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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봉화유기가 이처럼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지리적으로 쇠를 녹이는데 필요한 숯 생산이 용이하고 내성천의 풍부한 수량 등 유기생산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봉화유기는 특히 이곳의 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흥마을의 것을 으뜸으로 쳤다. 기록으로는 1830년 경 곽 씨와 맹 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이 마을로 와서 봉화현 소속의 外工匠으로 관급의 유기를 만들면서 그 이름이 알려졌다. 이 후 유기의 명성으로 마을이 흥하면서 신흥리, 즉 신흥마을로 불렸다. 1910년을 전후한 전성기에는 100여 가구가 50여개의 유기공방을 가동해 전국 수요의 70%를 봉화의 신흥유기가 점할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해 이곳이 ‘놋점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김선익 옹(77)은 가업을 이어 이곳에서 4대에 걸쳐 유기를 만들고 있는 유기장으로, 아직까지 전통적인 手제작과 옛날 기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장인이다. 김 유기장과 함께 高해룡 옹이 함께 이곳에서 가업을 지키고 있었으나, 고 옹은 별세했고, 지금은 그 아들 태주 씨가 4대 째 지켜가고 있다. 둘 모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봉화유기장 제 22호이다.
김선익 유기장도 현재 아들 형순 씨(40)가 봉화유기 전수조교로서 가업을 이어받고 있다. 김선익 유기장은 현재 유기공방인 ‘내성유기’를 운영하면서 각종 유기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내성천 상류 매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이곳은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봉화군 삼계리다. 공방 초입의 ‘유기마을 입구’라는 팻말로 옛 봉화유기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내성유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제품은 그릇, 수저, 접시, 밥통, 비빔기 같은 찬기류와 솥, 신선로, 찜기, 반상기, 제기, 불기 등으로 다양하다. 유기제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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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강 |
구리에 주석을 넣은 響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방짜유기’라 하고, 구리에 아연을 넣은 鑄銅으로 만드는 유기를 ‘주물유기’라 한다. 방짜(方子) 유기는 질이 좋고 독성이 없어 징, 꽹과리, 대야, 양푼, 식기, 수저 등을 만드는데 쓰이며, 아연합금으로 인해 방짜보다 독성이 있는 주물유기는 촛대, 향로, 화로와 같은 일반기물을 만드는데 사용되는데 방짜보다 물론 가격이 싸다. 주물의 경우라도 구리에다 아연만을 넣는 것이 아니라 錫(상납)을 함께 첨가하기도 한다. 이런 구분과 함께 색깔로 구별되는 제품으로 역시 방짜유기와 구리와 아연을 합금해 만든 ‘황동유기’, 그리고 구리에다 니켈을 합금한 백동유기가 있다. 방짜와 황동은 노르스름한 빛깔에 은은한 광택이 나며, 백동유기는 흰빛을 띤다. 또한 제작기법에 따라서도 두드려서 만드는 방짜와 쇳물을 형태에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가 있다.
주물유기는 놋쇠를 녹여 만들고자 하는 틀에 녹을 쇳물을 부어 만든 것이고, 방짜유기는 놋쇠를 녹여 바둑을 만든 다음 이 바둑을 망치나 메로 쳐서 모양을 잡아가며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반빵자 등이 있는데, 물론 전통적인 기법은 방짜와 주물 두 가지다. 이런 유기를 만드는 공장을 이곳에서는 옛 그대로 놋갓점으로,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놋갓장이로 부르는데, 놋갓점은 방짜(놋)점과 통점, 그리고 시(숫가락)점 등 세 가지가 있다. 방짜점은 큰 유기제품, 그러니까 大成器를 만드는 곳으로 주로 방짜동이, 방짜대야, 방짜양푼, 방짜놋상, 징, 꽹과리, 잿팝, 파래, 큰[大]요강 등을 생산한다. 방짜점이니까 유기의 재료가 되는 놋재는 純銅(구리)와 錫(상납) 두 가지 뿐이다. 통점은 속칭 性器店이라고도 하는데, 방짜점과는 달리 ‘부어 빼기’라 해 일정한 주물방법으로 식기류, 작은 요강, 등화로, 재떨이, 향로 등 중·소 크기의 유기를 만든다. 시점은 말 그대로 숟가락을 만드는 곳이다.
김선익 유기장은 당연히 방짜와 주물유기 두 가지를 모두 만든다. 그러나 방짜는 아무래도 70대 후반의 그 나이에 힘이 드는 작업이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에 의지해야하며 부단하면서도 적합한 메질(망치질)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하기에 힘에 부치면 직원들이 하는 작업을 조언하고 감독한다. 생산과정은 아들 형순 씨를 포함한 8명의 직원들이 부질대정과 담금질, 연마, 광내기로 분업화해 완성한다. 주물유기의 제작과정 대강은 이렇다. 화덕 위 도가니에 동과 주석의 비율이 들어맞은 재료를 넣고 괴탄불을 피워(옛날에는 숯불의 풀무질로 가열함) 녹인다. 쇳물이 끓는 동안 그릇의 본을 뜬다. 암틀과 수틀로 나눠지는 그릇을 엎어서 솔가지 불로 그을린다.
