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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사
지은이: 길희성
펴낸곳: (주) 민음사
1984년 4월 30일 초판발행
1994년 2월 25일 펴냄(8쇄)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
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머리말
이 책은 인도철학의 간략한 사적 개관을 줌과 동시에 각 학파들의 철학사상을 인간적으로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졌다.
인도의 철학적 전통은 그 장구한 역사와 심오한 사색, 사상의 다양성과 영향력, 그리고
산출된 문헌들의 방대함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문화권에서 형성된 철학과도 비견할 만한
전통이다.
따라서 인도는 물론 서구라파와 일본의 많은 하자들의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있어서 인도철학의 연구라는 것은 지극히 미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불교가 우리 나라의 문화적 전통의 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더욱더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록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근본적 관심 및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인도
고유의 사상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불교사상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인도철학사를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영어로 된 참고서적들을 교재로
소개하면서 필자는 늘 양심의 가책과 미안함을 느끼곤 했다. 이제야 겨우 대우재단의
도움으로 미흡하지만 한 권의 책을 펴내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워낙 방대하고
난해한 인도의 철학적 문헌들을 어느 정도나마도 철저히 섭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일생을 두고 과제로 삼을 일임에 틀림없다. 천학비재한 필자로서 인도철학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인 저서를 쓴다는 것은 너무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자연히 이 책의 어느
부분은 필자가 좀더 잘 아는 분야이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썼고 다른 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
이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인도철학에 관하여는 서구어로 많은 훌륭한 개설서와
학파별 입문서들이 있으므로 이들로부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워낙 시급한 과제이기에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우선 출자를 냄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전문가들의 질정을 받아가며
계속해서 보완과 수정에 힘쓸 것을 약속한다.
전통적 인도인들의 사고가 다분히 비역사적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로서, 이것은
자연히 그들의 철학적 전통에도 반영되고 있다. 따라서 인도철학을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중요한 사상가와 문헌들의
연대에 대하여부터 많은 이견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그들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만한 충분한 자료가 주어져 있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론 인도는
역사가 없는 나라라든지 인도에 대하여는 사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
코
아니다. 그러나 인도의 철학사상을 시대적 추이에 따라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적 사회
일반에 연결시켜 이해하거나 서술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며 지금까지 이러한 면에서
만족할 만한 저서란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이 책에서 각 철학 학파가
형성되기 이전까지의 시기는 사상의 현저한 시대적 변 천을 언급하면서 서술했고, 사사의
역사적 배경이 비교적 뚜렷치 않은 학파성립 이후의 시기부터는 (제2부: 인도 철학의 체계
화)
주로 학파들의 체계화된 철학적 내용에 중점을 두어 서술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이미
언급한 대로 사적 개관과 철학입문의 구실을 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4부 현대의
인도사상은 매우 간략하게 취급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의미에서 인도의
<현대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직도 별로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세기경부터
인도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인도 인구의 5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사상사는 본서에서 거의 제외했음을 언급해 둔다.
끝으로 이 책을 쓰도록 연구비로 도와준 대우재단에 감사를 드리며 또한 원고정리로부터
색인을 만드는 일에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대학원생 조유숙양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한다.
1984년 2월 22일
길희성
인도철학사/차례
머리말
제1부 인도철학의 형성
제1장 인도철학의 성격
1. 인도철학의 이해
2. 인도형이상학의 성격
3. 인식론과 논리학
4. 인도철학의 발전과 시대적 구분
제2장 베다의 철학사상
1. 베다 문헌의 성격
2. <리그 베다>의 철학적 사유
3. 브라흐마나의 철학적 의의
제3장 우파니샤드의 철학
1. 우파니샤드의 성격
2. 초기 우파니샤드의 철학
3. 중후기 우파니샤드의 철학
제4장 비파라문계 철학의 발전
1. 역사적 배경
2. 육사외도
3. 챠르바카의 철학
4. 원시 쟈이나교의 사상
5. 원시불교사상
제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1. 부파불교의 전개
2. 상좌부의 철학
3. 설일체유부의 철학
4. 경량부와 독자부
5. 대중부의 불교사상
제6장 파라문교의 재정비
1. 파라문교와 불교
2.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신앙
3.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
4. <해설법품>에 나타난 철학사상
5. 파라문적 사회논리의 확립
제2부 인도철학의 체계적 발전
제7장 상키야 . 요가 철학
1. 인도철학의 체계화
2. 상키야 . 요가철학의 전통
3. 물질
4. 정신
5. 해설론
제8장 승론학파의 철학
1. 승론철학의 전통
2. 육범주
3. 신, 부가견력, 해탈
제9장 정리학파의 철학
1. 정리철학의 전통
2. 지식의 의미와 방법
3. 지각의 이론
4. 추론의 이론
5. 비교와 증언
6. 자아, 신, 해설
제10장 대승불교의 전개
1. 대승불교의 흥기
2. 전기의 대승경전들
제11장 중관철학
1. 용수와 중관철학의 전통
2. <중론>의 철학
제12장 후기 대승경전들의 사상
1. 역사적 배경
2. 유식사상계통의 경전
3. 여래세사상의 계통의 경전
4.<릉가경>과 <대승기신론>
제13장 유가행철학
1. 유가행철학의 전통
2. 세친의 유식철학
제14장 세친 이후의 유식철학
1. 진나와 불교 인식론
2. 법정의 불교 논리학
제15장 쟈이나 철학체계
1. 쟈이나 인식론
2. 쟈이나 형이상학
제16장 미맘사학파의 철학
1. 미맘사철학의 전통
2. 미맘사 인식론
3. 미맘사 형이상학
4. 해설론
제17장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1. 샹카라 이전의 베단타철학
2.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3. 샹카라 이후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제3부 교학적 철학
제18장 한정불이론적 베단타철학
1. 한정불이론의 종교적 배경
2. 라마누자의 형이상학
3. 해설론
제19장 비슈누파의 베단타철학
1. 라마누자 이후의 인도철학의 경향
2. 마드바의 이원적 베단타철학
3. 님바르카의 이이불이론
4. 발라바의 순정불이론
5. 챠이타니아 계통의 베단타철학
제20장 쉬바파의 철학
1. 쉬바파 철학의 종교적 배경
2. 샤이바 싯단타의 철학
3. 재인식파의 철학
제4부 현대의 인도사상
제21장 현대인도사상의 역사적 배경
1. 이슬람교와 힌두교
2. 영국의 통치와 힌두교의 개혁운동
제22장 현대의 인도철학
1. 오로빈도의 철학
2. 라다크리쉬난의 종교철학
부록
1. 인도철학의 실재관
2. 인도인의 전통적 우주관
3. 인도철학 및 정치.문화사 연표
한글.한자 색인
로마자 색인
제1부 인도철학의 형성
제1장 인도철학의 성격
1. 인도철학의 이해
철학은 경이감에서 출발한다고 흔히 말하지만 철학이란 단순히 인간의 순수한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영위되는 것은 아니다. 철학적 사유의 배후와 근거를 살펴볼 것 같으면,
철학이란 삶의 궁극적 인 문제들과 근본적인 관심사들의 해결을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모색
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 온 삶의 문제들과 관심사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처해 있는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상황에 따라 많은 차이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인도철학도 물론 인도인의 전통적 사회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추구해 온 삶의 가치와
