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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건강한 믿음을 회복하라/렘 2:1-9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6.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8.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9.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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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조재진목사
사람에게 있어서 음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나 성격을 대강은 알 수 있습니다. 건강이 나빠지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소화가 잘 안되고 먹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일단 몸에 병이 들면 음식을 잘 소화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밤늦게 음식 먹는 것이 몸에 안좋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0대의 건강한 젊은이들은 음식의 유효기간이 별로 의미없습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도 거뜬하게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믿음
그렇습니다. 건강한 몸이 어떤 음식이라도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처럼 건강한 마음, 건강한 믿음은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에겐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건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정도 건강했는가하면 핍박이 일어나서 순교당하기도 하고 숨어지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복음화할 정도입니다. 초대교회의 상황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믿음의 삶을 살기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상황을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쳐와도 상관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핍박과 어려움을 소화해 낼 수 없는 병든 믿음이었다면 로마 복음화는 불가능했겠지요. 그러나 그들에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형들의 미움, 노예생활, 그리고 감옥생활을 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같으면 원망과 불평, 절망으로 살았을 환경이지만 그는 절망하여 자살하지도 않았고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죄를 범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이기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왕의 미움과 광야의 거친 삶을 다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또 다니엘은 어떠합니까? 그는 하나님 모르는 이방 세계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믿음이 건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환경도 상관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괜찮다 오직 나는 주님만 바라보겠다”
그런데 믿음이 병들면 모든 상황이 문제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계신가?”라고 말합니다. 장사만 좀 안되어도, 몸에 병이 생기기만 해도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 같아서 안절부절합니다. 또 교회에서 조그마한 일로 상처를 받고는 ‘시험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오니 안나오니... 라고 말합니다. 설교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조금 강한 어조로 말해도 안되고, 책망하는 말씀을 해도 안됩니다. 교인들이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마치 병든 사람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듯이 요즘 교회 성도들이 그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 목사가 교인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면 굉장히 눈치를 살펴서 해야 한다면 이것은 심각합니다. 작은 일에도 흔들린다면 일군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조금만 서운한 말을 들었다고 금방 시험 당하는 그런 믿음으로는 세계를 살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려운 상황이나 서운한 말이 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건강합니까?
모든 상황, 모든 문제를 다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믿음에 서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건강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되면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의 짐이 됩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오히려 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산제일교회 성도들은 건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산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계 복음화에 사용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들면 안됩니다. 건강한 믿음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시절의 축복
오늘 본문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병들었습니다. 과거 광야에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건강했습니다. 광야의 생활이 어려웠지만 그 모든 어려움도 다 이길 정도로 그들의 믿음은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와서 왕제도가 생기고 나라가 커지자 그만 이스라엘의 신앙은 병들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제 새로워져야 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소명을 받고 본격적으로 예언사역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선포하는 첫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씀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이전에 선포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시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씀에 힘을 얻어 종교개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특별히 옛날을 회상하면서 이스라엘의 사랑스러웠던 시절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였습니다. 광야에서의 시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가장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쫓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2절) 광야 때를 이스라엘의 소년시절, 막 결혼한 신혼시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 소년의 때, 결혼 때의 사랑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언제가 가장 이쁩니까? 어린 시절입니다. 어릴 때의 자녀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부모가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때입니다. 이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때지요. 또 부부생활에서 가장 좋은 시절은 신혼시절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까? 3절을 보면 이 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지금 그 때의 이스라엘을 추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시절이 아니라 광야시절을 신혼의 때, 이스라엘의 소년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시절은 가나안 시절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시절은 풍요로운 시절입니다.
유목민으로 광야에서 40년동안 유리하던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집을 짓고 농사지으면서 살았던 때를 말합니다. 더 이상 마실 물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 그 가나안 시절을 신혼시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시절에 비해 광야시절은 메마른 땅을 이동하면서 지냈던 시절입니다. 뜨거운 태양과 거친 땅에서 살던 시절입니다. 이 때는 모든 것이 걱정거리였습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물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를 신혼시절, 이스라엘의 소년의 때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광야시절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사귐이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막과 황무지입니다. 그러나 사실 광야의 삶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 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기가 막힌 비밀이 숨겨진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광야생활이 무슨 축복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어려운 환경이 아닙니까? 모래땅, 모래바람, 마실 물도 넉넉하지 못하고 먹을 것도 없는 그 광야가 무슨 축복의 장소입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주의깊게 보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 신앙이 바로 광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광야에서 영적 모든 축복을 다 받았습니다.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을 만나는 길인 성막의 비밀을 배웠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신나는 믿음의 경험을 했습니다. 하늘문에 열려서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 만나내려 왔습니다.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나온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를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축복들입니까? 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눈에 사랑스러운 신부처럼, 그리고 사랑스러운 자녀와 같았습니다.
