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할까
하희경
지인으로부터 부친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가야하는 자리인데 몸이 투덜거린다. 며칠 전, 서울에서 있었던 장례식에 다녀온 피로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짜증내는 몸을 달래가며 길을 나섰다. 강경 장례식장에 도착해 고인과 상주에게 인사드리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고인이 91세 노인이라 그런지 상주들도 크게 상심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다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서 “넌 받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주고 돌아다닌다.”며 나무라신다. 뜬금없는 말이라 쳐다보았다. 시누이가 어머니를 말리는 눈짓을 한다.
‘무슨 말씀이세요?’
“넌 아들 결혼식도 몰래 하고 부조도 안 받았으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쫓아다니느냐는 말이다.”
‘어머니, 누가 몰래 아들 결혼 시켜요. 외국에서 며느리가 임신했다니 서둘렀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인사 안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맨날 그렇게 속없는 짓만 하고 다니고….”
‘그래도 은빛이는 워낙 결혼식을 화려하게 하겠다고 작정하고 있으니, 걔는 부조 받을 일 있을 것 같네요.’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은빛이야말로 조용히 치우고 말아야지.”
“아이고 엄마 왜 그래. 은빛이도 결혼하면서 부조 받고 다 해야지.”
시누이가 나서서 말리는 바람에 대화는 끝났다. 손녀에게 함부로 하는 어머니 말씀에 또다시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다. 평생 당신 아들 외에는 사람 취급 안 하는 분이시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난 여전히 가시에 찔린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아들며느리들은 원래 그런 분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라는데 잘 안 된다. 무엇보다 내게 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딸까지 같은 취급을 하는 건 정말 싫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상이 편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은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어째서 며느리여야만 하는 건지. 부아가 나서 혼자 씩씩거리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시외할아버지의 큰딸로 태어나 귀여움 받고 자라셨다고 들었다. 다만 여자아이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당시 풍습에 따라 배우지는 못하셨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손이 귀한 집에 시집오셔서 아들 많이 낳으라는 요구를 받은 어머니는, 아들 여섯 딸 둘을 내리 낳으셨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안일만 하다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 밭일하는 게 전부였던 어머니는 누구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을까.
가난한 시골 살림에 일만 하신 어머니.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숱한 여자들에게 행해졌던 불합리한 일들을 어머니는 몸으로 겪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긴 세월 동안 당신이 보고 배운 대로 세상을 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어머니는 글을 몰라서,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구십사 년을 살아오셨다. 오직 집안의 평화를 위한다는 구실로 여자의 알 권리를 원천 봉쇄한 사회에서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나의 화는 방향을 잘못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난 속된 말로 마지막으로 부모 모시고 자식에게 버림당한다는 세대에 속한다. 그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설마, 그런 일이야 벌어지겠어?’라고 가볍게 넘겼지만, 현 사회는 분명하게 그 말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 나이쯤 된 사람들이 부모 모시는 건 당연한데, 자식에게 보살핌 받는 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걸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식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지 간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를 보고 사람들은 여자들이 살판 난 세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들은 아내에게 대리효도하기를 바라고,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온 방식을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과연 여자들이 살만한 세상인지 궁금하다. 딸이 나이 들면서 결혼이란 여자에게 어떤 건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 딸은 결혼하더라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지만, 딸에게 바라는 걸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머지않아 시집 보낼 딸을 둔 어미와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는 절대 같은 생각일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자라는 존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