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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출마가 현실화하고 있다. 당 안팎의 여러 비판에도 그는 당권 도전을 접을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는 조만간 당대표 출마를 공식화할 전망이다.
이재명은 당 대표직을 2024년 총선과 2027년 대선을 향한 디딤돌로 보고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다음 총선 공천권을 손에 쥐게 된다. 시스템에 의한 공천이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당대표는 공천위원회 구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총선을 통해 친(親)이재명계 의원들을 대거 여의도에 입성시킬 수 있다면 그는 다음 대선에서 다시 한번 대선 주자로 국민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친명계 연판장에 63명 서명
묵언수행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재명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대권 재도전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이미 머릿속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대표 선거 같은 통과의례는 여건상 본인이 통제 가능한 사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에서 보듯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역학 구도는 친이재명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모양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벌어진 전당대회 관련 룰 싸움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7월5일 친명계의 좌장인 정성호 등이 주도한 ‘비상대책위 비판 연판장’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은 63명이나 됐다. 우상호자 이끄는 비대위가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의 의결안과 달리 ‘중앙위 100% 투표로 컷오프’ ‘최고위원 투표 시 지역쿼터제 도입’ 등을 결정하자 친명계가 집단행동에 나선 결과다. 비대위 안들은 이재명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평가받았다.
소속 의원 3분의1이 참여한 연판장의 힘은 금방 나타났다. 지난 7월 5일 당무위에서 기존 지역쿼터제는 전준위의 원안으로 되돌려졌다. 컷오프 기준 역시 당대표 경선은 ‘중앙위 70%+국민 여론조사 30%’라는 전준위 안으로 다시 뒤바뀌었다. 다만 최고위원 경선은 ‘중앙위 100%’라는 비대위 안을 채택하는 것으로 절충됐다. 비대위까지 압박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만큼 당내 친명계는 급속히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7인회’에서 시작된 친명계는 친문을 대체할 주류로 성장 중이다. 8월 전당대회가 주류 교체를 공식 선언하는 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이 당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은 오래전부터 포착되어 왔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4월, 이미 당 안팎에선 이재명이 6·1 지방선거에 뛰어든 후 당대표 선거까지 노릴 것이란 전망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떤 공개 행보나 입장표명이 없었지만 정치권은 그의 작은 움직임, 심지어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이발·염색 근황에까지 이목을 집중하며 조기 등판 가능성을 점쳤다.
무엇보다 그는 지난 대선의 패장인데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패배했던 선배 정치인들이 가졌던 반성의, 혹은 책임의 시간을 비껴갔다. 당내 많은 의원들이 그의 당대표 출마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는 자신의 시간표대로 움직여온 셈이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친이재명계 핵심인 정성호는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당대표에 출마하지 않는다 해도 이재명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왜 나서서 당을 개혁하지 않았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라고 지적받을 거다”라고 말했다. 즉 어떤 행보를 걷더라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 당권을 잡는 것이 향후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이재명의 생각인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친명계의 대안 부재론
친명계들은 ‘대안 부재’라는 말도 자주 한다. 지금의 당내 상황에서 이재명을 대체할 리더십이 과연 있느냐는 반문에서다. 이들은 대선 패배 이후 새로운 리더를 모색할 인적 자원이 나름 풍부했던 과거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8월 전당대회에서 이른바 ‘97그룹’이 이재명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지지도나 인지도 측면에선 크게 뒤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에 당을 이끌었던 586과 친문 세력은 권리당원들 사이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혔다고 보고 있다.여기에 이재명 지지도가 압도적이라는 점을 거론한다.
또 대안 부재를 주장하는 친명계의 시선에는 지난 대선 경쟁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도 들어와 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이 정도로 초반에 고전할지 몰랐다. 윤 대통령이 고전할수록 0.73%포인트로 패한 이재명은 더 운신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어찌됐든 지난 보궐선거에서 금배지를 달면서 한 스텝 전진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이재명 특유의 스타일도 당대표 도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성과를 내기 위해 막힘 없이 달리는 이재명의 스타일은 지난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역임 당시에도 논란거리였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신천지 강제수사에 뒤이은 재난지원금 보편지급, 지역화폐 활성화 등의 행정 조치는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로 하여금 정치 효능감을 느끼게 했다. 이재명이 도지사 시절 다수 광역단체장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한 건 그의 이런 스타일 덕이었다. 그는 ‘당권을 잡으면 향후 또 다른 결과를 보이겠다’며 나름의 명분을 내세워 출마선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이재명 의원 조언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윤석열 정부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는 굵직한 어젠다와 당내 인적 쇄신이 핵심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의 이런 계산과 달리 그의 당대표 출마는 ‘사지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관론도 여전하다. 일단 출마 명분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에서의 정치는 크게 3가지로 움직인다. 명분, 책임, 미래다. 지자체장일 때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막힘 없는 행보는 오히려 당대표 출마 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책임도 실종됐다. 당대표라면 당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의 이재명은 자신의 미래만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당내에서 가장 먼저 당대표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힌 전해철 또한 지난 6월 28일 언론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내놓은 바 있다. “대선 패배로 많은 국민이 상처, 좌절, 상실감을 얻었다. 후보 개인을 비롯해 선거 패배의 당사자들은 기존 공간과 거리를 두며 침묵,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지지층의 아픔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도전, 발돋움도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선 책임과 명분을 우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재명 의원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해철의 비판이다.
