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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미술이란
정신 노동자들이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 앙리 마티스 -
이 그림은 프랑스 태생으로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야수파(Fouvism)를 대표하는 화가인 앙리 마티스(1869-1954)가 그린 <삶의 기쁨(The Joy of Life), 1906> 입니다.
"그의 그림 곁에서는 고흐, 르누아르, 모네, 터너의 그림마저 빛을 잃고 만다."
"그는 색이 무엇인지 인류에게 가르쳐 준 스승이다."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회화의 지침이 된 앙리 마티스를 일컫는 수식어입니다.
앙리 마티스는 <살롱 도톤>이라는 단체전에 출품한 그림이 마치 포악한 짐승 같다는 이유로 야수주의라는 명칭을 얻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야수파적 흥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마티스가 붓이 한결 부드러워질 무렵인 1906년에 완성한 가장 위대한 야수파 그림이라 여겨지는 <삶의 기쁨>은 '정신을 위한 안락의자'라 할 만큼 화사하면서도 평화로워 보입니다.
야수파의 선언문으로 여겨지는 이 그림은 음악과 춤의 즐거움에 탐닉하고 꿈처럼 행복한 남녀 인물로 구성된 일종의 에덴동산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티스는 색채가 주는 느낌을 인간의 감정에 대입해서 '기쁨'이라는 추상성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눈부신 노랑, 밝은 빨강과 깊은 초록 등 풍요로운 색채들이 캔버스를 채우고 있고, 이 색채들은 자유롭게 화면 속을 노닐고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숲속을 배경으로 황금빛 풀밭 위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춤을 추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 몸을 맡긴 채 태초의 모습처럼 누드의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사랑을 나누고, 꽃과 대화하며, 동물에게 피리를 연주해주고, 여럿이 모여 둥글게 손을 잡고 마냥 행복감에 빠져있습니다.
춤추는 이들의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에는 문명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원시적인 인류의 모습만이 오버랩 될 뿐입니다.
마티스가 말합니다.
"어린아이가 사물에 다가갈 때 느끼는 신선함과 순진함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평생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면서 세계의 사물들로부터 에너지를 길어오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에 다가갈 때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마치 처음 보듯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의 기쁨과 신비가 우리의 상상 속으로 꽃 피울 수 있겠지요.
세계의 명화들을 보면 예술가들끼리 서로 영감을 받으며 좋은 작품을 만든 것이 많습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이 연상되는 이 그림에는 마티스의 예술철학이 오롯이 녹아 있는데, 우리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환희를 느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기쁨>은 부유한 미국인 레오 스타인이 구입하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식당에 걸어두었는데, 이 그림에 자극받은 피카소가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려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그림이 탄생하게 됩니다.
마티스의 <삶의 기쁨>은 시인 보들레르의 '여행으로의 초대'와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영감을 받아 삶에 대한 갈망을 희망의 미학으로 연출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색채의 음유시인' 앙리 마티스는
500년 동안 서양 미술을 지배해온 전통 미술의 규칙과 법칙을 파괴하고
원색을 대담하게 병렬 배치하거나 보색 관계를 교묘히 활용해 화면을 단순한 '색채의 향연'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강렬한 개성을 지닌 '마티스식 예술'을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이 그림(175×241cm)은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반즈재단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울해지거든
새소리를 들으러
숲으로 가보세요
새소리를 들으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삶을 노래하는 기쁨을
숨어서도 사랑하는 법을
욕심부리지 않는 자유를
떠날 줄 아는 지혜를
새들에게 배우세요"
-이해인 시집 '작은 기쁨' 중에서' -
雨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