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라 하는 우리처럼 청바지를 많이 걸쳐 입었던 세대도 없다. 단 한벌로 단순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으며 활동성이 뛰어나 누구든 선호하였던 청바지. 아버지는 착 달라붙은 청바지와 나의 긴머리를 무척 싫어하셨지만 나는 만류를 듣지않았다. 오히려 완고하다는 푸념과 경계를 형성하며 자리를 슬며시 빠져나가곤 했다. 세상에 넘쳐나는 옷 가운데 청바지처럼 급격한 신분 상승을 겪은 패션 아이템도 드물다. 광부의 작업복으로 출발해 스타의 시상식 의상으로 승격하기까지, 청바지의 150년 역사는 실로 파란만장하다.
청바지의 역사를 알면 세상 흐름도 자연 알게된다. 청바지를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1850년대 골드러시를 따라 미국 서부에 온 독일 출신 이민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라고 한다. 광부에게 천막이나 포장마차용 질긴 천을 팔기 위해 캘리포니아 금광에 찾아온 그는 광부들이 천막보다는 거친 일을 견뎌낼 질긴 옷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작업용 오버롤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터지고 끊어지고 주머니 부근이 금방 헤진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 참으로 획기적인 솔기를 튼튼한 실로 꿰매고 뒷주머니가 떨어지지 않도록 굵은 구리못 같은 리벳(rivet)을 박아 넣었다. 옷에 금속을 박는다는 아이디어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것이 대표적인 청바지 브랜드가 된 ‘리바이스(Levi’s)’의 시초다. 당시 가격은 한 벌에 1달러에 불과했지만, 리바이는 결국 이 청바지로 금광 채굴자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1880년대 말 청바지를 부르는 명칭은 ‘웨이스트 오버롤스’였다. 청바지의 인기로 천이 부족해지자 리바이는 프랑스 남부의 님(Nimes) 지방에서 질긴 직물을 들여왔다. 이 직물은 서지 드님(Serge de Nimes ·님 지방의 옷)이라고 불렸고, 여기서 ‘데님’이라는 명칭이 유래됐다. ‘진(jeans)’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제노아(불어로 Genes)항에서 온 선원들이 청바지 작업복을 입은 데서 유래했다.
‘리바이스’와 함께 진 브랜드의 양대 산맥인 ‘리(Lee)’는 1889년 설립됐다. 나는 리(Lee)씨 성을 갖은 한국이나 중국사람이 옷을 만든 것으로 여직 알고 지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설립 초기엔 음식 관련 업체였다가 의류 사업에 뛰어들어 1924년 첫 ‘리 카우보이 팬츠’를 내놓았다고 한다. 광부들의 옷은 튼튼한 바지를 필요로 하던청바지는 1930년대 서부영화 총잡이의 대명사인 카우보이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 청바지에도 사춘기가 찾아온다. 이 시절 청바지는 반항적인 미국 청년의 유니폼으로 굳어졌다.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등에서 몸에 맞는 티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으로 ‘반항아’의 전형을 완성한 제임스 딘의 영향이 컸다. 이유 없는 반항도, 청바지 없이는 폼이 안나고 의미가 적었다. 말론 브랜도가 입어 터프한 남성미로 각이도 되었던 청바지는 영화와 콘서트 등에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나온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엘비스(Elvis)의 이름은 리바이스(Levi’s)의 글자 순서만 바꿔서 만들 수 있는 이름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로소 대중화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청바지. 1960년대 청바지는 히피 문화와 함께 반항문화의 상징이 됐다. 젊은이들은 청바지에 평화를 뜻하는 심벌 마크를 그려 넣거나 샌들 밑으로 질질 끌고 다녀 끝단이 해지게 만들었다. 반전(反戰)시위와 우드스탁(록 페스티벌)에도 청바지가 함께 했다. 전쟁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성과 약물이 남용됐다.
‘청바지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 팝아트의 선두주자였던 앤디 워홀은 1971년 롤링 스톤스의 스티키 핑거스 앨범 재킷을 위해 청바지를 소재로 작업한 작품을 내놓았다. 노동자와 스타들의 세계를 뛰어넘어 예술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도 합류했다. 흔히 ‘디자이너 진’이라고 불리는 청바지는 1977년 캘빈 클라인에 의해 등장했다. 캘빈 클라인은 리바이스보다 50%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첫 주에 20만벌이 팔렸다.
