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후암정사 「차길진(법륜)」 법사
안동일 / 재미언론인
"지장(地藏)은 문자그대로 땅에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어디 땅이 예쁘고 향기나는 꽃나무들만 받아들이는가. 땅은 독초건, 깨진 바위건, 썩어가는 뼈다귀건 가리지 않는다. 우리들 탐진치에 물들어 있는 중생들이 이를 차별할 뿐"
'새벽에 일어나 향을 사르고 산창에 비치는 달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에게라면 굳이 경을 들려줄 까닭이 어디있으랴'
스스로 새벽길을 홀연히 떠나온 탁발거사라 칭하는 차법륜 법사는 미주동포사회에 어렵고 힘든 불교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생활불교를 펼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있다. 그는 허드슨 강변 펠리세이드파크에 토굴을 꾸리고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본존불이나 다른 보살을 마다하고 지장보살을 모시는 이유는 땅이 모든 것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하고 있듯이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이 모두 인연 과 무상법의 인연에 따라 지어진 가르침이기 때문이란다.
"지장(地藏)은 문자그대로 땅에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어디 땅이 예쁘고 향기나는 꽃나무들만 받아들이는가. 땅은 독초건, 깨진 바위건, 썩어가는 뼈다귀건 가리지 않는다. 우리들 탐진치에 물들어 있는 중생들이 이를 차별할 뿐"
법륜법사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이 경쟁이나 하듯 무수한 절을 세웠던 까닭에 대해 의문을 갖곤 했었다. '굳이 교통도 불편하고 인적도 없는 곳에 절을 세운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최근 들어 그는 선인들의 높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어디서건 부처를 모시게 되면 그곳은 불은으로 빛나고 의상이나 원효는 떠났어도 보살의 가르침을 빛나고 있음을. 그래서 그는 자신이 건립해 법주로 있던 서울 잠실 월인정사를 그대로 남겨두고 홀연히 새벽길을 떠나와 미국에 정착한 것이다. 지장보살을 열심히 모시겠다고 한 이름도 모를 스님에게 사찰운영을 모두 맡긴 채 ...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은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자신의 성불을 멈추고 중생속에 동고동락 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가득담고 그는 미국행에 올랐다.
"뉴욕은 축복받은 땅입니다. 특히 뉴욕의 중심인 맨해탄은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기(氣)가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세계의 수도가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바른 불교의 가르침을 펄친다면 바로 세계를 향해 바른 불교를 펼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법륜당과 필자의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 지난 1989년 여름 서울의 한 잡지사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해 봄 방북취재시 평양의 박물관에서 찍어왔던 빨치산 대장 이현상의 사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디에 쓰려고 하는데 ?"
"어떤 사람이 빨치산에 관한 책을 내는데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래, 어떤 책인데 ?"
"차일혁대장이라고 빨치산 토벌대장의 수기야. 그 아들이 부친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책 한권을 완성했는데, 꼭 이현상씨 사진이 필요하다고 부탁하더군."
"글쎄, 빨치산 활동에 관한 글도 아니고 반대로 토벌대의 이야기인데 굳이 이현상씨 사진이 필요할까, 또 공연히 그런데 사진을 내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 책을 쓴 저자는 희생된 빨치산 대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곤 하는 조계종 포교사야."
희생된 빨치산 대원을 위해서도 불공을 올리는 포교사라는 말에 사진을 보내기로 마음을 굳히고 다음날 속달우편으로 사진을 보냈다.
1990년 2월 필자가 서울을 방문했을때, 차길진씨는 붉은 핏방울을 표지장정 주제로 한 각고의 책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를 들고 필자를 찾아왔다.
첫 눈에 대단히 끼가 있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당시 같이 자리에 있던 어떤 동포분의 생년월일을 맞추어내는 것이었다. 그사람은 당시 차법사의 예언대로 고국에 들어가 선거를 치뤘고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용한 점쟁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 차례 그를 만나보면서 단순히 남의 일상사나 시시콜콜히 맞추어내는 심적능력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법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이 남다른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주위 사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그해 겨울 뉴욕을 방문했다. 뉴욕의 모 일간지가 그의 수기를 연재한 답례로 초청을 했던 것이다. 반가운 전화를 받고도 며칠 미적대다 그가 묵고 있는 미드타운 호텔을 찾아갔다. 그는 벌써 뉴욕바닥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여행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의 어깨위에 붙어있던 영가를 발견해 천도해 줬다든지, 가장 친한 동료들도 모르고 있던 어느 비지네스맨의 사업상의 일을 예견했다든지 하는 신비한 얘기가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퍼지고 있었다. 그의 호텔방은 이런저런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포들의 가슴에는 무수한 바람이 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가 모여 있는 세계의 수도에서 살아가는 한인 동포들의 물질적인 풍요 이면에는 정신적인 황폐와 공허가 휘감고 있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친구가 필요한 곳이구나. 뉴욕이야말로 부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이구나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3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갔지만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뉴욕동포들의 정신적 허탈함에 대한 걱정은 그를 다시 뉴욕으로 오게 했다.
