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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어났어?"
얼마전에 세일을 하길래 사온 레몬티를 오늘에서야 한번 맛보려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읽던 회계관련 책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방에서 막 나오는 김준후를 바라봤다. 아직 잠이 덜깼는지 비틀비틀 거리며 용케도 내 옆까지 와서는 내 허리를 양팔
로 감고 쓰러지듯 긴 소파에 몸을 뉘인다. 졸려 죽겠다는 얼굴을 내 배에 부비면서, 덕분에 배에 힘이 들어간다. 놈은 아직 덜 큰
새끼 짐승마냥 내 품에 얼굴을 들이밀며 킁킁 거리며 파고든다.
"졸리면 불편하게 여기서 이러지말고 방에 들어가서 더 자. 응?"
내 말에도 녀석은 묵묵부답으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커피포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다 끓었다는 신호를 내지만 난 그냥 저대
로 두었다. 대신에 준후의 부스스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쌀쌀한 겨울이지만 집 안 공기는 훈훈했다. 한손으로 들고 있던 서적
마저 덮어둔채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본격적으로 김준후의 얼굴에 집중했다.
녀석과 재회를 한지는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김준후와 나는 참 이상한 사이었다. 아니, 이상한 사이다. 라고 해야 하는 건가? 조금 고민스럽지만 그렇게 깊게 빠지지는 않았다.
녀석과 나는 한 때 가족이었다. 음, 그렀다고 피가 섞인건 아니고 그냥 아버지의 두번째 혼인으로 인해 가족이 된 그런 사이.
우리 친 엄마는 얼굴도 기억이 안날만큼 내가 엄청 아기였을때 돌아가셨었다. 갓난아이를 혼자서는 도저히 키울 수 없었던 아빠
는 재혼을 결심했고 그렇게 재혼을 해서 만난 여자가 바로 김준후의 어머니었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가 조금의 애정도 없이 나만
을 위해서 두번의 결혼을 결심한건 아니었다. 우리 아빠는 용케도 2년동안 나를 길렀고, 우리집이 조금 살았던 탓에 마음만 먹으면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나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됬었으니까.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
"응. 그렇네"
정말로 기분좋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놈에게 나도 긍정의 표시를 했다.
"........"
우리 아빠는 엄마를,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김준후네 어머니를 아주 많이 좋아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도 못할시절에
돌아가신 엄마의 기억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난 새엄마를 곧이곧대로 좋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정말로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
이었다. 내가 두살때 재혼하신 두분이라서 난 지금에서야 그 분이 내 새엄마라는 것을 알았지 그 떄는 '엄마'와 '새엄마'의 기준
이 없었었다. 그냥 두살박이 어린 나랑 놀아주는 존재가 좋을 뿐 이었다,
"계속 만져줘. 졸린데 방에서 혼자 있으면 잠이 안와"
"응"
나는 착실하게 녀석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만져주었다,
그러다가 회색의 맨투맨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상처를 보고 뜨끔 했지만 못본척 넘어가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새엄마에게도 나와 동갑인 아들이 있다는것은 내가 7살이 되고 나서였다. 7살 될때까지는 우린 세 가족이었고 나름대로 행복하
게 잘 살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마음착한 엄마는 나를 정말 딸처럼 여기면서도 내가 친딸이 아니라서
라는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될까봐 그랬는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해주셨다.
'지은아, 인사해야지. 앞으로 같이 살 친구야'
어느날이었다.
아빠랑 거실에서 블럭쌓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문이 철컥 열리면서 엄마가 들어왔다. 어렸을적 나는 가끔씩 단호한 얼굴로 나를
혼내는 아빠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엄마를 더 좋아했고 엄마가 집에 들어온 기척을 느끼자마자 아빠를 바로 뒤로 하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엄마! 하고 안기려던 찰나에 나는 나보다 조금 작은 아이를 하나 볼 수 있었다. 엄마의 얇고 흰 다리에 딱
붙어서 나를 노려보는 남자애. 나나 남자꼬맹이나 가만히 있자 거실에 있던 아빠가 와서 내게 그 아이에게 인사하기를 강요했다.
'앙영...나능 김지은이라고 해..'
이제부터는 같이 살게 될 거라는 낯선이의 등장에 발음도 어눌하게 인사를 했던 나다.
