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따라, 술맛 따라, 한국의 전통주를 찾아서-신선이 즐기는 곡차 호산춘
금수강산 대한민국은 금실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우니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참으로 많다. 물 좋은 곳에서는 당연히 차(茶)가 맛나고 술(酒)이 달다.
날아가는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새재와 고모산성·진남교반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문경에 맛난 술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500년을 이어온 장수황씨(長水黃氏) 집안의 가양주 문경 호산춘(湖山春·경북무형문화재 18호)은 문경의 자랑이며, 경주 교동의 법주·서천 한산의 소곡주와 더불어 한국 3대 명주로 불린다.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문경 산북에 자리 잡으면서 호산춘이 시작됐다. 6촌 안에 과거 급제한 진사가 8명이나 되고 모두 천석지기여서, 당시 황씨 집안은 ‘8진사 8000석’으로 불렸다. 집안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그 손님을 접대하고 또 조상님께 올리는 봉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양의 호산춘을 빚었으며 술맛은 일품이었다.
‘호산춘’은 술 이름으로 독특한데, 시를 즐기는 풍류객 황의민으로부터 유래됐다 한다.
자기 집에서 빚은 술에 본인의 시호인 호산(湖山)을 붙이고 술에 취했을 때 흥취를 느끼게 하는 춘(春)자를 넣어 ‘호산춘’이라 한 것이 오늘날 ‘문경 호산춘’의 시작이다.
‘신선이 탐할 만한 술’이라 해 ‘호선주(好仙酒)’라고 불리기도 하는 문경 호산춘은 국내에 전승되는 전통주 가운데 유일하게 술 주(酒)자 대신 봄 춘(春)자를 쓴다. 술의 이름에 ‘춘’자가 붙는 것은 주도가 높고 맛이 담백한 최고급 술을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서울의 약산춘·평양의 벽향춘·여산의 호산춘·백화춘·한산춘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춘주(春酒)는 문경의 호산춘뿐이다.
중국 송대에는 춘주를 설명하면서 맛이 향기롭고 연해 입속에 넣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춘주는 특별하다.
호산춘은 멥쌀 하나에 찹쌀이 둘 들어가는 비율로 빚으며, 쌀이 한 되 들어가면 술도 한 되밖에 나오지 않는 고급 술이다. 그 이외에 들어가는 것은 솔잎이 전부라고 봐도 된다. 가끔 마음이 동하면 계절에 따라 꽃 한 줌 넣고 때로 약초 한 줌 넣곤 하는데, 술 향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넣는다.
이렇게 흥취와 풍류를 더해 빚는 호산춘은 100일간 정성을 쏟아야 제 맛이 난다. 발효 과정에 솔잎이 첨가되기에 담황색을 띠며,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정도로 진하고 주도는 18%이다. 첨가되는 솔잎은 향과 약리 작용이 뛰어나며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호산춘은 막걸리처럼 유산균이 살아있는 생주다. 때문에 보관에 취약하다. 유통기한은 상온에선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참으로 까다롭고 귀한 술이다. 하지만 냉장 보관하면 유통기간이 1년으로 늘어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호산춘을 빚는 심경 황규욱 선생
호산춘은 먹고 싶다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술이 아니다.
호산춘은 아무도 못 꺾는 ‘황씨 고집’에 의해 지켜온 장수황씨 가문의 자존심이다. 장수황씨 가양주인 호산춘의 전수자이며 명망 높은 서예가이기도 한 심경 황규욱 선생은 맘이 내켜야 술을 빚는다.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대로, 적게 나오면 적게 나오는 대로 빚고 제대로 술맛이 나오지 않으면 미련 없이 술독을 엎어버린다.
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만찬주로 쓰겠다며 호산춘을 요청한 적이 있다. 필요하면 와서 가져가라 호통을 쳤고, 비서관들이 내려와 일일이 봉인해 가져갔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돈보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히 여기는 술이기에 유통과 판매망도 없다. 그저 직접 가서 사는 수밖에 없다. 하여 술을 빚어 놓았다 하면 소문 듣고 달려온 단골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금세 술이 떨어져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드니, 20년 자존심이 빚은 옹고집 술 한 방울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자존심의 술, 호산춘만큼이나 문경은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할 여행지다.
그 첫 번째로 문경새재를 꼽을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인 문경새재는 그 옛날 새들도 날다가 쉬어 간다해 새재(鳥嶺)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방의 요새로 삼았던 문경새재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세 개의 관문이 있다.
이 길은 과거시험 치는 선비들이 유독 많이 넘어 다녔다. 조선시대 500년간 한양과 영남을 잇는 번듯한 길은 세 개가 있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문경새재를 택했고, 과거 급제 후 돌아갈 때도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가장 빠른 이 길을 넘었다.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이라는 뜻의 ‘문경(聞慶)’이란 이름은 이 때문이다.
▲ 문경새재 드라마 촬영장
오롯한 문경새재의 흙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고, 4대 명승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뛰어난 풍광은 사극 촬영 배경으로 훌륭하니, 대한민국 사극은 거의 다 문경새재를 거쳤다고 봐야 한다. 문경새재 드라마 촬영장에 가면 확인해 볼 수 있다.
문경새재의 크고 넓은 품에는 김룡사와 대승사 같은 고풍스런 사찰이 자리한다.
특히 김룡사 오르는 숲길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어 사색의 길로 애용된다.
그렇다고 문경이 고풍스럽고 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 문경 철로 자전거
20여 년 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의 폐선을 이용한 철로 자전거는 문경을 찾는 가족 여행객들이 두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즐길거리다.
문경활공장에서는 패러글라이딩으로 한 마리의 새처럼 하늘을 날며 문경새재를 발아래로 감상할 수 있다.
새로 생긴 짚라인 역시 하늘을 나는 것이다. 열대 정글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던 교통수단이었던 짚라인은 와이어 하나에 몸을 의지해 아찔한 능선과 계곡 위를 날아다니며 짜릿한 공중 질주를 즐길 수 있다.
타잔처럼 숲을 날아다니는 체험은 기업체 연수와 가족 이벤트로 인기 폭발이니, 문경은 그 누구에게나 만족도가 높은 여행지다.
<식당 정보>
- 문경약돌한우타운: 약돌한우/ 1588-9075
- 소문난식당: 새재묵조밥/ 054-572-2255
- 새재할머니집: 약돌돼지, 양념석쇠구이/ 054 -571-5600
- 약돌샤브샤브: 약돌돼지/ 054-556-7192
- 진남매운탕: 매운탕/ 054-552-7777
첫댓글 문경한번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와야 겠는걸, 구경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