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명(孔明)의 서천(西川) 출병(出兵) -
그무렵 형주(荊州)의 공명(孔明)은 관습(慣習)대로 칠월(七月) 칠석제(七夕祭)를 지내고 진중(陣中)의 여러 장수(將帥)들을 불러 야연(夜宴)을 베풀어 주었다. 주연(酒宴)은 밤이 이슥해야 끝이 났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 공(孔明)명은 우연(偶然)히 하늘을 쳐다 보았다.
그 순간(瞬間), 커다란 별 하나가 홀연히 찬란한 빛을 이끌며 서쪽 하늘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앗! 저 별이?..." 공명(孔明)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自身)도 모르게 단하(壇下)로 한 발짝 내려섰다.
"선생, 왜 그러십니까?" 수행(隨行)하던 마량(馬良)이 물었다.
그러자 공명(孔明)은 한숨을 크게 한번 쉬면서,
"아!... 애석(哀惜)하구나, 천문(天文)을 보니 서천(西川)에 출정(出征)한 우리 군이 불리(不利)하구나. 주공(主公)께 돌아 오시라고 재촉했으나, 방통(龐統)이 서천에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해 머뭇거리더니, 아무래도 며칠 내에 나쁜 소식(消息)이 오게 될 게야." 하고 말한 뒤에 그대로 침울(沈鬱)한 발길을 옮겨 내실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마량(馬良)이 공명(孔明)(에게 한 통의 서찰(書札)을 바치며 아뢴다.
"주공(主公)께서 관평(關平) 장군편에 급보(急報)를 보내오셨습니다."
"응?... 관평(關平) 장군(將軍)은?" 공명(孔明)은 서찰(書札)을 풀면서 물었다.
"이틀동안 팔백 리(八白里_를 쉬지 않고 달려와, 말에서 내리자 마자 기절(氣絕)해 버렸습니다." 마량(馬良)은 서찰(書札)을 건네 받던 상황(狀況)을 간단(簡單)히 아뢰었다.
공명(孔明)이 서찰(書札)을 읽어 보고나서, 탄식(歎息)해 마지 않는다.
"아!... 칠석날 방통(龐統) 선생(先生)이 낙봉파(落鳳坡)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戰死)했다네. 주공(主公)께서 나한테 서천(西川)으로 오라고 하시니, 속히 떠나야겠네."
"선생(先生)께서 가시면, 형주(荊州)는 누가 지킵니까?"
"직접적(直接的)인 언급(言及)은 없지만 주공(主公)의 뜻을 알겠네."
"네? 누굽니까?"
"누가 서찰(書札)을 갖고 왔지?"
"관평(關平) 장군(將軍)입니다."
"그래도 모르겠나? 관우(關羽) 장군(將軍)에게 맡기라는 것이네..."
"아~!..."
공명(孔明)은 즉석(卽席)에서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 등 장수(將帥)들을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관우(關羽)를 향하여,
"관장군(關將軍)!" 하고 부르니,
"네!" 관우(關羽)가 공명(孔明)의 호명(呼名)에 따라 명(命)을 받기 위해 대(臺廳)청 중앙(中央)으로 나왔다.
그러자 공명(孔明)이,
"주공(主公)께서 낙성(雒城)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지셨다니, 이번에는 부득불(不得不) 내가 가봐야겠소." 하고 말하면서,
"<형양(荊襄) : 형주(荊州)와 양주(襄州) 구군(九郡)>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重要)한 근거지(根據地)이기에, 지키는 책임(責任)이 실(實)로 막중(莫重)하오. 내가 떠난 뒤, 형주(荊州)를 잘 지켜주시오. 장군은 주공(主公)과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어, 그 정이 남다르니, 주공(主公)의 기대(期待)를 저버리지 말고, 형주(荊州)를 잘 지켜주길 바라오." 하고 당부(當付)하였다.
그러자 관우(關羽)는 자신(自信)에 찬 어조(語調)로,
"걱정마시오. 중임(重任)을 맡았으니,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그 말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책(重責)을 맡은 사람이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공명(孔明)은 시험(試驗)삼아 관우(關羽)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조조(曹操)와 손권(孫權)이 일시에 쳐들어 온다면 장군은 이들을 어떻게 대할 거요?"