이상을 떠나서 이해될 수 없다.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4가지
가치 purusartha를 말해 왔다. 즉 욕망 kama, 부 artha, 의무 dharma, 그리고 해탈 moksa이
다,
이들 네 가지 가치는 모두 인간존재 자체가 필연적으로 지니고 요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욕망이란 인간의 본능적인 성적 즐거움과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며, 부란 행복한 삶
의
조건이 되는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하며, 의무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유한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윤리적인 질서를 가르키며, 해탈이란 인간이 유한한 삶을 향유하려는 종교적
갈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인도철학을 연구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은 인도철학의 지배적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해탈의
추구에 있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즉, 어떻게 하면 인간이 고통스럽고 유한하고 속박된
삶을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도인의 철학적 사유의
배후에 깔려 있는 최대의 관심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도철학은 강한 종교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종교적이라고 하는 말은, 서양의 전통에서처럼
어떤 초월적인 신에 의하여 주어지는 초이성적인 계시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활동을 하는 궁극적 목표가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조화하는 바와 같이 서양에 있어서는 철학은 희랍의 문화전통에서 유래하였으며,
종교는 히브리적 성서적 전통에 기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철학과 종교 사이에
항시 긴장관계가 존속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전통의 근본적 이중성을 지니지 않는
인도에서는 철학과 종교 사이에 그러한 대립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종교는 그 근본성격상 어떤 초이성적 신의 계시에 근거를 둔 신앙의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지혜와 신비적 체험에 바탕을 둔 경향이 강하므로, 서양에서 말하는 소위
신앙과 이성 faith and reason의 대립이라는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할 것 같으면 인도의 종교는 철학적 종교요,인도의 철학은 종교적 철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인도인의 해탈에 대한 갈망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인간
의
삶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고사함이 중요하다.
인도인은 인간의 삶을 윤회 samsara하는 삶이라고 이해했다. 인생은 지금의 삶이 아니라
식물의 세계와 같이 계속해서 생사의 과정을 되풀이하며 여러 형태의 삶을 영위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행한 행위 karma는 뿌려진 씨 bija와 같아서 반드시 그 열매 phala,
즉 결과를 보고야 말며, 우리가 행한 무수한 행위는 그 결과가 현세에서 다 얻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또 하나의, 혹은 하나 이상의 내세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인의 인생관에 의할 것 같으면, 삶과 죽음은 두 개의 반대 현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죽음으로써 생 자체나 혹은 생에 대한 책임이 회피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의
반대는 또 하나의 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적 인간관은 대체로 이분법적 인간관이었다. 즉 사람은 영혼과 육체 soul and
body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인도의 인간관은 무아설 anatman을 주장하는
불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인간은 세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삼분법적인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인은 "우파니샤드 Upanisad" 이래로 인간에게는 불생불멸의 영원한
자아 atman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 왔다. 이 참자아는 윤회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하는 현상적 자아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이 참자아를 현상적 자아로부터 명확하게
구별하여 혼동하지 않고 인식하는 것이 인도인에 있어서 최고의 철학적 지혜로 간주되어
왔다. 한편 현상적 자아라는 것은 몸과 마음 manas 복합체로서 우리들의 상식적. 경험적
세계의 자아를 의미한다. 인도철학은 몸과 마음 사이의 어떤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양에서와 같은 이원론적 인간관은 발달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참자아인
본질적 자아와 현상적 자아, 혹은 형이상학적 자아와 형이하학적 자아와의 구별이 결정적으
로
중시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윤회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기의 참자아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현상적인 자아, 즉 거짓된 자아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참자아의 성격, 그리고 참자아와 현상적 자아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인도의 철학들이 가기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이 두 가지 자아의 혼동된 상태를 인생의 최대의 문제로
삼고 있음에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 참자아가 현상적 자아의
영향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도철학의 근본적인 종교
적
관심사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실재의 세계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는 인도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2. 인도형이상학의 성격
럿셀 Russel은 그의 '서양철학사'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세계의 성격과 구조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가능하다. 형이상학에 있어서
발전이라고 할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러한 가설들이 점진적으로 다듬어지고 그 함축되었던
바가 전개되어 나오고, 경쟁이 되는 가설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반대들에 응수하기
위하여 그 가설들이 각각 재구성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들의 하나 하나에 따라서
우주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상상적인 즐거움이며 독단주의에 대한 해독제이다.
더우기 이들 가설들이 하나도 증명될 수 없다 하여도 각자의 가설들을 그 자체와, 또한 다른
알려진 가설 등과 모순 없이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발견하는 것은 진정한 지식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형이상학에 대한 럿셀의 견해를 인도철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이란 우주의 궁극적 실재 내지 세계 전체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해석이며, 이 해석은 하나의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이런
해석의 체계가 문자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이이비과학과 같은 역할을 해왔지만, 오늘날
형이상학체계를 과학적 진리나 인식으로 인정하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어떤
철학자들처럼 형이상학을 무의미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도 엄격히 따지면 형이상학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는 문자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소치인 것이다. 과학적 지식이란 어디까지나
경험적으로 실증되는 세계 내지 세계의 부분적 이식에만 국한되는 것이며, 형이상학은
근본적으로 이와는 의도가 다른 것이다. 형이상학은 인간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며 생
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세계 전체에 대한 지적 파악 내지 실재의 이해를 제공하
는
데 그 근본관심이 있는 것이다.
