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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영주
관심
백두대간을 걷다⑧-지리산 권역
호모 트레커스가 1월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을 걷다’ 종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700㎞를 직접 밟아 백두대간의 겨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보전해야 할 동식물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이번 회는 마지막 지리산국립공원 권역입니다. 눈 쌓인 지리산 능선 약 30km를 비를 맞고 걸었습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재촉하는 봄비 산행이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7시, 전북 남원시 운봉읍 방현마을 사치재(500m) 고갯마루. 설날 연휴인 이날도 백두대간 능선에 섰다. 덕유산(1614m)과 지리산(1915m) 사이에 있는 사치재 밑으론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관통한다. 바래봉이 보이는 남원시 인월읍까진 차로 10분 거리. 그래서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이 자주 들머리·날머리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2월 13일, 전북 남원 고기리에서 고리봉 오르는 길. 앞에서부터 이억만 대장, 김영주 기자, 김미곤 대장.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사치재에서 지리산 자락에 접근하기 전까진 500~600m의 작은 봉우리와 능선을 넘는다. 단, 중간에 고남산(846m)이라는 오르막이 한 곳 있다. 고남산 정상까지 약 8㎞, 경사가 완만해 소풍 가듯 걸었다. 한 달 이상 대간 능선을 걸어 온지라 이 정도는 수월했다. 고남산을 내려오면 여원재(480m) 고개다. 고갯마루를 관통하는 24번 국도변에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당시 이 고개를 넘어 순천으로 종군했다고 한다.
여원재 바로 앞 야산에 고삐 풀린 개들이 돌아다녔다. 개들은 사람을 보고 사납게 달려들었다. 김미곤(52) 대장은 이 개들을 퇴치하느라 등산 스틱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나중에 온라인에 올라온 백두대간 종주기를 보니 “여원재에선 개를 조심하라”는 후기도 있었다. 하마터면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할 뻔했다. 이날 여원재 너머 고기리삼거리까지 간 후 숙소에서 묵었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선 지리산 주 능선과 서북 능선이 훤히 보인다. 고기리에서 고리봉(1305m)에 올라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1433)·정령치(1172m)·성삼재(1090m)·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고, 서북 능선을 타면 세걸산(1220m)·팔랑치(989m)·바래봉(1165m)·덕두봉(1150m)으로 이어진다. 덕두봉 아래 중근리가 김 대장의 고향이다. 김 대장은 연휴인데도 고향에 가지 않고 계속 걸었다. 고리봉 아래서 하루를 쉬며 체력을 비축했다. 사실상 마지막인 지리산 주 능선 종주를 위해서다.
지난 13일 오전 고리봉·만복대·정령치를 거쳐 성삼재에 닿았다. 오르막 구간이지만, 하루 쉰 덕분인지 시간당 평균 2.5㎞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성삼재휴게소의 식당·편의점은 겨울에 문을 닫고, 대신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영업 중이었다.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거의 두 달여 만이다. 김 대장과 이억만(63) 대장, 기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손에 쥐고 노고단대피소(1350m)를 향해 걸었다.
2월 13일, 지리산 성삼재휴게소. 따뜻한 커피를 든 김미곤 대장(왼쪽)과 이억만 대장이 노고단을 향해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 한잔이 이렇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지 몰랐다. 이제 백두대간 700㎞ 여정의 막바지인 지리산 천왕봉까진 하루 남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지난해 신축한 노고단대피소는 깔끔했다. 이날 묵는 사람도 10여 명 남짓으로 한산했다. 그중 두 명은 이튿날 장터목대피소(1750m)까지 가서 천왕봉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진 24㎞. 하루 가야 할 거리로 꽤 먼 거리지만, 지리산 주 능선을 종주하는 이들은 대개 이 구간을 하루 만에 걷는다. 한 명은 “걷는 속도가 느려 새벽 일찍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새벽 2시에 출발했다.
노고단에서 장터목, 비 내리는 눈길
지난 14일 오전 5시30분, 장터목대피소를 나섰다. 전날 대피소 방안에서 붉은 노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날씨는 안개 자욱한 날씨로 돌변했다. 안개가 짙게 껴 헤드 랜턴 불빛이 밝히는 가시거리는 20m가 채 되지 않았다. 집중하지 않으면 금세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악천후였다.
