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0~15 /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
(요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요 5: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요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요 5: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은 38년된 병 나은 사람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38년된 병보다 더 심한 것은 영혼에 귀신이 들어오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병이 나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날 38년 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셨죠? 과거를 청산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의존심의 자리, 원망의 자리, 절망의 자리, 탄식의 자리, 세상 소망의 자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병자는 38년 동안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10절 문제는 안식일 날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는 데서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법을 지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유전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일 날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식일 날 들고 갈 수 있는 무게를 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 날 들고 갈 수 없는 무게를 들고 가서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바라새인입니다. 바리새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기 의가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하고 십일조하고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여기서 율법주의가 생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주의가 된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복음이 아니고. 이단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고,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주의 신자들에게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의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며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주의는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을 자학하고 괴로워합니다. 율법주의자는 마음보다는 행위를 봅니다. 그들은 행위는 깨끗하게 보이는 데 마음은 썩어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나오면서 새벽 기도에 나오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런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단을 척결하려고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을 배웠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배웠습니다. 은혜 신앙을 배우고 나서 그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자신보다 덜 수고한 사도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신 은혜대로 최선을 다한 것을 인정하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은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부족해도 자학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줍니다. 다른 사람이 못할 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은혜 안에서 율법을 지키도록 도와줍니다. 그들이 죄를 지을 때는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죄를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율법이 아닌 은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겸손할 수 있습니다.
11~15절 병 나은 사람은 38년 된 병이 치료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 때문에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병 나은 사람은 자신을 낫게 한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치료해 주신 분에게 안식일 법을 어긴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그는 육신의 병은 나았지만, 의존심, 원망 불평의 죄는 낫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병 나은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보라 네가 나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은혜를 배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고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는 것보다 은혜를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에게 열 명의 문둥병자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9명은 그냥 갔습니다. 한 명만이 와서 예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한 사람에게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병이 나은 후에 병을 치료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감당치 않으면 병보다 더 심한 것이 생긴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귀신이 나간 후에 그 마음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지 않으면 일곱 귀신이 들어옵니다.
우리는 38년 된 병을 가지고 천국에 가는 것이 38년 된 병이 낫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