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매년 당하는 상이지만, 매년 돌아가시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아픔을 느낍니다.
단순히 음주가무를 금하고, 경건히 지내는 것을 넘어서
주님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살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오늘 긴 복음말씀을 읽으면..
당신께서 스스로 정체를 다시한번 명확히 알려주시는 것..
이미 고난의 잔을 마셔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끼고 계셨던 것.
베드로의 배반..
빌라도의 물음에 답하면서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당신의 정체..
'진리는 무엇인가'하는 빌라도의 물음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복음입니다.
오늘은 1월달 요한을 공부할 때 썼던 '진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번 적어봅니다. 주님이 상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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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사전의 뜻 그대로 '참됨'이 아닐지..
그러나 이 '참됨'은 간단히 말하는 것처럼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참됨과 거짓을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이자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참됨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냥 내가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은 참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적으로 100년전에 나는 없었고 -
아니 없었던 것 같고 - 100년 후에도 아마도 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나는 존재한다고하는
말은 참되지 않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나는 매우 제한된 부분에만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생각의 한 단편을 많은 공간에
뿌려댈 수 있지만,
그러나 나는 동시에 두 곳에서 조차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어떤 사실은 진리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어떤 작은 부분에 있어 사실이며 진리일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이런 견지에서 보면 정말 존재에 있어 참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계에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든 유한하고 제한적이며 어떤 것은
존재자체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기자들은 절대적 진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나는 있는자 그로다' '나는 나다'로 호칭하신 그 분께서는
존재자체로 진리입니다.
바로 그 '변함없음' 때문에, 그 영원성 때문에
진리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죽음을 극복하는 부활을 보여주신
것 같은 것이 바로 영원성의 하나의 증명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진리인 것은 인간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이 평가나 분석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분은 진리입니다.
존재의 참됨 때문입니다.
단지 인간은 그 진리와 짧게 접함으로써 그 편린을 맛봅니다.
아마도 '자유'란 것도 그 편린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완벽한 자유, 절대적인 자유가 있을까요?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어떤 동양사상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상식적으로는 아마도 불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제한적인 '참됨' 처럼 자유도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완전한 자유를 예수님에서 봅니다.
그 진리안에서 봅니다.
죽음의 고통안에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본성의 극복이
그분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봄으로써 말입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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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있어 진리는 당신의 나라에서 명석한 두뇌의
학자들이 말한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수사에 머무릅니다..
그것도 훌륭함니다만, 인간에게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적욕구는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생각들이 몇백년 몇천년이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찾아낸 진리란 것은 인간의 생각을 몇거풀 벗겨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 있어 진리는 바로 당신옆에 서 계셨던 그분
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준 그 작은 몸집의
한 인간이 바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는 나를 비롯하여 나 이후, 이전의 모든
인간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말씀이 진리가 되었습니다.
그 구원이 실체적 내용을 당신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분은 언어로서 이해되는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써 이루어내야 하는 나라를 보여주신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사랑'이라는 단어하나도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말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당신도 바라지 않는, 이웃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마도
어쩌면 그분의 진리에 조금 가까이 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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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상중에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체험, 죽음으로서 죽음을 벗어나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셨던 고통에 가슴아픔을 느끼며,
삼가 고개숙여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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