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명 ‘김장훈법’이란 ‘명예기부자법’ 제정을 추진하게 만든 가수 김장훈은 지난 10여년간 100억 원 이상의 기부를 해 ‘기부천사’로 불리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월세 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훈은 ‘스타줌 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진솔하게 말했다. 그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은 큰 감동을 준다. 본지는 동영상에서 녹취, 이를 게재한다.(편집자주)
-7집 앨범 노래의 화두가 눈물과 웃음인데….
눈물과 웃음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설명을 하려면 하나님 얘기할 시간이 없을 것 같고…. 느낌으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눈물과 웃음은 제 안에서는 거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울자고 주장하는 것은 눈물이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운 다음에, 정화된 다음에 다시 희망을 주장하는 것이고, 웃음을 얘기할 때는 우리의 전통 정서로 말하면, 해학 같은 삶의 지혜가 담긴 웃음을 한 번 웃고 그걸 통해 풍자할 수 있는 그런 것 같아요. 제 마음속에서는.
-본인의 성격은?
누구나 그렇지만 저는 좀 양면성이 많은 것 같아요. 아주 자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 없을 때도 있고, TV에서 보면 사교적인 것 같지만 낯을 많이 가립니다. 옛날에는 가수하면서 눈에 힘주고 그런 것이 멋있는 건 줄 알았어요. 카리스마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카리스마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게 됐지만 그런 걸 저에게 보라고 하신다면, 부드러운 카리스마였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제가…. 제가 기도하는 것 중에 제일 많이 하는 것은 혈기 부리지 말게 해 달라는 겁니다. 혈기 부린 날은 집에 가서 진짜 마음이 안 좋아요. 옛날에는 혈기부리고 나면 집에 가서 통쾌했어요. 그 사람에게 그걸 퍼부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통쾌해서 혼자 했던 상황을 다시 상상하며 즐거워하고…. 그런데 요즘은 미칠 것 같아요. 제 자신이 한심하고. 그렇게 기도하죠.
-공부할 계획이 있다는데?
5년 정도를 저의 많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공연도 단독콘서트를 5백 회 이상 한 것 같아요. 무대를 대학축제로 치면 5년 동안 날 수 보다 더 올라간 것 같아요. 하루에 네댓 번 올라간 적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계속 퍼내기만 하고 담아둘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분에게 제가 1년 반 동안 끊어보겠다고, 저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니 ‘너 그러다가 이 바닥에서 아웃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차피 내가 없어질 거면 마지막으로 옛날 풋풋했던 때 느낌으로 외국에 가서 무대연수공부하려고 물색을 했거든요. 잘 아는 분에게 발성공부를 하고 싶어요. 저는 혼자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해 봤는데….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막 일어났어요. 무대연출 같은 것을 실전에서 10년 정도 했는데 제가 생각할 때 허접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이런 걸 이론과 접목을 시키면 실제도 좋아질 것 같고, 실제에서 많이 닦아놓은 것 때문에 이론을 금방 습득할 수 있을 것 같고, 뭔가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고…. 계획 중이에요.
-교회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그 때 어머니는 불교였어요. 제가 학력고사 보러 갈 때 가방 안에 부적 같은 게 들어있고 그랬어요. 그 때도 저에게 교회가라고 했어요. 막 사니까. 교회가면 사람 되겠다고. 큰 누나는 교회 다니고 있었고, 감시체제로 교회에 보내니까 괜히 거부감이 들었지요.
-어떻게 하나님을 처음 만났나?
군대를 갔는데 첫 주에 일요일에 교회 갈 사람은 교회가라고 하잖아요. 교회 가려면 더럽히면 안 되니까. 군화를 깨끗이 해야 하는데 갈까 하다가 군화 끈을 매기가 귀찮아 안 간 거예요. 그런데 교회 동네에서 위문 왔어요. 초코파이 같은 것을 주고, 여자애들이 굉장히 예뻤어요. 갔어야 하는데 후회했다가 그 다음 주에 갔어요. 찬양하는 남자 분들도 다 나와 있었고, 그 때 나온 노래가 실로암이었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갑자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그 때 겁이 났어요.
-가장 슬픈 기억은?
구정 때인가. 집에 아들 하나니까 나에게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누나들이 어려운 중에 10만 원인가 주면서 가져가서 어머니께 드리라고 했어요. 알았다고 했더니 작은 누나가 ‘쓰지 마’ 라는 말을 세 번인가 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서 ‘내가 돈을 못 번 것도 고통스러운데 아무래도 이 돈을 쓰겠냐’ 하면서 돈을 던졌어요. 작은 누나가 막 울더라고요. 그 때 나도 굉장히 울었어요. 정말 사람이 풀 수 없는 뭔가가 있었고, 그 날의 어떤 비참함과 서글픔은…. 그 때는 진짜 죽고 싶었어요.
-연예인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제복과 호칭 때문에, 제가 신앙인이라는 제복이나 호칭 때문에…. 연예인이라는 제복과 호칭 그것은 등급은 다르지만 비슷한 것 같아요. 행동의 제약을 받는 거지요. 그게 정말 나 자신의 도덕성 때문에 제약을 받으면 괜찮은데, 겁나서 제약을 받는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거지요. 저는 제약을 많이 당할 때 당해주는 편이에요. ‘저게 교회 다니는 ×이, 저 가수라는 ×이, 공인이라는 ×이 저래서 되겠어.’ 이런 것 있잖아요. 사실은 방송 나가서 교인이라는 것도 잘 밝히지 못하고…. 그것도 잘 못 된 것이지요. 신앙으로 보면. 내가 정말 자신 있고 떳떳하면 딱 밝히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피를 토해내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하면 되는데, 그럴 자신이 없는 거지요.
-나의 하나님은?
어린애 같으신 분. 대게 이렇게 잘 꾸짖으신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사랑해 주고 닮게 해준다고 생각할 때 정말 하나님 닮아가게 되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게 있는데, 제가 어린애 같아요. 제가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지금 추구하는 것은 너그러움. 하나님은 너그러우신가 봐요. 제가 너그러움으로 가는 것 같아요.
-예수님 믿은 후 바뀐 것이 있다면?
지금은 이래요. 내가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도 상관없다.’ 이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내가 만약 옛날로 돌아가 여러 가지를 했다, 상황이 바꿔졌다고 해서 내 식구들이 또 옛날처럼 작은 누나가 공장을 나가고, 식구들이 힘들어 하고 그런 상황이 되면 누가 그걸 지켜주고, 그것을, 어떤 노래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내버려두고 있는 사람이 그게 진짜 휴머니즘 있는 노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앨범에도 주변인이라는 것을 썼거든요. 청소년기 때 배웠던 청소년기는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주변인이다. 이런 얘기 배웠잖아요. 나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는데 지금도 그래요. 돈에 대해서도 주변인이고, 그걸 써야 되는 건지 버려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고, 신앙에 대해서도 주변인이고, 노래도 그렇고, 다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세상 떠나기 바로 전에 이제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이렇게 되고, 바로 그 전전까지는 주변인일 것 같아서 혼란스럽지 않은 걸 포기했어요. 혼란스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하며 살죠.
-하나님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결식아동재단을 옛날에는 제가 하려고 했었고,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하겠죠. 그걸 꼭 하고 싶고요. 그걸 순간적인 감상으로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정리: 김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