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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 영 While We're Young> |
솔네스: 요새 젊은이들을 보면 어찌나 거북한지!
힐데: 네? 젊은이들이요?
솔네스: 하도 화를 돋워서 맘의 문을 걸어 잠근다오. 와서 문 두드리고 들어오려 할까 두렵소.
힐데: 차라리 문을 열고 들여보내 주세요.
솔네스: 문을 열라고?
청춘을 응원하고 뉴욕을 사랑하는 감독 노아 바움백의 2014년 영화 <위아 영>은 검은 화면에 입센의 작품 《건축가 솔네스》(1892)에서 인용한 대화를 자막으로 내보내면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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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라고?”
문을 열라고요? 대건축가 솔네스가 되물었던 것처럼, <위아영>의 주인공 조쉬(벤 스틸러)도 처음엔 그렇게 눈을 땡그랗게 떴을 것 같습니다. 조쉬는 8년 전 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아직도 붙들고 있는, 한때 이름을 날렸고 어쩌면 10년째 기대주인, 그러다가 덜컥 40대가 되어버린 영화감독입니다. 전형적인 ‘요새 젊은이들’인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 부부가 그의 강연을 청강하러 왔다가 조쉬와 코넬리아(나오미 왓츠) 부부에게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했어요. 물론, 요새 젊은이들답게 조쉬와 코넬리아는 매번 식사비를 지불하겠다는 조쉬를 단 한 번도 말리지 않습니다. 붙임성이 좋아 조쉬를 늘 “헤이, 요쉬!!”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제이미는 스물다섯 살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희귀본이 되어버린 조쉬의 작품을 ‘이베이’에서 60달러에 주문해서 사보았다고, 제이미는 말했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 조쉬가 8년째 작품을 못 내놓고 있는 반면, 제이미는 하룻밤 꼬박 새고 난 후 이틀 만에 완성한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는 거겠지만요.
‘어? 어라?’ ‘얘들 뭐지?!’ 조쉬와 코넬리아는 처음 제이미와 다비를 만났을 때 이런 눈빛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둘은 곧 제이미와 다비에게 문을 열게 됩니다. 굳이 따지자면 ‘90년대생’인 제이미와 다비는 그렇게 해서 중년의 조쉬와 코넬리아에게 스며들었어요. 조쉬는 제이미처럼 페도라를 쓴 ‘힙스터’가 되어 자전거를 타고요(그러다가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죠). 코넬리아는 다비를 따라 힙합 댄스를 추며 희열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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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예술과 ‘윤리’
10년째 지지부진한 작업과 아기를 갖는 일에 대한 부담과 실패로 돌파구가 필요했던 두 사람에게 제이미와 다비는 신선한 자극과 활력이 되어주었습니다. 협업을 좋아하지 않는 조쉬였지만 전에 없이 제이미의 작업을 돕겠다고 직접 나섰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나선 일에서 조쉬는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합니다. 힙합과 목공이나 패션 취향은 적당히 따라갈 수 있었지만, 예술을 기만하는 제이미와 다비의 거짓은 참아주기 힘든 부도덕한 것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진실성이 생명인 다큐멘터리를 조작하다니요.
제이미가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고교 동창 ‘켄트’는 알고 보니 다비의 지인이었고, 난소암으로 돌아가신 것은 제이미 모친이 아니라 다비의 어머니였어요.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수시로 줌인을 사용하는 것도 못마땅했는데요. 코넬리아의 아버지 레슬리(찰스 그로딘)를 만나기 위해 제이미 커플이 의도적으로 코넬리아와 조쉬에게 접근한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 들었어요. 레슬리는 다큐멘터리계의 거장으로, 회고전이 열릴 만큼 존경받는 감독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무능력하고 고집만 센 사위 조쉬와는 등을 지고 있는 상태였죠.
조쉬는 곧 제이미가 자신을 징검다리 삼아 레슬리의 마음을 사고 예술적으로도 그의 지지를 얻는 것을 참담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예술가의 양심도 저버릴 수 있는 거냐고,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은 어디로 간 거냐고 따지는 조쉬에게 제이미는 당신도 성공이 목표 아닌가 묻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요. 심지어 제이미는 그 순간에도 흥분해서 날뛰는 조쉬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이미의 거짓을 폭로하는 조쉬에게 노장 레슬리는 시대는 변하고 그에 따라 가치도 변한다고, 뜻밖에 제이미를 옹호하고 말아요. 젊은 투자자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 ‘사실’이 잘못된 것이 있냐고 되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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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낀세대’의 애매한 좌절을 나서는 문
영화 <위아 영>에는 이처럼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등장합니다. 지난 세대의 거장 60-70대 레슬리와 현재 명성을 이어가려고 분투하는 40대 조쉬, 그리고 신예인 20대 제이미입니다. 흥미롭게도, 레슬리와 제이미는 의외로 쉽게 ‘같은 편’이 되어 의기투합을 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제이미는 굳이 레슬리를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고, 레슬리 또한 자신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점을 재빨리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비난하고 지적하기보다 그들의 존경을 받으며 전설로 남는 길을 선택했다고나 할까요.
조쉬로 말하자면, 좀 다른 방법으로 존재감을 찾으려 했겠지요. 레슬리 시대의 진정성과 윤리를 지키면서도 제이미와 다비의 젊은 감성으로 충전되고 싶었을 겁니다. 사회학자 김호기 선생은 한 칼럼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40대를 ‘낀낀세대’라고 불렀습니다. 이 ‘낀낀’에는 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놓인, 앞뒤가 다 막혀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그는 덧붙였어요. 86세대의 ‘정의감’과 2030세대의 개인주의적 감성을 모두 지닌 세대라고 정리해도 좋을까요? 하지만 아직은 적당한 출구를 찾지 못한 세대 말이죠.
조쉬와 코넬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낀낀세대’입니다. 영화 말미에 조쉬는 코넬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마흔 넷이야. 못 할 일도 있고, 못 가질 것들도 있는 나이. ‘세상엔 못할 게 없다’의 반대말이 뭘까?”
영화 <위아 영>은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 신세대 예술가와 ‘이미 다 해낸’ 노장 예술가 사이에서, 아기 대신 고양이를 기르는 세대와 아기를 낳아보아야만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믿는 세대 사이에서, 제3의 선택을 향해 떠나는 어정쩡하게 ‘영young’한 예술가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조쉬의 말대로라면 못 할 일도 있지만 못 가질 것들도 있어서, 못 가질 것을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결국 ‘요새 젊은이’들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는 대신 스스로 문이 되기로 결심했군요. 그들의 선택을 응원합니다.
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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