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콜로라도주(州)의 주도인 덴버는 뉴욕이나 LA처럼
국내에 널리 알려진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도로 및 항공 교통의 요지로 유명하다.
요즘엔 프로 스포츠팀의 연고지로 이름이 났다.
덴버라는 지명은 1858년 시 출범 당시 속해 있던 캔자스주의
주지사 이름(제임스 덴버)에서 따왔다.
하지만 덴버 주지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재임 기간 중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덴버는 로키산맥 동쪽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고도 1600m의 고산 도시다.
‘마일 하이(mile-high) 시티’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금강산 꼭대기쯤에 도시가 만들어진 셈이다.
서부 개척시대에는 금광업이 성행해 골드러시의 주요 근거지로도 주목받았다.
물 맑고 공기 깨끗한 산악 도시인만큼 각종 겨울 스포츠 및 클라이밍
시설뿐만 아니라 노인과 환자들을 위한 요양 관련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미국 사회에서 덴버는 ‘깨끗하고 조용한 산속 도시’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렇듯 평온한 덴버를 뜨겁게 달구는 콘텐트는 다름 아닌 스포츠다.
300만 명에 이르는 인구를 바탕으로 미식축구(덴버 브롱코스),
야구(콜로라도 로키스), 아이스하키(콜로라도 에벌랜치),
농구(덴버 너기츠) 등 북미 4대 프로 스포츠팀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미식 축구팀이 지역 스포츠 붐을 주도하는데,
올해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농구팀 너기츠가 창단 이후 최초로 올 시즌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에 진출하며 농구 열풍을 몰고 왔다.
너기츠는 1967년 창단해 1976년 NBA 무대에 합류했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단 한 번도 래리 오브라이언
(NBA 우승 트로피의 별칭)을 품어보지 못했다.
올 시즌은 첫 우승의 호기다.
결승 진출 문턱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은 농구 명가 LA레이커스를
서부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4전 전승으로 제압하며 기세를 높였다.
당초 너기츠를 레이커스의 들러리쯤으로 여기던 미국 언론도
비로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을 정도다.
덴버는 보스턴 셀틱스와 마이애미 히트가 맞붙은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 승자와 우승을 다툰다.
미국 사회의 ‘언더독’인 덴버, 그 덴버의 프로 스포츠 중
‘언더독’인 너기츠에 해 뜰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23, 6,13일 5차전이 끝나고
덴버는 13일(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볼 아레나에서 열린
2022~23 NBA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 5차전에서 마이애미를
94-89로 눌렀다.
이로써 덴버는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마이애미를 누르고
NBA 챔피언에 등극했다.
올 시즌 정규리그를 서부 1위로 마친 덴버는 플레이오프(PO)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4승 1패), 피닉스 선스(4승 2패), LA 레이커스(4승)를
차례로 꺾고 챔프전에 진출했다.
챔피언 결정전에선 동부컨퍼런스에서 ‘8번 시드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마이애미와 맞붙었다.
덴버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일격을 당했지만 이후 원정 2연전 포함,
연속 3연승을 거두면서 이날 안방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67년 아메리칸농구협회(ABA) 소속팀으로 창단한 뒤
1976년부터 NBA에서 경쟁한 덴버는 올 시즌에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데 이어 내친김에 구단 역사상 첫 우승까지 이뤘다.
LA클리퍼스와 함께 1980년 이전에 창단한 NBA 팀 중 챔프전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두 팀 중 하나였던 덴버는
이로써 그동안 우승을 이루지 못한 한을 풀었다.
로키산맥 자락에 있는 고지대인 콜로라도주를 연고로 하는 덴버는
그동안 데이비드 톰슨, 알렉스 잉글리시, 디켐버 무톰보 등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카멜로 앤서니(2003~2011), 앨런 아이버슨(2006~2008) 등도 덴버에서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시즌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만년 약체 이미지가 강했던 덴버는 2015~16시즌 세르비아에서 온
한 선수가 들어오면서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특급 센터 요키치였다.
처음 요키치가 NBA에 발을 들였을 때 그를 주목한 이는 별로 없었다.
211cm이라는 키는 센터로서 평범한 수준이었고
운동능력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1순위로 간신히 덴버에 뽑혔다.
하지만 요키치는 NBA 무대를 밟자마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데뷔 시즌부터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찬 그는 괴물 같은 운동능력은 없었지만
놀라운 야투 정확도와 신들린듯한 패스 능력으로 NBA를 발칵 뒤집었다.
프로 3년 차인 2017~18시즌 처음으로 경기당 리바운드 10개를 넘어선데 이어
다음 2018~19시즌에는 처음으로 평균 득점 20점(20.1점)을 돌파했다.
센터임에도 웬만한 주전 포인트가드 만큼이나 어시스트를 기록했따.
2020~21시즌(26.4점 10.8리바운드 8.3어시스트)과 2021~22시즌(27.1점
13.8리바운드 7.9어시스트)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요키치는
이번 시즌 3년 연속 정규시즌 MVP는 놓쳤지만
생애 첫 챔프전 우승을 일궈내며 최고의 시즌을 보탰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69경기에 출전해 평균 24.5점 11.8리바운드
9.8어시스트의 ‘시즌 트리플더블’ 활약을 펼친 요키치는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챔프전 5경기에서 평균 30.2점, 14리바운드, 7.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1승 1패로 맞선 3차전에서는 32점 21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올려
챔프전에서 30점-20리바운드-10어시스트를 돌파한 사상 첫 선수가 되기도 했다.
이날 5차전에서도 요키치는 양 팀 최다인 28득점에 16리바운드로
코트를 지배했다.
요키치는 챔프전이 끝나고 실시된 MVP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생애 첫 파이널 MVP를 거머쥐었다.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승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요키치는
담담하게 상대 팀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요키치는 MVP에 선정된 뒤 인터뷰에서 “해야 할 일이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싱거운 소감을 전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냈다.
2013년 새크라멘토 킹스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 데뷔한 뒤
2015년부터 덴버를 이끈 마이클 멀론 감독도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사상 첫 8번 시드 우승 기적을 노렸던 마이애미는
통산 4번째 우승 도전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마이애미는 르브론 제임스(레이커스)가 뛰던 2011~12시즌과
2012~13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에 오른 뒤로는
3차례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