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대 말 한국에 근대교육이 들어온 이후
근대 교육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분제가 폐지된 이후 근대교육은 새로운 신분상승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가 이러한 교육적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간에서 학교를 세워 교육적 수요를 감당했다. 이러한 근대교육의 수요는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일제는 가급적 한국인의 교육적 수요를 초등학교 수준에서 묶어두려고 했기 때문에 해방 즈음에는 학교간 불균형이 매우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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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국민들의 교육적 수요를 채워주기
위해 학교를 늘리기 시작했으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이러한 입시 경쟁은 단지 상급 학교
진학 경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명문 중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진학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래서 해방 후 중학교 입학 방법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이슈였고 매해 입학 방법이 바뀔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중학교
입시 관련 모순이 심화되자 정부에서는 1969년 서울 시내 중학교에서 시작하여, 1970년 전국 10대 도시, 1971년 전국 중학교 입시에서
입학시험 제도를 폐지하고 학군별 무시험 추첨 배정을 실시한다. 그리고 당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하던 공사립 14개 중학교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연차적으로 폐교를 실시한다. 이 조치를 계기로 그동안 중학교 입시 관련 부작용들이 일거에 해소되었지만, 그 부작용은 사라지지 않고 고교
입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래서 곧 고등학교 입시에서 추첨배정을 도입하게 된다.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 대구,
인천, 광주로 확대되기 시작한 고교 학군별 추첨배정은 중학교와 같이 완전 무시험으로 실시된 것은 아니었다. 공사립을 포함한 해당 고교 학군별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 가능한 남녀 숫자만큼 시도단위 선발고사를 통해 입학자격자를 선발한 후 학군별 추첨으로 학교에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고교 추첨 배정은 1979년에 대전, 전주, 마산, 수원, 청주, 춘천, 제주 등 도청 소재지 지역으로 확대되고, 1980년에는 성남, 원주,
천안, 군산, 익산, 목포, 안동, 진주 등으로, 그리고 1981년에 창원으로 확대된다. 1990년대 들어서는 고교 평준화를 해제하는 지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990년에 군산, 목포, 안동이, 1991년에 춘천, 원주, 익산이, 1995년에는 천안이 평준화를 해제함으로 평준화가
후퇴를 한다. 하지만 2000년 들어서 다시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2000년에 울산, 군산, 익산이, 2002년에 고양, 부천,
안양, 과천, 의왕, 군포가, 2005년에 목포, 여수, 순천, 2006년 김해, 2013년에 안산, 의정부, 광명, 춘천, 원주, 강릉 등으로
확산되는 등 대다수 도시 지역이 고교 평준화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 제도는 1980년 중반부터 확대되기 시작된
특수목적고 제도에 의해 그 근본 취지가 도전을 받기 시작한다.1) 정부는 국제 경쟁에 대비한 엘리트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기존의 특목고 제도에 1986년에 ‘과학계열’을, 1991년에 ‘외국어 계열’, 1998년에 ‘국제계열’을 추가했다. 그리하여 2013년 현재
4개의 과학영재고, 19개의 과학고, 31개의 외국어고, 7개의 국제고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2002년 교육과정 자율권과 학생선발권을
갖는 자립형 사립고를, 그리고 2009년에는 자율형 사립고를 도입하여 2013년 현재 49개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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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교 평준화 정책은 확산 과정에서 여러
저항에 부딪힘으로써 확산 속도도 더뎠고, 또 특목고, 자사고 제도가 도입됨으로 인해 중학교 무시험 추첨전형 제도가 가져왔던 교육적 효과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특목고, 자사고 선발 인원이 전체 선발 인원의 약 6%에 달함으로써 평준화 이전 명문고 선발인원과 거의 같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고교입시는 평준화 이전 선발제 상황으로의 회귀 혹은 평준화 비평준화 병행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선발 시기 및 선발 방법의 특혜를 줌으로 인해 특목고와 자사고가 고교다양화가 아닌 고교서열화로 이어지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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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는 교육을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고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상급학교 진학시 이러한
계층 상승에 보다 유리한 학교로 진학하려는 경쟁이 계속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계층상승에 유리한 상급학교 진학의 병목을
최대한 늦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래서 중학교 입시를 근거리 배정으로 바꿈으로 해서 중입 경쟁을 없애고 초등학교 교육을 입시 경쟁으로
보호해왔다. 그리고 고입도 근거리 추첨입학제로 바꿈으로 중학교 교육을 입시 경쟁에서 보호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단번에 도입한 중학 평준화와 달리
고교 평준화는 3년이란 시간을 두고 진행하다보니 그 진행 속도도 느렸고, 결국 특목고, 자사고 등으로 인해 거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합입시경쟁과 대학서열체제가 공고한 현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고교서열체제와 고입 경쟁체제를 두는
것은 이중적인 경쟁 관문을 두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대학입시경쟁과 대학서열체제를 한꺼번에 바꾸기 힘들다면 고교서열체제와 고입
경쟁체제라도 없애서 중학교 교육을 입시로부터 해방시켜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견지해온 입시경쟁체제를 가급적 뒤로 늦추어서 어린
학생들이라도 입시경쟁에서 보호해주고 교육의 본질을 살리자는 합의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특목고나 자사고를 처음 도입할 때의 명분이었던
‘교육과정 다양화’의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 다양화’의 부분은 특목고나 자사고를 통해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고등학교에 ‘교육과정 다양화’의 권한과 역할을 줌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현재 논의 중인 ‘고교 학점제’, ‘내신 절대평가’ 등과
연결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현재 특목고와 자사고에 주어진 선발특혜를 다 없애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 특목고,
자사고 뿐 아니라 모든 고등학교가 교육과정을 학생들의 흥미와 진로와 연계한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1) 원래
특수목적 고등학교는 19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을 도입할 때 평준화 추첨 배정으로 학생을 배정할 경우 학교의 설립 목적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삼육, 성심, 중경, 국악, 서울예술, 체육, 철도, 부산해양고등학교’ 등을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