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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0 |추천 0 |2012.01.07. 09:33 http://cafe.daum.net/yeosu486/AVol/51
함께 반성하고 희생하여 대한민국 살려보세
마음가짐에 따라서 안목이 달라진다.
사람이 원만한 사회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의 바란스와 조절능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모든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이 이성(아는 것)과 감성(느끼는 것)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똑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문자나 문화, 종교나 정치, 입장과 형편과 처지의 차이에 의하여 이해하는 바나 느끼는 바가 다름으로 인하여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성적 이해력 부족에 감성적 조절력까지 부족할 때는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이 심하게 확대되어 개인간에는 싸움도 일어나고 사회적으로는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국가 간에는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그리고 욕심과 욕망을 품었을 때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악화되기도 하여 심각한 혼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의하여 싸움과 폭동과 전쟁과 혼란이 일어난다. 원인이야 욕망과 욕심에 의한 악행에서 빚어진 일들이지만 악행의 본질을 감추고 그 현상만 사회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사회적인 큰 문제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일이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세상 정권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이든 공산주의 경제체제이든 말로는 정치적으로 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한다. 중화인민 민주주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등등 ... 그러나 실제로는 2백 몇 십개 국가들 중에 95% 이상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주의 사회든 권위주의적 독재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수단은 눈속임 홍보에 눈가림 선전 등으로 가짜로라도 명분만 세워놓고 그 뒤에 숨어서 무슨 짓이든 다한다. 대의명분의 죄악은 대부분 그대로 지나가고 소의명분의 죄악은 대부분 들켜서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이 몸통, 실체, 꼬리자르기 등이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대부분은 몰라서 소문 또는 루머 정도로 여기는 일들이지만 그 내용을 국민들이 알면 정말 말도 안되는 미친짓들이 오래 전부터 자기네들끼리는 일반화된 일이란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눈이 가려져 있으면 남의 눈도 가려져 있는 줄 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안하무인에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다. 그래도 힘 없는 사람들은 말을 못하고 견딘다. 대한민국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천지백갈이다.
시민정치라는 말도 시민들의 의식과 의도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이 다수결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수결의 의견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요즘 시민정치를 표방하는 조직의 본질과 목적이 근본적으로 개인자본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재물과 기회의 분배에 한정된다면, 즉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은 없다는 식이면 그들에 의한 변화와 개혁은 성공한다해도 부를 찾이하는 사람과 그 숫자만 바뀔뿐 별로 달라질게 없다. 이러한 현상은 정권을 여당이 차지하나 야당이 차지하나 서민들에게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진실로 시민정치가 부와 기회의 이동과 분배 이상의 성취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정치적으로 기회가 생기면 정권도 잡아보자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변화는 지금보다야 살기가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언제 어떻게 양반근성과 지주근성이 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는 사회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를 아주 양반근성과 지주근성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 토양상태로 바꾸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기회는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앞으로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인간들, 하늘에서도 그런 인간은 사람 취급을 안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늘에서 버림 받은 인간은 오고 갈데가 없어진다. 도망가서 숨을 데도 없어진다. 이 세상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는 하나도 없고 노력하는 국가는 몇 나라 정도는 있는 것 같다.
이성과 감성의 개발은 일생동안 계속된다.
