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2일 일본 갔다 온 지도 며칠 지났고 집에만 있기엔 따분해서 찍사들과 경주 맥문동 출사에 나섰다. 맥문동은 여름 한더위에 한창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면 고역이다. 보통 사람들은 흔해빠진 맥문동을 찍으로 먼곳까지 뭐 하러 가느냐고 하겠지만 지방 자치단체에서 시민들을 위해서 신경을 써서 가꾸었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진쟁이들이 이것들을 보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까 좋은 것이 아닐까. 작년에는 대부분 맥문동이 잘 자라지 못했는데 올해는 그런대로 예쁘게 자라서 보러간 보람이 있었다. 매문동은 경주 말고도 태화강 철새공원과 성주 성문밖 솔숲이 유명한데 또 어디를 갈지 모르겠다.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 군락지를 찾으려면 좀 힘이 드는데 경주 예술의전당 쪽으로 차를 몰아 계림중학 네거리 근방 주차장에 주차하고 길을 건너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경주시와버스터미널에서 형상강을 따라 예술의전당쪽으로 가서 올린 지도를 보고 찾으면 된다. 터미널에서 맥문동 군락지 까지는 4km 이고 도보로 한 시간 걸린다. 사진을 다찍은후 근처에 있는 아하수타왕돈까스 식당에서 식사하고 양산 통도사에 배롱나무를 보러갔다. 통도사 배롱나무는 몇 년 전에는 참 멋졌는데 올해는 별로 였다. 해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통도사 배롱나무를 다찍고 간김에 서운암에 들렸는데 서운암 입구 못에 남개연과 왜개연이 피어 있어서 헛걸음은 아니었다. 벌래가 잔뜩 뭍어있는 개연들을 찍고 귀가했다.
통도사 서운암 남개연, 왜개연
수련과의 다년생 부엽성 수생식물, 학명 Nuphar pumila var. ozeense (Miki) Hara 잎은 뿌리줄기 에서 나고 긴 타원형이며, 끝이 오목하게 파이고 잎밑은 둘로 갈라져 화살촉 모양을 이룬다. 길이는 8~12㎝, 폭은 7~8㎝이고 물 위에 뜬다. 앞면은 녹색이고 광택이 나며, 뒷면에 털이 있다. 잎자루 는 속이 차 있다. 꽃은 6~8월에 줄기 끝에 1개씩 노란색으로 핀다. 꽃의 지름은 2~3㎝이고 둥근 컵 모양이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광택이 있으며,넓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고 꽃잎처럼 보인다. 꽃잎은 여러 개이고 꽃받침보다 작으며,0.5~0.6㎝ 길이의 직사각형이고 연한 노란색이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0.7~0.9㎝이다. 암술머리 는 8개이고 돌기가 여러 개 있으며, 남개연은 암술머리가 붉은색이고 왜개연은 노란색이다.
남개연
왜개연
어느 교장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일본 초등학생의 한국 수학여행》 어느 가을날, 불국사 앞뜰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많은 사람들 중 내눈에 띄는 것은 초등학교 어린이 들의 행렬이었다. 초등학교 교장이란 직업의식이 이렇게 작용하는가 싶었다. 불국사 앞에는 수학여행 단으로 보이는 일본 어린이 두 학급과 우리나라 어린이 네 학급 정도가 나란히 모여 있었다. 가만히 두 나라 어린이 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 봤다. 일본 어린이들은 질서정연한 반면,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김밥, 과자 등을 서로에게 던지고 피하느라 온통 수라장이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김밥을 돌멩이처럼 던지고 장난하는 것도 그렇지만 던져서 흩어진 김밥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 때 일본 어린이 한 명이 일어나서 "선생님 저 아이들이 왜 저렇게 야단을 하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곁에 있던 내가 일본말을 알아 들으리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인지 "응, 조선은 옛날 우리의 하인과 같은 나라였는데 지금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저 모양이구나. 하는 짓을 보니 저러다가 다시 우리 하인이 되고 말 것 같구나." 라고 했다. 일본 선생님의 얼굴은 진지했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진땀을 느꼈다. 우리나라가 다시 일본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어쩜 지금도 저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서글픔과 걱정이 뒤섞인 채 어린이들을 계속 지켜 보았다. 역시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생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김밥과 과자들로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나무라지도 않더니, 어쩜 저렇게 더럽혀진 모습을 보고도 그냥 떠날 수 있단 말인 가?" 하는 원망이 앞섰다. 그렇지만, "당장 청소를 하고 떠나라"고 그 선생 님을 꾸짖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일본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음식 부스러기들을 주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김밥덩이를 줍는 일본 아이에게 "저 아이들은 함부로 버리고도 그냥 갔는데, 왜 너희들이 이렇게 치우느냐?" 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내가 일본말 로 묻는 것이 이상하였 던지 힐끔 쳐다보며 "모두가 이웃이 아닙니까? 우리가 버린 것이 아니라도 더러운 것을 줍는 것이 뭐가 이상합 니까?" 라며 되물었다. 나는 너무나 창피해서 귀 밑까지 빨개졌다. "우리가 이대로 교육하다가는 큰일 나겠군." 혼잣말을 하며 쓰디쓴 얼굴이 됐다. ''하인 같았던 나라---. 다시 우리 하인이 될 것 같구나." 라는 일본 교사 의 말이 귓가를 맴돌면서 "왱왱" 하는 불자동차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잊었는가? 1945년 일본사람들이 패전해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100년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며 일본 으로 돌아갔다. 그 뜻이 무엇이겠는가? <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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