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은 자고나면 이기는 방법 토의
한국사회에서는 사공이 열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군대 사회에서는 신기료장수 셋이면 제갈공명보다 낫다고 한다. 이는 필자가 1986년 대령시절에 연구소 간부로 있으면서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두 사람의 대위출신이었던 신중철과 이웅평으로부터 주야로 1주일 동안 만사 제쳐놓고 북한군의 실상에 대해서만 전념해 들었던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오직 상명하복의 문화가 형성돼 있지만, 북한군에서는 “적을 이기는 방법”에 관한 한, 토의문화가 상당히 발달돼 있는 것으로 판단됐었다.
북한 조종사들은 한강교 하나하나를 정해놓고 몇 대의 전투기가 무슨 무기를 사용하여 어느 곳을 어느 각도로 공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토의가 열을 올렸다고 한다. 교량의 구조와 콘크리트 강도는 간첩들이 보낸 사진, 도면 그리고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 보낸 콘크리트 조각을 분석해놓고 그 자료를 가지고 열띤 토의를 했다고 한다. 토의는 자고나면 시작하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전방의 하사관들은 계곡 물을 가운데 두고 한국군과 인민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상대방에게는 그 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인민군이 그 물을 먹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토의를 하고, 부산까지 가는 진격루트에 대해서는 하도 많이 토의가 되어서 눈을 감고도 훤히 기억한다고 한다.
각 루트 선상에 존재하는 한국군의 탄약고와 유류저장소들을 어떤 방법으로 탈취할 것인지에 대한 방침들도 토의를 통해 이미 자동화 시스템처럼 작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인민군은 군대생활을 얼마나 오래 하던 한번 배치된 부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한 지역의 지역전문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사단장과 남한사단장의 차이
신중철은 김일성 대학을 1등으로 나온 수재 대위로 1983년 북한군 제13사단 민경수색대대 참모장으로 근무하다가 귀순했다. 당시 군 사단장들은 육사 16-18기들이 근무했고, 육사 12기생들이 군단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군단장은 신중철을 동생으로 삼기도 했다. 그는 95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정보사에서 근무했다. 지금도 신중철씨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한국 사단장들은 헌병 같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 군화는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반짝거리고 옷은 칼날처럼 주름 잡아 입고 멋을 많이 냈지 않습니까? 그런 옷을 입고 무슨 일을 합니까"
"이북 사단장들은 어떤데요"
"옷이 허름하지요. 4주중 1주는 병사들과 함께 매복 근무를 서지요. 2주는 병사들과 같이 내무반에서 자지요. 1주만 공관에서 잡니다. 사단장은 아버지 같아요. 분대장 이상에 대해서는 성격까지 다 압니다. 남침하면 부산에 이르기까지 진출로를 눈감고 그립니다. 전방에 있는 한국군 식량, 유류, 탄약을 금방 뺏는 길도 훤히 압니다. 멋부리는 사단장이 아니라 일하는 사단장이지요"
"북한 사단장은 토의 주재를 참 잘 합니다. 소위도 사단장을 마음대로 비판하지요. 진나게 토의하면 결론이 나옵니다. 사단장이 결론을 요약하지요. 그래서 박수를 치는 겁니다. 남한에서는 그 박수치는 걸 강제로 치는 것이라고 교육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정작 민주군대라고 하는 한국 사단에서는 예외 없이 사단장이 황제더군요.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대령도 사단장에게 제대로 소신 있는 말을 하지 못하더군요. 절절 매는 대령들이 대부분이구요. 전시에 어떻게 작전을 위한 토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매우 위험합디다"
정신나간 한국군 고위 장군들
"전방 사단을 모두 돌아다녔습니다, 가는 곳 마다 제가 북한군 사단장 노릇을 했지요. 북한 사단장이라면 이 사단에서는 어떤 작전을 펴겠느냐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사단의 작전계획을 검토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작전계획들이 취약하더군요. 그런데 매우 이상하게도 20명의 한국 사단장 중에, 하루 종일 작전 토의를 했는데도, 잠시라도 얼굴을 보였던 사단장이 단 1명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사단장들 하고는 딴판이랬습니다".
이런식으로 신중철은 한국군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얻어 가지고 도망을 갔다.
토의하는 지휘관만이 이긴다
필자가 포병 소위시절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매우 귀중한 사례를 관찰한 적이 있다. 같은 중대에 소속된 보병 소대장 한 사람은 매복이나 작전을 나갈 때 병사들을 인접 모래밭으로 이끌고 나갔다. 매복할 지점에 대한 지형을 모래와 풀 등으로 만들어 놓고 매복을 나가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소대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이런 것들을 토의했다. 평소에 똑똑하다고 이름 난 육사출신 소위들은 작전에서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이 이름 없고 학벌 없는 소위는 병사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성과를 냈다.
토의를 통해 병사들은 익숙해진 지형에서 자기 생명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캄캄한 밤중에 상황이 벌어져도 각 병사는 침착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어떤 소위들은 캄캄한 밤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발작 증세를 보여 소대원들이 ‘모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살하려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는 전쟁터에서의 어둠과 적막이 얼마나 사람의 피를 말리는 공포의 공간인 것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필자가 여기에서 이런 사례를 드는 이유는 생명이 달린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훈련과 사전 시물레이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막연한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목적에 직결되는 구체적인 것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훈련, 훌륭한 시뮬레이션을 갖기 위해서는 토의를 통해 지혜와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야한다. 여러 사람들의 힘을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합치면 승수효과 즉 곱하기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방향으로 합치면 한 사람의 힘보다 더 작은 힘밖에 내지 못한다. 그래서 배가 산으로 올라가고 때로는 하늘로도 올라가는 것이다.
밑바닥을 헤매던 한국 축구가 히딩크를 만나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간 바 있었다. 히딩크가 가장 먼저 없앤 것은 축구팀원 간의 경직된 상하관계였다. 팀원들은 누구나 동등한 인격체로서 경기 테이프를 보면서 전술과 기술에 대해 격의 없는 토의를 벌였다.
북한군처럼 토의하지 않으면 오합지졸 면치 못해
필자는 전방에서 소위로 근무하면서도 토의를 통해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개발했고, 월남전에서 포대장을 할 때도 토의를 통해 남보다 앞섰으며, 연구를 할 때에도 토의가 있었기에 남보다 앞섰을 수 있었고, 경영진단을 할 때에도 회사측 간부들과 토의를 통해 좋은 결과를 냈다. 토의는 리더십의 가장 큰 도구인 것이다. 토의를 도구로 사용했던 필자와 그렇지 않은 주변 경쟁자들 사이에는 1등과 2등의 차이가 아니라 1등과 10등의 차이가 있었다. 이것이 토의의 힘인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필자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군에 아직도 토의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군인이라면 계급에 관계없이 늘 능동적으로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는 토의의 생활화로부터 길러지는 것이다.
첫댓글 빨갱이소리 듣기 싫어하는 친북좌파들의 지상낙원이라는 모습인데 함께보고파서 퍼온글 입니다,
남조선~ 적색좌파(부엉이바위 .다리빙신) ! 들은 이곳-지상낙원으로 보내버려~샛별보기운동부터 시작하여~실상을 똑바로보고- 배우게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