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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현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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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일 서울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는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구 에버랜드 사장)과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구 에버랜드 상무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삼성 3세 이재용씨의 편법·불법 세습이 세상에 알려진지 7년만에 그것이 중대한 범죄임을 국가기관이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삼성 사안에 대해 지난 수년간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해왔던 곽노현 교수(방송대 법학과)가 <오마이뉴스>에 두번째 긴급기고를 해왔다. 곽 교수는 현재 미국 씨애틀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곽 교수는 지난 2000년 전국 법대 교수들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임직원들을 배임혐의로 고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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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 회장의 지시 없이 허 사장의 단독 범죄가 가능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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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드디어 삼성의 배임승계에 급제동이 걸렸다. 검찰은 에버랜드의 저가발행을 배임발행으로 규정짓고 당시 허태학 사장 등 2인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로써 이재용의 권력기반이 배임발행에 터잡은 것임이 공식 확인됐다.
어떻게 보면 검찰이 월드컵 4강 진출보다 더 장한 일을 해냈다. 살아있는 경제권력의 대물림과정에 칼날을 들이대며 '경제대통령' 이건희 회장의 역린(逆鱗)을 도려낼 태세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이들의 관심은 단연 이건희 회장에게 미칠 파장에 쏠린다. 과연 '깃털' 허 사장의 기소로 마감될 것인가, 아니면 '몸통' 이 회장에게 결국 칼끝이 향할 것인가, 이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이제 관건은 '몸통' 이건희 회장
검찰 설명에 따르면 이 회장 부자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건 시간에 쫓긴 탓일 뿐이다. 이제 공소시효 부담에서 벗어났으니 관련자 수사를 계속해서, 최종적으로는 이 회장 부자를 소환조사할 계획이란다.
나는 서울지검 특수2부의 이런 입장표명이 가감 없는 진실일 것으로 믿는다. 이번 사건에서 나름대로 법원칙을 고수해온 수사팀이 허태학 사장의 단독범행 주장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고 믿는다. 검찰수뇌부도 허태학 사장을 희생양으로 삼는 선에서 타협할 것을 종용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허태학 사장을 기소한 이상 실질적으로 남은 건 이 회장 부자에 대한 조사뿐이니 수사를 마무리짓는 데 오래 걸릴 것도 없다. 단언컨대 이 회장을 기다리는 건 배임몸통 혐의에 대한 소환조사와 기소처분밖에 없다.
에버랜드 사장이 충성스럽게 단독범행임을 고집하고 있으나 이는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누구도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배임고의 입증은 주변 정황상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이런 입장에 비추어보면 허 사장과 이 회장이 아무리 입을 맞춰 배임혐의를 부정해도 검찰이 이 회장의 배임혐의를 입증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객관적인 정황상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건희 회장은 당시 에버랜드의 이사였다. 예외적으로 직접 이사를 맡을 만큼이나 에버랜드는 이 회장에게 중요한 회사였고, 당연히 에버랜드의 중요사항은 회장비서실이 직접 챙기고 관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버랜드 사장이 회장님과 비서실의 하명(下命) 없이 독자적으로, 회장 자녀들에게 회사 지배권을 넘겨주기로 결정한다는 게 새빨간 거짓말 이상이 될 수 있는가?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이 회장 모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아무리 자식이라도 한 다리 건너 이해관계가 다른 법인데, 현재 '내'가 장악하고 있는 거대조직을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내 자식'에게 넘겨준다? 더군다나 '내'가 거느린 다른 회사들(에버랜드의 주주 계열사)을 피멍 들게 하면서?
설령 '내'가 은근히 바라는 바라도 내 허락 없이 진행되는 권력이양은 모반이고 쿠데타일 뿐이다. '나'한테 충성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식'한테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 사장은 지금 자신이 쿠데타를 실행했노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게 도대체 있을 법한 얘긴가.
