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시인이 쓰지 않는다. 오직 이 세계 혹은 사물이 쓰는 것” 임을 단호하게 앞세우는 시인이 있다. 한 생을 오로지 시와 학문의 길로 매진하고 있는 오세영이다. 이 시는 사물로서의 “핸드폰 ”이 담담하게 시를 쓰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비유되는 디지털 세간의 틈바구니 창살에 우뚝서서 이미 유태인 강제 수감자가 되어바린 우리들의 알몸 가슴에 박힌 번호표”를 하나하나 호명(號名)하면서. 핸드폰은 “벨이 울리면 지체 없이 달려가야 할 수용소 번호 그것은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디지털 시대적 삶의 애환과 고독을 함의한다. 결코 숨길 수 없고 오직 신(神)만이 밝혀 낼 수 있을 “비밀”이란 언어가 표상하는 현실의 ‘체험적 고독’에 대한 토로의 노래가 절절하게 행간을 적셔준다. 첫 연에서 보듯 평소 자신을 홀로 골방에 가두어놓고 시 쓰기에만 몰입해야만 '고독과 자유'를 찾을 수 있어 '사랑과 창작'이 가능하다는 시인의 체험적 고백을 화두로 삼았다. 오세영 시의 전형이다. 그러한 작시태도가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곤 한다. 오세영 시인은 이미 “언어가 아니고선 신(神)을 부를 수 없고, 생명을 감동 시킬 수 없다( 「아아, 훈민정음」)라고 읊었듯이 디지털 시대의 맹아(萌芽)인 ‘핸드폰’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시적 알레고리는 태생적 인간의 한계적 운명인 ‘고독’에 대한 갈증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보석 같은 나의 비밀 하나 쯤 같고 싶다"는 갈망에 대해 무정하게도 핸드폰 수용소 번호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허탈감에 이르러 시는 절정을 이룬다. 벨이 울리면 이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되어 비밀을 통째로 압수당한 우리들은 죽음의 두려움까지 고심하며 알몸으로 지체 없이 달려 나가야 한다. 그 감사나운 한계적 운명을 받아들여만 한다는 아포리즘이 우리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아무리 비밀을 지키려 발버둥쳐도 우리는 세네카의 말처럼 신(神)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일까. 어둑새벽임에도 나의 핸드폰, 잊지못할 첫사랑 그녀가 또 운다. “ 매번 자지러지게 울어대지만 그녀가 전해 주는 사연이란 이번에도 기대했던 달콤한 비밀은 아니었다. 추수 끝난 벌판의 검불처럼 탱하기만 하니.... 아! 지체 없이 달려가야 할 나의 수용소 번호 010-9855-9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