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아래서
사월 둘째 금요일은 산행이 아닌 들녘으로 길을 나섰다.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장유로 가는 170번 버스를 탔다. 도심을 관통해 창원대로를 지날 때 차창 밖은 절정을 지난 벚꽃이 몸살을 하고 저무는 때였다. 불모산의 낙엽활엽수림은 해발고도가 낮은 곳부터 연두색으로 물들어 갔다. 창원터널을 빠져 나가 차창을 열어 젖혀 대청계곡의 맑은 공기를 차내로 받아 들여 흡입했다
장유는 계획도시로 개발된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코아상가에서 내려 김해 시내에서 장유를 둘러 진영으로 가는 44번 버스를 타고 진례 파출소에서 내렸다. 송정마을 앞으로 가는 넓은 들녘은 경작을 멈추고 택지 조성을 위한 공사로 어수선했다. 송정마을 앞에서 진례산성에서 넘어온 임도를 따라 걸으려고 산기슭으로 향하니 생활도자기를 빚어 굽는 공방이 몇 군데 보였다.
정병산이 대암산을 거쳐 용제봉으로 가는 낙남정맥의 산세는 커다란 성곽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물론 용추계곡에서 올라선 산마루는 가야시대 축조된 석성으로 추정되는 진례산성이 있기도 하다. 산기슭이 가까워지니 유록빛으로 물드는 숲에는 연분홍 야생 복사꽃과 산벚나무가 피운 꽃들이 눈길을 끌었다. 조팝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하얀 꽃을 피운 산언덕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 못 미친 산모롱이를 돌아가다가 내가 한 가지 할 일이 기다렸다. 지난번 진례산성을 넘어 송장마을로 나가다가 봐둔 돌나물을 걷는 일이다. 나는 올봄 창원축구센터 곁의 벗이 가꾸는 텃밭 밭둑에서 돌나물을 걷어 몇 차례 비빔밥으로 비벼 먹은 바 있다. 같은 아파트단지 초등 친구가 돌나물 물김치를 좋아한다기에 그에게 보내려고 돌나물을 걷어 모았다.
집에서부터 걸어 용추계곡에서 진례산성을 넘어와도 되겠으나 요새 연일 장거리 보행을 많이 했는지라 동선을 줄이려고 송정마을을 지나왔다. 돌나물이 자라는 장소가 응달이라 아직 생육이 더디긴 해도 여린 새순을 조심스럽게 걷었다. 주섬주섬 돌나물을 걷으니 뿌리와 검불이 조금 붙기는 해도 그것까지 정갈하게 가릴 시간은 없었다. 돌나물에 붙은 검불은 친구가 가려도 될 듯했다.
돌나물을 걷은 뒤 평지마을로 가는 길고 긴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섶에 미나리냉이와 바디나물이 보여 몇 가닥 뜯어 입안에 넣어 씹어 봤다. 미나리냉이는 잎줄기는 미나리를 닮았고 향은 냉이 맛이 나는 산나물이다. 바디나물은 연삼이라고도 하는데 풍미가 좋은 산나물이며 약용식물이다. 봄철 산행에선 생수를 준비하지 않아도 산나물을 뜯어 먹으면 목마름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한 사내와 두 아낙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차림새로 미루어 두릅 순을 전문으로 채집하는 이들인 듯했다. 나는 두릅 순을 딸 생각은 없고 임도 길섶에 자라는 전호나물을 캐려고 마음먹었다. 우리 집 식탁에선 몇 차례 전호나물을 맛 봤으나 귀로에 지기에게 건넬 참이었다. 전호나물이 자라는 자생지에서 준비한 칼로 잎줄기를 잘라 모았다.
두 가지 나물이 채워진 배낭을 짊어지니 알맞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두세 시간을 걸었는데 송정마을로 나가려면 그만큼 시간이 더 예상 되었다. 진례 면소재지로 나가니 점심때가 늦어 추어탕으로 요기를 하면서 장유에 사는 지기에게 안부 전화를 넣었더니 반가워했다. 내보다 먼저 퇴직한 예전 근무지 동료는 지인들과 골프를 마친 뒤 신안계곡 별장에서 곡차를 비우는 중이라 했다.
한때 국내에서는 물론 베트남까지 주목을 받았던 기업인은 몇 해 전 돌아갔고 그가 남긴 별장이 굴암산이 흘러내린 신안계곡에 위치했다. 지기를 찾아가니 고인이 된 기업인의 별장 곁에 또 다른 선계가 있었다. 나는 객이 되어 꽃그늘 아래서 환담을 나누다가 자리를 옮겨 장유에 사는 지기 둘을 더 만나 코다리찜을 놓고 그간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이십 년 전 근무지 동료들이었다. 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