2월 14일 오전 10시, 지리산국립공원 벽소령대피소. 비를 맞아 옷과 배낭이 모두 다 젖었다. 김영주 기자
한 시간 후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비옷도, 배낭에 씌울 레인 커버도 없었다. 줄곧 눈길만 걸다 보니 비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배낭에서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었지만 이내 젖어들었다. 추위가 엄습했다. 트레일 컨디션도 나빠졌다. 발목까지 차는 눈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눈과 얼음, 빗물이 범벅이 됐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장갑을 낀 채 비를 맞고 걸어 손바닥이 하얗게 변했다. 히터에 손을 말리고 있다. 김영주 기자
이날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지 24㎞를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연하천대피소(1586m)·벽소령대피소(1426m)는 그냥 지나쳤다. 걸음을 멈추면 체온이 내려가고, 오한이 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장터목대피소를 약 3㎞ 앞둔 세석대피소(1601m)에 도착했을 때,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일곱 시간을 쉼 없이 걸었더니 허기졌다. 에너지바와 양갱으로 허기를 달래고, 대피소 화장실에 있는 히터 위에 재킷을 벗어두고 물기를 말렸다. 이제 한 시간여만 더 가면 장터목대피소에서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2월 14일 오후 1시30분, 지리산 장터목대피소. 김영주 기자
장터목대피소에 닿은 시간은 오후 1시30분. 사방에 안개뿐이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 대피소 목조건물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국립공원 대피소의 숙소 배정 시간은 오후 3시 이후부터 시작되지만, “젖은 옷을 말릴 수 있도록 일찍 방 배정을 해 달라”고 대피소 직원에게 사정하니 들여보내 줬다. 그러나 대피소 방바닥엔 온기가 없었다. 여기저기에 옷을 말려두고 일행을 기다렸다.
장터목대피소 도착 후 배낭에 들어 있는 모든 짐을 꺼내 말렸다. 김영주 기자
이날 저녁은 푸짐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먹고 남은 돼지고기와 간고등어를 셋이서 나눠 지고 온 덕분이다. 식량은 전날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산악인 남난희(67)씨가 후배를 통해 노고단대피소까지 가져다준 것이다. 그는 애초 취재팀과 함께 지리산 주 능선을 걷기로 했지만, 갑자기 다리를 다쳐 함께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저녁거리를 보낸다”며 과분한 식량을 보내왔다. 그 양이 너무 많아 한 끼에 다 먹지 못하고 장터목대피소까지 지고 온 것이다.
삼겹살 굽는 연기가 대피소 취사실에 가득했다.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구운 삼겹살을 나눠 먹는 거로 대신 미안함을 덜었다.
취사실의 식사시간이 파할 무렵인 오후 7시30분, 한 무리의 청년들이 몰려 들어왔다. 겨울 산행에 어울리지 않은 장비, 한눈에 봐도 산행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이었다. 운동화 차림을 한 학생도 있었고, 어떤 학생은 스패츠(등산화 위에 차는 각반)의 앞뒤를 반대로 차고 있었다. 헤드 랜턴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사정을 물으니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온 중·고교 학생팀이었다. 인솔자로 보이는 성인이 보이지 않아 재차 물어보니 “목사님은 뒤처진 학생들을 데리고 오느라 뒤에 있다”고 했다. 어른 셋에 학생 16명. 산행 경험과 장비가 부족한 19명의 일행이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천왕봉에 올라 장터목대피소로 하산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해가 떨어진 지 두 시간이 지난 시각, 일행의 절반 이상은 대피소에 오지 못했다. 사고가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대피소 직원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피소 안 사무실에서 나와보지도 않고 있었다.
허기진 학생들이 배낭에서 풀어놓은 식량은 컵라면 몇 개뿐이었다. 스토브와 코펠을 치우고 저녁 자리를 정리하려던 취재팀은 남은 삼겹살과 고등어를 마저 구워 학생들에게 전했다. 학생들의 “고맙습니다” 소리를 뒤로한 채, 남은 고기를 정신없이 굽기 시작했다. 티타늄 소재 코펠 뚜껑이 새까맣게 탈 때까지. 취사실이 다시 자욱한 연기 속에 잠겼다.
학생 일행 중 마지막은 오후 8시30분에 도착했다. 대피소 취침 시간(오후 8시)이 30분 지난 시각이다. 눈과 얼음 위로 비가 내린 이 날 날씨를 고려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험난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날 학생 일행과 한 방에서 잠을 청했다.