인도인의 형이상학적 사고는 전에 언급한 대로 절대적 자유와 해탈이라는 이상을 앞에
놓고서, 이간존재와 세계의 모습이 어떠하기에, 혹은 실재란 것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절대적
자유가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종교적 관심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1) 앞으로 우리가
고사하겠거니와 인도의 철학들은 이러한 관심하에서 세계의 궁극적인 실재, 이 궁극적 실재
와
현상세계와의 관계, 현상세계에 얽매여 있는 이간의 모습, 또 어떻게 하면 이 현상세계를
극복하고 영원한 실재의 세계에 접하게 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각기 제나름대로의 견해를
전개하는 것이다.
3 인식론과 논리학
인도철학이 이러한 강한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형이상학적 이론을 전개했다 하여 비판적인
인식론적 성찰을 무시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사실 그와는 반대로 인도의 대부분의
철학파들은 자기들의 형이상학적 세계해석을 뒷받침시키기 위해 그것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닌 인식의 문제를 항시 다루어 왔으며 올바른 논리의 전개에 대해서도 서양철학 못지않게
관심을 지녀 왔다. 그리하여 무엇이 인식의 타당한 방법 pramana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하여
각 학파들은 제나름대로 학설을 제시하였다. 대체로 감각 기관을 통한 직접경험 pratyaksa과
이에 근거한 추론 anumana, 그리고 믿을 만한 타인의 증언 sabda, 특히 베다 Veda의 계시적
권위 등을 주요한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로서 흔히 인도의 철학은 그것을 인정하는 경건한 정통 철학과 astika
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예를 들면 불교와 쟈이나 Jaina교와 같은, 비정통학파 nastika로
구분되기도 한다. 타당한 인식의 방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떤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견해를 달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각 학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인도철학은 한편으로는 종교적 관심에 입각한 형이상학적
사변의 깊이를 지녔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식론과 논리학의 엄격하고 비판적인 논증
을
통하여 형이상학적 사변에 객관적 진리성을 뒷받침시키고자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4. 인도철학의 발전과 시대적 구분
인도철학은 크게 보아 4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B.C.약 1500년부터 B.C.200년
경에 이르는 형성기이다. 이 시기는 우선 인도의 최고성전인 베다가 형성된 시기이다. 특히
베다의 가장 철학적 부분인 우파니샤드 Upanisad는 후세의 체계적인 철학파들에게서 발견되
는
중요한 사상들이 거의 모두 담겨진 문헌으로서 베다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대
인도문화의 총집합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Mahabharata>도 대체로
B.C.200년경에는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안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철학적 사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인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Gita'는 힌두교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유명한 성전으로서, 비록 어떤 체계화된 질서있는 논리에 의거
한
철학적 저서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철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시기는 또한
불교나 쟈이나교와 같은, 베다와 바라문 Brahmana 계급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비바라문적
철학이 등장하여 정통 바라문교를 위협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인도의 최초의
통일왕조인 마우리왕조(약 320-183 B.C.) 때에는 불교는 아쇼카왕(269-232 B.C.)의 귀의를
받아 인도전성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까지 퍼지는 하나의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다.
인도철학의 제2기는 B.C. 200년경부터 시작하여 A.D. 1000년경에 이르는 체계적 발전기이
다.
불타의 교리적 이해의 차이들은 철학적으로 다양화되고 심화되어 마침내 20여개의
부파불교들의 대립을 보게 되었으며, 그 중의 유력한 부파들은 자기의 철학적 입장을
"논 abhidharma"의 형식으로 체계화시키게 되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좌부
Theravada와 설일체유부 Sarvastivada의 논들이다.
이러한 불교의 철학적 활동에 자극을 받아 바라문교내에서도 다양한 사상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체계화되어 표현되게 되었다. 이들은 각기 자기의 철학적 입장을 "경 sutra"의
형식으로 간략하게 기술했다. 미맘사 Mimamsa 학파의 "미맘사경 Mimamsa-sutra",
베단타 Vedanata 학파의 "브라흐마경 Brahma-sutra", 나야 Nyaya 학파의 "나야경
Nyaya-sutra". 바이셰시카 Vaisika 학파의 "바이셰시카경 Vaisesika-sutra", 샹키야 Samkhya
학파의 "상키야송 Samkhyakarika", 요가 Yoga 학파의 "요가경 Yoga-sutra" 등은 모두 이
체계화시대의 전반기에 씌어진 문헌들로서 소위 정통육파철학의 근본 경전들인 것이다. 이들
철학적 경전들은 그 내용이 지극히 간략하고 함축적이어서 그 자체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자연히 그들에 대한 주석서들이 씌어지게 되었으며, 이들 주석서들은 또한 다른
많은 복주를 산출하게 되었다. 인도철학의 이론적인 발전은 이러한 주석적 활동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철학이 다분히 개인중심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좋은
대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인도의 전통적 철학자들은 아무리 자기가 새로운 사상을 전개한
다
할지라도 반드시 자기가 속한 학파를 중심으로 하여 그 학파에서 권위로 여기고 있는
경전이나 주석을 해석하는 형식을 취하였던 것이다. 인도인은 본래부터 역사의식이 약하다고
흔히 말하거니와 이와 같이 전통을 중시하는 학파중심적인 철학활동은 인도의 철학적
사상들의 무명성과 비역사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인도철학사에 있어서 대부분의
중요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저서들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도철학의 제2기에는 또한 대승불교가 흥기하여 많은 대승경전들을 낳았고 이와 더불어
대승수학도 발달되어 중관 Madhyamika, 요가행 Yogacara과 같은 학파들이 성립되었다.
이들 대승불교의 철학들은 파라문의 정통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도철학의 제3기는 11세기부터 18세기 처에 이르는 기간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이 시기는
인도가 이슬람교도들의 침공을 받아 그들의 정치적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때이다. 불교는
이미 인도의 본토에서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으며 베다 종교와 사성계급제도를 기반으로 한
정통바라문교는 토착적인 여러 종족들의 종교적 관습과 신앙에 습합되어 현재 우리가
"힌두교 Hinduism"라고 부를 수 있는 포용적이고 대중적인 종교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비슈누 Visou신과 쉬바 Siva신의 신앙운동이 인도의 전역에 성행하게 되었으며,
철학도 자연히 그 영향을 받아 다분히 교파적인 신학적 구원론의 성격을 띠게 되였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제2기 체계적 발전기의 각 학파들이 계속해서 철학적 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주석서와 입문서 내지 개론서들을 산출했으나, 인도철학의 창조적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18세기부터 본격화된 영국의 인도지배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인도철학의 제4기로 잡을 수 있다. 이 시기는 인도의 지성인들이 서구라파의 사상과
학문에 접하여 그들 자신의 종교적, 철학적, 문화적 전통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 시기로서,
이에 힘입어 힌두교의 개혁운동도 활발히 진행되었고 인도철학의 세계관을 외부세계에
소개하는 운동도 전개되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아직 뚜렷하게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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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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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베다의 철학사상
1. 베다 문헌의 성격
인도에 있어서 철학적 사유의 기원은 힌두교의 최고성전이며 대부분의 정통 철학학파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는 베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다 문학을 산출한 사람들은 서력기원전
약 1500년경부터 인도의 서북부를 침입하여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새로운 삶의 근거를 마련한
아리안 Aryan족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지금의 코카사스지방의 북쪽 초원지대에서 살던
유목민으로서 소위 인도유럽 Indo-European 언어 계통의 종족들 중의 일부였다.