허태학 사장의 단독범죄? 새빨간 거짓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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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 11월 1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삼성그룹 이재용씨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와 관련, 증인으로 출석한 허태학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우측)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당시 허 사장은 일관되게 '적법한 절차'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 뒤인 2003년 말, 결국 허 사장은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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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도광환 | 만에 하나 위와 같은 해괴한 일이 일어났어도 결론은 똑같다. 에버랜드의 등기이사인 이 회장이 허사장의 주식발행과 지배권이양 계획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고 천하의 사업가인 이 회장이 7700원으로 책정된 발행가가 실제가치의 1∼2%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검찰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이 회장은 허 사장의 배임발행으로 자신에게는 수천억원 대의 이익이, 회사에는 수천억원 대의 손실이 돌아갈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회사법상의 등기이사로서 이 회장은 당연히 허사장의 배임발행을 방지할 권한과 책무가 있었다. 사전에 주식발행중지소송을 내거나 사후에 차액지급소송을 냈어야 했다. 이런 책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실을 발생시킨 것이 바로 특별배임죄 아닌가. 요컨대, 허태학 사장의 단독범 주장은 이 회장이 당시 에버랜드의 이사였다는 엄연한 사실 때문에 이 회장의 면책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와 비서실의 기획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회장 자녀들을 지배주주로 만들어냈다는 허 사장의 진술은 주변정황을 조금만 살펴봐도 새빨간 거짓말임이 바로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이재용에 대한 승계작전은 4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는 이건희 회장이 내준 44억 원을 종자돈 삼아 어림잡아 600억 원으로 불리는 과정이었다.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상장 예정 주식을 취득한 후 상장차익을 올리는 고전적 수법을 사용했다. 이 단계에서 이미 에스원(세콤)과 제일기획 등 4∼5개 계열사가 조직적으로 동원됐다. 작전계획 2단계는 450억 원을 활용해서 이재용을 에버랜드·SDS·삼성전자의 대주주로 만들어주는 작업이었다.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새로운 배임수법으로 선보였다.
3단계 작전은 삼성생명을 이재용 수중에 헌상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삼성생명도 저가발행을 통해 이재용의 직접지배 아래 놓을 계획이었지만, 97년 5월에 에버랜드와 SDS 저가발행을 배임죄로 다스리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재용의 간접지배 아래에 놓기로 계획을 바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98년 12월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20% 지분을 취득하는 것으로 승계작전은 실질적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4단계는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족벌승계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의 IT 벤처붐을 타고 e-삼성을 설립한 것이었다. 1단계에서 취득한 자금 중 쓰고 남은 2백억 원을 몽땅 투자하여 이재용 신화 만들기에 돌입했으나 관련계열사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 그럼에도 이재용은 투자원금 200억 원을 고스란히 회수한다. 관련계열사들이 정확하게 합계 200억원에 e-삼성 지분을 사준 덕분이다.
위의 4단계 승계과정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사례, 가장 중요한 거래가 에버랜드의 대담무쌍한 배임발행이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더라도 적어도 8만5000원을 받아야 할 에버랜드 주식이 단돈 7700원에 특혜 발행됐다. 인수물량도 상상을 초월해서 기존 주식물량의 167%에 달했다. 3세 이재용을 단숨에 지주회사 에버랜드의 62.5% 대주주를 만들어줌으로써 20년 후 4세 승계까지 내다볼 수 있게 해줬다.
허 사장의 단독범행 주장은 에버랜드 저가발행이 4단계 승계작전의 중심축이자 꼭지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했다는 것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위에서 거칠게 그려본 것처럼 4단계로 전개된 3세 경영권 승계는 이 회장의 작전 개시결심과 OK사인, 그리고 수시 점검 아래 회장비서실이 치밀하게 계획해서 관련계열사들이 충성스레 집행한 결과로 그 몸통은 이건희 회장일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사태가 흘러온 마당에 이 회장은 이제 누가 봐도 뻔한 위와 같은 진실을 숨길 이유도 여유도 없다. 어째 허태학 사장만 죄인이겠는가. 이 회장을 포함한 5인의 이사는 물론 에버랜드의 주주계열사 사장들, 결국 삼성그룹의 최고임원진 상당수가 배임혐의로 기소될 밖에 없는 비상상황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 회장의 과욕 때문이지 연루된 전문경영인들의 과욕 때문은 아니지 않는가. 배우자와 자식만 빼고 모든 걸 바꾸자던 이 회장이 재벌체제에 고유한 배임특권을 포기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불상사 아닌가. 그러니 지금에라도 기자회견을 열어 전후사정을 소상히 밝힌 후 배임승계를 시도한 데 대해 공개사과하고 통모인수한 에버랜드와 SDS 등 주식의 소각계획을 밝히며 본인과 휘하 임원들의 형사처벌에서 선처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전문경영인이 무슨 죄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발표된 삼성측의 공식입장은 정반대다. 당시 장기저리 자금이 궁하고 자본금확충의 필요성이 대두된 상황이었으며 전환사채 이외에 자금조달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임행위라니 천부당만부당하며 자신들은 일부 시민단체와 여론에 떠밀린 검찰 때문에 박해받고 있지만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볼멘 소리를 내놓았다.
