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수종사 경인계의 인연으로 박 희준 교수님의 초청을 받고 한국 발효차에 대한 강의와 시음에 참여한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계기로 차에 대한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기본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나름 적었던 것을 복습하니 다량의 어설픈 지식과 궁금증이 폭발한다. 노화욱 선배님과 MBC 여기자 등 차에 관심을 둔 다인들이 초빙되어 인사동 한국 발효차 연구소에서 진행된 강의의 핵심 주제는 지리산 화개동에서 생산되는 한국산 발효차는 황차가 아닌 소위 ‘홍차형 발효차’ 혹은 ‘홍잭살차’라 명명하여 황차와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당일 박 교수님이 한국 발효차의 연원과 고찰에 대해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며 나의 궁금증을 제시해 보고 싶다. 한국 차는 형태에 있어 크게 병차(떡차)와 산차(잎차)로 구분된다. 조선 후기까지는 병차가 대종을 이루었으며, 이 때 만들어진 차는 시간에 따라 자연스레 후 발효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 차는 발효차가 주를 이룬다는 주장도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 황차를 가득 실은 청나라 배가 난파하여 서해안으로 표류하는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중국산 황차가 소개된다. 이것을 통해 조선의 차를 고찰하는 새로운 계기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정다산은 고래의 국내산 차도 차 형태를 불문하고 황차 종류일 개연성을 열어 놓았다. 정다산은 중국에서 들어 온 황차에 대응하여 <다경>과 <대관다론>을 뛰어 넘어 한약재의 법제에 사용되던 <구증구포>라는 새로운 제다 방법을 창안하였으며, 이 방법에 의해 제조된 조선 차는 황차 후에 들어 온 중국의 보이차와 일전을 치루게 된다. 정 다산의 <구증구포> 제다법은 차를 아홉 번 찌면서 말리기를 반복한 뒤, 마지막에 그것을 갈아서 물에 반죽을 하여 덩이를 지어 말리는 것으로, 나중에는 삼중삼포의 방법으로 단순화한다. 다산의 제다 방법을 완벽하게 수용한 사람은 초의 선사로 보이며, 그가 자하 신위에게 선물한 <보림백모차>와 <동다송> 내용에는 잎차와 떡차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동다송>이 잎차의 기록 뿐만 아니라 떡차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전통차가 잎차와 떡차가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이 유원의 <임하필기>, <가오고략>의 <죽전차>, 박 영보의 <남차병서> 에 기록에서 소개되는 초의선사의 차는 병차에 대한 기록이다. 박희준 교수는 우리의 지리산 발효차가 황차와 엄밀히 구분되어져야 하는 단초는 조선 후기의 유명한 다승이신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가 저술한 한국 다도의 불후의 고전인 <동다송:東茶頌>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기에는 1828년(순조28년) 무렵 초의선사가 칠불선원에 하안거를 갔을 때, 칠불선원의 스님들이 발효차를 만들어 마셨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智異山 花開洞 茶樹羅生四五十里 東國茶田之廣 料無過此者 洞有玉浮臺 臺下有七佛禪院 坐禪者 常晩取老葉 ?乾然柴 煮鼎如烹菜羹 濃濁色赤味甚苦澁』
『지리산 화개동(花開洞)에 차나무가 사오십 리에 걸쳐 자라고 있는데, 우리나라 차밭 중에는 이보다 넓은 곳은 없다. 화개동에 옥부대(玉浮臺)가 있고 그 밑에는 칠불선원(七佛禪院)이 있는데, 그곳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항상 늦게 쇈잎을 따서 햇볕에 장작처럼 말려 나물국 끓이듯 솥에 달여 마시는 데 색은 붉고 탁하며 맛은 심히 쓰고 떫다』
상기의 내용은 칠불선원의 제다에 대한 안타까운 비판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한국의 지리산 발효차에 대한 근원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논쟁의 촛점이 되는 초의선사의 주관에 객관적 참조를 위해 당시의 상황을 자료를 조사하여 첨언하고자 한다. 초의 스님은 주로 전남 해남군에 있는 대흥사에서 오래 사셨는데 나이 43세 때인 1828년 무자년(戊子年) 여름 우기(雨期)에 스승을 따라 지리산 칠불선원에 오셨다가 당시 거기에 소장되어 있던 청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백과사전 격인 <만보전서: 萬寶全書>에서 차에 관한 부분인 <채다론: 採茶論>을 베껴 45세(1830년)때 발문(跋文)을 쓰고 <다신전: 茶神傳>이라는 제목으로 다서(茶書)를 만들어 베포하였다. 그리고, 초의스님은 지리산 칠불선원에는 짧은 체류기간으로 칠불선원의 발효차(醱酵茶)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물론 작설차(발효차)를 끓이면(煮茶法자다법) 색깔이 붉고 떫은 맛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녹차의 쓴 맛이나 떫은 맛과는 달리 뒷맛이 개운하며 상큼한 매력이 있으며, 발효차를 끓이지 않고 요즘처럼 다관에 우려서(포다법泡茶法) 마시면 밝은 황금빛 색깔에 그윽한 향기와 풍미가 일품이다. 당시 칠불선원 상황이 사찰이 화재로 인하여 한창 복구 중이었기 때문에 상주하는 스님들이 제때에 찻잎을 따지 못하고 좀 늦게 따서 참선하는 스님들답게 담백하고 소박하게 만들어 마신 경우를 유추할 수도 있다.
