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 > ( Jesus' Final Odyssey ) 제22회
제22장 카슈미르의 목자 예수
탁실라에서의 예수의 삶은 명상과 기도 그리고 수련의 연속이었다. 그는 팔레스티나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 잊고 떨어버리려고 한다. 부질없는 일들로 느껴진다. 그는 높고 험한 산을 오르고 산 속 깊숙이 숨어 있는 곰파 (Gopmpa, 사원)를 찾아 수도승들과 긴 시간을 보내고 어디서든지 좌정하여 명상하고 기도한다. 예수는 탁실라에 와서 더욱 더 명상에 몰입하게 된다. 명상과 기도는 유사하면서도 아주 다르다. 기도에서는 우리가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간청하고 희구하고 탄원하며 자기의 생각을 그에게 말한다.
그러나 명상은 좌정하고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정적 靜寂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정적이 오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에 방해를 받지 않는 마음의 고요에 도달한다. 이 고요 속에서 느낌이 찾아온다. 그러면 알게 된다. 이 앎의 상태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상태는 절대적이다. 남이 너에게 네가 아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면 확실한 대답을 못할지 모를지만, 나 자신의 앎은 절대적이다. 예수는 이제 어디서나 혼자 좌정하여 자기 자신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이 곳, 이 상태, 이 앎의 상태를 포착하는 법을 탁실라에서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예수는 작은 마을이나 큰 도시나 여러 곳을 다니며 말한다. 보통사람이나 승려들에게나 구분없이 이렇게 설법한다.
"너희는 정적 靜寂을 구하라. 너희 영혼은 거기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빛으로 충만하며 지혜의 샘이 있고 사랑이 있고 권능이 있다. 너희의 정적은 벽이나 험준한 바위나 창이나 칼 같은 것으로 둘러쌓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너희의 은밀한 곳에 항상 정적을 지니고 다닌다. 너희는 그곳에서 신을 만날 수 있다. 너희가 어디에 있던 상관없다. 산꼭대기에 있어도 좋고 깊은 산골짜기에 있어도 좋다. 조용한 자기 집에 있어도 무방하다. 너희는 문을 활짝 열면, 당장이라도 또 언제라도, 너희의 정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러면 신의 처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너희 영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 계곡에는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특히 유대인은 큰 부락을 이루고 살 정도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오천 년의 인도역사를 통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동으로, 동으로 이동하면서 카슈미르 Kashmir, 쟈무 Jammu, 라다크 Ladakh 지방에 많이 정착하게 된다. 카슈미르에서는 특별히 히브리인을 환영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카슈미르에서의 예수의 흔적
오랜 명상과 기도 끝에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확실히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도마와 작별하고 이 년 여름 머물렀던 탁실라를 떠나 카슈미르로 향한다. "나는 양치기이다. 나는 양들을 잘 안다. 내 우리 속에 있지 않은 양들을 모두 데려다 한 우리에 모아야 한다. 한 양치기에 한 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인도로 오게 된 이유이다.
또한 탁실라에서 카슈미르로 자리를 옮기게 된 이유이다.
그는 카슈미르에 사는 유대인과 카슈미르인들을 모아 목회를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이 말은 지혜와 진실의 말이다. 이 말은 너희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게 해 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옳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이다."
때로는 그는 이렇게 설교한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왕국을 추구하라. 세속적인 욕심을 가진 자는 반드시 멸하리라. 죽음은 달력을 모른다. 죽음의 시간이 언제 오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빛이 있는 동안은 쉬지 않고 움직여라. 착하고 옳은 일을 행하라. 그리고 그것을 비밀로 하라.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복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한 그대로 남도 너희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예수는 그의 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추울 때는 해가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밤에는 달이 나의 빛이 된다. 나를 운반 해 주는 것은 나의 발이며 나의 음식은 숲 속에 있는 산딸기이다. 내가 잠들 때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내가 깨어났을 때 또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바로 나이다."
샹카라차라야는 스와미(힌두교 종교지도자)중의 최고의 스와미이다.
그는 우물가 암자에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그곳을 찾아 온 가난에 찌들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저 하늘을 쳐다보며 천국을 구하지 말고 너희 마음 문을 열어라. 그러면 마치 빛이 밀려들 듯이 천국이 너희에게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한 없는 기쁨을 가져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너희의 고생은 그리 가혹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인도의 카슈미르에 도착하여 정착한 것은 힌두 왕 아크 Raja Ach, (재위 24~79 AD) 당시로, 그것은 예수가 실크로드를 따라 그 동남쪽 자락인 탁실라에 와서 이 년여를 지낸 후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사료에도 비교적 명확히 나타나 있는데, 대표적으로 페르시아의 역사가 물라 나디리 Mulla Nadiri가 편찬한 사기 史記 타리크 - 이 - 카슈미르 Tarikh-i-Kashmir; The History of Kashmi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사기록에는 예수가 성스러운 땅(the Holy Land; 당시 카슈미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그렇게 그들의 고향 팔레스타인을 흔히 이렇게 불렀다)에서 와서 성스러운 계곡 카슈미르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으며, 당시 탁실라에 머물고 있던 그의 제자 도마가 예수를 방문하였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이 역사서에는 아크 왕 Raja Ach과 그의 아들 고파다타 왕 Raja Gopadatta의 치세를 다루는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이 시기에 성스러운 땅에서 이 성스러운 계곡으로 온 하즈랏 유즈 아사프 Hazrat Yuz Asaf가 카슈미르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밤낮 없이 신에게 기도하는데 헌신하였으며, 경건함과 미덕으로 명망이 높았다. 그는 자신이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다. ... (중략) ... 사람들은 아크 왕이 즉위한지 54년 되는 해 (=78AD)에 샹카라차라야 Shankaracharaya 사원의 계단 측면에 글을 새겨 넣었다:(아래 새겨진 글)
Dar een waqt Yuz Asaf da'wa-i-paighambari mikunad → 유즈 아사프가 자신이 신의 사자(使者)임을 선언하였다.
Aishan Isa(Jesus) Paighambar-i-Bani Israel ast →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선지자 이사(예수)이다.
그 외 예수가 다녀갔던 인도와 다른 나라에서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민들의 오래된 구전에서도 예수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구전도 있다. 우리는 금발에 얼굴이 희게 빛나는 남자를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다. 서부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 Ghazni와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맨 끝의 잘라라바드 Jalalabad에서도 예수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거기에는 유즈 아사프의 이름이 있는 두 개의 연단이 있다. 그가 앉아서 설교하였던 곳이다.
[출처] <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 > ( Jesus' Final Odyssey ) 제22회|작성자 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