"지난 해 8월 2일 몇몇 도반들과 함께 뉴욕 업스테이트 캣스킬 마운틴에 올라갔습니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세상을 쓸어 갈듯 내리던 비가 그친 저녁 어스름 무렵에 우리들은 뉴욕땅에 친근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생활불교의 터전을 만들기로 발원했습니다. 그 결과 세워진 것이 후암정사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길흉화복을 예지해 주는 영적인 충고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을 더욱 가깝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란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영력이 있어 스스로도 놀란 바 있고 한때는 비관한 적도 있지만 이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커다란 인연이 그를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전법사로 만들고 있다고 깨닫고 자연스레 구병시식을 하곤 한다.
지난 1월 22일 그는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후암정사라 명명한 토굴에 지장보살을 모시는 점안식을 가졌다.
전승공에 전수자인 박찬수씨가 6개월여에 걸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지장보살을 서울로부터 공
수, 맨해탄을 굽어도는 허드슨 강변위에 모신 것이다. 작은 목공예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큰 원력과 소망을 점차 뉴욕을 밝히게 될 것을 굳게 믿으면서 ...
그가 전하려는 부처님의 법은 우람한 대웅전의 법단위에서 세상사를 하찮게 굽어보는 듯한 높은 곳에 있는 법이 아니다.
"불법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아니 바로 내 자신속에 있는 것이지요. 때문에 나자신을 가
꾸고 키우고 내가정을 화목하게 돌보는 일이 가장 큰 불법의 실천입니다." 이같은 자신의 불교관을 그는 생활불교라 일컫는다.
필자가 그의 토굴을 찾아 그가 모시는 지장보살을 만나게 된것은 설날이었던 2월 4일이었다. 그의 토굴에는 마침 점심공양을 하는 사람들로 발을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가정이 모든 종교생활을 포함해 일상사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생활은 우리 인생에 있어 목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수단도 아니죠. 종교는 인생을 살찌우며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끌어 가는 생활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같은 인간적인 종교 생활속에 뿌리내린 종교 그리고 가정과 함께하는 종교, 이같은 종교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머리를 깎은 스님도 아니고 법을 깨친 높은 법사도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동호인 모임의 안내인일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제 뉴욕동포들은 함께 살아가는 도반이 된것이다.
"뉴욕동포들의 가장 큰 정신적 공허와 실체적 어려움은 '하면된다'하는 어찌보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저돌성에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화, 발전해 세분화, 정보화되는 시대에 있어 막무가내로 하면된다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군사문화의 팽배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좀 더 냉철하고 이지적이며 순리에 맞는 목표와 실천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저의 토굴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요즈음 매월 1, 3주 일요일이면 생활불교 연구모임이 열리곤 하는데 크게 광고하지 않았는데도 많이는 1백여명 가까이 몰려든단다. 자신의 토굴을 사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도회 명부라든지 신도회조직은 꾸리지 않고 있다.
그에게는 지장보살의 가피력으로 뉴욕이 아니, 나아가 온 미국 땅이 회향하고 천도해야 된다는 카다란 원력과 함께 구체적인 바람이 있다. FM 방송을 설립하는 일이다. 굳이 불교만을 고집할 생각도 없다. 특별한 수신기가 아니라도 자동차안에서건, 가정에서건, 직장에서 손쉽게 들을 수 있는 FM방송을 설립해 동포들에게 친근하면서도 생활적인 프로그램을 선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무수한 인생의 굴곡을 겪은 철저한 생활인이기도 하다. 빨치산 토벌대 책임자경찰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수한 죽음과 가까이 있는 틈에 남다른 영적인 세계와 접할 수 있었고 대학재학 시절인 1969년에 아예 절로 들어가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기도 했으며 용달차사업으로 큰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지금은 입적하신 전강스님, 구산스님 등 큰 스님들의 남다른 총애를 받아 불법과 가깝게 지냈던 그는 82년 서울에서 후암정사라는 사찰을 건립해 생활불교 운동을 펼쳐왔고 1985년에는 조계종에서 포교사로 정식 기록했다.
"몸이 건강치 못한 것을 아쉬워 말라, 몸이 건강하면 교만해져 일을 그르치기 쉽다. 가난한 것을 탄하지 말라. 부유해지면 나태해져 더 큰 것을 잃기 마련이다. 힘없음을 서러워 마라. 힘이 있으면 남을 해치게 될 뿐이다."
그는 「보왕삼매경」의 경구를 신조처럼 외우고 있다. 차법륜 법사는 동포들이 만나보면 유익한 사람이다. 그는 또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어줍지 않은 권위의식이 없다. ◇
卍 후암정사 주소 : 502 Glen Ave. Palisades Park, NJ 07650 ☎ 전화 (201) 592-6386
1992년 3월호, 미주현대불교 제 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