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영원히 존경·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최고의 선택과 노력, 감사합니다.” “가난을 물리치신 대통령님!” “배고픔을 잊게 하신 분, 존경합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 생가의 방명록에 방문객들이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KBS가 광복 63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인물은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무려 73.4%가 박 대통령을 꼽았다는 보도 내용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8월4일 경북 구미에 갔습니다. 고속버스가 시내에 접어들자마자 ‘박 대통령 생가’를 안내하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쩌면 박 대통령 생가야말로 구미가 내세울만한 최대의 관광자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나라 국민 7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대단한 인물이니 그의 생가를 보러 전국 곳곳에서 몰려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실제로 이날 오후 찾은 박 대통령 생가에선 중화권 관광객들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구미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 생가의 1년 방문객 수는 5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줄잡아 하루 평균 1300여명이 생가를 찾는 셈이죠. 이런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앞서 소개한 방명록에 적힌 문구들 속에 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여전히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건진 위인’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대개가 경상도 억양인 관광객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생가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분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죠.

올해 3월 이곳에서 81세의 생가보존회장이 한 젊은이에 의해 흉기로 피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5개월 가까이 지났기 때문인지 그 사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993년 경상북도 기념물 86호로 지정된 박 대통령 생가는 현재 구미시가 관리를 맡고 있죠. 20년 넘게 무보수로 일해온 생가보존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구미시 측은 박 대통령 기념사업 담당 공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을 생가에 상주시킨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곳 생가에서 1917년 태어나 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학창 시절 사용했던 방에는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1929년 모친과 함께 심었다는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도 눈길을 끕니다. 박 대통령이 생가를 찾을 때면 꼭 관리인에게 “잘 자라도록 하라”고 당부했다던 그 나무죠. 직접 나무 위로 올라가 감을 따는 모습 등 대통령 재임 기간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해 1979년 10·26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박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풍운아’라고 하겠습니다. 18년에 이르는 그의 통치는 많은 업적을 이뤘으나 동시에 숱한 과오도 남겼죠. 장기집권을 위한 무리한 3선개헌, 민주주의를 말살한 유신개헌, 인혁당 사건 조작과 관련자 8명 처형, 김대중 납치사건…. 그의 잘못을 일일이 거론하자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런 실정은 애써 외면한 채 몇몇 잘한 것만 끄집어내 박 대통령을 마냥 치켜세우는 작금의 분위기는 옳은 것일까요. 박 대통령을 무슨 ‘영웅’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짐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 구미종합터미널. 구미는 인구가 40만명에 이르는 경북의 대도시 가운데 하나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 고(故) 박정희 대통령 생가. 경상북도 지정기념물 86호로 지정돼 있다.
◇ 박 대통령 생가의 아래채. 박 대통령의 부모가 1916년 이곳으로 이사를 와 신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채는 1950년 전란의 와중에 소실되고 아래채만 살아 남았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보수공사를 거친 것이다.
◇ 박 대통령 생가보존회 사무실. 올해 3월 생가보존회장이 한 젊은이에 의해 흉기로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생가 아래채에 들어있는 박 대통령의 공부방. 박 대통령은 1917년 이 방에서 태어나 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 박 대통령이 학창 시절 쓴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아래채의 공부방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 박 대통령 생가의 접견실. 박 대통령이 재임 시절 생가를 찾으면 이곳에서 방문객들을 만났다고 한다. 시계가 1970년대에서 멎은 느낌이다.

◇ 1920년대에 박 대통령의 어머니가 사용한 옷장이다. 위에 박 대통령과 그의 아내 육영수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 박 대통령 생가의 명물 감나무. 1929년 봄 박 대통령이 어머니와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이 생가를 찾을 때면 직접 이 나무 위로 올라가 직접 감을 땄다고 한다.
◇ 박 대통령 생가 마당의 우물과 펌프.
◇ 박 대통령 생가의 그림. 오른쪽 본채는 1950년 전란으로 소실돼 이후 양옥으로 새로 지었고, 왼쪽 아래채는 지금도 남아 있다.
◇ 박 대통령 기념사업을 알리는 안내판. 기념관을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는 등 생가 주변을 대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 박 대통령 기념관과 기념공원 등이 들어설 부지. 생가로부터 수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 박 대통령 생가에서 도로 쪽으로 걸어나오면 '새마을운동중흥'이라고 적힌 석탑이 보인다. 박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 생가에 전시된 박 대통령의 가계도. 아들 지만씨와 세 딸 재옥·근혜·근영씨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지만씨가 몇해 전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해 얻은 아들 세현(世現)군의 이름도 보인다. 세현군은 박 대통령의 유일한 손자다. 박 대통령의 조카사위에 해당하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이름이 눈길을 끈다.
◇ 박 대통령의 아내 육영수씨가 청와대 경내에서 남편과 아들 지만씨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1974년 육영수씨가 세상을 떠난 뒤 각종 의전행사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은 박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왼쪽)이 맡았다.
◇ 박 대통령 생가 앞 도로에는 '박정희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박정희로는 구미 시민운동장~사곡동을 잇는 도로와 형곡동~구미1공단을 연결하는 도로가 마주치는 사곡오거리에서 박 대통령 생가 앞을 통과해 국도 33호선과 합류하도록 신설된 길이 2.8㎞의 왕복 4차로다.
◇ 박 대통령 생가에서 박정희로를 따라 죽 걸으면 나오는 박정희체육관. 2001년 2월15일 개관 당시의 명칭은 구미 실내체육관이었으나, 2002년 1월30일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 박정희체육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된 돔형의 체육관이다. 농구, 배구, 핸드볼, 배드민턴, 씨름 등 다양한 종류의 실내경기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