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하느님께서는 ‘무에서’ 창조하신다
사도신경의 첫 구절은 하느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창조와 관련된 교리 교육은 매우 중요(가톨릭 교회 교리서 282항)하며, 창조론이라는 별도의 과목으로 다룰 만큼 창조의 의미, 목적, 진화론과의 관계 등 전통적으로 강조된 내용도 많고 우리 시대의 문제 앞에서도 중요한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다만 상당수 내용들은 이미 알고 계신 내용이거나 교리서를 읽어보시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시대에 중요한 주제라 생각하는 ‘무에서’ 창조하신다는 내용만을 간략하게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 행위들을 하긴 하지만 인간만큼 이 부분에서 탁월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만 보더라도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일 것이며,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끝없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복제하고, 인간과 비슷한 수준을 넘어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등 이제 인간의 능력은 그 한계를 모른 채 끝없는 창조 활동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는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조합하거나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무런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창조이며, 자유로이 ‘무에서’ 이루신 창조입니다. 하느님의 전능 또한 이처럼 무로부터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만드신다는 데서 드러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96항).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가 흙의 먼지나 사람의 갈빗대라고 하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나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창조 이야기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위해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오직 말씀만으로,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끝없는 과학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이제는 신의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착각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이 기억해야 할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또한 우리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실들을 전해 줍니다.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느님은 죄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어 그들에게 영혼 생명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죽은 이들에게 부활을 통해 육신 생명을 주실 수 있으며,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빛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98항).
교리서 137~147쪽, 279~301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7월 28일(나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