“마라톤을 100m 달리기 하듯 뛴다”
사실 명분과 타이밍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은 수많은 굵직한 정치인들이 해왔던 고민의 반복이다. 아마 이재명은 지금 문재인의 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문재인 또한 18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당대표가 되어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었고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문재인이 당대표 후보로 나서기까지는 의원 및 평당원 신분으로 바닥을 다진 3년간의 시간이 있었다. 당내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입지를 강화하면서 대선후보로서의 명분을 찾는 데 노력했다.
정치인들의 부침사에서 문재인의 경우는 이례적일 수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타이밍과 명분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후 나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전해철을 비롯한 친문계 의원들이 “이재명은 당의 소중한 자산”임을 강조하면서도 그에게 기다림과 명분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대표만 해도 17·18대 대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됐던 바 있다. 그는 2014년 재보궐선거 낙선 후 전남 강진 만덕산 은둔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올렸지만 2017년 돌연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복귀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민주당의 복귀 요청도 거부하다가 결국 명분 없는 도전 끝에 스스로 정치생명을 갉아먹은 결과다.
최근 이재명의 행보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 빗대는 시선도 있다. 민주당 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의 김기식 연구소장은 지난 6월 15일 대선·지방선거 평가 토론회에서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8개월 만에 전당대회에 나와 총재가 되고 4년 동안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다가 결국 2002년 노무현에게 패배해 정계 은퇴를 했다. 과연 우리 당이 이회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사실상 이재명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재명이 당대표에 출마하면 대선 패배 후 8개월 만에 복귀한 이회창 전 총재보다 두 달이나 빠른 복귀다. 이와 관련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이 마라톤을 뛰는데 100m 달리기 하는 것 같다”며 “저렇게 질주하다 마라톤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이미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재명이 또다시 민주당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선이 많다. 5년 후 치러질 대선에서 그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선출된 대통령은 어쨌든 ‘시대정신이 소환한 인물’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들을 만들었다. 노무현은 기득권 타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살리기,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정도의 시대정신으로 요약된다. 문재인은 흔히 촛불정신으로 표현된 정의에 대한 열망이 그를 재수 끝에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재명은 궁극적으로 어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애매모호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적어도 지난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꼽힌 ‘공정’이란 측면에서 이 의원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득표율이 0.73%포인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증표가 될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진영 간 세대결의 양상이 짙었다. 이재명 말고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지지층이 선거 막판 결집한 탓에 이재명이 그 정도 득표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자 돌연 인천 지역 전체 야당 지지율이 하락했던 것은 이재명에 대한 유권자들의 생각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현재의 위상으로는 설령 그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반윤(反尹)’ 이상의 동력은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못하다가는 이재명 블랙홀에 빠진다”
당대표가 되더라도 이재명식 스타일이 오히려 입지를 흔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친문 성향의 한 인사는 “이재명은 단일 리더십 체제의 지자체장으로만 성장해와 협의와 토론을 중시하는 정당 리더십에 맞을지 의문”이라며 “선명한 자기 정치는 좋지만 충돌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자기를 밀어넣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친명계 내부에서는 이재명의 당권 장악 이후의 핵심 과제를 2024년 총선을 노린 인적 물갈이로 보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달성할지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당대표를 향한 이재명의 폭주에 제동을 걸기 쉽지 않다는 데에 고민이 크다는 말도 들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재명 블랙홀’에 빠지기 십상이다. 중장기적 전략을 짜기 위해선 지금의 현안과 관련한 정책 논의, 의제 발굴이 필요한데 이재명 찬반 대립, 호불호 가르기로 모든 게 묻힌다”며 “이래선 이 의원도 그렇고 당 자체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긴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강병원·강훈식·박용진 등이 당 혁신을 목표로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지만 모두 이재명 의원 불출마를 강조하며 또다시 ‘이재명 담론’에 빠졌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당 분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당에서 혁신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이재명의 지지율이 제일 높게 나오다 보니 결국 ‘어대명’을 인정하는 느낌이다. 97그룹 등 젊은 인사들 목소리는 크게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전당대회 그림을 다 짜고 흥행을 위해 새로운 얼굴만 내보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7월 1~2일 실시한 민주당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은 35.7%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은 건 박용진(16.8%)·김민석(6%)·전재수(3.4%)·강병원(3.4%) 의원 순이었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당대표는 2년 뒤 총선 공천권까지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이재명에게 대놓고 맞서기가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물밑에선 당대표 선출에 따른 공천 문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친명이나 친문 등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보다는 두 쪽 모두에 발을 걸쳐 향후 총선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인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에 대한 강한 반대 기류가 흐르는 건, 대선 패배 책임도 있겠지만 이재명의 당선이 기존 당 지분 혹은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그것이 얼마만큼 실질적인지는 알 수 없다”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 일각에선 반이재명계 인사들이 전당대회 주도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남 양산에 있는 문재인 집을 일부러 찾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활발해진 문재인의 개인 소셜미디어(SNS) 활동도 이런 맥락에서 읽히고도 있다. 이재명의 광폭행보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