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상은 WBC 슈퍼웰터급 랭킹 5위까지 올랐던 복서출신으로 추성훈의 타격코치였던 오히가시 아키라와
일본을 대표하는 킥복서 마사토의 2005년 K-1에서의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 마사토는 킥복서가 아웃파이터형 복서를 잡는 전형적인 방법을 보여줬죠.
1. 먼저 한걸음 내딛으면 상대에게 킥이 닿는 킥복싱 거리를 유지하면서 레그킥으로 상대의 다리를 공략한다.
2. 복서도 나름 킥을 준비해 왔지만 정통 킥복서를 상대로 당연히 킥싸움에서 밀리게 되어 점수를 잃기 시작.
3. 마음이 급해진 복서는 펀치 러쉬를 해보지만 복싱 거리보다 먼 곳에서 들어가다 보니
오히려 킥복서의 카운터에 걸리기만 함.
4. 결국 이도저도 안되고 하단에 타격이 누적되어 다리에 신경쓰다 보니
복서가 펀치 싸움에서 킥복서에게 밀리는 사태 발생.
5. 그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가다 경기 끝.
저번 UFC on FOX 20에서의 홀리 홈과 발렌티나 셰브첸코와의 경기도 이와 거의 유사했습니다.
홀리 홈도 나름 킥을 구사하긴 하지만 쿤룬 파이트와 WAKO 챔피언 출신으로
킥복싱 무대에서 날리던 셰브첸코에게 킥싸움에서 상대가 될리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본래 아웃파이팅을 하며 카운터를 노리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킥거리 바깥에서 무리하게 들어가다 계속 셰브첸코의 카운터에 걸리다 졌던 거죠.
오늘 저메인 드 란다미와의 경기에서 1라운드의 경우 위와 똑같았습니다.
거리잡고 상대를 끌어들여 카운터를 날리려고 하는데 자신이 카운터 날릴 타이밍이 오기 전에
드 란다미의 인사이드 레그킥이 먼저 날아와 버리는 거죠.
그러다 보니 복싱 거리보다 먼거리에서 펀치러쉬를 하다 카운터에 걸리는 양상으로 1라운드를 뺐겼습니다.
근데 이번 경기를 앞두고 홈의 코치인 그랙 잭슨과 마이크 윙클존도 나름 새로운 기술을 준비하긴 한 것 같습니다.
2라운드부터 홈은 원투 이후 레그킥으로 마무리하는 킥복싱의 전형적인 컴비네이션을 구사하고
기회가 되면 클리치 후 원렉 테이크다운을 노리더군요.
하지만 이런 컴비네이션은 킥복싱 경력 37전의 드 란다미에게 너무나 익숙한 기술인데 반해
홈은 실전에서 처음 구사해보는 기술이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드 란다미는 상대의 원투-레그킥을 받아 낸 이후 카운터 치는 타이밍을 아주 쉽게 잡아내는데 반해
홈은 확실히 새옷이 몸에 어색한 듯 킥 이후 상대 카운터에 대한 반응이 안좋았습니다.
원렉 시도 역시 드 란다미의 테이크 다운 방어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홈이 힘으로만 뽑으려 하는 바람에 전혀 실속이 없었구요.
차라리 드 란다미가 마음 놓고 킥을 구사할 수 없도록
타이밍 태클이나 킥캐칭을 준비해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81년생이 줄곧 복싱을 하다 늦은 나이에 MMA를 시작해서 새로운 기술 익히는게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요.
그렇다면 복서가 킥복서나 낙무아이를 상대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타 격투기 종목에 진출했던 남성 복서 중 레이 머서와 비탈리 클리츠코 다음으로
경력이 좋은 선수는 IBF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프랑소와 보타인데
(유튜브에서 보타를 검색하면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이 마이크 타이슨을 상대로
경기 잘 풀어가다가 5라운드 종료전 13초에 터진 훅 한방에 KO당한 1999년 경기임...)
평생 복싱만 하다 40이 넘은 나이로 K-1에 데뷔한 걸 감안하면 경기력이 좋았습니다.
위 영상은 K-1 2004 파이널 4강에서 보타와 레미 본야스키가 만난 경기입니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킥복싱과 무에타이가 혼합된 스타일인 본야스키를 상대로
보타는 아웃파이팅이 아닌 압박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복싱 거리를 만드려고 노력하면서
지속적으로 상대의 몸통을 두들기고 상대보다 더 많은 공격시도를 하여
본야스키가 킥을 쉽게 낼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경기 끝나기 1초전에 터진 헤드킥에 보타가 다운되는 바람에 본야스키가 이기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이런 전략이 적중해서 보타 쪽이 우세한 상황이었죠.
결국 복싱이 몸에 완전히 익어버린 나이가 있는 선수가
타 격투기 종목에서 킥복싱이나 무에타이 기반의 선수를 상대할 때는
압박을 해서 복싱 거리를 만들고 펀치로 꾸준히 상대를 괴롭혀야지
절대 홀리 홈처럼 아웃파이팅을 해선 안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