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 강보(襁褓)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
윤봉길(尹奉吉)은 조국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가 집을 나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는 유서(遺書)를 남기고 만주(滿洲)와 산동반도(山東半島)에서 항일(抗日) 독립투쟁을 하다가 상하이(上海)로 왔다.
어느날 윤봉길은 백범(白凡) 김구를 찾았다.
백범은 그를 1932년 4월26일에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키고 '뜻을 품으면 마침내 뜻을 이룬다[유지자 사경성:有志者 事竟成]'는 말로 용기를 북돋웠다.
그는 한인애국단 가입 때 '나는 적성(赤誠:丹心)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屠戮)하기로 맹세하나이다'라는 선서문을 남겼다.
윤봉길은 거사(擧事) 이틀 전 현장 답사 후 백범께 '급강보중적양개병정(給襁褓中的兩個兵丁)'이라는 두 아들에게 전해 달라는 중국어로 쓴 유시(遺詩)를 남겼다.
'만일 너희들도 피와 뼈가 있다면 기필코 조국을 위해 용감한 투사(鬪士)가 되어라/
태극(太極) 깃발 더 높이 날리고 내 빈 무덤 찾아가 한잔 술을 부어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동서양 성공자를 보건대 동양에는 문학가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은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4월 29일, 일제는 홍커우공원에서 소위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戰勝祝賀) 기념식을 열었다.
윤봉길의 폭탄 투척은 일제(日帝)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신성 부산교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