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그늘을 내주는 시간 됐으면… '불볕더위' / 이창수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불볕더위'입니다.
푸른 하늘 한가운데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해가 떠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볕은 온 들판을 뜨겁게 달구고, 길가의 큰 나무는 짙은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을 품어 줍니다. 그늘 아래서는 아이와 어른이 수박을 나누어 먹고, 부채질을 해 주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볕이 내려쬐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가 여름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여름 한가운데서
온 나라에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강한 햇볕 때문에 낮 최고체감온도가 섭씨 35도 안팎까지 오르는 곳이 많겠다며, 한낮 야외 활동을 줄이고 물을 자주 마실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런 기별에 흔히 '폭염'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이처럼 강한 햇볕 때문에 더위가 더욱 심한 날에는, 뜻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토박이말 '불볕더위'를 함께 써 보면 어떨까요?
볕이 불같이 내리쬐는 더위, 불볕더위
우리는 흔히 습하고 끈적이는 더위와 찌르는 듯한 더위를 한꺼번에 묶어 '폭염'이라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한자말 '폭염'(暴炎)이나 '폭서'(暴暑), '혹서'(酷暑)보다 그 뜻이 눈앞에 환하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있으니 바로 '불볕더위'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폭염과 폭서의 다듬은 말로 '불볕더위'를 쓰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라고 뜻풀이합니다. 소설 《음지의 눈》에 "연일 33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수분을 말리고 있었다"라거나, 소설 《미망》의 "복중을 면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낮은 불볕더위였다"라는 보기월처럼 오래전부터 우리 삶 가까이에서 쓰여왔습니다.
이 말의 말밑을 들여다보면 '불+볕+더위'의 알찬 짜임으로 이루어져 있어, 말 그대로 '볕이 불같이 뜨거운 더위'라는 뜻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앞서 나누었던 '무더위'와는 됨됨(성질)이 아주 다른 더위이지요. 비가 자주 오고 공기가 눅눅한 오란비(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은 '무더위'나 '찜통더위'가 제격이라면, 오란비가 개고 하늘이 뚫린 듯 강렬한 볕이 내리쬐는 때에는 '불볕더위'라는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사전에서는 '불더위'를 비슷한 말로 알려주지만, 달궈진 가마솥 앞에 있는 듯한 '가마솥더위'라는 정겨운 토박이말도 덤으로 함께 알아두면 더위의 결을 더 세밀하게 부려 쓸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뜨거운 볕 아래에서도
살다 보면 불볕더위 같은 날이 찾아옵니다. 한꺼번에 일이 몰리고, 마음 둘 곳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뜨거운 볕 아래에서 잠시 큰 나무 그늘을 찾듯, 우리도 잠깐 쉬어 갈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잠시 쉬는 것은 게으른 일이 아니라 다시 걸어가기 위한 힘을 모으는 일입니다. 오늘도 제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낸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애쓴 사람입니다.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
입력 2026.07.21. 07:05 수정 2026.07.2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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