기가 막히다. 기존주주들이 출자총액 제한 등에 걸려 신주인수가 불가능한 사정임을 뻔히 알면서 전환사채 방식으로 99억원 증자를 결의한다? 그것도 주당 7700원의 전환가격에 기존주식 수의 167% 물량을 신규 발행함으로써 기존주주의 지분율을 37.5%로 희석한다? 예정대로 3억 원을 제외한 96억 원이 실권주가 되자 그룹총수이자 회사이사의 자녀들을 특정해서 몰아준다? 삼성그룹의 기함(旗艦) 에버랜드가 이렇게 하지 않고는 96억 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정기저리 자금조달이 아니라 총수일가에 대한 회사경영권 양도로 성격이 바뀌고 말았지만 실제 가치의 2∼3%밖에 안 되는 줄 뻔히 아는 기존 전환가격을 그대로 적용한다?
이 모든 과정이 삼성의 주장대로 '법과 관행'에 따른 것이라면, 기존주주들을 상대로 99억 원의 유상 증자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제3자 '애들'한테 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이 법과 관행이란 말인가. 이렇듯 중요한 회사변동을 결의하면서 명색이 이사라는 자들이 단 한마디 질문도 추궁도 없이 뚝딱 해치우는 게 법과 관행이란 말인가. 이렇게 특정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가격 기타 조건을 놓고 인수협상 한번 하지 않는 게 법과 관행이란 말인가.
경영권 협상자료로 쓰기 위해서 회계부서에 기업가치 잠정평가를 지시하거나 증권회사에 전문평가를 의뢰하지 않고 무의미한 죽은 평가액인 세법상 평가액을 계산해서 넘겨주는 게 법과 관행이란 말인가. 이와 같은 배임발행의 결과로 지분율의 엄청난 희석은 물론 보유지분의 절대가치마저 대폭 감소한 주주계열사들이 사전에건 사후에건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냥 당하고 앉아있는 게 법과 관행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진실을 법원에서 가리겠다는 건가. 어떻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건가. 이건 법과 상식을 우롱하는 가증스런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여 답해보라, 이것이 '법과 관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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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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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노순택 | 지난 번 SK 때와 달리 검찰이 이번에 허 사장 등을 불구소기소한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는 이상 구태여 재판 중에 인신구속을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기업운영과 경제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이것이 원칙이다. 만에 하나 허태학 사장이나 이건희 회장을 SK 사안에서처럼 구속시키면 나부터 나서서 불구속으로 진행하라고 할 요구할 참이었다.
관련자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줘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죄질이 나쁘고 배임액수가 큰데다 반성조차 거부하기 때문에 법집행의 형평상 집행유예는 불가능하다. 1심 판결과 함께 법정구속될 때까지 불구속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게 함으로써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게 하고 경영차질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검찰이 불구속기소한 이유도 같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공공연한 경제범죄 사안에 대해서는 전격구속과 같은 충격적 법집행 방식보다는 꾸준하고 확실한 법집행이 훨씬 효과적이다.
불구속기소가 잘 된 부분이라면 이번 수사결과에는 두세 가지 아주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이유야 어떻건 사건이 발생한지 7년, 전모가 알려진지 6년 반, 고발을 접수한지 3년 반이 지나도록 수사를 마치지 못해 몸통은 놓아둔 채 '깃털'만 먼저 기소한 게 첫 번째 문제다. 이 사안의 몸통이 이 회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하게 논했고 검찰이 피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와 함께 중요한 건 검찰수사를 자진모리로 휘몰아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수사를 질질 끄는 점에 대해서는 삼성측도 기업활동에 차질이 많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검찰은 하루바삐 이 회장 부자와 주주계열사 대표이사를 포함한 관련자 전원을 소환조사, 기소함으로써 이 사안수사를 마무리져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큰 문제는 96년 말 에버랜드의 적정 주식가치를 8만5000원으로 추정해서 배임액을 970억원으로 결정한 부분이다. 여기서 검찰은 네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에버랜드 주식은 8만5000원에서 23만원까지 거래된 실적이 있다. 검찰은 이 중 최저가인 93년도 실거래가 8만5000원을 96년 말의 공정가에 제일 근접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93년도는 발행시점에서 만 3년 넘게 떨어진 시점이다. 더욱이 계열사간 거래가는 독립당사자간 거래가와 달리 공정가격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 98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 시 중앙일보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사들이는 데 적용된 10만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훨씬 참고가치가 높다. 첫째, 계열분리를 위한 주식처분이라 중앙일보가 독립당사자에 준해서 행동했다. 둘째, 발행시점부터 불과 1년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따라서 93년도의 8만5000원보다 98년의 10만원이 훨씬 신빙성이 높은 주당가치다.