이들 인도유럽 종족들은 서력기원전 약 2000년경에 초원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서쪽으로 간 종족들은 지금의 유럽의 제민족을 형성하였으며 동쪽으로 이동한
아리안족들은 한편으로는 이란지방에 정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을 통하여
인도의 서북부를 침입하여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이륜마차를 타고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들고 싸우는 씩씩한 전사들로서 약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오하지방 Panjab을 점령하고
베다문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들의 언어는 산스크리트 Sanskrit어로서 인도유럽계통의
언어에 속한다.
베다는 물론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대략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A.D 약 200년 전후로 추정된다. 베다는 원래 고대 인도인들에 의하여 신에 대한 예배와
제사의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신에 대한 제식들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그
제식들을 주관하는 직분도 4그룹(hotr, udgatr, adhavaryu, brahman)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베다도 이 그룹들에 의해 사용되는 용도에 따라 "리그 베다 Rg Veda", "야주르
베다 Yajur Vwda", "아타르바 베다 Atharva Veda"의 4종으로 구별되어 집성되게 되었다.
이 중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또 어느 정도의 철학적 가치를 지닌 것은 "리그 베다"
이며, "아타르바 베다"에서도 간혹 철학적 사변을 찾아볼 수 있다.
각 베다는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된 결과 자연히 그 안에 가기 시대의 추이를 반영하는
여러 층의 문헌이 누적되게 되었다. 따라서 상기 4종의 베다는 각기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주로 신들에 대한 찬가와 기도인 만트라 mantra를 수집한 본집 Samhita이고, 둘째는
제의의 방식과 의미들을 토의하고 설명하는 산문으로 된 브라흐마나 Brahmana이며, 이
브라흐마나의 끝에 소위 밀림서 Aranyaka와 철학적 내용이 가장 풍부한 우피니샤드
Upanisad가 부록처럼 담겨 있다. 바라문교의 전통에 의하면 앞의 두 부분은 주로 제의를
중심으로 한 인간의 행위와 의무가 주요 내용이므로 "행위편 Karma.kanda"이라고 불리며,
뒤의 두 부분은 철학적 내용이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다고 하여 "지식편 Jnana.kanda"이라고
부른다. 실제에 있어 우파니샤드는 인도의 철학사상의 원천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고전이며,
베다의 맨 끝에 있다고 하여 베단타 Vedanta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인도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본집은 시인들이 지었으며 브라흐마나는 사제들의 산물이며, 우파니샤드는
철학자들로부터 왔다고 말한다. 각 부분의 특징을 잘 들어낸 말이라 하겠다. 아라냐카
Aranyaka는 브라흐마나의 제사 중심적 사상에서 우파니샤드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대표하는 문헌으로서 그 성격 역시 뚜렷하지 않았으며 종종 브라흐마나나
우피샤드와 구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제 각 부분에 나타난 철학적 사유를 고찰해 보
자.1)
1) '베다'라는 말은 따라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협의로 사용될 때에는 본집의
부분만을
의미하나 광의로는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를 모두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우선
여기서 좁은 의미로 사용하기로 한다.
2 "리그 베다"의 철학적 사유
고대 인도인들은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무한한 신비감과 경이감을 가졌다. 그들은
자연현상을 현대인들이 보는 것처럼 엄격한 인과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기계적인 체계로
본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신비스러운 힘에 의하여 지배되는 살아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신비스러운 자연현상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들은 각 현상의 배후에 어떤
살아있는 인격적인 힘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기도와 찬양과 제사를 통해 이 힘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려 했다. 이러한 인격화된 자연의 힘들이 "리그 베다"의 1028개
송가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러 신들인 것이다. 이 신들은 자연세계에 있어서의
그들의 활동
영역에 따라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즉, 우주 질서의 보호자라고 불리우는 바루나,
하늘의 신 댜우스, 태양의 신 미트라와 수리야 등과 같은 하늘에 속하는 신들, 천둥과
폭풍의 신 인드라, 폭풍의 신 마루트, 바람의 신 바유와 같은 공중을 장악하는 신,
그리고 제사 때 없어서는 안되는 불의 신 아그니, 제주 소마신, 땅의 신 프르티비와
같은 지상의
신들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신들 이외에도 베다의 시인들은 인간의 삶속에서 신비한
현상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인격신화하여 찬양을 했다. 예를 들어 언어의 신 박이나
기도의 주 Brhaspati와 같은 존재들이다. 베다인들은 생물과 무생물, 인격과 사물,
정신과 물질,
실체와 속성이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세계관을 갖고 살았다고 할 수 있다.(2)
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자연의 세계는 우발적이고 무질서한 세계가 아니라 일정한 규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베다의 시인들은 인식했으며 이 우주의 법칙성을 "르타"라는
개념으로 표시했다. "르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동사로 "간다"는 뜻을 지니는데,
사물들이 자연적으로 취하는 어떤 일정한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중국의 도의 개념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겠다.이미 언급한 바루나신은 바로 이 우주의 질서 및 인간행위의 도덕적 질서를
관장하고 있는 신으로서 고대 인도인의 상당한 철학적 추상적 사고력을 나타내는
신이라 하겠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리그 베다"에서 바루나의 숭배는 그렇게 성했던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아리안족들의 전쟁의 신으로 간주되는 폭풍의 신 인드라나 혹은 제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불의 신 아그니가 더욱 많은 베다인들의 종교적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베다에 있어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와 같이 세계를 여러 힘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는 다신교적 사고방식 외에 이미 세계의 제현상 내지 힘들의 배후에 있는
어떤 통일적인 존재의 원리에 대한 의식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 통일적 원리는
프라쟈파티나 비슈바카르만과 같이 세계의 창조신으로서 이해되기도 하였고, 또는 아무런
인격적 신의 성격도 지니지 않은 추상적 , 형이상학적 개념인 일자 'Tad Ekam' 즉 That
One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프라쟈파티는 '생물의 주'라는 뜻을 지녔고, 원래는 다른
신들의 칭호로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독립적인 창조의 신으로서 널리 숭배되었으며,
비슈바카르만은 '모든 것을 만든 자' 라는 뜨스오 역시 인드라나 태양신들과 같은 신들의
별칭이었던 것이 독립적으로 인격화되어 세계창조의 신으로 숭배되게 된 것이다.
