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日偶吟(하일우음)
남병철(南秉哲:1817~1863)
본관은 의령. 자는 자명(子명)·원명(元明).
호는 규제(圭齋)·강설(絳)·구당(鷗堂)·계당(桂堂).
천문학자이며 수학에도 조예가 깊어 수륜지구의(水輪地球儀)와
사시의(四時儀)를 제작하였다.
1851년(철종 2)에 승지가 되고 이어서 예조판서·대제학에 올랐으며,
철종의 총애를 받았다.
안동 김씨의 세종정치에 분개하였으며, 나중에 글씨와 그림 및 성색(聲色)으로
소일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해경세초해(海鏡細草解)』·『의기집설(儀器輯說)』·『성요』·『추보속해』·『규제유고(圭齋遺稿)』가 있다.
빗소리에 종일토록 사립문을 걸어두고
雨聲終日掩柴門 우성종일엄시문
물이 할퀴고 간 섬돌 뜨락에 풀이 뿌리를 드러내었네
水齧階庭草露根 수설계정초로근
뜰이야, 가까운 시일에 다시 손보면 되고
園事近來修幾許 원사근래수기허
앵두나무에 붉은 열매 맺히고 대나무는 손주(죽순)를 보았네
櫻桃結子竹生孫 앵도결자죽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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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릴 것 같으면서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분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신물이 나서
정계를 은퇴하고
글씨와 그림과 노래와 여색으로
풍류자적하면서 자조하면서
당시의 조선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연민했던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 누가 오겠는가
비는 핑계요.
세도가들과 날을 세운 그에게
더구다나 끈 떨어진 연(鳶)과 같은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오리도 없다
온종일 문을 닫아걸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빗소리를 듣는다
저 빗소리도 친구처럼 반가울 때가 있다
어느새 비가 많이 내려서
빗물이 땅을 파먹으면서 지나가는 자리에는
풀들이 뿌리를 드러내놓고 있다
정원이 엉망이 돼도
인간사에 비하면 대수인가!
날이 개면 손보면 되지만
사람에게 상처받은 그에게
누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인가?
비 온 뒤에 죽순이던가!
앵두는 연신 붉은 열매를 내밀고
대나무는 연신 손주보기 바쁘다
사내 살림살이 이만하면 부족할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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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오늘 7.7일
막둥이 반려견 '누리' 생일이다.
2016년 10월 중순
서울 앰버서더호텔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딸내미와 함께 갔다가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기에
누님이 살고 계시는 부천 중동에 갔다
현대백화점 건너편
대형 애견샾이 있었다
많은 강아지들이 유리장 속에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유독 ‘누리’는 꼬리를 흔들고
유리장을 긁어대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누구에게나 그러겠지.’ 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다른 사람들이 오면
조용히 있었다.
내가 가면 또 꼬리를 흔들고
데려가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데리고 왔다.
지금 집에 서열 1위가 '누리'다
간식 달라고 손으로
누워있는 나의 머리를 툭툭 친다.
이종(異種) 부녀지간이지만
같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싸울 일도 없고
누가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랴
사랑하는 막둥이
늘, 건강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