둘째, 98년의 10만원은 경제위기가 절정에 달해 모든 주가가 50% 아래로 곤두박질친 시점의 실거래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98년의 10만원은 96년 말 현재가로 최소한 15만원은 쳐줘야 합리적이다. 셋째, 문제의 배임발행으로 말미암아 에버랜드 주식 수는 종전의 2.7배로 늘어난 반면 주식가치는 종전 대비 37.5%로 희석됐다.
이 중요한 사실을 감안하면 96년 말 현재의 적정가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5만원의 2배인 30만원을 쳐줘야 합리적이다. 넷째, 이 30만원도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평균 주당가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재용은 경영권이 따라붙는 지배지분을 인수했으므로 최소한 30%를 할증한 40만원으로 넘겨야만 합리적이다.
요컨대, 시기적으로나 당사자를 봐서나 가장 신빙성 있는 거래가는 중앙일보와 계열사들간의 98년도 실거래가이며, 여기에서 96년 말 현재의 적정가치를 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할 3단계 조정과정에서 각각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에버랜드 주식의 96년 말 공정가격은 8만5000원이 아니라 40만원 선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합리적이고 안전한 배임추정액수는 최저 5000억 원에 달한다. 검찰측 추정액의 5배가 넘는 것이다.
배임액수는 몰수추징액을 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런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검찰이 이 부분을 심각하게 재고해서 바로잡지 않는 이상 삼성 이 회장 봐주기라는 의혹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의 몇가지 문제점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당부하며 끝내고자 한다. 첫째, 삼성관련 검찰수사가 에버랜드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위에서 개관한 4단계의 승계과정은 '총수의, 총수에 의한, 총수를 위한' 배임과정으로 점철돼 있다. 서면조사 후 무혐의처분을 내렸던 SDS를 재조사해 관련자를 기소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일기획·e-삼성 등 승계과정에 깊숙이 연루된 관련계열사들을 모두 조사해서 거대한 조직배임범죄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에버랜드 사안이 하늘에서 똑 떨어진 단일 독립사안이 아니고 승계작전의 일부로 기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장에서 이런 언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재벌봐주기가 아닐 수 없다. 직권수사권한을 가진 검찰이 천하가 다 아는 SDS 사안과 삼성전자 사안 등에 대해 외부고발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잘못이다.
둘째, 검찰이 지난 7년간 직무유기를 하는 바람에, 특히 에버랜드와 무늬만 다른 SDS 저가발행에 대해서 무혐의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크고 작은 재벌들의 삼성 벤치마킹이 줄을 이었다. 엘지와 두산 등의 사례는 참여연대를 통해 내용이 알려지고 물의를 빚었지만 검찰은 고발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다.
어디 이뿐이랴. 재벌총수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고가매입, 저가양도, 불공정 맞교환, 불공정합병, 내부정보를 이용한 상장차익 실현 등은 재벌총수 누구나 기회만 주어지면 다 해온 불법관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총수들은 지금 좌불안석, 전전긍긍이다. 특히 지난 7년간 경영권 무세(無稅)세습에 '성공한' 재벌총수들 및 알짜 계열사들과 '거래' 형식을 빌어 법인재산과 기업가치를 노략질해온 총수일가들은 불면의 밤을 뒤척일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법집행 형평의 차원에서라도 이들 재벌에 대해 직권수사를 벌여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및 국세청으로부터 관련정보를 제공받아 적어도 10대 재벌의 배임혐의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수사해야 한다.