악천후 속에 천왕봉 정상에 오른 학생들은 이날 산행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까. 운동화에 스패츠를 거꾸로 차고도 1915m 지리산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 할까. 아니면 ‘그때 참 무모한 산행을 감행했다’며,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고 할까. 첫 산행의 길을 터주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지리산 천왕봉 종점에 서니, “하산 생각뿐”
2월 15일 오전 7시,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선 김영주(왼쪽) 기자, 이억만 대장, 김미곤 대장. 김영주 기자
지난 15일, ‘백두대간 700㎞를 가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오전 6시 대피소를 나왔다. 전날에 이어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지만 여유가 있었다. 배낭 안 식량을 모두 비워 배낭이 한결 가벼웠다.
오전 7시 정각, 지리산 천왕봉 정상석 앞에 당도했다. 정상석 북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그리고 남면에 “지리산 천왕봉 1915m”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끝났다’는 것 말고 별다른 감회는 없었다. 정상석 앞에 셋이 모여 몇 장의 기념 사진을 찍는 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김미곤 대장이 한마디 했다. “내려갑시다.”
지리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5분 만에 하산했다. 아마도 세 사람 모두 어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비 맞은 몸을 씻고 싶었고, 허기를 달래고 싶었다. 하산 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남원시 인월읍의 한 목욕탕. 체중계에 올라서니 64.7㎏이었다. 출발 당시(72㎏)보다 약 7㎏이 줄었다.
2월 15일, 남원시 인월읍 목욕탕에서. 출발 당시보다 몸무게가 약 7kg 줄었다. 김영주 기자
김미곤 대장 “백두대간의 기백을 남극으로”
김미곤 대장. 김영주 기자
원래 계획은 1월 1일에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출발 지점인 강원도 북부에 큰눈이 예정돼 있어 하루 먼저 출발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2월 15일도 멋진 일출을 기대했지만, 실제는 안개가 짙게 껴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웠다. 종주의 시작과 끝이 악천후였다. 산에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 백두대간 종주였다.
사실, 처음엔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일정의 절반 정도를 소화했을 땐, 날씨에 따라 완주 여부가 결정날 것 같았다. 다행히 운이 좋았고, 셋의 호흡이 잘 맞았다. 중간에 덕유산에서 뜻하지 않은 폭설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둘이 아닌 셋이라 무사히 돌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고향은 남원시 인월읍을 내려다보는 덕두봉(1151m) 아래 중근 마을이다. 고향에 가까워졌을 때 중·고등학교 시절 지리산 종주를 할 때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마냥 즐거웠던 그 시절, 동네 친구들과 함께 냄비와 이불을 들고 지리산 종주를 감행했었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세상 무서울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닿아 47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을 때,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다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싯적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히말라야를 꿈꿨다. 이후 20대 초반에 처음 히말라야에 들어 40대 중반에 8000m 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운이 좋았고, 산악인 선배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두대간 동계 종주를 마친 지금, 나는 남극 대륙 횡단을 계획 중이다. 남극 대륙 북서쪽(세종기지)에서 남동쪽(장보고기지)까지 2800㎞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다시 나는 꿈을 꾼다.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러나 늘 도전할 대상을 찾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좋다. 47일간의 동계 종주를 무사히 마친 지금, 남극 대륙 횡단에 조금 더 가까이 간 기분이다. 백두대간의 장엄한 기백과 기운을 남극 대륙으로 넓히고 싶다.
이날 저녁, 인월읍의 한 식당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김 대장의 고향 친구들이 ‘백두대간 완주’ 소식을 듣고, 조촐한 축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정철호 서부지방산림청장과 산악인 남난희씨도 참석했다.
2월 15일, 하산 후 저녁 자리를 함께 한 이억만(왼쪽) 대장과 산악인 남난희씨, 김미곤 대장.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남씨는 “근래 산악인들도 하지 않는 백두대간 동계 종주를 언론사 주최로 시도하고, 백두대간 보전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종주팀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남씨는 1984년 태백산맥(부산 금정산~진부령까지 약 700㎞)을 종주했으며, 이후 백두대간을 다섯 번 완주했다. 그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나면 인생이 바뀐다. 앞으로 김 대장을 포함해 3명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금해진 기자가 “어떻게 바뀌냐”고 물으니,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철호 청장은 “왜 힘들게 동계 종주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며 “환경을 위해 ‘적게 먹고 많이 걷는다’ ‘가져간 식량은 물론 배설물까지 모두 수거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걸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고 말했다.
※ ‘백두대간을 걷다’ 시리즈 마지막인 10회는 다음 주 화요일(3월 5일) 발행됩니다. 47일간 식량 조달 방법과 비용, 숙박과 야영 노하우, 걷기 전략 등을 모두 공개합니다.
김영희 디자이너
에디터
관심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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