또 이 광야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훈련을 받는 시절이었습니다. 훈련시절을 고달프지만 훈련이 끝나고 그들은 믿음에 용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믿음도 광야에서 다 훈련받은 것입니다. 광야의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광야의 믿음으로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습니다. 광야에서의 훈련으로 그들은 가나안의 어떤 적들도 다 이겼습니다. 아낙자손도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철병거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태양을 멈추고 달의 걸음을 멈추는 실제적인 기도의 능력도 가졌습니다. 광야시절 그들은 믿음은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광야의 축복이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억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 광야의 축복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믿음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례미야 선지자가 진단하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질병
하나님은 믿음이 병든 이스라엘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본문 4-8절은 하나님의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 이스라엘을 향하여 지금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병들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보십시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의 병든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쫓았느니라”
이스라엘의 영적질병은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그들은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광야에서는 하나님 없이는 못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로 먹고 살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이 구름으로 태양의 뜨거움을 가려주었고 밤의 캄캄함도 불기둥으로 밝혀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 없이 광야의 삶을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땅을 차지하고 농사를 짓고 먹을 것을 쌓아두니까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대강 찾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관리들은 아예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바알의 이름을 부르기에 급급합니다. 그저 축복, 축복만 외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의 문제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제 집도 사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통장에 돈도 꽤 저축해 두었으니 하나님은 필요없습니까? 육신적인 것이 좀 채워졌다고 하나님은 없어도 됩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굉장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떠난 것이 바로 “죄”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잃어버린 것,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병든 이유요, 병든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까? 만약 갈급함이 없다면 믿음은 병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자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속을 썩이는 자녀들을 보고 우리는 “자식이 원수”라고 말합니다. 부부의 사랑이 식어지고 문제가 생기면 사랑하는 남편이 어느 날 미움의 대상이 되고 너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근심이 된 두 번째 이유는 사명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 너희는 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가 되었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전 세계에 하나님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광야에서의 훈련은 바로 이것을 위해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바로 이 사명을 잊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잘사는 것, 자신들의 유익, 이방사람들처럼 육신적인 욕구가 가득찼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육신적인 축복을 약속하는 바알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온통 그들의 관심은 잘사는 것, 물질축복, 건강축복, 가정축복, 무슨축북, 무슨축복, 오직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겼지만 형식적으로 안식일에만 성전을 찾고 나머지는 온통 바알에게로 바알에게로 자신들을 축복해주는 곳으로 쫓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이야기가 더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싫어지고 책망의 말이 무거운 짐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에겐 “부드러운 이야기를 해라 시험 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지쳤다. 위로의 말만 하라, 축복의 말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영적 싸움, 전도, 부흥 다 부담되는 이야기야. 그저 문제없이 살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언약을 잃어버리고 병든 이스라엘이 더 이상 세상을 살릴 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심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잃어버린 성도, 사명을 잃어버린 성도는 그렇습니다. 교회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고 자기 욕심만을 채운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광야생활도 거뜬하게 이겼던 그 믿음들은 다 어디에 갔습니까?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겠다든 고백들이 다 어디에 갔습니까? 언제부터 우리들이 이렇게 병들었습니까? 병든 믿음으로는 세상을 살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건강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도 상관없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회복하자, 교회를 새롭게 하자는 말은 사실 어제 오늘의 말은 아닙니다. 연약하고 본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완전한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언제든지 병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새로워져야 하고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늘 새로워져야한다, 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오늘은 종교개혁 48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선포하기를 광야교회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병든 로마 캐톨릭 교회를 향해 초대교회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교회가 병들었고, 비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루터는 다시 복음으로, 다시 은혜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앞에 95개 조항에 달하는 선언문을 내걸었습니다. 병든 교회의 모습을 폭로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과 은혜로 돌아가야 교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건강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돌아가야할 본래적인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어떻게 건강한 믿음을 회복합니까?
본문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건강한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가야 할 곳이 바로 광야시절, 광야교회라고 말합니다. 광야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강한 믿음을 소유했던 시기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출애굽과 유월절의 감격을 가졌습니다.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축복의 문으로 보여졌습니다. 바로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건강한 믿음의 회복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근거로 이제 우리가 건강한 믿음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re-form 해야 할 것이 어디입니까?
첫째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건강한 믿음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건강한 믿음은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돌아가서 피흐르는 십자가에서 죄 사함의 은총을 회복하고 그곳에서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 하나님보좌 우편에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그 분이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믿음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것만큼 우리는 건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건강한 믿음의 회복은 방향의 회복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삶을 헌신할 것인가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의 증인되기 위함입니다. 방법은 다양하지만 목적은 이것 하나입니다. 복음증거보다 더 중요한 삶의 목적은 없습니다. 집을 사고, 돈을 벌어야 됩니다. 직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도구요 과정에 불과합니다. 진짜 목적은 예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예수 향기가 나야하고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돈을 벌면 문제가 됩니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건강하면 문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의식이 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양보해도 상관없습니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싫은 소리 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복음 때문에 좀 손해봐도 괜찮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라면 어떤 일을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건강한 믿음을 회복하려면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는 방법이 아니고 성도들의 삶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섭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또 기도를 통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믿음은 병들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광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광야교회는 어디입니까? 우리교회의 광야시절은 언제입니까?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