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인연으로 맞은 행복 만남
지난 7월 12일(양력으로 치면 이날이 팔순을 맞는 생일)
나의 서재 ‘연재 글’에서 마지막을 이렇게 적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부모님에게 전수된 유교적인 생활에 젖어 있었고, 오직 孝悌忠信 사고로 꽉 찼던 시절에는 思考가 내현적으로 경직되었었다.
장기간 교직 생활을 영위하면서 평생교육을 통하여 스스로 유연함을 느꼈으며 아내도 이를 반겼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 미숙하다.
여생은 이를 더 채우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따라서 다음 과제는 침체 되었을 내면의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이글을 게재한 지난 7월 12일부터 오늘 음력 7월 12일까지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론 나의 글을 읽고 팔순을 축하해 주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뜻밖의 만남도 있었으니 이게 우연일까, 필연일까?
7월 6일, 우남회, 산수 축하연
우남회는 사범학교 동기생들로 조직된 일종의 계이다. 1995년에 태동하였으니 올해 27년이 된 셈이다. 우리는 1주일에 정기적으로 한 번씩 만나 산책도 하고 때론 여행(국내, 해외)도 했고 김제복 회우가 제공한 도서를 10년 넘게 윤독 중이다. 그분들이 생일도 되기 전에 축하를 해 주었다. 양주, 와인, 보드카, 매취순 10년산, 바나나, 생강차...
중국식 점심특선에 거나하게 잔을 들고 생일 축하송을 불러대는 형들하고는...
7월 16일, 큰댁 조카들의 축하
조카 사위 문호 군(호남대 교수)이 전화를 해왔다. 작은아버지 생신 축하한다는 인사다. 그러면 만족인데 만나서 식사도 하고 차도 나누면서 즐겁게 보내자 하니 이 아니 즐거운가!
조카들 내외(16명)가 모두 참석은 못하지만 그들의 뜻을 대신하여 광주에 사는 세 가족이 만나자는 것.
형님이 이 자리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꽃바구니에 축하 금일봉까지. 고마움 잊지 못하네.
큰집 조카들이 보낸 메시지 우리 가족도 본 받기를...
사랑합니다~
♡♡♡
ㅡ정숙자
작은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작은 엄마와 함께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모습 뵈니
반가웠어요~~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랄께요^^
ㅡ점숙
작은아버지~!
80세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늘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사진으로 뵈니 좋아 보이세요. 작은어머니도)
지금처럼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해요~
ㅡ경숙
찾아뵙고 인사드리지못해 죄송합니다ㅠ
사진으로나마 숙부숙모님 건강한 모습보니 기분 좋습니다.
팔순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ㅡ선숙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지금처럼 우리가족의 큰 어르신으로 오래오래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늘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ㅡ문호
저희들도 작은아버님과 작은어머님 건강한 모습 뵐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ㅡ미애
7월 21일, 체육센터 형제들
아침마다(6시-7시) 만나서 웃음 나누고 가벼운 운동을 즐기는 형제들이다.
임도형(송계) 형, 윤정중(문광) 형, 배병기(송석) 형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 품위 있는 점심을 나눈다.
이날도 유명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특식을 마련하고, 유사 송석이 마련한 생일 케이크와 양주를 곁들여 생일송을 불렀다. 늘그막에도 노래까지 부르다니. 촛불이 금방 꺼질까 봐 입김을 천천히 내뿜었다.
7월 22일, 선배 교수님의 진심 어린 축하
김충곤 교수님은 곧 나의 형님이다. 모처럼 시간을 할애하셔서 내 사무실로 오셨기에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수락하셨다.
웬걸 당신이 다녀오신 단골 한정식집에 안내하시더니 비싼 음식을 막무가내로 계산하시고는 아내에게 가져다주라며 별도로 음식을 주문하셨다.
그동안 내게 베푸신 정도 많으신데(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할 때 서양화 대작 증정, 기타 행사 때마다 그림을 보내주셔서 모아 놓으면 김충곤 서양화 전시장이 될 정도이며, 내게 필요한 일들을 손수 해결해 주심) 팔순 축하를 해 주시니 이 정을 어찌 갚을지?