좌불안석, 전전긍긍, 재벌총수 불면의 밤
주지하다시피 재벌총수의 비자금특권과 배임특권은 군사독재시대에 뿌리내린 정경유착과 재벌체제의 양대 핵심 축이었다. 권력실세가 연루된 뇌물성 정치자금 게이트로 드문드문 검찰의 사정권에 들어왔던 비자금특권과 달리 재벌총수의 배임특권이 된서리를 맞은 건 이번 삼성 에버랜드 사안이 처음이다. 정경유착 체제를 떠받들어온 양대 특권을 묘하게도 삼성재벌부터 파헤치고 있는 작금의 국면은 분명 지난 반세기 역사의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 소회를 덧붙이자면, 지난 7년간 삼성사안에 대한 배임죄처벌을 주장해온 과정은 돌이켜보면 삼성일가와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특권층과 싸움이었다. 크고 작은 권력자와 특권층들이 갖고있는 막연한 정서와의 싸움이었다. 이들이 용납하는 상상력의 한계와 싸움이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무관심의 장벽과 싸움이었다.
황제와 귀족의 특권이 사라지면 부자와 신사의 특권도 사라지는 걸 직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권의 종류와 크기는 달라도 특권의 단맛과 재미를 알기 때문일까. 정치권·관계·법조·언론 등을 장악한 이 땅의 중소 특권층들은 삼성 성골집단의 '집안 스캔들'에 철저히 눈을 감았다.
크고 작은 권력자와 특권층은 서로 비슷한 속성으로 뭉쳐있으며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상호의존적 존재들이었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더 높은 곳의 특권을 지향할 뿐, 더 높은 곳의 특권을 문제삼지 않았다. 공사영역에서 출세한 특권층에게 삼성총수는 유일한 종신권력자, 곧 '왕'으로 인식되었다.
'왕은 불법과 수치를 모른다'는 중세기 법언(法諺)처럼 이들은 삼성총수의 불법과 수치를 보려하지 않았다. 삼성총수도 잘못이 있으면 '감옥갈 수 있다'는 건 이들의 상상력 바깥에 있었다. 오히려 이들은 '황제'를 사랑했으며 그의 특권을 흠모했다. 한마디로 크고 작은 특권층의 관심과 척도는 개인 미학이지 사회 정의가 아니었다.
이와 같은 특권층의 기본속성과 저변심리를 이해하지 않고는 국회·검찰·법원·국세청·공정위·조중동 등 이른바 '권력기관'들이 지난 7년 동안 삼성 3세 승계과정에서 보여준 각종 파격적 행태를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들 국가기관은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최대한 임무를 회피했다.
삼성의 배임승계 사안은 검찰, 국세청, 공정위 등 이른바 '권력기관'만이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들 기관 중 어디 한군데 직권조사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그 잘난 고발이 들어와야만 움직였고, 고발사항만을 조사했으며, 전모를 파악하지 않았다. 결정의 원칙은 가능한 최대한 봐준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불기소처분과 법원의 민형사 판결들은 언제나 봐주기로 흘렀다.
그나마 참여연대와 법학교수들이 형사고발과 조사진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측은 어떤 조사도 한번 안 거친 채 벌써 그룹차원에서 성대한 자축연을 열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특권층은 대거 몰려가 축하를 건네기 바빴을 것이고, 그 앉은자리로 사회적 위상이 결정날 것이었다. 삼성총수는 그만큼 거대한 성채였다. 아무도 싸워서 이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의 벽으로 둘러쳐진 철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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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병한 | 이 땅 특권층과의 싸움... 구시대의 몰락을 예고한다
오늘의 검찰기소는 이 철옹성에 균열이 올 것을 예고한다. 정치권력의 부패특권에 이어 경제권력의 배임특권을 정조준하며 법치주의의 성전을 수행하는 거듭난 검찰에 모처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노파심에서 오는 마지막 당부를 하나 남기고 싶다.
깨지고 뽑히는 건 비록 그것이 거대한 불법과 특권의 성채라도 크고 작은 사회적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재벌총수의 그것처럼 거죽이 높고 화려하며 뿌리가 깊고 단단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재벌총수들은 지난 30년 이상 애증을 함께 해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아닌가. 우리들의 생활의 방편이자 꿈의 통로이고 환상의 대상 아니었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이끄는 경제생활에 어쩔 수 없이 두 발을 푹 담그고 살아온 우리들에게 삼성의 조직배임 기소가 상징하는 구시대의 몰락은 가치관의 혼란과 각성의 아픔을 강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슬픔과 자성 없이 구시대를 장사지내지 말 것. 특히 지금까지 직무유기를 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켜온 검찰한테는 스스로의 잘못을 통회하는 낮고 겸허한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것이 국민의 성원을 계속 받으며 삼성을 위시한 재벌총수의 배임특권 전면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