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출발선에 선 감독 홍명보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다르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6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가 미국 땅에 닿았다. 물설고 말 다른 미국으로 향한 건 LA갤럭시에서 선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홍명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홍명보가 94미국월드컵을 앞둔 94년 2월 지인의 소개로 아내 조수미씨를 처음 만난 LA코리아타운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는 남서부 토렌스 델 아모에 위치한 홍명보의 집을 찾았다. 다음 해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제2 축구인생을 그리던 홍명보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으니 20여년의 선수 삶이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이상했다. 2002월드컵을 통해 오랜 갈망을 해갈해서인지 미련도 크지 않았다.
선수 은퇴 뒤의 계획을 물었다. 일반의 수순인 지도자가 아닌 행정가의 꿈을 꾸고 있다는 주위의 이야기가 대화의 말 머리에 올랐다.
“행정가와 지도자를 따로 보진 않습니다. 둘 모두 축구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요. 선수를 그만 두면 본격적으로 스포츠 행정과 비즈니스, 코칭 공부에 나설 참입니다. 모르는 게 많아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그렇게 5년여가 흘렀고 그의 말처럼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선수가 아닌 감독 홍명보의 첫 발이다.
백지 위에 선 감독 홍명보
감독 홍명보는 성공할 수 있을까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홍명보 감독을 U-20대표팀 수장으로 선임했다. 가깝게는 9월24일~10월16일 이집트에서 열리는 FIFA U-20월드컵을 맡기고 멀게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겨냥한 중장기적인 포석이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본격적인 감독 데뷔다. 선수 시절 후광은 설렘을 주지만 유명 선수 출신 감독이 고전하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은 한편에 걱정을 던진다. 또 행정가의 길은 접은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따른다.
지도자와 행정가의 길이 다르지 않다. 현장과 정책이 떨어져 존재해선 오히려 곤란하다. 지도자는 행정을, 행정가는 현장을 이해해 최적의 방향과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현장의 경험과 고민이 빠진 행정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탁상공론의 허상이다.
미셸 플라티니와 프란츠 베켄바워가 하나의 역할 모델이다. 플라티니와 베켄바워는 화려한 선수 생활 뒤 지도자 경험을 더해 유럽축구계를 이끄는 행정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플라티니는 UEFA 회장, 베켄바워는 독일축구협회 부회장과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맡고 있다. 플라티니와 베켄바워의 감독 희비가 갈리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경험과 이를 토대로 한 행정력의 담보다. 홍명보 감독에게 플라티니와 베켄바워의 이력은 일종의 오마주다. 홍명보 감독은 현 축구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베켄바워의 에고이즘
스타 출신의 명감독 없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는 동의를 얻을 수 있지만 절대화 할 수는 없는 표현이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발을 디뎠지만 순탄할 수만은 없다. 코치와 감독은 다르다. 예컨대 코치가 선수 개개인을 살핀다면 감독은 팀 전체의 방향과 그림을 짚어야 한다. 감독은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부담스런 자리이기도 하다.
홍명보 감독에 대한 큰 틀에서의 지도자 경험 부족은 우려하지 않는다. 2006월드컵과 2007아시안컵, 2008올림픽 코치 경험이 U-20대표팀을 이끄는데 미흡하다고만 할 수 없다. 충분조건의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치명적 단점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보다 고민은 세세한 역할 분담이다. 코치의 틀에서 벗어나 감독의 눈으로 팀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코치 임무에 맴돌다 실패하는 모습이 잦은 지도자 세계다. 새로 꾸려질 코치진과의 효과적인 역할 구분이 새내기 감독 성패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선수 홍명보에게 최초란 수식어는 익숙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2골을 넣었고 세계올스타에 4회나 선정됐다.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월드컵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 2000년 가시와레이솔에서 뛰면서는 J리그 역사상 첫 외국인 주장으로 활약했고 국내 A매치 최다 출전(135경기 9골)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감독 홍명보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괜하지 않은 선수 시절 빛을 뿜은 아우라다.
스타 출신의 명감독 없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는 동의를 얻을 수 있지만 절대화 할 수는 없는 표현이다. 베켄바워와 클린스만 등이 성공 전례를 남기기도 했지만 대상자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결과다. 다만 적지 않은 스타 출신의 감독이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는 곰곰이 짚을 필요가 있다. 베켄바워는 ‘에고이즘’ 즉 강한 자아의식에서 답을 찾았다.
다시 마주한 불멸의 H-H라인
감독 홍명보의 축구인생 2막은 한국축구의 그것과 무관치 않다 ⓒ AFP/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
홍명보 감독은 오는 3월 이집트 전지훈련을 통해 본격적인 실험대에 오른다. 이집트, 체코 등과 평가전이 예정돼 있고 여름엔 수원컵에 출전한다. 본마당이 펼쳐질 2009FIFA U-20월드컵에는 K리그의
기성용, 이승렬, 구자철 J리그의 조영철, 김동섭 등을 이끌고 나선다. 타이틀이 걸린 대회인 만큼 성적을 무시할 순 없으나 미래가 주목받는 유망주들을 엮어 보여줄 내용적 경쟁력에 시선이 보다 향한다. 이 대회 주축 멤버들은 2012올림픽의 주력이기도 하다.
황선홍명보. 우연치고는 기막힌 운명의 두 친구가 또다시 같은 길에 섰다. 87학번 동기로 대학시절 대표팀에 발탁됐고 K리그 드래프트 파문으로 시련마저도 함께 겪었다. 황선홍과 홍명보는 1990월드컵부터 2002월드컵까지 10여 년 동안 대표팀의 공격과 수비를 책임지며 불멸의 H-H라인으로 불렸다. 같은 날인 2002년 11월20일 브라질전을 끝으로 둘은 대표팀 저지를 벗었다. 지난해 부산아이파크의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에 이어 1년 뒤 홍명보가 U-20대표팀 감독에 오르며 둘은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됐다.
감독 황선홍과 홍명보의 성공과 실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또 가름하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성패라는 냉정한 필드의 현실에서 비켜설 수는 없다. 혼자의 힘으로 모든 걸 이룰 수는 없겠지만 우선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땀과 인내다.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모이는 건 그들의 축구인생 2막이 한국축구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