7월 23일, 제자의 초청
7월 11일, 뜻하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박경옥. 90년 입학 92년 졸업한 수제자로 광주광역시 유치원 교사 임용고시 합격, 시내 병설 유치원 임용, 공립유치원 원감으로 임용된 수제자다. 그가 합격했을 때, 임용되었을 때, 원감 승진되었을 때 신문을 보고 축하 전화를 했을 뿐인데, 그게 고마움으로 남았던지 전화를 했다. 재학 당시 인형극 활동을 하면서 지도교수 김 교수를 잊지 못했는데 시내 음악제에서 우연히 만나 한 번 만나 볼 요량을 했던 모양이다. 얘기가 무르익어 여수의 동기생 이노경도 동석하자는 것. 그래 23일로 잡아 중국요리 전문 식당에서 네 사람이 만난 것이다. 실로 우연한 일인데 어찌 내 생일 달에 만나게 되었을까.
학창시절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꽃바구니는 필수였고, 카카오택시로 집까지 보내 주었다. 담엔 여수로 초대한다나?
7월 25-27일, 죽연 형님과의 청학동 여행
죽연 형님은 이미 청학동에 다녀오셨다. 절친 세 분이 무료숙식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이제는 서비스가 종료되어 도착 당일 삼성궁만 구경하고 다음 날 삼신봉 등산을 포기하고(일행 중 2명이 포기) 말았다.
내게 저간의 사정을 말씀하시기에 우남 세 사람이라도 오는 7월 25일 다시 삼신봉 등산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겼다. 형님 한 분이 기저 질환이 있고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니 여행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모처럼 부푼 기대가 무너져 죽연 형님의 실망이 크신 듯했다. 그래 우리 두 사람만 가기로 작정하고 아내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본인도 끼워달라는 것이다. 형님도 찬성하셔서 뜻밖에 생일 달 부부 여행이 성사된 것이다.
청학동 도착 삼성궁 관람, 삼신봉 등산, 숲길 10,000보 산책, 왕복 기차 여행으로 경비도 절약했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7월 29일, 미지의 귀인과의 만남
이 또한 우연일까. 7월 10일 밤 8시.
“실례지만 문기정 교수십니까?”
“그렇소만...”
“저는.........이재진입니다.”
아직 면식은 없지만, 존경하는 고창현 교수님의 수제자라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
다짜고짜로 한번 뵙고 싶다기에 일정을 고려하여 지난 29일에 만나게 되었다. 이 교수와 긴밀한 나의 동료 임 교수, 나의 절친 홍 교수와 동석하였다.
첫인상부터 비범한 분이었다. 아직 정년을 2년 남기고 있고 대학 중요 보직을 맡고 있는 재직 대학의 대들보였다.
담양식을 맛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대학 연구실을 방문하여 차를 나누면서 이 교수의 면모를 더듬어 보게 되었다.
헤어진 뒤에 이 교수의 이력이 담긴 SNS도 들춰보고, 임 교수로부터도 그분의 활약상을 들으며 貴人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 처장님의 진실하고 친절한 환대,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떻게 주변인으로 살고 있는 제게 이런 영광스런 초대를 해 주시니 더욱 세상 살맛이 납니다. 재삼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교수님과 가족 모두가 기쁨만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교수님 ~^^ 과분한 칭찬에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뵙고 싶었던 교수님께서 제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훌쩍 나들이하고 싶으실 때 언제라도 연락 주시고 이곳으로 오십시오. 편안하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재진 올림’
고마운 마음을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았다.
8월 1일 내 카페 ‘문기정의 심리교육 디오라마’에 ‘귀인 이재진 교수’라는 글을 게재했다.
8월 4-6일, 내 아이들과의 고향 여행
내 아이들 4남매. 희숙, 원태, 희경, 인태
그리고 며느리 경희, 윤경, 사위 성엽, 양원
언제나 든든한 가족이지만, 올해는 내 나이 팔십이라서 각자 직장에서 같은 기간에 휴가를 낸 것이다.
단 코로나가 유행되고 있으니 손자녀들은 참석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한 시간에 우리는 만났고, 내 고향 보성에 나의 체취가 풍기는 곳을 답사하며 유유자적 편안하게 즐겼다.
내 아이들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뿌듯함에 행복했다.
마지막 날 ‘인생 교훈’ 20 훈’을 나누고, 우리 내외의 ‘노령보험’ 내역과 사전의료의향‘도 밝혔다.
두 팀(두 아들 내외)은 서울로 세 팀(우리 부부, 두 딸 내외)은 광주로 돌아왔다.
8월 9일, 조촐한 정식 생일(음 7월 12일) 파티
광주의 두 딸 내외, 손자녀(참석 형편이 되는)와 오붓하게 모여 정식 생일(팔순)을 조촐하게 보냈다.
아침에 미역국 끓여 축하해 준 아내가 파티 경비를 전담한다기에 고맙다는 말만.
(팔불출-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법정)
(2022.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