그런데 그 꼬맹이는 내가 인사를 했는데도 그 큰 눈에 적개심을 풀지 않고 나를 탐색하기만 하는거다. 엄마의 다리에 딱 붙어서,
엄마는 당황스러운얼굴로 남자아이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팡팡치며 빨리 인사안하고 뭐하냐며 혼냈지만 아빠가 중재를 하며
상황을 종료 시켰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어렸을 때 부터 성깔이 꽤 있었네..
그렇게 내가 7살이 되던해에 우리 가족은 3명에서 4명이 되었고, 원래는 친가에서 살던 어린준후를 못키우겠다며 그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 내 쫓은 인정없는 할머니 덕에 남의 자식에게도 무한 애정을 쏟으신 엄마가 아빠에게 양해를 구한뒤 데려온 것이다
원래 준후의 성도 '김'씨 었고, 아빠의 명의로 옮겨져서도 녀석은 여전히 김준후였다. 놈은 어려서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결같은
이름에다 한결같이 잘생긴얼굴. 한결같이 욱하는 성격으로 나랑 같이 자랐다.
초등학교 저학년떄까지만해도 나보다 작고 성깔만 있지 의외로 겁도 많고 소심했던 녀석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키도 쑥
쑥크고 어깨도 벌어지더니 정말로 남자가 되가고 있었다. 천둥이 심하게 치는날 안방으로 가기에는 쪽팔렸는지 조용히 몰래
내 방으로 들어오는일도 없어졌고, 집에 있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다. 김준후는 항상 밖으로 돌았고 그나마 집에 있는 날이면
제 방에 콕 틀어박혀서 컴퓨터 게임을 했다. 그러면서도 나랑은 그럭저럭 잘 지냈었다.
그러다가 안타깝게도 사이가 굉장히 좋았던 엄마와 아빠는 돌연히 이혼을 했다. 내 기억이 잘못된건지 몰라도 분명 어제까지 좋았
다가 다음날 바로 이혼을 하겠다며 갈라섰던것만 생각난다. 갑작스러운 이혼만큼이나 녀석과 엄마와의 이별 또한 갑작스러웠다.
작별인사 하는것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살았던것에 대한 예의도 없이 둘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뒤늦은
사춘기로 김준후와 자주 다투던 시기였는데, 하필이면 엄청크게 싸우고 난 다음날 이별을 하게 되서 그날밤 혼자 얼마나 청승
맞게 눈물을 흘렸는지...
그때가 18살이었는데, 11년동안을 같은 사람에게 '엄마','아빠'라는 호칭을 쓰던 우리가 (물론, 내가 엄마에게 대했던것 만큼 준후
가 아빠에게 살갑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이혼으로 인해 곧바로 남남이되어 같이 산적이 없었다는듯 돌아서 나는 아빠에게로
놈은 엄마에게로 떨어져 그 떄 부터 각자의 삶을 산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끼치도록 웃기다. 실은 아직까지도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혼사유를 알지 못한다. 나와 아빠는 원래 살던 집에 남았고 떠난건 그들이었다. 나는 가끔 엄마의 핸드폰으로 또는 준후
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지만 돌아오는것은 없는 전화번호라는 딱딱한 여자 기계음만이 전부였다.
그렇게 11년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살부비며 살았고 다시 단촐한 가정으로 돌아온지는 5년이 다 됬다. 꽤 잘살던 우리집은
아빠와 엄마가 이혼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포삭 망해버렸고, 고삼이라는 중요한 시기때 꾸준히 받아오던 고액과외를 모조리 끊
었으며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아빠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관심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수도권 대학에 붙은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아빠의 강요로 꼬박 일년을 재수를 하고서도 나는 아빠가 바라
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전에 붙었던 사년제만도 못한 서울에 있는 그저그런 전문대에 진학을 했고, 아빠는 더이
상 내게 대학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너무 안좋아진 사정때문에 나는 아빠와 떨어져서 자취를 하게 됬고 오히려 이런 사정덕에 4년제보다는 전문대에 진학한
것이 잘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23살이 된 지금까지도 전문대조차 졸업하지 못한 나다. 친구들은 학자금대출이다 뭐다 해서
등록금을 마련해서 대던데 그렇게까지 대학졸업에 큰 욕심이 없던나는 1핟년을 마치고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대충 편의점 알바
같은것을 하면서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아아. 돈을 모으는 중이었었다. 정말 웃기게도 이렇게 힘든 시기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재회학 된것이다. 김준후랑.
