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폼페이우스 시대(BC78 ∼ BC63)
세상사 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런 광풍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 체제가 외부
나 적도 아닌 자기 편이었던 세력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이다. ‘술라’가 죽은 후 “낡은 가죽부대
”라고 여겨지던 로마 共和政 체제가 여기 저기 구멍이 났는데 이 구멍을 뚫은 것이 자기 편
(보수진영)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민중파”는 ‘술라’에게 철저히 숙청당해 변변한 인물이 없었다. ‘카이사르’는 너무 젊었고
‘레피두스’가 반란을 꾀했다가 ‘폼페이우스’에게 패해 망명했다가 죽었으며 그의 副將인 ‘부르
투스’가 잡혀 죽었는데 이 사람의 7살난 아들이 나중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이고 그의
젊은 과부 어머니는 ‘카이사르’의 제2의 연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버지 ‘부르투스’는
“민중파(民衆派)”에 속했고 같은 계열인 ‘카이사르’가 독재자가 될 것을 염려해서 아들 ‘부르투
스’는 암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
그런데 BC73년 로마의 안마당인 반도 안에서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던 검투사/ 노예의 반란인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반란이 일어났다. 나라 안팎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이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수 많은 영화와 소설로 각색되어 소개된 바 있다. 그 유명한 로마군+노예+검투
사+귀족들의 문제이니 딱 맞는 소재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볼 때 찬란한 문명, 철학, 종교, 지식, 교양 등등 여러 면에서 훌륭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별 문제의식이 없이 살았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심지
어 Jesus Christ도 “신 앞에 평등하다.”고 했지만 그 ‘神’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평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중세 기독교 문명도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았고 “기독교도의 노예화를 금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2차대전시 유대교도를 강제수용소에 가두는 것이 기독교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는 논리도 있다. 그 말은 기독교 측에서 유대교도를 차별화했
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로마인들은 노예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는 者」라고 했다. 따라서 노예는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가 없었다. ※ 누구는 노예가 되고 싶어 되었나? 전쟁에 패하면 노예가
되는 게 흔한 일이거늘..
『스파르타쿠스(Spartacus)』라는 검투사 노예가 반란 주모자로 나오는 영화를 고등학교 때
보고 감동받았다. 탈출에 실패해서 모두 죽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했었다. 최근에도 TV에서
재방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16년생의 ‘커크 더글러스’라는 명배우가 출연한 최고 대작
중의 하나다. 영화에는 이 노예검투사가 ‘인간의 존엄성’을 내걸고 반란의 leader로 나섰다가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는 트라키아 (※지금의 터키 유럽부분과 그리스의 북동부 지역) 출신이
다.
70여명의 탈주 검투사에서 시작한 병력은 7만명이 넘게 불어났고 이들을 우습게 생각했던
로마 정부군은 여러 차례 박살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든 이런 집단이든 지휘계통에서 엇
박자가 나는 일이다. 두목 ‘스파르타쿠스’는 알프스를 넘어 고향으로 가는 것이 당초의 목적이
었는데 갈리아 출신 부두목 ‘크릭수스’는 물산이 풍부한 남쪽을 약탈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BC72년 로마 군의 전면공격으로 ‘크릭수스’ 무리(병력을 나누었음.)는 전사했고 ‘스파르타쿠스
’는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北上했다 (크로아 티아와 마주보는 곳). 로마
군 4개군단을 격파하고 거의 국경선에 다다라 넘어 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척박한 고향 북쪽
보다 비옥한 남쪽 “시칠리아” 를 점령 해서 “딴 살림” 차리자는 부하들의 주장에 넘어가 도로
남하했으나 빈민, 노예를 빼고는 노예반란군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를 격파할 책임은 8개군단
5만명을 지휘하는 ‘크라수스’였다.
‘크라수스’는 전투책임자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경쟁자 ‘폼페이우스’가 에스파냐에서 7년간
골치를 썩인 반란군(반 술라파)을 처리하고 돌아온 상태라 기를 쓰고 전투를 벌여 노예반란군
을 격파했다. 해적들과 미리 협상해서 배를 타고 도주 하려던 반란군의 계획이 잘못되어 로마
군에게 전멸했다.
대부분 전사하고 포로 6천명은 십자가형(당시에는 최고로 악독한 형벌)에 처해져 아피아街道
수km에 세워졌다고 한다. 시체 속에서 ‘스파르타쿠스’를 찾지 못했다는 걸 보면 달아났을
확률이 높다.(※영화에서는 잡혀서 십자가 형에 처함)
‘Sullah’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보수적인 원로원 위주의 법체계를 수립하고 반대 파를 숙청했
다 해도 그런 식이면 원한이 남고 그 후유증은 심각하고 분열을 초래 할 수밖에 없다. BC75년
지성이 있는 집정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아우렐리우스 일족)가 적절한 입법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을 어느 정도 풀었다. 이때 혜택을 입은 사람 중 하나가 25살의 ‘율리
우스 카이사르’였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술라 체제”는 ‘술라’가 죽은 지 3년도 안 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행태는 세계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일이다. ‘술라’의 보수적 연공서열제도에 의한 “원로원
강화방안”에 의하면 42세가 되어야 집정관 후보가 될 수 있는데 그 절차를 깨고 특례를 요구
한 인물이 “술라파”의 진골이라고 할 ‘폼페이우스’이었다(당시 35세).
