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세상을 떠난 ‘분단시대’의 원로 사학자 강만길은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신지 모르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왜곡된 역사의식으로 북한을 비호하며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닌 반국가 세력을 비난해서다. 그 ‘왜곡된 역사의식’을 불어넣은 원조가 고(故)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교수님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했다”고 트위터로 강만길을 추모했다. 늘 그랬듯, 온화한 거죽만 보면 뭐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다. 강만길이 대체 뭘 가르쳤기에 윤 대통령이 그런 말까지 했는지는 ‘촛불행동’이라는 단체가 쓴 추모글을 보면 안다.
“선생님은 ‘민족해방운동’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시고 분단이 존재하는 한 민족해방의 과업은 끝나지 않았음을 절절하게 강조해오셨습니다.” 심지어 촛불행동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분단체제를 종식시키며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독립을 완성하는 날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면서 “일깨워주셔서 감사하다. 영면하시옵소서” 했다.
● 분단사관-통일사관의 원조 강만길
그런 강만길을 ‘밟고 넘어서라’니, 무엄한가. 고인이 살아생전, 그러니까 1999년 1월 7일 자 한겨레 21 인터뷰에서 직접 했던 말씀이다. “아직도 젊은이들이 내 책을 읽고 나랑 같은 생각을 하면 이 나라는 망한다”며 “나를 밟고 넘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쓸 테다(그가 그다음 “그래야 역사는 분단을 넘어 다시 하나가 되면서 전진할 것”이라고 한 대목은 에잉, 빼고 싶지만 써둔다).
학자로서 “한반도 문제는 동아시아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동아시아가 경제공동체를 만들려면 한반도 평화통일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할 순 있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은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재통일이 달성될 때에야 비로소 청산된다”는 억지 주장까지 읽고 나면 아,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학자의 책이 운동권 교본이 됐고, 그 제자들은 삐딱한 국사 교과서를 썼으며, 그런 사관(史觀)의 세례를 받고 집권한 정치가 나라를 엉뚱한 데로 끌고 다녔다는 사실이 나는 분하고 원통하다.
그리하여 제발 바라노니, 고인의 살아생전 당부대로 강만길을 밟고 넘어서 주자. 안 그러면 이 나라는 망한다니, 이젠 강만길의 책을 덮자(찢어도 좋다). 더불어 분단사관까지 털어내 버리자. 장맛비에 깨끗이 씻겨가 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