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라서 무엇이 되었다
해 뜨고 눈 뜨면 죽을 궁리만 하던 친구들은
서울로 취업을 하고, 애를 낳고, 주님을 만났다
아니, 납골당에도 있다
스스로 존재하길 관둔 선택지였고,
초라한 장례식이었고,
그 애의 깊은 잠을 지키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편지, 일기, 가계부, 유서 같은 것들을 쓰면서
마저 사랑할 것이 남았나
거듭 확인하면서
곧 우울한 마음이 들어도
빈둥빈둥 시시하게 살지는 말라던 당부
그렇게 꾸밈없는 연민을 느꼈던 우리는
평생 그리울 얼음 위를 걸었다
녹은 치즈처럼 추잡하게 엉겨 붙어 왈츠를 췄고
값싼 보드카를 구하느라 거리를 쏘다녔다
블랙 유머 따위를 주고받는 사이는 좋아, 하지만
너라는 미지는 흰빛으로 타오르는 곳이어서
내 두 발목을 잘라
마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비겁했다
춤을 추며 돌아오랬지, 모든 게 진창이 되어도 좋으니까
그날 그렇게 네가 이른 생을 마감할 때
그날 그렇게 내가 미친 생을 번역할 때
나는,
그 어떤 마음도 보존하지 않음으로 나만 지켰고
온몸이 찢어져 죽은 천사를 떠올렸고
무릎을 오므려 세상을 좁혔다
딱 납골당만 한 크기로
제법 아늑해,
너 없는 세상 이 정도면 됐지
그래, 그래 우리는 그저 허접한 암호를 만들어
이런 꾀죄죄한 시나 쓰려고 했다
함께,
문학과 낭만과 염병할 그 뭔가를 꿈꿨다
짐승 같은 사유를 했다
양심 없이 네 곁에서 망가지는 게 좋았다
돌이켜 보면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고
자나팜 없이도 살아졌다
그렇다고
막 갑자기 생이 어여쁠 수는 없고
내 드라마는 영원히 네가 아는 결말로 끝나
나는 이제 디스토피아를 믿지 않고
너는 분분한 뼛가루
건강한 영혼만 구원받는다던 소식은 들었니?
모두가 한편을 먹고 나를 혼자 둔 것 같아
그건 알아서 자멸하란 말이지
역시 조금 슬프게 지내고 있어
부화하는 겨울에게
입술 모양으로 우리는 종종 구분된다
무례한 이름으로 살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나는 산란기를 맞았고,
외설스러운 묘비명도 있지만,
타성에 젖은 것은 네 안구뿐만이 아니야
우연히 빚어낸 것들은 별의 나이를 묻고,
내 동공에서는 네가 뻗어 나왔어
그것도, 제라늄 향기를 가득 묻혀서
익숙한 익명의 상태에서
가장 동물적인 것을 찾기 시작했어
어디선가 유실된,
기형적인 기억들로 감정은 완성되지
아주 수상한 마음으로
거세된 생각들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면
쓰레기 더미 속 낡은 장화 한 켤레
서툴게 존재하고,
무료함을 존중하던 이들의 머뭇거림이
탁한 겨울을 향해 가고 있을 때
홍등가의 전구는 조용히 타오르고 있어서,
타인의 타인들로 우리는,
오늘도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꿈을 꾸지
SOO
수, 너는 이데아를 줄곧 믿어 왔어. 그건 마치 환상이 고갈되어 가는 나날을 살게 한 유일한 본질이었지. 나는 오늘도 고독한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밀주를 마시고 시를 쓰고 괴랄한 취미를 발견하며 스스로를 폐허화하고 있어. 아무런 주어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 종내는 모든 게 살아질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나의 시에 너를 심고 물을 주고 어엿한 꽃을 피워.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지는 꽃이 푸르고 어두운 곳을 헤맬 때 나는 자꾸만 분열하곤 했어. 너라는 눈부심에서 눈이 멀고 말을 잃어. 향락하는 거리로 나섰다가 영원히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수만 개의 절망과 불안을 업느라 너의 하얀 손을 놓칠 것을 알면서도. 뇨로뇨로 흐트러지는 나를 내내 목도하느라 너의 마음에서 탄내가 나는 걸 알면서도. 내 불행에 너를 기워 넣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수ㅡ 하고 발음할 때 새어나가던 입안의 공기를 기억하는 건 내게 사명처럼 느껴져. 정답던 시옷 발음이 여전히 나를 휘젓고 있어서. 거기에는 어떤 사족도 허용하지 않을 거야. 기다리는 일을 세상에서 제일 잘 한다는 그 말에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해서 미안해. 고약한 방식으로 너를 모른 척했다는 걸 용서해 너는 내 평생의 겨울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겠다던 사람. 나는 아직도. 너의 세상에서, 너의 이념으로, 불타 버린 내 이름을 찾고 있어. 내가 죽인 시인의 이름을
시집 『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 타이피스트 시인선 12, 2025, 11 1쇄
김하늘 시인
2012 시와반시 등단
시집 『샴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