'...너 혹시 준후야...?'
아사히맥주를 8캔이나 가지고 계산을 해달라는, 너무 달라졌지만 여전히 익숙한 손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보통 누구누구 아니냐
고 물어보면 맞다고 대답하거나 아니락 대답하는게 정상인데 김준후는 티나게 얼굴을 구기면서 자신을 아냐고 되물었었다. 아마
도 놈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거니 싶어서 한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어쩃든 녀석이 맞다는 것에 확신이 든
나는 실없이 웃으면서 반가워했다. 내 소개까지 끝낸 후에야 준후는 표정을 풀며 '아.......'하는 탄식을 했다. 나처럼 기뻐하는
것도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닌 그런 감탄사였다. 하기야 그것도 그럴것이 굳이 얼굴 붉힐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반가워할 사이도 아닌것이었다. 녀석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웠던 나는 20분만 지나면 알바가 끝나는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요 근처에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제안했고 녀석은 자신이 가지고온 맥주를 보고는 그럼 이건 필요없겠다. 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어떠셔..?'
하지만 막상 내가 흥분해서 끌고온 호프집에 나란히 앉자 내가 생각했던것 만큼 놈과 나의 사이에는 큰 반가움이 존재하지 않았
고, 또 할말도 없었다. 당연한거였다. 5년동안 따로 살았던 녀석에게 지금까지 뭐하고 지냈니라고 묻기도 그렇고..그렇다고 군대
는 잘 갔다온거냐고 묻기도 어색했다. 그래서 나는 제일 무난하게 엄마의 근황을 여쭈었는데, 녀석의 표정은 내내 좋지 못했다.
그냥 잘 살고 있다는 대답만 할뿐이었다. 영 어색하던 공기를 참지못해서 그냥 인사만하고 보냈어야 맞는거였나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아 그런데 너 직장다녀? 아님 학교 다니나? 으하하..내일 주말도 아닌데!! 이렇게 마셔도 되는거야?'
술에 어느정도 취하자 나는 녀석에게 어깨까지 두르며 흥겹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내 들뜬 물음에 녀석은 그냥 뭐..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근데 큰일났네에... 나때문에 내일 피곤하면 어떻하지?'
그러면 각자 서로 지금이라고 집에가면 될텐데 나는 오랜만에 만난 내 가족이었던 녀석을 쉽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괜찮아. 늦게 출근해도'
다행히도 녀석도 그렇게 집에 가야한다는 의무감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난 준후의 말에서 녀석이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직장에 다니는 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직장이 늦게 출근을
해도 되는거냐며 거기 굉장히 좋은곳이구나!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에이씨. 편의점은 일분만 늦어도 교대근무하는 알바생이
눈에 불을 키고 난리를 부리는데 말이야.
'그나저나 너 되게 성공했나보구낭...'
술이 들어간 내 주둥이는 끊임없이 조잘거렸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편의점 앞까지 끌고온 그리고 이 술집까지 타고온 차나, 녀석이 걸치고 있는 옷, 그리고 시계 어느것 하나
안비싸 보이는게 없었다. 딱히 촌스럽게 명품을 주렁주렁 매단것은 아니었지만 5년사이에 익숙하지만 너무나도 달라진 녀석의
분위기나 행색이 그를 아주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갑자기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있던 내 처지가 부끄러워졌
다.
'그래보여?'
응!이라고 크게 외쳐주고 싶었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마무리 했다. 그런데 저 프라다 키 홀더는 좀 탐이 많이 난다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건 아니지만 깔끔한 검정색의 키홀더는 내가 아빠의 생일선물로 주고 싶었던거다. 사실 많이 비싸
봐야 이십만원에서 오십만원 왔다갔다 거리는 키홀더지만 밀려있는 방세 마련하기도 힘들때는 그림에 떡에 불과했다, 애꿏은
감자만 입으로 넣어 우물우물 씹었다.
