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지에밥
- 박기섭
가을은 해년마다 돗바늘을 들고 와서
촘촘히 한 땀 한 땀 온 들녁을 누벼 간다
봇물이 위뜸 아래뜸 고요를 먹이고 있다
절인 고등어 같은 하오의 시간 끝에
하늘은 또 하늘대로 지에밥을 지어 놓고
수척한 콩밭 둔덕에 두레상을 놓는다
-가슴으로 읽는 시조 (조선일보 201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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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우리 고유의 정형시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돗바늘, 한 땀, 위뜸 아래뜸, 지에밥, 둔덕 그리고 두레상 같은 우리말이 등장하니까요 ^*^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이 모두 순 우리말일 수는 없겠지만
될 있는대로 가려서 골라쓰는 까닭을 시인은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에밥'은 쌀을 쪄서 술 밑밥으로 씁니다
하늘이 술 밑밥을 지었다는 말은 아마도 노을이 깔렸다는 의미이겠지요
지금 콩잎은 완전히 누렇게 변해가고, 그 잎마저도 지는 중인 하오인가 본데
몇 사람이 둥글게 둘러앉는 두레상이 놓였다는 것이 훨씬 정겹지 않나요? ^*^
며칠전 문우 한 분은 서천 노을이 너무 좋아
일터 문도 잠그고 좀더 가까이서 보려고 서천방죽길로 달려 갔었다고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