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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尙州)라는 고장은 경상도란 명칭의 유래가 된 오래된 도시다. 어감도 부드럽고 사범학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들도 여러 명 있는 고장이라 낯설지 않아서 좋다. 답사 차 몇 번 방문한 게 전부이지만 다시 와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문지회원 71명이 차량 두 대에 나눠타고 임란북천전적지, 남장사, 경천대, 자전거박물관, 낙동강생물자원관을 보기로 예정되어 있다. 한정된 비용으로 답사를 진행하려면 차량 1대당 최소 40명은 타야 하는데 앞서 진행한 여러차례 답사에서 비용이 약간 남은 것을 쓰기로 하였기에 추가비용 부담없이 가능하였다.
임란 시 최초로 왜병을 맞아 싸운 곳이 바로 상주임란북천전적지가 아닌가. 1592년 4월 25일 조정에서 이일을 순변사로 삼은 정규군 60여명과 상주판관 권길, 호장 박걸이 모은 800여 의병이 왜병 소서행장이 지휘하는 17,000명과 결전을 했으니 결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으리라. 이일은 도망치고 권길, 박걸 및 종사관 윤섬, 의병장 김준신, 김종무, 병조좌랑 이경류 등은 결사항전으로 싸웠지만 대부분이 분연히 전사한 곳이다. 가장 선두에서 지휘해야 할 이일 순변사가 도망가기 급급했고 이 지역 출신들이 목숨을 걸고 항전했지만 참패로 끝난 상주전투였다. 하기야 선조부터 도망가기에 급급했으니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랴. 나라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순국하신 영령들께 머리숙여 명복을 빌었다. 이 뜻깊은 곳에 충렬사, 전적비, 임란기념관, 비각과 이건해 온 상산관(객사), 침천정(헌판 글씨는 석재 서병오), 태평루 등이 한데 있어 잠시 호국영령들을 생각하고, 문화재도 볼 수 있는 곳이라 한 번쯤 거쳐가야할 곳이라 생각한다.
남장사(南長寺)는 신라 흥덕왕 7년(832) 진감국사가 창건하고 장백사라 불렀다가 고려 명종 16년(1186)에 각원화상이 지금 자리로 옮겨 남장사로 불렀다.
보광전에 모신 철조비로자나불(보물제990호)은 협시불이 없으며, 수인도 일반적인 것과는 반대로 왼손이 오른손 검지를 잡고 있는 표현을 해 두었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탱(보물제922호)은 조각솜씨가 문경 대승사 목각탱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밋밋한 불화로 표현한 것에 비해 조각으로 불상을 표현한 것이 시선을 끄는 것은 물론이다. 마침 이날 스님이 독경을 하고 계셔서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고 문화재청 홈피에서 다운받은 게 알아볼만 해서 함께 실었다. 이외에도 남장사에는 관음전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제923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제1635호),감로왕도(보물제1641호), 영산회괘불도(보물제2007호) 등 보물만도 6점이나 되는 곳이다.
경천대(擎天臺)는 낙동강 칠백리 중 가장 으뜸 풍광을 자랑한다는데 아직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은 커녕 지방문화재인 기념물로도 지정되지 않아 의아스럽다. 한국인이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말이다. 전망대에 힘겹게 오르면 낙동강 굽이돌아 흘러가는 물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편 논은 황금들판인데 상주보를 막기 전만해도 백사장까지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4대강 개발이랍시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흐르는 물길을 막은 자체가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더 늦기전에 원상회복하였으면 좋겠다. 채득기(蔡得祈)가 바윗돌에 가로로 새긴 경천대(擎天臺)와 세로로 새긴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 글을 새긴 게 언제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채득기가 1646년에 사망했으니 1644년에 망한 명나라가 존재할 때일 듯하다. 명나라를 못내 잊지 못해 하늘과 땅, 해와 달이 모두 명나라와 명의 마지막 황제 의종(연호: 숭정)의 것이라니 조선의 선비라는 작자들의 지나친 친명사고를 보며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송시열도 같은 글귀를 화양동 계곡에 남겼다고 하니 도대체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나라 신하란 말인가. 무우정(舞雩亭)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인데 채득기가 여기서 학문을 닦은 곳으로 전해진다. 부근에 있는 드라마 '상도'촬양지의 초가정자가 여전히 푸근함을 선물로 준다.
다행히 경천대 입구 식당은 우리 식구 모두가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목2팀 소속 최영희 회원(경기민요전수자)의 단아한 민요 한 자락을 들었으니 밥맛이야 더욱 좋을 수밖에.
부근 자전거박물관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틈이 있다면 권할만한 곳이다. 마침 생물자원관에서 휴대폰 밧대리 소진으로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낙동강 유역의 동식물은 물론 사자, 호랑이, 하마 등 숱한 동물들의 박재품을 볼 수 있어서 손자녀들과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오늘도 17000보를 걸으며 바쁜 일정을 끝냈다. 여행하기 좋은 이 가을, 더 많은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 아니던가.