"군사를 둘로 나눠 싸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자 공명(孔明)이 즉석(卽席)에서 고개를 가로 흔든다.
"그리하면 형주(荊州)를 잃을 것이오. 내가 형주를 지킬 방법을 여덟 자로 말해 줄 것이니, 그대로 하면 능히 형주를 지킬 수가 있을 거요."
"그 방법(方法)을 말씀해 주시오."
"북거조조(北拒曺操 : 북으로 조조를 막고, 동화손권(東和孫權 : 동으로는 손권과 화친), 이것이 바로 형주(荊州)를 지킬 수 있는 방법(方法)이오."
"군사(軍師)의 말씀을 명심(銘心)하겠습니다."
"인장(印章)을 받으시오."공명(孔明)은 그제서야 유비(劉備)에게 내려받은 형주(荊州) 총대장(總大將) 인수(印綬 : 발병부(發兵符) 주머니를 매어 차던, 길고 넓적한 녹비 끈)를 관우(關羽)에게 내주었다.
공명은 서천(西川)으로 떠나면서 관우(關羽)를 보좌(補佐) 하는 문관(文官)에는 마량(馬良), 이적(伊籍), 미축(糜竺), 향랑(向朗)을, 무관(武官)으로는 미방(糜芳), 요화(廖化), 관평(關平), 주창(周倉)을 남겨두었다.
이렇게 공명(孔明)은 형주(荊州)의 정병(精兵) 일만(一萬)을 거느리고 서촉(西蜀)으로 출ㅂ발(出發)하였는데, 장비(張飛)는 일군을 거느리고 파주(巴州)를 거쳐 낙성(雒城) 서쪽으로 진군(進軍)케 하고, 조운(趙雲)은 배를 타고 강(江)을 건너 낙성(雒城) 전방(前方)으로 보낸 뒤, 자신(自身)은 간옹(簡雍), 장완(張琓) 등과 함께 육로(陸路)로 길을 떠났다.
공명(孔明)은 출발에 앞서 장비(張飛)에게 이렇게 당부(當付)하였다.
"서천(西川)에는 예로부터 영웅호걸(英雄豪傑)이 허다하니, 장군(將軍)은 만에 하나라도 그들을 업신여기지 말도록 하시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백성(百姓)들을 덕(德)과 인(仁)으로 대하고 행여 약탈(掠奪)이나 위협(威脅)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부하(部下)들은 엄격(嚴格)한 군율(軍律)로 다스리되, 사사로이 처벌(處罰)하는 일도 없도록 하시오."
"알겠소. 군사(軍師)의 (하시오,하시오, 하시오...)말씀을 명심(銘心)하겠소." 장비(張飛)는 공손(恭遜)히 명(命)을 접수(接受)하고 장도(壯途)에 올랐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군사(軍士)에게 명(命)하여 백성(百姓)들을 자애(慈愛)롭게 대하며 노인(老人)을 공경(恭敬)하고 부녀자(婦女子)들을 해(害)하지 못하게 하며, 백성들의 재산(財産)을 보호(保護)하게 이르니 가는 곳마다 인심(人心)을 크게 얻었다.
이윽고 장비(張飛)는 파군(巴郡)에 도착(到着)하였다. 그러나 파군(巴郡)의 현령(縣令) 엄안(嚴顔)은 촉국(蜀國)에서는 명장(名將)으로 이름이 높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순순히 항복(降伏)하지 아니하고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장비(張飛)와 대치(對峙)하였다.
장비(張飛)는 순순히 항복(降伏)하지 않는 것을 괘씸하게 여기고 엄안(嚴顔)에게 조롱(嘲弄)투의 서한(書翰)을 보내었다.
<노 필부(老匹夫: 늙은이)는 지체(遲滯) 말고 항복(降伏)하라. 만약(萬若) 그렇지 않는다면 성(城)을 깨뜨리고 성안의 백성(百姓) 조차 씨알 머리도 남기지 않겠노라!>
엄안(嚴顔)은 그 서한(書翰)을 받아 보고 크게 노하며, 사자(使者)의 귀와 코를 베어 성루(城樓)에 높이 매달았다.
장비(張飛)가 그 소식(消息)을 듣고 크게 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뭐야? 엄안(嚴顔), 그 개 **가? 이런 18老無時key 加 !..."