'그래도 이렇게 우연히라도 만나니까 되게 되게 반갑당. 엄마랑 너랑 가고 전화 되게 많이 했었는데.., 없는 번호라느은 말만 여자
년이 하고 말이야아. 너랑 엄마능 나한테 연락한번을 안해써! 난 일부로 핸드폰 번호도 안바꿨는데 말이야!!'
술에 취한 사람은 용감하다.
사실 이날 중간에 필름이 끊겨서 모든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드럽게 눈물콧물 찔찔 흘리면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다든지 보고싶었
다느니. 요즘 집안 형편이 안좋아서 힘든데 왜 너는 이렇게 돈이 많아진거냐며 비법을 알려달라고 어이없이 조르질 않나, 내가
전문대에 입학을 했는데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장학금을 한번도 받지 못했던 이야기와, 아주 구린 자취집에서 거주한다는 말.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을 했다는것과, 지금까지 몇 안되지만 사겼던 (이제는 헤어진) 남잗에대한 욕과 함께 얼마나 쓸데없는
소리를 짓걸였는지 모른다.
'그럼 어디사는데?'
'나? 나는 이근처살지이. 그러니깐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거 아니야! 음.. 여기서 십분이면 갈껄? 자취촌!'
자취촌이라고 하면 다 알더라.
하숙집이나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건물이 많은 곳에 일일이 주소까지 알려주기는 너무 귀찮다. 이 근처 자취촌 이라는 내말에 녀석
은 알아들은 표정을 한다.
'그쪽 이제 다 재개발되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이제 거기 사는 사람도 얼마 없는걸로 아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야 조금 흥미있어보이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제 나도 이사를 가야하는 날이
채 3달도 남지 않았다고. 재개발이 있을거라는 말에 여기 사는 사람들이 벌써 몇년째 그 얘기만 돌았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거주하고 있는 하필이면 이때 재개발이 된단다. 사실 동네가 참 구리기는 했어도 그만큼 싸서 좋았는데.. 벌써
다른 곳에 방을 구해 나간 대학생들이 반 이상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건물이 내 거는 아니지만 어디가서 이만큼 싼 방을 구할
수 있겠나 싶어서 침울해지는거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되. 뭘 그렇게 재개발을해? 할거면 미리 하등가 아니면 나 나가면 하든가! 참내...'
내 앞에 놓여있는 얼마 안남은 맥주를 원샷해버렸다.
아까부터 너무 빠르게 마셔서 속이 미식거리긴 했지만 오랜만에 맛본 술이 그날따라 잘 받았다.
'그럼 잠깐 우리집에서 지내도되'
재개발이 되면 난 어디가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나이되서 아빠한테가서 손벌리는것도 쪽팔리고, 아빠도 힘들텐데.. 이만큼 싼 방이 어디 있을까? 하며 줄줄이 신세한탄만을
하는데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그러면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며 제안을 했다. 순간 나는 내가 외갓 남자집에서 왜! 아무리 돈이 없
어도 그렇지! 반박을 하려했지만 그만 뒀다. 우리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11년을 같이 남매로 지내온 사이가 아니였
던가. 게다가 외갓남자라니.. 그럼 내가 녀석을 남자라고 생각하는기라도 한단말인가?
분명 지금보면 녀석과 나의 얼굴은 당연하게고 너무 다르게 생겼고, 가족이라는 특유의 편안함이라고는 들지 않지만..... 어쨋든
녀석과 나는 가족이였었다. 아니, 부모님의 이혼만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게 지냈을 운명.
'그래도 내가 어떻게 같이 살아...'
'부담 안가져도되. 한때 같이 살았었으니까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을거고. 난 집에 자주들어가지도 못해서 거의 비어있어. '
'..............'
'니가 불편하면 굳이 강요하는건 아니지만, 아버지한테 손벌리기도 미안하다며.'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버지'라는 단어는 참 이질적이었다.
내입으로 말한 엄마라는 단어도 녀석이 듣기에 그랬을까?
'거기 3개월 후에 재개발 시작되는거 아닌가.....?'
나는 취기에 흐트러진 눈동자를 깜빡일 뿐이었다.
"밥이라도 먹게 인나자"
내 무릎에 누워서 벌써 한시간 가까이 잠든 녀석을 깨웠다.