한편, "리그 베다"에 나타난 일원론적인 형이상학적인 사유의 가장 좋은 예는 '창조송
Hymn of creation'이라고 불리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시이다.
태초에 유도 없고 유가 아닌 것도 없었다. 공기도 없었고 그 위의 하늘도 없었다 -
사도 그때는 없었고 불사도 없었으며 밤이나 낮의 표징도 없었다. 한 사람만이 그 자체의
힘에
의하여 바람도 없이 숨쉬고 있었고, 그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 어둠이 어둠에
가리워 있었고 어떠한 표징도 없이 이 모든 것이 물이었다. 처음에 그 일자속으로 욕망이
들어갔다. 생각의 산물, 그 최초의 씨, 현인들이 마음에 지혜로서 찾으매 비유속에 유의
연결을 발견했다 - 창조적 힘과 비옥한 힘이 있었고, 아래에는 에너지 위에는 충동이
있었다 - 제신도 이 세계의 창조후에 태어났다. 그러니 누가 이 세계가 어디로부터
생겼는지 알겠는가? - 가장 높은 하늘에서 세계를 살피는 자, 그만이 알겠지. 아니 그도
모를런지도 모른다.
이 창조송은 그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불분명한 점들이 많이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일자란
어떤 인격적인 의지를 지닌 신이 아니며 이 세계도 신의 창조에 의했다기 보다는 이
하나의 최초의 원리로부터 전개해 나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제신들은 이 세계의
창조이후에
생겼다고 언급함으로써 다신교적 세계관을 분명히 초월하고 있다. 물론 이 일자라는
형이상학적 실재가 우파니샤드에서처럼 아직 완전히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은 '숨','욕망' 등의 표현에 의하여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자가
열에 의하여 발생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일원론적 사고가 철저하지 못함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리그 베다"의 다른 한 곳에서는 말하기를 ' 하나의 실재를 시인들은
여러 가지로 부른다 '(4) 고 하여 제신들이 보다 더 궁극적인 실재의 다양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원론적인 자유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베다의 신들은 우주의 자연질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화복과 도덕질서까지 관장한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인간의 제사의 행위와 도덕적 행위의 선악에 따라 적당한 상벌을 내린다.
그러나 이 도덕의 질서는 어디까지나 신과의 관계에서 이해되며, 우파니샤드 이후에
있어서처럼 엄격한 비인격적인 인과율의 성격을 지닌 카르마의 법칙은 아니다.
인간은 그 행위의 결과를 사후의 세계에서 얻는다는 사상이 나타나 있으며, 선한 사람은
천상에서 신들과 함께, 혹은 조상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베다인들은
믿었다. 한편, 인간은 죽으면 그의 눈은 태양, 숨은 바람, 말은 불, 귀는 사방, 마음은
달에로 돌아간다고 하는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는 사상도 찾아볼 수 있다.
영혼의 불멸을 믿은 것 같으나 영혼에 관한 분명한 개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이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끝없는 윤회의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상이나
그에 수반되는 해탈의 이상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대체로 베다인들의 세계관은 낙천적이며
현세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브라흐마나의 철학적 의의
브라흐마나는 본집을 설명하고 해석한 주해서로서, 주로 제사의 방식과 의미에 관한
것을 내용으로 하는 문집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기원전 900년부터 700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그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방대하고 내용상 가장 중요한
것은
'야주르 베다'에 속해 있는 '샤타파타 브라흐마나'이다. 브라흐마나는 그 내용상, 제사의
방식와 규범을 취급하는 부분인 의궤 즉 Vidhi와, 본집의 여러 송가Mantra의 의미, 어원
및 제사의 기원과 전설 등을 말해 주는 부분인 석의로 구분된다.
브라흐마의 사상 가운데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제사의 만능화이며, 이
제사가 모든 사상적 관심의 촛점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강화되어 간 파라면, 즉 사제계급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본래 제사는 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거나 혹은 신들의 후의를 소원하는, 어디까지나
신 중심의 행위였지만, 제사의식이 점점 전문화되고 정교해짐에 따라 제사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제사 자체의 효능을 믿는 나머지 신들조차도 제사없이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신들이 아니라 바로
올바른 제사행위 자체이며, 따라서 제사는 우주적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정통철학학파 중의 하나인 푸르마 미맘사학파는 이러한
사상의 계승자로서, 신의 존재조차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우주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상은 '리그베다'에도 이미 나타나 있다.
예컨데 '리그베다' 10권 90송에는 신들에 의하여 한 우주적 인간이 제물로 드려짐으로써
온 세계 전체가 생겨났다고 한다. 즉 그의 눈으로부터 해, 마음으로부터 달, 입으로부터
안드라와 아그니신, 그리고 숨으로부터 바람의 신 바유, 그의 배꼽으로부터 공중권,
머리로부터 하늘, 발로부터 땅, 귀로부터 사방이 생겼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다 자체와
사성계급도 이 제사로 인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즉 바라문은 그의 입이었고 크샤트리아는
그의 두 팔, 바이샤는 그의 두 넙적다리, 그리고 슈드라는 그의 발이었다고 한다. 이 송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지만, 무엇보다도 최초의 제사행위 자체가 우주질서의
근본이 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흐마나에서는 이런 제사주의적 우주관이
더욱더 발전하여 제식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우주의 여러 신들이나 힘들과
상징적으로 상응시켜서, 제식이 우주질서 자체의 근본이 되며 제식의 힘이 우주의 힘 자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제식을 주관하는 바라문계급도 신들과 동등한 위치의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샤타파타 브라흐마나'는 말하기를, "신에 두 종류가 있다. 신은
신이며, 학식에 있어서 베다에 통효한 바라문은 인간적 신이다"라고까지 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제사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인도철학에 있어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두 가지
사상이 싹트게 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 브라흐만이라는 우주의 통일적 원리로서의 실제를 나타내는 개념의 전개이다.