재미있는 것은 이를 질투한 ‘크라수스’도 집정관이 되겠다고 나섰는데 그는 나이도 43살이고
필요한 절차를 두루 거쳐서 문제가 없었으나 인망이 없었다. 원로원 계급에 금지된 경제활동
에 많이 관여했고 대대로 부자이면서 ‘술라’가 숙청해서 뺏은 재산들을 헐값에 경매로 사들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 오래 전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국회의장까지 지내고 명망있는 "윤"씨
집안 사람인 그가 돈도 풍족하게 있으면서 속칭 "벌집"을 이용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세를
거두어들였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다. 그도 철면피 급이다.)
웃기는 것은 로마에 불이 나면 소방관보다 ‘크라수스’의 부하가 먼저 달려가 소방관에게 돈을
주고 불 끄는 것을 늦춘 뒤 불타는 집주인과 매매교섭을 해서 헐값에 사들이고 나면 불을
끄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진짜일까? 또 사들인 집들을 제대로 지어서 주택정책에 이바지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의 “벌집”이라고 부르는 싸구려 집을 만들어 세를 주는 그런 인간이었다
고 한다.
하여튼 이 둘이 협잡을 해서 집정관이 되고 해적 소탕을 계기로 전폭적인 특권을 ‘폼페이우스’
에게 부여함으로써 ‘술라’체계는 짧은 세월이 지나 종말을 고했다. 제 3권의 스타는 여럿이지
만 그 중에 ‘폼페이우스’가 확 눈에 띈다. 그는 BC63년 소위 오리엔트를 평정함으로써 로마가
에스파냐, 프랑스 남부, 북아프리카 (이집트 제외), 그리스/발칸반도를 속주나 동맹국으로
휘하에 두고 그 당시 아시아라고 하는 지금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일부 등을 평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쟁의 스타이기는 하다.
페르시아의 후예인 파르티아(※Parthia, BC247∼AD226, 약 500년간 지금의 이라크 와 이란을
망라하는 大제국을 세워 中近東의 최강을 자랑했다. 중국에서는 이를 안식국/安息國이라고
불렀다. ) 와는 유프라테스(Euphrates) 강을 경계로 대치 하고 있었다.
로마가 파르티아를 제대로 이긴 적은 없지만 파르티아도 로마와 경쟁하느라 국력이 피폐해
져서 결국 사산朝 페르시아/Sassanian Persia에게 나라가 넘어갔다. 고대 페르시아가 ‘알렉산
더’에게 패망한 뒤 변변한 강국이 없다가 파르티아가 나오고 뒤이어 AD226년에 “사산朝 페르
시아”가 성립되어 강국의 위세를 이어간 셈이다. 사산/Sassan은 창건자의 할아버지 이름이다.)
동방의 폰투스 왕국, 아르메니아 및 흑해 남부의 왕국들이 “로마의 간교한 술책” 에 의해 무릎
을 꿇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아무리 병력이 우세해도 로마와 붙어서
는 이기지 못했고 특히 ‘폼페이우스’에게 판판이 깨지고는 했다. (전략, 전술, 보급 체계, 전투
력 모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런 뛰어난 업적과 능력으로 ‘폼페이우스’는 로마에서 “하나의 인물”, “위대한 개인”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평가 받았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하나의 위대한 인물”은 다른
사람 ‘카이사르/시저’였다. 이 3권의 제목 “승자의 혼미”는 강적 카르타고를 멸망 시키고 점점
커가는 帝國 로마가 “내장”과 “몸뚱이”가 서로 어울리게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는 뜻
이다.
첫댓글 중학교 때 단체 관람으로 스파르타쿠스를 보았는데 여주인공 역의 진 시몬즈가 어찌 예쁘던지...그 영화 출연했을 때 나이가 30대 초반, 참 예뻤다.
언제나 영화는 신나고 재미있게 꾸며야지. 참 그 시절에는 70mm의 어마어마한 영화가 참 많았었지. 촌 놈이 서울에 와서 그렇게 큰 영화를 봤고 영화광이었던 소생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지.
춘천도 촌인가? 삼척 정도는 되어야 촌이지. 삼척 사투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가끔 놀림 받았는데 1981년 말에 주재원으로 미국에 오니 영어가 시원치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네. 한 살, 세 살에 미국에 온 두 딸은 초급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보모 자식 간에 의사 소통은 문제가 없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사위들 그리고 외손자, 외손녀와는 영어로 소통하니 좀 불편하다네. 그동안 영화를 모아둔 게 1600편 정도 되는데, 오늘 저녁에는 스파르타쿠스나 또 봐야 하겠네. 모아둔 영화 다 보고 죽으려면 300살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다 못 보고 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