인간이 동물에 속한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면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다. 인간이 여타 동물들보다 뛰어난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나 인간도 동물이기에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의 속성과 근성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교육이란 그러한 인간의 동물적 속성과 근성을 스스로 다스리고 자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성인과 성현들이 부르짖은 말들이 인간완성, 인간다움, 인간도리 같은 것이었다. 즉 이런 말들은 인간이 동물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동물 같은 인간과 짐승같은 인간들이 인간사회에 얼마나 많이 존재했습니까? 인간적이냐 동물적이냐의 심성의 근본바탕은 그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보다도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과 내용에 있어서도 동물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있는데, 동물적인 면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동물적인 부분이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인간은 그 이상의 모습과 내용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도 동물에 속하지만 모든 면에서 인간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또 인간은 동물이면서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 인간적이어도 자연미가 떨어지고 너무 동물적이어도 인간미가 떨어진다. 하옇튼 인간은 이성을 개발하여 점점 인간다워져 가고 감성을 조절하여 아름다워져 가야 하는 존재이다. 학문은 이성적 개발(밝음과 어둠)인데, 곧바로 감성적 개발(강함과 약함)이 시작된다. 사춘기는 감성적 개발인데, 성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 아름다운 문학으로 발전해 나아간다. 모든 인간의 문학이란 성의 바탕 위에서 성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생애동안 지속적으로 이성(공부)과 감성(애정)의 개발이 진행되며 이 활동이 그치면 죽은 사람이 된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개발의 내용과 조절력에 의하여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게 된다. 아무리 알아도 애정이 없으면 무감각하고, 아무리 애정이 있어도 알지 못하면 통하지 못한다. 소통과 화합도 지식적인 아는 면과 애정적인 느낌이 함께해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주 만나고 정이 들어야 소통도 되고 화합도 되고 연합과 결속도 된다.
법정은 공평성과 형평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회사나 단체나 조직이나 정당이나 이성과 감성의 조절능력에 의하여 존폐가 결정될 정도로 이성적인 이해력과 감성적인 조절력은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은 제대로 알고나면 전혀 화낼 일이 아닌 것도 그 내용이 잘못 전달되어 엄청나게 화를 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를 때는 엄청나게 열받고 화를 내다가도 그 자초지종을 다 알고나서 전혀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는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이해력이 감성을 다스리기도 하며, 때로는 이해력이 감성을 자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흑심(욕망과 욕심)을 품은 사람은 눈이 가려져 있어 만사를 있는 그대로 보지않기 때문에 이런 사람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은 쉽게 해결되지가 않고 법정에까지 끌고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법정의 현실이란 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므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이 당하기 일쑤이다. 법이 행위가 아닌 마음가짐을 심판의 주대상으로 삼아 옳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때 사회는 막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법정이 공평성과 형평성을 잃을 때는 완전 불신의 대상이 된다. 사실 법정신에 입각한 법대로의 판결만 공평성과 형평성 있게 제대로 이루어진다 하여도 국민들의 고통이 현재보다 절반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법정은 바르고 원만한 중재와 형벌로 사회적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을 해결하여 소통과 화합과 신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큰 불협화음과 갈등과 다툼과 분쟁의 씨앗을 제공하기 일쑤인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정권과 기득권층이 사회를 불신덩어리로 만들었다.
국가의 법은 곧 국가요 국민의 법은 곧 국민인데, 법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지고 국민도 무너진다. 그만큼 법정의 역할은 크다. 이러한 법정에 판결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든가 법정의 판결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들쭉날쭉 하면 그 자체로 법질서는 상실된다. 지금까지 국가는 경제성장(근대화)으로 인간품성(인정과 인간성)을 짓밟고 온 국민을 돈만 아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으며, 사회는 기득권층에 의해 점령당하여 빈익빈 부익부로 전력질주하고 있고, 법정은 정권에 의해 휘둘리며 판결도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게 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불신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가 정치인이나 기득권층이나 법관이나 반성하는 이 하나 없이 여전히 눈속임으로 국민들을 어떻게 해볼려고 "쇄신이다 통합이다" 등등 허접한 발버둥이나 치다 보니 경찰이 검찰과 맞짱을 뜨기도 한다. 이럴 때 국민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굿만 보고 떡이나 얻어 먹으면 되나요? 그래선 안되겠지요 !!!
