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은집>에 수록되어 있는
고려국대광완산군시문정최공묘지명병서(高麗國大匡完山君諡文貞崔公墓誌銘幷序)에
문정공은 두 번 장가들었는데 영산군부인 신씨는 봉익대부 판밀직사사 예문관 제학으로 나이가 많다고 벼슬에서 물러난 신천의 딸이요, 무안군부인 박씨는 군부사 정랑 박윤류의 딸이다.
公再娶靈山郡夫人辛氏奉翊大夫判密直司事藝文館提學致仕諱蕆之女也務安郡夫人朴氏軍簿正郞諱允鏐之女也
신씨는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남 사미는 봉익대부 예의사 판서이고, 차남 덕성은 문과에 급제하여 중정대부 삼사사 좌윤이다.
辛氏生二男長思美奉翊大夫禮儀判書次德成及第中正大夫三司左尹
박씨는 자녀 셋을 낳았는데 아들 유경은 중정대부 종부령 지전법사사이고, 딸은 성근익대공신 광정대부 문하평리 상호군 우인열과 혼인하였으며, 둘째 딸은 선덕랑 선공시 승 조령과 혼인하였다.
朴氏生子三人男曰有慶中正大夫宗簿令知典法司事女適誠勤翊戴功臣匡靖大夫門下評理上護軍禹仁烈次適宣德郞繕工寺丞趙寧
손자와 손녀가 약간 명 있다.
판서(사미)는 자녀 다섯을 두었는데 장남 서는 호군을 거쳐 현재 전라도 안렴사이고, 차남 원은 중랑장이고, 삼남 각은 별장이며, 장녀는 예의사 총랑 송인수와 혼인하였고,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孫男女若干人判書生子五人長恕護軍今爲全羅道按廉使次愿中郞將次愨別將女適禮儀摠郞宋仁壽次幼
좌윤(덕성)은 자녀 넷을 두었는데 장남 복창은 별장이고, 다음 세창도 별장이고, 다음 사창은 아직 벼슬하지 않았으며, 딸은 아직 어리다.
左尹生子四人男曰復昌別將次曰世昌別將次仕昌未仕女幼
종부령(유경)은 자녀 셋을 두었는데, 장남 사위는 낭장이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다.
宗簿生子三人士威郞將餘皆幼
사위 문하평리(우인열)는 자녀 셋을 두었는데, 아들 양선은 영명전직이고, 딸은 모두 어리다.
評理生子三人男曰良善英明殿直女皆幼
사위 시승(조령)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직 어리다.
寺丞生女一人幼
좌윤(덕성)은 나의 친구로 성격이 호탕하여 술을 마실 때마다 호기를 곧잘 부리는데 벼슬 생활하는 동안 어디를 가나 그 일로 인하여 유명했다.
左尹吾友也倜倘使酒居官所至有名
종부령(유경, 평도공) 후손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것으로 생각해서 생략합니다.
판서(사미)의 장남 전라도안렴사(서) 후손이 안렴사공파로 전해오고 있으나 가문이 한미합니다.
- 씨족원류 573page -
좌윤(덕성)의 장남 복창, 차남 세창은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막내 사창의 아들이 순민(舜民), 우민(禹民), 무민(武民)이라고 조선중기에 조종운(趙從耘, 1607~1683)이 만든 <씨족원류(氏族源流)>에 수록되어 있으며 당연히 후손들까지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문열공계 전주최씨 족보에는 이 세 분이 좌윤공 후손이 아니라 평도공(유경) 후손으로 감무공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민, 우민, 무민은 감무공 사흥(士興)의 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이에 관한 내력이 문열공계 판윤공파 24세 종철(琮澈)이 만든 <전주최씨가승(全州崔氏家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전주최씨 가승 -
현감공이 만드신 구보에는 순민 삼형제가 공의 아들이라고 수록되어 있다.
세계는 올바른 근본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후손이 보내 온 단자에 기록되어 있기를 감무공 후손이라고 했으니 반드시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갑자보를 따르기로 했다.
앞으로는 감무공 후손이라고 똑바로 기록하여 후세에 의혹이 전해지지 않게 하겠다.
첫댓글 최사미,최덕성할아버지 후손들은 평도공할아버지 후손들이 너무 번성하다보니 후손들이 존재하고있어도 묻혀있는건지요? 문열공계 내용을 검색해보면 평도공파얘기가 거의 100%인거 같아요.
오늘날 문열공계후손들은 평도공파만 존재하는건지요?
순민,우민.무민 할아버지들은 감무공 후손이라는것은 알겠으나.. 나머지 내용들을 읽어보면.. 최사미,최덕성할아버지 후손들이 오늘날에 존재하고있는지 존재하지않는지 판단이 잘 안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