작이며 엄청나게 폭이 넓은 사회 소설로 이야기 중심, 사건 중심이 아닌 소설 장르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한 단계 높은 차원을 보여 주었다. 이로써 소설사적 지위는 확고한 것으로 굳어졌으며 우리가 대대로 전승해 온 풍속의 세계를 최대한 정밀하고 자상하게 또한 아름답게 복원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참된 형체와 정체성을 강하게 보여 주었다.
이 작품의 중심 무대는 남원 매안이라는 농촌이다. 주요 시간적 배경은 일제 강점 하인 193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시간적 배경은 여기에 한정되지 않고,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이라 할 매안 이씨 가문의 삼대(三代)에 걸친 시간으로 확장된다. 이야기는 매안 이씨 가문의 삼대, 즉 할머니 청암 부인과 아들 이기채 부부와 손자 이강모 허효원 부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런 가족사 소설적인 흐름은 대체로 이 작품의 초반 부분에 두드러지고 중반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이 작품은 여러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
특히 ‘혼불’은 한국인의 생활사, 풍속사, 의례와 속신의 백과사전일 뿐 아니라 우리 문화 전승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엄숙한 관혼상제의 의식에서부터 일상적 풍속이나 관습의 동작 하나, 실오라기 하나의 놓임에 이르기까지 그 유래와 이치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관제, 직제, 신분제도로부터 신부의 의상에서부터 시작되는 혼례의 모든 절차와 의례, 우리의 전통가구, 침선, 상례와 제례의 모든 절차와 법도, 풍수의 이치와 무속신앙, 조선의 행정구역, 신분 제도와 노비 제도, 백정의 모든 작업 과정, 염료 제조법, 옷감의 때와 얼룩을 빼는 갖가지 세탁법 등 한국인의 생활의 모든 면모를 지극 상세하게 구성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작가의 고향 전주와 남원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그는 이 작품에서 전라도 토속어의 판소리 흥이며 기운을 ‘이야기’에 실어 절묘하게 연행(連行)해 보임으로써 한국 문화와 정신을 예술적 혼으로 탁월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흔히 이 작품을 일제 시대 남성을 거세당한 가장을 대신해 남원 지방의 매안 이씨를 이끌어 간 3대의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을 서술한 이야기로 혹은 호남지방의 한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와 천한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탁월한 감성과 찬란한 문체, 방대한 자료로 복원한 이야기로 제시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매안 이씨들의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청암 부인을 비롯한 대안 이씨 여인들이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는 엄격함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고통을 다루고 있다.
3권까지의 서술 내용은 종가집 전통을 지키려는 청암 부인을 비롯한 청암 부인의 아들 이기채 그의 부인 율촌 부인, 그의 동생인 이기표와 수천댁, 셋째인 강실이의 아버지 이기웅과 오류골댁 등의 매안 이씨 사람들, 또 그에 상반되는 부류로서 춘복이와 옹이네를 중심으로 한 거멍굴 사람들과 고리배미 사람들의 상반된 세계관에 따른 갈등과 의식을 드러낸다.
또 매안 이씨 자손 중에서 강태와 강호가 있다. 이들은 일본, 만주 등에서 견문을 넓힌 인물로서 역사적 필연성으로 사회주의 사상에 의한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중도적 인물로는 강모와 강실이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둘 다 근친상간으로 인해 양반 사회에서 축출될 위기에 있는 인물이다.
3권까지의 이야기는 전통적 소설 양식인 사건, 인물, 줄거리의 서술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4권부터는 줄거리 중심의 강실이와 춘복이를 중심으로 한 내면화된 갈등의 서술과 구근원적인 ‘나’의 ‘혼’을 밝혀내기 위한 서술 과정이다. 강실이와 강모, 강실이와 춘복이의 내면화된 갈등은 줄거리 중심의 기존 서사 양식의 서술 형식을 따르지만, 나의 근원이면서 민족의 근원을 추적하는 부분은 다양한 자료 중심의 상징적인 사건들로 기술하고 있다.
‘혼불’에서는 1부에서 5부까지 매안 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양반가문, 매안 이씨 가문에서 하인으로 있는 사람들, 거멍굴을 중심으로 한 상민들로 세 집단의 사람들이 주요 집단으로 이 인물 구조는 끝까지 이어진다. 이야기는 강모의 혼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혼례식날 실이 얽히는 사건으로 강모와 효원의 결혼 생활의 불행을 예고, 첫날밤 강모의 꿈속에 강실이의 등장은 서술의 방향이 강모와 효원이, 강실이의 삼각 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다음 서사로 이어지는 것이 청암 부인의 죽음이다. 청암 부인이 매안 이씨로 시집오자마자 청상과부가 되었음에도, 아랑곳 않고 매안 이씨의 실질적 가장이 되어 매안 이씨를 이끌어 가는 여장부의 면모를 보인다.
특히 작가는 강실이와 춘복이와의 임신을 통해서, 양반과 상민의 피가 섞인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참 인간을 잉태함으로써 새 시대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는 춘복이를 통해 상민, 비복, 종, 호제 등의 원한과 분노, 아우성을 해원의 굿으로 풀어줌으로써, 작가의 역사, 민족에 대한 희망을 빛과 광명으로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작가 최명희는 이 작품의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고,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 ‘혼불’은 소설의 울타리, 그 이상을 뛰어넘어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중요한 문헌으로 기록될 것이다.
출처: JR의 국어나라
<남원에 있는 최명희의 혼불 문학관>
ㆍ최명희 선생의 어록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느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금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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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불 문학관 다녀왔었는데 글 올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최명희의 ''혼불''
몰락해 가는 양반가 며느리 3대
이야기를 쓴 대하소설 소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