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농민약국에 근무하는 정옥란 약사님의 부탁으로 농민약국 정기간행물 '건강한 사람들' 100호에 기고했던 우리동네 정읍자랑 이야기를 카페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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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자랑]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곳
정읍중학교 교사 박래철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50여 년 동안 정읍에 나서 자라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나에게는 8할이 ‘정읍’이라는 특별한 공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나이가 들기 전에는 고향의 소중함을 잘 모르다가 중년이 지나서야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난 행운아인 것 같다. 태어난 곳에 그대로 남아 지금껏 살아왔으니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정읍이라는 소도시를 벗어나 큰 도시에 나가 살아도 난 정읍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지역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남보다 더 간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정읍의 토박이 원주민으로서 그리고 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정읍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문화를 중심으로 자랑 질을 해본다.
‘샘고을’이라고 풀이되는 정읍(井邑),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처럼 역사와 문화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곳, 우리나라 민족민주화 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으며 증산교, 보천교 등 민족 종교가 태어난 곳이 정읍이다. 그래서 시인 김지하는 정읍을 ‘우주의 단전, 한반도의 배꼽’이라 하지 않았던가? 면적은 서울시와 비슷하고 인구는 12만 정도를 보유하였으니 아주 여유 있는(?) 인구밀도를 보인다하겠다. 인구규모로만 보면 도시공학자들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도시인구 10만에 근접한 규모이다. 거기에 이른바 도·농 복합형 도시로서 도시와 농촌이 서로 상생하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보아도 동쪽은 산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고 서쪽은 너른 들판이 펼쳐져있어 풍경이 단조롭지 않아 좋다. 거기에 바다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기름진 토양에서는 쌀을 비롯하여 다양한 밭작물이 생산되고 한우를 중심으로 질 좋은 축산물이 공급되는 풍요로운 고장이다. 일자리 부족으로 여느 소도시처럼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긴 하지만 정읍이 좋다고 또 찾아오는 귀촌·귀농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정읍이 주변의 고부, 태인 지역을 합해서 하나의 생활권으로 살아온 지 100년이 되는 해, 호남선 철로가 놓여서 정읍역의 혜택을 받아온 지 또 100년이 되는 해,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이 들불처럼 번져 우리나라 민족 민주화 운동에 물꼬를 튼 지 120년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또한 정읍의 전통시장인 ‘샘골시장’이 근대시장으로 등록된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도 한다.
정읍의 세 가지 자랑거리라고 하면 내장산의 단풍, 동학농민혁명의 성지, 백제가요 정읍사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난 내장산을 자랑해본다. 정읍시민이면 언제든 맘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국립공원 내장산, 가을의 불붙는 단풍을 보기위해 전국의 탐방객이 붐비는 가을엔 정작 정읍 사람들은 가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겨울의 설경과 봄철의 신록이 가을의 단풍 못지않은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며 찾는 이의 맘을 설레게 한다. 삭막한 겨울에는 모름지기 눈이 내려야 낭만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읍은 노령산맥을 끼고 북서풍이 부딪히며 눈이 자주 내리는 다설 지역이다. 아이들은 눈이 내리면 어디서든 눈싸움과 눈썰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다행히 이곳은 남부지방인지라 쌓인 눈이 쉬이 녹기 때문에 교통의 불편을 심하게 겪지는 않는다. 내장산의 이름은 보물을 감출 수 있는 산이란 뜻인데, 내장산은 한때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있었던 조선왕조실록을 정읍의 선비들이 내장산으로 옮겨 1년 넘게 지켜냈던 곳이니까. 또한 내장산에서 발원하는 동진강의 지류인 정읍천은 정읍 시내를 관통하며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여름철이면 언제든 무료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물놀이장 시설도 이곳에 갖추어져있다. 예전엔 아무데서나 멱을 감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아가는 정읍 사람들은 낮선 사람들에게 쉬이 맘을 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남들이 말하지만 한번 정을 주면 속을 다 내주고 싶어 하는 게 또한 정읍 사람들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몸을 던지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었다. 예컨대 정읍농민회가 지금껏 가열 찬 투쟁의 길을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면 역시 정읍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의 후예로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과 정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정읍에서 사는 것이 나에겐 하루하루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