이 개념은 베다에서 이미 발견되며, 송가나 기도 내지 주술의 말, 혹은 그 말에 들어 있는
신비한 힘을 뜻했다. 그러나 제식의 만능을 강조하는 브라흐마나에 와서는 제사에서
사제들이 사용하는 말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이 말은 제사의 핵심을 이루는 제사의 힘의
원천이기에 동시에 온 만유와 제신들의 배후에 있는 근원적인 실제 내지 힘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샤타파타 브라흐마나'는 말하기를, "참으로 최초의 이 세계는 브라흐만이었다.
그것이 신들을 창조했고, 그 후에 그 신들로 하여금 이 세계들에 오르게 했다. 즉, 아그니는
땅 위에, 바유는 공중에, 수리야 하늘에" 즉 브라흐만은 신들과 구별되며 그들의 힘의
근원이 되는 더 궁극적인 힘 내지 실재인 것이다. 그리고 이브라흐만은 동시에 제사를
주관하는 바라문계급에도 내재하고 있는 신비적인 힘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브라흐만의
개념은 우파니샤드에 와서 더욱더 심화되고 발전되어 인도철학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제사주의적인 브라흐마나 사상에서 두 번째로 유의할 점은 엄격한 행위의 인과율에 대한
믿음이다. 브라흐마나에서 행위라 함은 주로 제사의 행위로서, 올바른 방법으로 행한
행위는 자연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신의 뜻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그 결과를 초래하게끔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리그베다'에서 자연의 법칙을 의미하던 르타의 개념은
브라흐마나에 와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제사의식과 그 제사행위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결과를 필연적으로 초래하게끔 하는 행위의 법칙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인도철학에
있어서 절대적인 대전제이다시피 한 카르마(업)의 법칙에 대한 믿음은 이런 브라흐마나의
제사주의적인 사고에서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사주의적인 사상 외에도 브라흐마나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발견된다.
예를 들면 세계를 성립시키고 있는 근본 오원소설의 시초를 볼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도 정신과 육체로 파악하여 구분하고 있으며 전자를 '아트만(자아)',
'마나스(의근)', '프라나(숨)'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 개념들에 대한 사유는
브라흐마나 이후에 더욱더 발전되어 각기 특수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지만, 그 시도가
브라흐마나에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트만과 같이 중요한 개념이 숨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매우 의미있는 일로서, 우파니샤드에도 아직 이와 같은
사상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3장 우파니샤드의 철학
1 우파니샤드의 성격
베다와 브라흐마나에서 이미 보이기 시작한 고대 인도인에 의한 세계의 통일적 원리에
대한 사유는 우파니샤드에 와서 그 절정을 이룬다. 눈에 보이는 다양한 경험적 현상을
궁극적인 실제로 보지 않고 그 근저에 보이지 않는 통일적인 실제를 탐구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사유이다. 이 사유는 종교적으로는 인격화된 자연현상으로서의 제신들의 여러 형태나
성격을 초월하여 그들의 배우에 있는 보다 더 근본적인 하나의 신에 대한 추구로 나타난다.
여러 특수한 성격과 모습을 지닌 제신들은 아직도 현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유한한
존재들로서,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리를 추구하는 우파니샤드 철인들의 마음을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목표는 그것을 앎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단 하나의 근원적인 실재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이런 고대 인도인의 형이상학적 정열의 산물로서, 그 후의 인도철학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다의 끝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베단타(베다의 끝 혹은 목적)라고도
불리며, 육파철학의 하나인 베단타 철학의 기반을 이룰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파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베다는 그 내용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 특히 제사의 의무와 규정을
다루는 행위편과, 형이상학적 지식을 다루는 지식편으로 구별되어 왔다. 우파니샤드는
이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우파니샤드에는 형이상학적 사유 이외에도 아직도
브라흐마나에서와 같이 제의에 관한 여러 가지 잡다한 사상들이 섞여 있지만, 그 독특한
철학적 의의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결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항시 변하는 유한하고 고통스러운 현상세계 자체를 초월하여 영원한 실재에 도달하려는
새로운 종교적 갈망에 입각한 것이었다. 우파니샤드에 와서는 고대 인도인들은 인간의
운명이란 카르마의 법칙에 의하여 윤회의 세계에서 끝없는 생사를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풀벌레가 한 잎사귀에서 다른 잎사귀로 옮겨가듯이
사람은 한 생이 끝나면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
철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여야 이런 목적없는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생사의
되풀이에서부터 해방되어 절대적인 삶을 얻을 수 있는가에 촛점을 모으게 되었다.
이러한 끝없는 생사의 되풀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올바른 행위란 그것이
도덕적이거나 제사의 행위이거나간에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행위는
어떠한 것이든간에 반드시 그 결과를 초래하게끔 되어 있어, 아무리 선한 행위라 할지라도
우리를 계속해서 윤회의 세계에 속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따름이기 때문이다. 선한
업보를 받는다 해도 이 현상세계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철인들은 절대적인 삶의 발견을 위해서는 행위가 아니라 우주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실재
자체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서 브라흐마나의 제사를
중심으로 한 행위주의적 철학이 극복되게 되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경험적인 현상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아는 신비한 지식이었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철인들은 이 신비한 지식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전달하지 않았고, 스승과 제자의 특별한 관계 아래서 조심스럽게 성스러운
지식으로서 전수했던 것이다. '우파니샤드'란 말은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지닌 말로서,
선생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를 통하여 비의적인 지식을 전수했다는 데서 주어진
이름이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진리탐구는 주로 대화의 형식으로 전개되며, 우리는 이
대화들을 통하여 우파니샤드 철인들이 세계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철학적 정열과
영원한 삶을 바라는 종교적 갈망을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에 참가하는
자들은 바라문계급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크샤트리아나 혹은 심지어 슈드라계급의 출신들과
여자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파니샤드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된 다양하고 방대한 문헌으로서, 현재
우파니샤드라는 이름을 지닌 문헌은 약 150종 내지 200여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브라흐마나에 소속되어 있는 고전적인 주요 우파니샤드는 약 13편으로서,
시기적으로 보아 약 B.C 700년으로부터 A.D 20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며, 따라서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사상적 흐름들이 발견되고 결코 하나의 일관된 사상이 지배하고 있
는 것은 아니다. 우선 '브르하드아라냐카 우파니샤드'와 '챤도기아 우파니샤드'로 대표되는
초기 우파니샤드의 중심사상을 고찰하기로 하자.