오늘 새벽에 들어와 몇시간 못자서 피곤한건 알지만 내 다리도 저리고 이제 이러고 곧 나갈텐데 밥이라도 먹어야 겠다는 심보에서
였다. 5년만에 극적으로 재회한 우리의 사이에서 남매의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난 누나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녀석에게 얹혀 빌붙어있지만.... 염치없이도 여기에 짐을 가지고 온 날 아빠하네 전화로 준후를 만났다고 알리고 싶었지만 그만
둬 버렸다. 굳이 얘기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빨리 일어나라니까"
좀처럼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 김준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떄문에 이제 막 불에 국을 올려놨으면서도 녀석을 흔들어 깨웠
다. 하지만 김준후는 끄응 거리며 몸을 뒤틀뿐 눈뜨기를 거부하고 있다.
녀석은 자신이 말한데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제 말로는 일주일에 두세번 꼴로 집에 들어온단다. 그리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게다가 새벽에 들어와서는 씻고 잠만자고는 또 나가버린다. 나는 딱히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궁금한 사항들이 참 많았다. 겨울이
긴 하나 집에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데도 녀석은 꼭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고 잠잘때 가만히 들여다 보면 흘긋흘긋 보이는
몸에 있는 큰 상처들. 그리고 일정하지 않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주제넘는걸까 싶으면서도 무슨일 하냐고 물어봤을때 돌아
오는 대답은 그냥 건설업쪽에 종사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야! 진짜 안일어날래!"
어느새 찌개도 보글보글 끓는다.
사인용식탁에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다시한번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삼십분동안 전쟁처럼 깨우자 그제서야 졸린 눈을
드러올려 저번저벅 식탁의자에 자리를 잡고 억지로 입을 벌리고 밥을 먹는다.
많이 변했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무방비한상태의 김준후를 보니까 그 옛날 어렸을때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있는듯해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녀석과 내 사이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몰라서 의문을 품는 나다.
"지금 몇시야?"
"아홉시 조금 넘었어"
아홉시가 조금 넘었다는 말에 아.. 하고 멍청한 표정을 짓던 김준후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찍 안나가?"
"오늘은 늦게나가"
"....몇시쯤?"
"아홉시정도"
"그럼 저녘까지 먹고 갈수 있겠네. 근데 나 오늘 잠깐 친구 만나러 나가서. 점심은 반찬 꺼내먹고. 나 일곱시에는 들어올꺼야"
잠깐 나갔다 온다는 내말에 아래로 떨어뜨렸던 얼굴을 들어올려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녀석은 '엉' 하고 대답한다.
입에 미역을 넣고 오물 거렸다. 오늘 따라 기분이 뒤숭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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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부분은 과거에요.
소개단계라 지은이와 준후의 애정이 잘 들어나지 않았는데요.
다음편이나 다다음편정도부터 천천히 드러날거 같아요.
으하 오늘은 (어제는) 설이었는데 전 빨리 갔다가 와서 혼자 삽질만 했네요 ㅋㅋㅋㅋㅋ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첫댓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담편 기대할게요~
하항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닷!
진짜 재미있어여!! ㅠㅠ 준후 왠지
직업이 이상한 것 같아여 ㅠㅠ
매맞는게 직업인 것 가타요ㅠㅠ
무튼 다음편 기다릴게요!!
ㅋㅋㅋ매맞는...ㅋㅋㅋㅋㅋㅋ준후의 직업이나 둘의 애정선 등등 앞으로 조금씩 뚜렷히 자리잡을거예요~~
잘읽고갑니다~준후직업이..뭔가 짐작가는게 있긴한데 그래도 빨리 글로 알고싶어요:) 다음편기대해요♥
ㅋㅋㅋㅋ홋...벌써추측을하신건가요..ㅋㅋㅋ??
오오 재밌습니다 ㅋㅋㅋㅋ 준후 직업이 뭔지 알듯해요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당ㅋㅋㅋ우아벌써갈피를잡으신분이몇몇있으신듯해여!!
잘읽었습니다^^ㅋㅋ담편도기대할께요ㅋㅋ
감사합니다!이제슝슝쓰게습니다!
ㅋㅋ 재미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흐흥그건차차상세히설명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