박희준 교수의 주장을 계속하여 정리해 보기로 하자. 위의 표에서 나타나듯이, 첫째, 1과 2에서 칠불선원의 제다는 황차의 살청과 유념의 공정을 무시한다. ‘?乾’(쇄건) 은 일광 위조 공정인지 건조 공정인지 애매하다. 3은 끓여 마시는 煮茶法 의 음다를 의미한다. 4 와 5 에서 濃 은 오랫동안 끓였을 경우/홍차형 차를 끓였을 경우에 나타난다. 濁은 찻잎이 심하게 유념되었을 경우/오랫동안 끓였을 경우에 나타난다. 色赤 은 녹차 계열(황차는 녹차 계열임)이 아닌 홍차형 차에서 나타나며, 苦澁 에서 쓴 맛은 카페인, 떫은 맛은 카테킨이 주성분을 이루며 해당 차의 정체성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다. 박희준 교수는 쓰고 떫다는 맛 보다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붉은 탕색에 개연성을 두고 홍차형 차라고 주장한다. 황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쇄차의 해석이 위조와 건조가 함께 진행된다는 이해의 부족과 탕색의 정의로 차를 구분한다는 개념을 몰랐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다산의 <九蒸九曝>에서도 曝는 暴?에 시들리는 위조의 개념보다는 건조의 개념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박희준 교수는 지리산 발효차는 황차도 아니며 엄밀하게 홍차도 아닌 홍차형 발효차 혹은 혹잭살차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강의를 마치고 5가지 유형의 소위 홍잭살차에 대한 시음이 있었다. 커피와 같은 진한 맛에 길들여져 있는 나로서는 미세한 차의 맛을 구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를 제대로 배우려면 석사 2년의 과정도 부족하다고 한다. 차를 대하면 대할수록 너무나 고귀한 식물을 대하는 기분이고, 인간이 수양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훌륭한 생명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면 오늘 날 지리산 발효차의 제다 공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 그래서, 차의 맛은 공부와 더불어 숙련하기로 하고 강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요약 정리하여 박 교수님한테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을 성 싶다. 먼저, 제다 공정을 가지고 황차형 계열을 반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황차도 민황 공정을 통해 탕색이 황색을 띌 수 있다. 햇볕에 말리는 과정은 민황 공정의 의미도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두번 째로 지리산 일원의 발효차는 포다 방식일 때는 갈색, 자다법인 경우 흑갈색을 띈다고 하는 데, 발효 공정에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 그러면 현대의 지리산 발효차의 제다 공정 순서는 ? 계속하여 여연 스님이 강의를 이어 가신다. 내가 들은 핵심은 깨달음은 사물을 넓게 이해하는 것으로, 깊다는 표현을 쓰며 사물까지도 포함하여 진솔한 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신다. 약속이 있어 노 선배님은 먼저 가시고, 나도 연구소를 빠져 나왔다. 어둠이 내리는 인사동 골목, 그 고풍스런 분위기가 나의 심신을 한가롭게 적셔주고 있다. |
출처: 향기를 찾아 원문보기 글쓴이: 海志/아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