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드라마 중에 '미월전'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보는 것을 초반에 몇 번 같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부터 끝까지 다 시청한 중국 드라마 '후궁 견환전'의 주연을 맡은 중국 배우 손려가 이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아서 조금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와는 다른 무리한 설정이 많이 보였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 왕의 딸로 태어난 미월이 진나라의 혜문왕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은 후, 그 아들이 왕이 되자 섭정이 되어 진나라를 훌륭하게 통치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월이라는 이름은 사기열전에는 나오지 않고, 단지 미팔자(芈八子)라고 나오는 데, 팔자는 진나라 후궁의 여러 품계 중의 하나인데 중간 쯤에 위치하는 품계라고합니다.
진 무왕이 주나라에 가서 구정(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세 발 달린 아홉개의 무거운 솥)을 들다가 무릎 뼈가 부러져 죽게 되자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무왕은 젊은 나이에 죽어 아직 아들이 없어서, 무왕의 이복 동생들이 서로 경쟁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영직(진나라 왕실의 성은 영씨입니다.)은 미팔자의 아들로 어머니의 지위가 높지 않아 원래는 왕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나, 미팔자의 동생인 위염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어서, 위염의 강력한 추천으로 영직이 왕으로 즉위하여 소양왕(보통 소왕이라고 통칭)이 됩니다. 소양왕이 아직 나이가 어려 어머니 미팔자는 선태후가 되어 섭정하게 되고, 위염은 상국이 되어 국정을 도맡게 됩니다.
선태후에게는 남동생이 둘이 있는데, 아버지가 다른 큰 동생인 위염과 아버지가 같은 작은 동생인 미융이 있다고 했습니다. 책이나 유튜브 방송에서는 별 언급없이 지나가는데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염이 이부동모제(異父同母弟)이고, 미융은 동부동모제(同父同母弟)라면 괴이한 일입니다. 선태후의 어머니는 선태후를 낳은 후에 위씨 남자와 바람을 피웠던지 재혼을 해서 위염을 낳았는 데, 다시 선태후의 아버지에게 돌아와서 작은 동생 미융을 낳았다는 소리이니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미융이 어머니가 다른 동생이라면 선태후의 아버지가 첩에게서 낳은 아들로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럴수는 있겠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팔자가 진나라에 와서 혜문왕의 후궁이 되었을 때, 위염과 미융도 초나라를 떠나 모두 진나라에 와서 정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양왕 때 위염은 양후라는 봉호를 받았고, 미융은 화양군으로 봉해졌습니다. 또 소양왕의 동복 동생인 선태후의 또 다른 아들들도 고릉군과 경양군으로 봉호를 받게 됩니다. 이 들 중에 양후 위염이 제일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양왕이 즉위하고 위염이 상국으로 국정을 도맡게 되자, 위염의 영도하에 진은 초, 한, 위, 제, 조나라를 쳐서 진의 영토가 최대한으로 확장되게 됩니다. 특히 위염이 백기를 천거하여 장군으로 삼아 6국을 공격하게 했는데, 백기는 수십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병사들을 100만명에서 200만명까지 죽여서 그야말로 전쟁의 신이자 인간 도살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라마 '미월전'에서는 위염과 백기가 의형제로 나온다고 합니다. 위염의 국정방침은 6국과 전쟁해서 영토를 넓히는 것이어서 나라를 가리지 않고 여러 나라와 계속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백기의 활약으로 거의 모든 전쟁에서 진이 승리하게 됩니다.
위염이 수십년 동안 국정을 맡아 진나라를 통치하게 되자 위염은 왕을 무시하고 자기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일이 많아지고, 위염의 재산은 왕실보다도 많게 됩니다. 소양왕은 어머니 선태후와 위염의 권위에 위축되어 사실상 왕권을 상실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위염이 왕위를 찬탈할 의도가 있지는 않았지만 소왕은 언제나 위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위염뿐만 아니라 화양군, 고릉군, 경양군까지 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더구나 양후 위염이 자신의 봉지를 넓히기 위해 진나라와 멀리 떨어진 제나라를 쳐들어가자, 위나라 사람 범저가 소왕에게 유세해서 선태후가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일, 위염이 제후들에게 멋대로 권세를 부리고 있는 일, 경양군, 고릉군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일 등을 거론하고, 또 위염이 진나라에서 먼 제나라를 쳐들어가는 것을 비판하고 그 유명한 원교근공(遠交近攻)책을 제안합니다. 이에 결단을 내린 소왕은 위염을 상국에서 물러나게 하고 위염이나 경양군들의 무리들을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위염이 함곡관 밖으로 나갔을 때, 재산을 실어 나르는 수레가 천 대가 넘었다고 합니다. 양후 위염은 자신의 영지인 도 땅에서 죽었으며 그 땅에 묻혔는 데 진나라는 도 땅을 다시 거두어 들여 군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위염은 진이 중국통일로 가는 여정에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입니다.위염이 국정을 맡은 동안에 진의 국력은 더욱 막강해져서 앞으로 진이 중국을 통일할 굳건한 토대가 세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