아는 자와 가진의 자의 희생이 없이는 소통도 화합도 없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전기도 +에서 -로 흐르듯이, 가진 자가 베풀고 더 아는 자가 봉사하는 사회적 희생이 있어야 사회의 바탕이 골고루 평평해져서 만사가 원만하게 돌아갈텐데, 가진 자는 더 챙기려 하고 아는 자는 등쳐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사회가 돌아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사회가 평평해질 때까지 가진 자는 베풀어야 하고 아는 자는 무료봉사를 하는 희생이 치루어져야 진정한 소통과 화합이 이루어지고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이 가득찬 통과 비어 있는 통을 서로 연결해서 통하게 해 놓으면 저절로 두 통의 물은 수위가 같아집니다. 그런데 가득찬 통 쪽에서 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통로를 막아버리면 물이 못흘러가지요. 사회적 소통의 문제가 이와 똑 같은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은 정권과 기득권층의 울타리 역할에 비중이 쏠려 있습니다. 가진 자들이 자기 재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하려고 차단해 놓았기 대문에 불통과 먹통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자가 양반근성을 버리지 않고 가진 자가 지주근성을 버리지 않으면, 요즘 나만 빼고 쇄신을 하던지 통합을 하던지 하라는 퇴출1호깜 국회의원들의 행태와 똑같이 때가 되면 하늘에 의해 강제퇴출 당하든지 자연도태 되든지 할 것입니다. 총체적인 문제는 총체적인 변화와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총체적인 변화와 개혁은 총체적인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이 문제는 비단 정치인과 기득권층과 법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적인 문제입니다. 국민들도 정치인과 기득권층과 법관들에게 요구하는 희생만큼 그에 해당하는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국민이 전체적으로 각각 자기의 입장과 처지와 형편에서 희생을 치르고 전체적으로 공평하고 형평성 있는 쇄신과 통합을 이루어낸다면 다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문제, 국민들도 책임이 크다.
내가 볼 때, 정부나 기득권층이 그동안 국민을 이끌고 간 방향이 잘못된 것도 사실이고 또 잘못된 모범을 많이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도 작은 이익을 위하여 정부나 기득권층의 잘못에 편승하고 합류하고 지지하고 동조한 것도 사실이니,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과 파탄이나 사회적 불통 먹통 현상에 대한 국민의 책임이 잘못한 정치인과 기득권층과 똑 같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일방적이고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는 일이니, 이 시점에서 온 국민이 다 함께 깊이 생각해보고 대한민국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 해결에 동참해서 지혜롭게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즘의 토론회나 사회적 현상이나 정당들의 행태 등을 보면 방향설정도 우려수럽고 대화의 내용도 우려수럽고 목표설정도 우려스럽다. 아직 전체적으로 진정한 반성도 없고 정당인들의 문제인식도 태부족 상태이고 국민들의 안목도 바르지도 참되지도 않고 있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밖에 생가을 못합니까? 나는 중졸이요 중졸... 돈도 없는 거렁뱅이 신세이고... 그래도 이 정도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화의 장과 희생으로 결속하자.
하늘이 내린 법은 정심정도 뿐이니, 모든 소통의 본질은 정심정도의 본질과 통하여야 하고 모든 쇄신과 통합은 국민적 소통의 본질과 일체를 이루고 진행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온 국민이 서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알아야 할 바가 전달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이루어져야 하고, 알아야 할 바의 대화의 장을 통해서 온 국민의 감성을 하나로 역어낼 수 있는 아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봉사와 희생의 면목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지식이든 재물이든 이웃에게 사용할 때에 그 사회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 집에 두고 온 외양간의 금송아지에 불과한 것이다. 화는 슬픔으로 극복되는 것이니, 오늘날의 국민적 화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아는 자와 가진 자의 헌신과 희생으로 국민들이 진정으로 그 희생을 고맙고 슬퍼하게 하여 함께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 후에 모두 한덩어리가 되어 나아가게 합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도 반드시 응답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희생이 이루어낸 세계적 화합과 결속력을 상고해 보십시오. 위대한 희생은 위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
첫댓글 금빛물결님도 받아보세요... 모든 자격증에 대한 자료를 무료로 받을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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