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6,13) 2016.4.8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34-42)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6,11-13)
공자님은 그의 70평생을 6단계로 엮었습니다.
그분은 15세 때 배움에 전념하였고, 30세에 그 나름대로 '입장'을 세우게 되었고,
40에 많은 논쟁을 하는 가운데 이 입장의 타당성을 더 확신하게 되었고,
50에는 자기 외에 하늘의 명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60에는 다른 입장의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70에는 자기 안의 생각과 하늘의 명이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무(東武) 이제마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논했습니다.
"유년기에 문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유년의 호걸이요,
소년기에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사람은 소년의 호걸이요,
장년기에 널리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장년의 호걸이요,
노년기에 올바른 사람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은 노년의 호걸이다."
두 분의 말씀을 살펴보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영역이 더욱 확장됨을 알 수 있습니다.
평생을 성심껏 살면서, 나이 들수록 관심과 사랑의 범위가 더 확장되고, 삶을 통한 사색과 경험을 통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늘의 뜻을 헤아리게 되고, 참된 사람, 참된 가치를 구별하고 보호할 줄 아는 것입니다.
“노년기에 올바른 사람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은 노년의 호걸이다."
칠 년전(2009년) 선종하신 故 김수환 추기경님은 지금도 온 국민의 존경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때 밤에 그분의 빈소가 마련되었던 명동성당에 둘째 아들인 남재와 함께 갔었습니다. 늦은 밤 시간인데도 평소의 주일미사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분은 1960년대 이후 반세기에 걸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셨습니다. 이 민족이 빛을 찾고, 그 빛을 향해 걷게 하였고, 이 민족의 생명을 지키게 한 빛이셨습니다.
그 시대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고통을 겪는 사람들, 한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옴 몸으로 감싸 안았던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선종하시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 분의 이러한 사랑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넘쳤던 것입니다.
저도 1996년인가 한약분쟁 때, 등록을 안했다가 제적을 당한 후에, 저 혼자만 복적이 안됐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가까이 아껴주시던 교수님의 도움으로, 제 사정이 추기경님께 알려졌고, 그 분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제 이야기를 들으신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여러 분들과 통화하며 저를 부탁하셨고, 나중엔 제가 다니던 학교 총장에게도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후 복적이 되어 감사의 편지를 드렸고, 그 분은 '함께 기뻐한다'는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졸업 후에, 찾아 뵈야지 생각하면서도 결국 찾아뵙지 못하고 선종소식을 들어야했습니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사도5,39)
유다 최고의회에서 사도들을 신문할 때,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이라는 랍비가 일어서서 한 말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겪었던 역사를 보게 하고, 하느님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길게 보고 앞의 일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을 위하고 하느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자신들이 바로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길게 내다보는 원로의 지혜가 사도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살렸습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원로의 한마디가 내내 질식해 가던 최고의회의 사람들과 유다의 역사를 그나마 하느님의 숨결로 다시 살린 것입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때의 박해를 생각하게 됩니다.
천주교 전래이후 백 여 년에 걸쳐 이 만명의 교우들 중에서 만 여명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 때 우리나라에도 가말리엘과 같은 지혜로운 큰 어른이 계셨더라면 그 많은 고귀한 목숨들이 순교하지 않아도 됐겠지요.
오늘 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추모합니다.
세월이 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랑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한 영혼, 한 사람, 특히 고통을 겪는 한 명, 한 명에 대한 당신의 마음과 그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감사드립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갈수록, 당신처럼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