캘빈 클라인, 서지오 바렌테 등의 브랜드가 뒷주머니에 상징적인 로고를 새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노란 실로 주머니에 말 머리를 수놓았던 조다쉬도 디자이너 진의 유행에 한몫을 했다. 게스가 내놓은 100달러짜리 진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가였지만 상점마다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1970년대 말 미국의 청바지 판매량은 역대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 전역에서 시간당 6만벌씩 팔려나가 수요가 그보다 많아 데님 천의 부족분이 1억야드에 달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세계시장에도 청바지 붐이 일어나 유럽 암시장에선 한 벌이 300달러에 거래될 정도였다. 1990년대 브래드 피트가 입어 꽃미남의 부드러움이 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스티브 잡스가 입어 창조와 혁신, 그리고 정보기술(IT) 산업의 상징이 되었다. 죄수 복같은 푸른 천의 광부 옷으로 시작하여 대중성을 얻고 예술성에 창조적 신념까지 지닌 청바지 세상 150년은 참 많은 인식과 의식의 변천을 낳았다.
가난한 인도 뭄바이 최대 빨래터인 도비가트에서 부터 부자의 뉴욕에 맨하탄에 이르기 까지 어느 곳에서든 거리 낌 없이 활보하는 청바지는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와 빈자를 가르지 않고 애용되니 이제는 열사의 땅 중동에만 자리한다면 세계통일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과연 진정한 세계화와 빈부 통합을 이루었고,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입으니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었으며, 청년에서 노년까지 두루 입으며 세대를 화해시켰으니 인물로 치면 당연 UN사무총장 깜이다.
며칠 전 미국을 다녀온 아들이 리(Lee ) 한 벌을 25불 주고 사왔다고 보여준다. 가격이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한때 우리를 찾은 외국인들이 선물로 청바지를 몇 벌씩 사가지고 돌아갔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도 같다. 1990년대에는 ‘게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등의 고가 브랜드가 강남 지역에 유입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빈부격차의 지표로 통했고, 여학생들은 주머니에 빨간 삼각형이 붙은 게스를 사기 위해 계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후 GV2, 스톰 등 ‘한국인의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한다’는 10만원대 국산 청바지 브랜드들이 나와 수입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바이스 진이 140주년을 넘어선 오늘날, 스타일은 더욱 다양해지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프리미엄 진이 전성기를 구가할지언정 청바지는 더 이상 빈부의 척도가 되지 못 한다. 반항아건 모범생이건, 스타건 일꾼이건, 어느 나라에 살건 누구나 옷장 안에 한 벌 이상의 청바지는 갖고 있으니 청바지는 세상 평등을 제일 먼저 얻은 산물로 그 영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지구의 생명과 같이할 유력한 존재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누군가는 건배를 할 때 '청춘은 바로 지금 부터다. 라는 앞 말을 따서는 청바지 하고 외친다.
내가 좋아하는 원로 수필가 윤재천 선생님은 나이 80이 넘으셨는데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다. 그의 글 '청바지와 나'라는 글이 그의 낭만적인 마음과 청바지의 청춘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글 한 대목 "
젊은 날의 내 모습은 사회가 요구하던 규격품의 모습이었다. 무수한 끈으로 포박당한 채 살아온 시간이었다.
몇 십 년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강의이지만 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틀에 박힌 생활, 보직에 따라 주어지는 임무, 선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참아야 하는 이율배반의 처신….
청바지와 캐주얼을 즐겨 입게 된 것은 지나치리만큼 형식에 매달려 규격화된 채 살아온 내 젊은 날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거나, 보상심리에 기인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눈치 보는 일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 아무 데나 주저앉아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모여 사는 곳을 향해 힘껏 이름이라도 불러보기 위해서는 청바지가 제격이다.
넥타이를 매고 후줄근한 양복을 걸친 채 한강변을 거니는 초라한 형상보다, 청바지에 남방을 받쳐 입고 시선을 멀리 던지며 사색에 젖어 있는 모습이 더 여유롭다. 청바지는 나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탈출의 동반자요, 동조자다. "
그 상징 그대로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를 입을 때부터가 아닐까.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처지와 나이가 아니고, 진취적 자세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자세다. 죽음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의지에 따라 젊게 살 수도 있고, 오래 살 수도 있다. 진짜 늙고 죽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관념의 끈으로 묶어놓고 그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글은 이자연 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부 기자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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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