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 2024년 4월 26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환청
오세영
온 길은 어머니의 질膣이지만
가는 길은
사랑하는 사람의 귓속 달팽이관일지도 몰라
내 고향 전라도 사투리로 길은 ‘질’이라 하고
귓구멍은 또
외이도外耳道라 하지 않던가
다비장을 치루던 그 때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와 한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던 당신
어디로 갔나 몹시 궁금했는데
아아, 자박 자박 걸어
내 귀 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구나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차마 어떻게
멀리 떠나갈 수 있으리
간지러워라
어제처럼 촉촉이 비 내리는 날은
자꾸 내 볼을 만지작거리고
심술구저라
오늘처럼 바람이 센 날은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 ㅡㅡㅡㅡㅡ 환청(幻聽)이 아닌 환청(还聽)이다. ‘헛보일 환幻’이 아니라, 원상태로 되돌아감을 뜻하는 ‘환还’이다. 생하고 멸하고.... 오고감의 순환이다. 환청, 환시, 환각 또한 마음이 일으키는 ‘상像’일 뿐, 세상만물은 치열하게 나름의 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비(荼毘)를 치루고, 실체가 사라졌다고 기억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고,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꽃피고, 새 울고, 뭇 생명들 깃들어 사는 숲의 계절과, 해와 달을 따라 흐르는 바람과 물, 일으키고 사라지는 생각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듯,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듣고도 듣지 못하고. 보고도 보지 못하는 마음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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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 환청 - 오세영 - 서울매일
온 길은 어머니의 질膣이지만가는 길은사랑하는 사람의 귓속 달팽이관일지도 몰라내 고향 전라도 사투리로 길은 ‘질’이라 하고귓구멍은 또외이도外耳道라 하지 않던가다비장을 치루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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