장비(張飛)는 즉각(卽刻) 군사(軍士)를 동원(動員)하여 성(城)을 공격(攻擊)하기 시작(始作)하였다.
그러나 적(敵)은 성문(城門)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일체 응전(應戰)하지 않았다. 군사(軍士들이 화가 치밀어, 성벽(城壁)으로 기어 올랐으나, 성벽 위에서 화살과 끓는 물을 쏟아 붓는 바람에 성벽(城壁)을 기어 오르던 군사들의 사상(死傷)이 늘어나기만 하였다.
장비(張飛)는 밤과 낮을 두고 계속해 공격(攻擊)을 명(命)하였다.
그러자 다음날 아침에 현령(縣令) 엄안(嚴顔)이 성루(城樓)에 나타나 장비(張飛)를 굽어보면서 호령(號令)한다.
"여봐라, 장비(張飛)야! 지금이라도 목숨이 아깝거든 곱게 물러가거라!"
그 소리를 들은 장비(張飛)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노발대발(怒發大發)하면서 고함(高喊)을 질렀다.
"내, 네 놈을 잡아서 살로써 회를 쳐 먹고야 말겠다!"
장비(張飛)가 성루城壁)를 올려다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순간, 엄안(嚴顔)이 쏘아갈긴 화살이 장비의 투구를 스치고 미끄러져 나갔다. 다행(多幸)히 피해는 입지 않았으나, 화살의 기운이 얼마나 강했던지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만으로도 장비(張飛)는 아찔하였다. 장비(張飛)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이날은 그대로 쫓겨 돌아오고 말았다. 장비(張飛)가 적(敵)에게 겁을 집어먹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비(張飛)는 정면(正面) 공격(攻擊)으로 파군성(巴郡城)을 함락(陷落)시키기는 어렵다는 파단(判斷)을 하고, 높은 산에 올라가 성 안의 정세(情勢)를 살펴보았다. 멀리서 보아도 성(城) 안에서 대항(對抗)하는 군사는 대오(隊伍)가 정연(整然)한 것이, 첫눈에 보아도 이만저만 강(強)한 것 같지 않았다.
(음!... 덮어놓고 우격다짐으로 싸우다가는 큰일 나겠는걸!...)
장비(張飛)도 이제는 계교(計巧)로써 싸울 심산(心算)으로 모든 군사를 영채(營寨 안에 머무르게 하고, 욕설(辱說)을 기막히게 잘하는 입이 거름진 병사들을 사, 오십 명 추려모아, 성(城) 밖에서 적(敵)에게 지독(至毒)한 욕설(辱說)을 퍼붓게 함으로서, 분기탱천(憤氣撐天)한 적들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싸우러 나오게 하려는 고도(高度)의 심리전(心理戰)을 펼쳤다.
"야! 이 **** 아! 쥐** 모양 숨어 있지만 말고, 어서 ** 나와라!"
"@$&* ? @@@!"
"...."
그러나 장비(張飛)의 군사(軍)士가 아무리 천하에 없는 지독(至毒)한 욕설(辱說)을 퍼부어도, 적은 성문(城門)을 굳게 닫은 채 일체의 응답(應答)이 없었다.
이틀 사흘 연거푸 건드리는 데도 일체 묵살(默殺)을 당할 뿐이었다.
적의 태도가 그렇게 나오니, 이제는 약을 올리던 장비(張飛)가 오히려 약이 올라 죽을 지경이되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위험(危險)을 무릅쓰고, 목청이 크고 욕을 지독하게 잘하는 너댓 명의 군사를 성문 앞까지 접근(接近)시켜 갖은 욕설(辱說)을 퍼붓게 하니, 성(城) 안에서 이십여 명의 장사(壯士)들이 성문(城門)을 <벌컥>열고 달려나와 욕(辱)을 하던 이쪽 군사를 그대로 사로잡아서 성(城) 안으로 <쪼르르>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 어!" 장비(張飛)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순식간(瞬息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또다시 성문은 굳게 닫히고 일체의 반응(反應)이 없다.
장비(張飛)는 그 모양을 보고 한탄恨歎한다.
"아이, 18~! 미치고 팔짝 뛰겠네!"
장비(張飛)의 뚜껑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다가, 급기야 <씩씩> 솟아올랐다.
("칙칙폭포... 칙치폭포... 꽤~액! ~...")
삼국지 -264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