2 초기 우파니샤드의 철학
우파니샤드의 궁극적인 지식은 브라흐만을 아는 지식이다. 브라흐만은 원래
브라흐마나에서 제사에 쓰이는 성스러운 말 혹은 이 말의 성스러운 힘 등을 나타내는
말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우파니샤에 와서는 이 개념이 더욱더 형이상학적으로
발전하여, 제의와 관계된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우주의 궁극적 실체 내지 힘을 의미하는
말로 널리 쓰여지고 있다. 이는 모든 현상계의 근저 또는 핵심으로 이해되며, 보이는
다양한 세계의 배후에 있는 어떤 통일적인 실재이다. 만유가 그로부터 나왔고, 그에게로
다시 흡수되게 되는 만유의 근원이며 귀착지인 것이다.
최초에는 이 세계는 둘도 없는 일자인 유 만이 있었다. 어떻게 비유로부터 유가 생길 수
있겠는가? 이 일자가 다가 되고 싶어서 불을 방출했고 불은 물을 방출했고 물은 음식을
방출했다. 그 다음 일자가 이들 셋 안으로 살아 있는 내적 자아로서 들어가서 그 셋을
섞어서 각각 또 셋을 만들내어 만물의 이름과 형상을 산출시켰다. 불과 물과 음식의 색갈은
각각 빨강과 하얀색과 까만색이고 이들은 진리이고 그들로부터 나온 차별적인 것들은
말에 의하여 이름이 주어진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 들어와서는 이 세
요소들의 가장 미세한 부분은 각각 마음과 숨과 말이 되었다.
웃달라카의 이러한 우주론적 사변은 분명히 다양한 만물에 본질을 이루는 하나의
통일적 실체가 깔려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현상세계의 다양성을 세 가지
요소들의 혼합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상키야 학파에
의하여 물질계를 구성하는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의 삼요소설로 발전되게 되는 것이다.
웃달라카는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주론적 사변을 인간에 대한 고찰에 연결시켜
우주와 인간의 본질이 동일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는 만물의 모태와 같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되어 나온
현상세계의 존재론적질서를 인간존재를 중심으로 하여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브라흐만은 인간존재에 있어서 다섯 가지의 층을 가진 자아로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제일 낮은 층을 이루는 것은 음식, 즉 물질로 이루어진 자아, 동물 만에 공통된
지각활동으로 구성된 자아,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인식활동으로 된 자아, 그리고 가장
높고 깊은 단계로서 희열로 이루어진 자아를 말하고 있다. 이 마지막의 희열로 된 자아란
곧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하는 브라흐만 자체인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과 브라흐만의 현현인 현상세계와의 관계를
여러가지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거미와 거미로부터 나온 거미줄, 금과 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들,
불과 불꽃들, 진흙과 진흙으로 만든 그릇들, 혹은 악기와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은
비유들이다. 이 비유들이 암시하고 있는 바는 일(1)과 다의 관계로서, 일을 알면 다를
알 수 있으며, 일은 불변하는 실재이며 다는 변화하는 현상세계로서 사실은 단지 이름과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한 샹카라의 불이론적인 베단타 철학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현상세계를 단지 우리의 무지로 인한 환술로 보는 견해는 우파니샤드에는 아직
분명히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암시적으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슈베타슈바타라'와 같은 후기의 우파니샤드는 브라흐만을 인격적 신인 이슈바라(주)로서
파악하며 이 세계는 마술사와 같은 신의 환술에 의하여 나타나 보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잡다한 현상세계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되어 나온 것이거나
혹은 그것의 변형인 만큼 어디까지나 환술일 수 없고 오히려 브라흐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 일종의 범신론적 사상도 다분히 발견되고 있다. 모든 것이 브라흐만의
현현이기 때문에 브라흐만이 모든 것의 배후에 혹은 그 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우파니샤드에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전개로 보는 전변설과,
세계는 브라흐만이라는 유일의 실재를 근거로 하되 단순히 가상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 즉 가현설이 둘 다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전자는 베다나
브라흐만에서 이미 발견되는 우주발생론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며, 후자는 우파니샤드
특유의 철학적 기여라고 볼 수 있다. 양자는 다 우주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실재인
브라흐만과 유한하고 변하는 현상세계와의 관계를 파악해보려는 노력인 것이다.
우파니샤드 철학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보다도 브라흐만에 대한 우주론적인 사변을
넘어서서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주체적으로 파악했다는 데 있다. 즉,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은 곧 다름 아닌 인간의 실재라는 관점하에 우파니샤드의 철인들은
실재탐구의 방향으로 전환하여 자아의 탐색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이 방향전환은 종래의
외향적인 우주론적 사변으로부터 내향적인 인간의 자기 성찰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파니샤드의 불멸의 사상적 공헌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이 전환은
제사의식을 관장하면서 성스러운 브라흐만의 힘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한 바라문계급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반발로서 이해될 수 있다. 우파니샤드에 바라문계급 출신이 아닌 많은
철인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종래의
바라문계급에 의한 제사를 매개로 하는 종교생활에 회의를 품고 자기 자신의 영원한
자아를 찾음으로써 우주의 궁극적인 실제에 직접적으로 접하고자 하는 노력을 한 것이다.