<임란북천전적지 출입문>
<상주의 객사인 '상산관'>
< 상산관 현판의 객사 건물, 현존하는 객사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상주목사가 망궐례를 하는 장면의 재현>
<일행이 함께하다>
<침천정, 1577년 상주목사 정곤수가 읍성 남문밖에 건립, 1914년에 현 위치로 이건, 현판은 석재 서병오가 씀>
<용마루 답게 용조각을 했다>
<임란북천전적비>
<충렬사 외삼문, 현판은 경절문>
<충렬사 내삼문, 현판은 충의문>
<순국하신 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렬사>
<위패는 9분이다>
<모셔진 위패>
<모셔진 우패>
<어떤 분들이 어떤 공적을 남겼는지 유심히 살펴봅시다>
<곽재우 장군이 사용했던 칼>
<순국하신 분 중에 방계조상님도 계시네요>
<태평루>
<남장사 입구에서>
<금란방, 사찰 경내에서 난잡한 행동을 삼가달라>
<고색창연한 보광전>
<보광전 맞은 편 설법전>
<보광전 주불은 비로자나불, 후불탱화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목각탱으로 조성됨>
<문화재청 홈피에서 다운받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제990호)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제 922호)> 스님께서 독경중이라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함.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인데, 이 탱화는 종이나 비단이 아닌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목각탱이다.
이 목각탱은 가로 236㎝, 세로 226㎝, 두께 10∼12㎝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보광전의 후불탱화로 사용되고 있다. 길쭉한 나무판 8장을 연결하여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4단씩 3열로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꽃가지를 들고 있으나 한 분만 합장하고 있으며 관음과 대세지 보살은 연꽃 위에 앉았고 다른 인물들은 서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각 인물들 사이에는 연꽃과 꽃봉오리 등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있는 본존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솟아올라 2줄기로 갈라져 있다. 몸에 비해 큰 방형의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회화적이면서도 조각적인 매력을 간직한 귀한 작품이다.
<남장사 감로왕도(조상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우란분재:우란분은 거꾸로 메달려 있다는 산스크리트어) 보물제1641호
이 불화는 1701년 탁휘(卓輝) 등의 화승이 그린 감로도로서 18세기의 감로도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각 장면 옆에는 방제를 적어 내용을 밝히고 있어 감로도의 도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필치가 유려하며, 채색은 분홍색과 노란색 등 밝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가 밝아 보이는 한편 금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칠여래와 인로왕보살, 지장보살,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중단에는 제단과 그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 하단에는 고혼들의 다양한 모습을 질서정연하게 묘사한 이 감로도의 구성은 차후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을 이루었다. 남장사 감로도는 감로도 도상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가가 그룹별 도상의 묘사도 뛰어나다.
<현판은 교남강당, 교남은 조령 이남 경상도를 일컫는 말, 대구에도 교남YMCA가 있었다.>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 이 불상의 수인은 왼손이 위에 올라온 형상인데 원칙은 오른손이 위로 올라오도록 해야 하는데 반대로 되어 있다>
<금륜전이란 이색적인 현판, 이 전각 가운데는 불상, 왼쪽에 산신, 오른쪽에 나반존자를 배치하였다>
<금륜전 가운데 불상>
<왼쪽에 산신령 배치>
<오른쪽에 나반존자 배치>
<보광전의 화려한 공포>
<공포 제일 위쪽은 극락조를 새겼다. 왼쪽 위 흰화살표 있는 곳>
<극락보전>
<극락보전의 삼존불>
<즐거운 점심>
<최영희 경기민요 전수자의 열창을 들으며>
<경천대 입구 인공폭포를 배경으로>
<전망대 오르는 길>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본 강건너 황금들판>
<모레사장은 몽땅 사라졌다>
<맨 꼭대기 층에서>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모두 건강 만점>
<낙동강 하류 쪽>
<경천대 소나무가 말라죽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고욤나무의 열매>
<채득기가 썼다는 글씨>
<400년 된 우담송, 이렇게 관리해도 되나요?>
<무우정 현판>
<새총 만들기 딱 좋은 나무>
<무우정>
<드라마 '상도'셋트장>
<꽃무릇, 여기서도 볼 수 있네>
<자전거 도시답게 자전거박물관도 거창하다>
<엄복동 자전거>
첫댓글 이 명예회장님!, 일전에도 말씀 드렸지 싶은데~~요. 주윤님의 글과 사진을 열면 위에서 끝까지 파란색의 나오는 드래그-Drag를 해 보시고, 파랗게 나오는 어느부분에서도 오른쪽 마우스 -Mouse를 꾸욱 눌리면 여러가지 기능이 나오는 데서
'복사'를 크릭-Click 해서, 주유님 방에서 빠져 나와, 울 문지회 방의 올리고 싶은 게시판(문지회소식) 선택해서 글쓰기
칸에 제목 넣고, 다음엔 빈 칸이 나오면 아무곳이나 크릭하여 '붙이기' 칸이 보이면 그냥 붙이기해서 등록만 하면...끝 입니다. 이 방법으로 본인의 성명이 직접 나와보여야만 본인 이름의 작품이 올려져 야지~이 명예회장님의 글과그림을 살려야 되잖습니까?? 죄송합니다.또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