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레이션에 얽힌 기억/ 이영성

강원도 최전방의 군사도시에서 자란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온통 짙은 녹색으로 가득하다. 당시 내가 살던 동리는 주민들의 숫자보다도 군인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군인들이 사용하던 모든 물품이나 장비, 시설의 색깔 모두가 국방색이라 불리던 짙은 녹색이었다. 즉 군인들의 옷, 철모, 비옷, 담요가 모두 짙은 녹색이었으며, 비행기나 탱크, 각종 차량의 색깔 모두가 짙은 녹색이었다. 그리고 외부로 노출된 군 시설물 역시 짙은 녹색의 위장망으로 씌웠으니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짙은 녹색이었던 것이다.
내가 살던 마을 머잖은 곳에 미군부대가 있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간이비행장에 있는 미군부대를 캠프(CAMP)라고 불렀다. 마을에는 캠프에 근무하는 한국인 군속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흘러나온 미군의 레이션은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최고급 식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 마을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오면 레이션으로 접대를 하곤 했다. 어디 그뿐일까? 가난하기 짝이 없었던 마을사람들은 나무로 짠 레이션 박스를 찬장으로 쓰기도 했고, 커다란 레이션 캔(깡통)을 그릇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마을 인근의 미군 간이비행장에는 콘세트건물(야전막사) 여러 동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건물 앞에는 항상 큰 개 두 마리가 줄에 묶여 있어 사람들만 지나가면 마냥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로는 그 건물이 미군부대의 식량창고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철조망으로 둘러친 울타리를 끊고 그 창고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들이 점검해 본 결과 비싼 물건은 손도 대지 않은 채 별로 값이 나가지 않는 레이션박스 몇 개만 없어졌다고 한다. 미군들은 그것을 의심할 바 없는 동리사람들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군 엠피(MP/헌병)들이 지프를 타고 자주 콘세트건물 주변을 순찰하곤 했다. 당시는 사람들이 굶기를 밥 먹듯 했던 때이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었다.
레이션(Ration)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때 미군들에게 지급되던 전투식량으로 절인 쇠고기를 비롯하여 비스킷, 초콜릿, 잼, 캐러멜, 껌 등의 온갖 식품이 들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A-레이션은 취사도구가 있어야 조리를 할 수 있는 전투식량이며, B-레이션은 미트볼이나 미트스튜 등의 통조림을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후방에 있는 지원부대의 보급품이었다. 반면에 C-레이션은 작전 중인 병사들이 야전에서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인스턴트전투식량을 말한다.
C-레이션은 베개만한 국방색 은박지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 봉지 속에는 병사들이 야전에서 한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각종 식품이 들어 있었다. 레이션 봉지를 뜯으면 역시 짙은 녹색의 작은 캔 서너 개와 작은 은박지봉지가 쏟아져 나왔다. 납작한 캔의 뚜껑에는 T자형의 고리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고리 가운데에 있는 홈에 테두리의 돌출부분을 끼워 힘주어 돌리면 뚜껑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C-레이션의 내용물 가운데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초콜릿과 비스킷, 캔디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반면에 1회용 커피는 설탕이 혼합되어 있어 달착지근하지만 커피의 쓰디쓴 맛 때문에 별로 환영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지금도 짙은 녹색을 보면 불현듯 부끄러운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전부터 뜻도 모른 채 입에 익힌 외국어는 ‘기브 미 쪼꼬렛!’이라는 말이었다. 또한 내가 어릴 때 동요를 배우기도 전에 익힌 노래가 있었으니 ‘쉘 비 드링킹 코카콜라 웬 쉬 캄. 쉘 비 드링킹 코카콜라 웬 쉬 캄. 쉘 비 드링킹 코카콜라 웬 쉬 캄. 잇 비 야 야 야...’로 이어지는 노래였다. 미군들은 행진을 하거나 여럿이 모여 쉴 때면 손뼉을 치며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나는 아직도 그 가사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다만 짐작컨대 양키문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코카콜라의 CM송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내가 어렸을 땐 마을 주변에서 미군들의 기동훈련이 잦은 편이었다. 그 땐 미군들이 완전무장한 채 훈련을 하곤 했다. 나는 동리 친구들과 함께 제무시(GMC)라는 미군 차량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신작로를 달리면 그 뒤를 따라가며 “기브 미 쪼꼬렛!”이나 “싸아진 원더풀!‘을 외치곤 했다. 그러면 트럭 뒤에 타고 있던 미군들이 건빵이나 초콜릿을 던져주기도 했고 심지어 담배를 던져 주는 병사도 없지 않았다. 싸아진이 상사 계급을 뜻하는 말인 줄은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 미군이 던진 납작한 잼 캔에 맞아 이마가 찢긴 아이들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것이 내가 어릴 때 가난했던 우리의 초상이었던 것이다.
미군들의 기동훈련장에는 탱크나 대포 등 볼거리가 참으로 많았다. 특히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펴고 떨어지는 미군들의 고공낙하훈련은 그 어떤 구경거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나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미군들의 낙하훈련을 보기 위해 기동훈련장을 찾았다. 그런데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살갗이 흰 미군병사가 우리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다른 아이들은 잽싸게 달아났건만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나는 그만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 그 미군병사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번쩍 안아다가 탱크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무서워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 미군들 앞에서 동요 몇 곡을 부르고 C-레이션 한 봉지를 얻어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께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매를 맞아야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C-레이션 봉지를 뜯었을 때 보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 있었으니 물소독제가 들어 있는 노란색의 약병이었다. 물소독약은 병사들이 야전에서 전투 중 식수가 없을 때 수통에 아무 물이나 가득 채운 뒤 정제 한두 알을 넣고 흔들어 마실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정화제였다. 엄지손가락만한 약병을 따면 마개 밑에 조그만 솜뭉치가 있고 그 밑에 하얀색의 정제 열댓 개가 들어있었다. 이 노란색의 약병은 C-레이션 봉지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 숟가락과 함께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할 때 장난감으로 쓰이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버려진 약병을 열심히 주워 모으곤 했다. 비록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마땅한 장난감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앙증맞은 약병은 유리구슬 못잖은 좋은 장난감이었다.
내가 다시 C-레이션과 같은 전투식량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군에 복무할 때였다. 내가 근무했던 수도경비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3박4일간의 유격훈련을 실시했다. 그때 훈련 마지막 날 부대에서 병사들에게 은박지로 만든 국방색 봉지 하나씩을 지급했는데 그 것이 바로 국산 전투식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용물을 보니 어릴 때 먹던 C-레이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속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수프와 짭조름한 크레커, 그리고 별처럼 생긴 사탕이 들어 있었다. 그 거친 국산 전투식량을 먹으며 어릴 때 먹었던 C-레이션의 맛을 떠올렸음은 당연한 일이다.
C-레이션은 본시 군인들의 전투식량인데 무슨 특별한 맛이 있었을 것인가. 하기야 미군들조차 기동훈련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던 식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초콜릿, 캐러멜, 잼 등 혀끝에 감기던 어릴 때의 C-레이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기분이 좋을 때면 어릴 때 즐겨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쉘 비 드링킹 콜카콜라 웬 쉬 캄, 쉘 비 드링킹 코카콜라 웬 쉬 캄......”
어쨌거나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짙은 녹색으로 가득하다. 나는 앞으로 국방색이라 불리는 짙은 녹색을 대할 때마다 어릴 때 먹었던 미군의 전투식량 C-레이션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