갯 흙으로 만든 그릇 본을 적당히 응고시키기 위해서인데, 그을림 질이 잘 돼 잘 응고돼야 쇳물이 일순에 흘러들어 그릇의 모양이 되고 결이 고와지는 것이다. 암·수틀을 결합해 녹은 쇳물을 붓는다. 암·수틀을 분리해 모형을 빼낸다. 모형의 요철을 줄로 고르게 한 뒤 곱게 깎는다. 그리고 광을 낸다. 이것을 공정 과정별로 보면 도가니 속의 쇠를 용해하는 부리공정, 쇠를 용해해 기형을 만드는 내핍공정, 그리고 깎고 다듬고 광을 내는 가질공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제품이 나오는데, 부리공정과 내핍공정을 합쳐 ‘부질’, 그리고 다듬는 과정의 ‘가질’ 두 단계로 크게 구분되기도 한다.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유기놋재 황금비
제작과정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기의 재료가 되는 놋재의 비율이다. 구리 한 근에 상납 4냥 반의 구리 78:납 22의 비율로 배합해야 한다. 이는 그러나 현대 금속학적으로는 불가능한 합금 비율이다. 금속학에서 실용기의 비율은 주석의 함유율이 10% 이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유기의 비율은 78:22를 사용하고 있다. 현대 금속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비율대로라면 그릇이 쉽게 무르거나 아름다운 색깔이 나올 수 없는 비율이다. 그러나 우리 유기의 견고함은 반영구적이고 품격 있는 색상과 온화한 정감은 세계 어느 그릇도 따라올 수 없다.
바로 이 황금비율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이 비율이 아니면 메질(망치질)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쇠는 섭씨 1천도가 넘는 불에 달구었다가 찬물에 급랭시키는 담금질을 하면 더 단단해 진다. 그러나 우리 유기는 담금질을 하면 할수록 부드러워진다. 이 것 또한 우리 유기의 신비로움이다. 이 비율로 녹여서 쇳덩이를 만들고 이것을 달구어 쇠망치로 치고 두들기고 넓히고 우그려서 만들어지는 것이 유기제품의 최고품으로 치는 진품 방짜유기인 것이다. 김 유기장에 따르면 주석을 더 넣어서도 안 되지만 적게 넣으면 품질이 나빠진다고 한다. 무조건 방짜가 최고로 좋은 것인 줄 알고 있는데, 방짜라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구리와 상납의 배합 비율이라고 김 유기장은 강조하고 있다.
유기는 조상의 깊은 지혜가 담긴 ‘생명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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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로 |
평생을 유기 하나만 바라보고 산 김선익 유기장이니 유기의 일인자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작업에 임할 때는 진지함과 엄격함 그 자체라는 게 그를 아는 주변의 평이다. 또한 그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전통 그 자체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전통은 신비주의와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김 유기장은 이것을 경계한다. 결국은 전통도 과학이 그 바탕이 돼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유기에는 이렇듯 조상들의 깊은 지혜가 들어있다.
황금비율의 놋재로 만들어진 우리 유기는 쓰임새에 따른 색감과 정감, 음향감도 그렇지만 건강한 삶의 길로 이끄는 생명 존중이 그 바탕이라는 게 김선익 유기장의 설명이다. 한 마디로 조상의 지혜가 담긴 건강한 그릇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김 유기장은 이와 관련해서는 이런 말을 곧잘 한다. “유기 물동이를 쓰면 정수기가 필요 없습니다.” 이 한 마디로 김 유기장은 우리 유기의 ‘건강한 그릇’으로서의 장점을 압축적으로 잘 대변하고 있다. 보온·보냉 효과가 있어 조리 후의 온도를 그대로 유지해주므로 음식의 맛과 깊이를 더해 준다. 또 소량의 미네랄 성분을 방출할뿐더러, 살균기능으로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주고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해준다고 한다. 이와 함께 농약성분 검출기능도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각종 조미료나 농약이 많이 함유된 채소를 장기간 담아둘 경우 그릇의 색깔이 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지난 2003년 11월 KBS 수요기획을 통해 실험으로도 소개된 내용이다. 유기의 또 하나의 장점은 견고함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견고함이다. 물리적으로는 반 영구적이어서 한번 장만하면 깨트리지 않는 이상 대를 물려가며 쓸 수 있다. 이 견고함은 정신적인 것에도 연결된다. 우리 문화와 전통을 대를 이어 물려가는 투철한 장인정신과도 맞물려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