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는 TV 대신 책장, 디자인 가구와 소품을 두어 꾸몄다. 한 쪽 벽면은 컬러감이 느껴지도록 아기자기하게, 맞은편 벽면은 무채색의 시크한 분위기로 연출했다.이 집을 처음 소개한 이는 에이치픽스의 박인혜 대표다. 자신의 숍에서 가구와 조명, 소품 등을 구입해 간 고객이 있는데 집에 가서 보니 그 감각이 보통 아닌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에이후스의 홍보담당자도 루이스 폴센의 PH 펜던트 조명을 구입한 고객 집이 꽤 괜찮았다며 추천했는데 결국 알고 보니 두 곳에서 이야기한 곳은 동일한 집이었던 것. 이렇게 양쪽으로 소개를 받은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없이 집주인이 직접 리노베이션한 곳이라니 가보기 전부터 이 집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1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인 집주인 유경선 씨.
2 작업실 한켠엔 집주인이 좋아하는 부엉이 오브제가 심오한 대화를 나누는 양 장식되어 있다. “뭐, 볼 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처음 집을 장만해 제대로 인테리어한 것도 처음이라…. 아무튼 제가 1996년부터 보아온 <메종>에 나온다니 제 꿈 하나는 이루어진 셈이네요. 대학생 때부터 막연히 ‘50살 전에 <메종>에 내 집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해왔거든요.”
딸이 그린 그림이 전시된 작업실 벽면 보드. 앙증맞은 마그넷 또한 볼거리.집 안에 들어서 휘 둘러보며 ‘역시!’라는 만족감을 드러내는데 마침 집주인 유경선 씨가 <메종>의 오랜 독자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또 한 번 ‘역시!’하며 팔불출처럼 우쭐해졌다. 디자이너 없이 혼자, 그것도 처음 해본 리노베이션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결과물이니 에디터는 순간, 자식 잘 키워놓고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부모 마음이라도 되는 듯했다. 집주인은 이사를 결정하면서 처음부터 직접 리노베이션을 해볼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디자이너를 만나 몇 차례 미팅을 가지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믿고 맡기기가 영 어려울 것 같았다고. 그래서 결국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고, 지인으로부터 시공 업체를 소개받아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예전부터 보아온 국내외 인테리어 잡지,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을 골라 틈틈이 모아둔 스크랩북, 메모해두었던 숍 리스트는 그녀의 첫 리노베이션 작업에 요긴한 자료로 쓰였다.
1 작업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남편의 컬렉션인 귀여운 피규어.
2 거실 한쪽 벽면을 장식한 거울과 콘솔, 인형들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전할 것만 같다. “집을 고치면서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벽지를 쓰지 않고 페인팅 도장으로 벽 마감을 하는 것과 천장에 몰딩을 두르지 않는 것이었죠. 시공 과정도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너무 차갑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리는 시공 책임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했는데 하길 잘했다 싶어요.”
봉제 인형과 아기자기한 디자인 소품들로 꾸며놓은 여섯 살 딸 다원이의 방.
1 책상 위 전시해놓은 딸 아이의 컬렉션.
2 딸 방의 문에는 유리를 끼워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집이 심플하고 깔끔하게 보이는 데는 가구 선택이나 수량, 배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벽면 페인팅 효과가 크다. 차갑게 보이는 페인팅의 단점은 공간마다 벽면 한 군데씩 따뜻한 느낌이 드는 컬러를 선택해 이를 보완했다. 천장 몰딩을 없앤 대신 천장에 넓은 패널을 덧대어 장식한 거실과 부엌은 한결 넓고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꾸민 부엌과 다이닝룸.침실과 아이 방, 안주인의 작업실(유경선 씨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다)도 모두 가구를 많이 두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따뜻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도록 꾸몄다. ‘여지가 있는 집’, 즉 꽉 짜여 변화를 줄 수 없는 집이 아닌 살면서 조금씩 바꾸기도 하고, 더하고 빼며 변화를 줄 수 있는 집을 원했던 유경선 씨의 계획이 제대로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니멀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전하는 부부 침실. 심플해 보이는 침실 역시 곳곳에 아기자기한 인형들을 장식해 눈길을 끈다.이 집의 진가는 좀더 세심하게 둘러보았을 때 드러난다. 유경선 씨가 오랫동안 모아온 부엉이 오브제와 귀여운 소품들, 그녀의 남편이 모은 피규어와 손가락만한 인형들, 그리고 여섯 살 딸의 인형과 스티커, 그림까지 가족의 아기자기한 컬렉션들은 미니멀해 보이기만 한 공간에 유쾌함과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거기에 컬렉션 하나하나에 얽힌 추억과 일화까지 듣다 보면 이 공간에 있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집주인이 연신 차려내는 다과를 즐기며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익숙한 공간인 듯 어느새 아늑하고 편안해졌다. 손님이 많이 드는 집,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이었으면 한다는 집주인의 바람이 담긴 곳이기에 가능한 일일 게다.
침실과 욕실 앞 작은 공간에는 집주인이 파우더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꾸몄다. 거울이 달린 장 안에는 집주인의 소중한 부엉이 컬렉션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