(Deussen은 특히 Ksatriya 계급 가운데서 우파니샤드의 비의적인 진리가 처음에
전수되었다고 생각한다)
우파니샤드는 인간의 참 자아를 아트만이라 불렀다. '아트만'이란 문자 그대로 '자아'라는
뜻으로, 문제는 무엇이 참으로 인간의 불변하는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파니샤드 철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종종의 사변들을
우파니샤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선 인간존재의 근거로서 자주 숨이 거론되고 있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숨은 인간의 다른 모든 감각기관의 활동보다 더 긴요하고 잠시도 중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때로는 숨 대신 의근, 지 등이 인간의 본질적 자아로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우파니샤드의 사변의 정점은 이 모든 것이 불충분한 것임을 깨닫고 인간의
참자아란 위에서 말한 육체나 정신적 요소와는 달리 그것보다 더 밑바닥에 깔려 있는 깊은
실재임을 이해하게 되는데 있다. 이러한 한층 심화된 사변은 소위 자아의 4가지 상태에
대한 이론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는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자아이다. 즉, 우리의
감각기관이 외계와의 접촉에 의하여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는 자아는 우리의
몸과 동일시되며 자아가 가장 은폐된 상태이다. 둘째는 꿈을 꾸는 상태로서, 이때에는
우리의 감각기관과 몸은 쉬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 즉 내적 감각기관과 의식은 계속
활동하고 있으며 깨어 있을 때의 체험을 재료로 하여 미뉴(가늘 미, 가늘 뉴)한 대상의
세계를 임의로 만들어 내는 상태이다. 여기서도 역시 참자아는 발견되지 않고 마음이
자아와 혼동되고 있는 상태이다. 세번째 자아의 상태는 이보다 더 깊은 상태로, 꿈도 없는
깊은 수면의 상태이다. 여기서는 어떤 감각기관이나 의식작용도 없고 그에 해당하는 대상도
사라지게 된다. 즉, 주관과 객관의 대립과 교섭이 초월되고 다양성과 제한성이 사라진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상태이다. 그렇다고 이것은 아주 무의식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변적이고 특정한 제한된 의식이 아닌 무한한 순수식만이 밑바닥에 깊이 깔려
있는 상태라고 한다. '챤도기야 우파니샤드'의 웃달라카는 이 깊은 수면의 상태를 곧
자아가 순수하게 그 자체를 되찾은 완전한 상태로 간주한다. 마치 한 마리의 새가 이리
저리 날아다니다가 마침내 자기의 보금자리에 돌아와서 쉬고 있는 상태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와 같은 후기 우파니샤드에서는 더 나아가서 제4의
상태를 완전한 상태로 말하고 있다. 이 4번째의 자아의 상태는 희열의 상태로서,
세번째의 깊은 수면의 상태와 같이 주 객의 대립이 초월되며, 모든 유한한 정신적 활동이
그친 상태이다. 이 상태야말로 자아가 아무런 방해없이 순수하게 드러나는 지극한 희열의
상태인 것이다. 자아가 특정한 대상이 없이 순수의식으로서 스스로 밝게 존재하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보통의 경험으로서는 주어지지 않고 요가와 같은 정신적 훈련을 통하여 주어지는
신비적 체험의 세계이다. 우파니샤드의 철인 야즈나발키야에 의하면 자아는 인간의 모든
인식행위나 정신적 활동의 배후에서 항시 그것을 지켜보는 증인과 같은 절대적 주체로서
결코 우리의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인식이요, 다른 모든
인식의 주체로서 그 자체는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직관에 의하여
자명한 것으로밖에 알려질 수 없는 실재이다. 따라서 설명이나 정의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부정적 방법으로, '무엇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라는 식으로밖에는 이야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야즈나발캬는 강조하고 있다.
이 자아는 어떤 차별성이나 개별성을 용납하지 않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자아이다.
웃달라카는 그의 아들 슈베타켓투에게 이 진리를 여러가지 비유로써 가르치고 있다. 꿀이
여러 나무들로부터 채취되지만 하나의 본질이듯이, 강물들이 동에서 오든 서에서 오든
하나의 바닷물을 이루듯이, 아트만에는 아무런 개별적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아트만은 다름 아닌 브라흐만으로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공통된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 물의 어느 부분을 맛보나 소금의 맛이 있듯이
아트만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편재하는 공통된 본질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는 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참여하고 있으며 브라흐만은 우주의 아트만이요, 아트만은
인간에 내재하는 브라흐만인 것이다. 바로 이 범아일여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최고의 지식인 것이다. '네가 그것이다' 혹은 '내가 브라만이다'
라는 우파니샤드의 유명한 구절들은 이 진리를 말해 주는 것이다. 베다나 브라흐마나
시대에 있어서도 이미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견해가 종종 발견되지만, 우파니샤드에 와서
이 사상은 더욱 철학적으로 승화되어 대우주의 실재가 다름 아닌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실재로 파악되는 것이다. 브라흐만이 이렇게 인간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파악된 결과,
브라흐만의 본성은 불변하는 존재, 순수식, 희열로서 파악되게 되었으며, 동시에
인간의 본질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본질과 동일시된 것이다.
자기가 곧 브라흐만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에서부터 해방된다.
왜냐하면 자기자신 이외에 따로이 원하거나 두려워할 다른 아무 대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은 모든 업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며 사후에는 다시 환생하는
일이 없이 브라흐만 그 자체로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삶은 물론
어떤 개인적인 삶의 존속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해탈이란 결국 현세에서 이미
자신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해탈의 사상을 우리는
이미 우파니샤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리그베다'나
브라흐마나의 전통적인 사유에 따라서 해탈을 사후에 신들의 길을 따라서 브라흐만에
이르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3 중후기 우파니샤드의 철학
이상에서 우리는 초기 우파니샤드의 주요 사상을 대략 살펴보았다. 이제는 '카타
우파니샤드',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 등과 같은 주기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검토해
본다.(중기에 속하는 우파니샤드는 이 둘 외에도 이샤, 문다카 등이 있다. Mundaka
Upanisad 는 Atharva Veda 에 소속되어 있고 나머지 셋은 모두 Yajur Veda에 속해 있다)
이들 중기 우파니샤드는 대체로 B C 500년에서 B C 200년경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서,
형식상으로 볼 때 산문 대신 주로 운문으로 쓰여진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 부피에 있어서
'브르하드아라야냐카' 등과 같은 것에 비하면 훨씬 짧고 내용이 비교적 간단하다는
특색이 있다. 사상적으로는 초기 우파니샤드에서 아직도 많이 발견되고 있는 브라흐마나의
제사주의적 우주론적 사변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카타 우파니샤드'에 있어서 철학적으로
새롭고 중요한 것은 상키야나 요가 철학의 근원적 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카나 우파니샤드'는 아트만을 마차의 주인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마차이고,
우리의 지성은 마차를 모는 자, 마음은 고삐, 감각기관은 말들, 그리고 감각기관의
대상은 말이 달리는 길에 비유되고 있다. 지혜있는 자는 항시 마음의 고삐를 제어하고,
감각기관의 말을 잘 몰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여 다시는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지만,
무지한 자는 그 반대로 생각과 감각기관에 이끌리어 윤회의 세계에 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어한다'는 말은 요가와 같은 어원의 말로서 해탈을 위한 실천적 행위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방법과 동시에 이를 뒷받침해주는 형이상학적
원리들에 대한 사변도 '카타 우파니샤드'에 전개되고 있다. 세계 전체를 점차적으로
높은 존재론적 원리에 따라 해석하여 요가라는 정신통일의 훈련을 통하여 가장 높은 실재에
접하도록 이론적인 뒷받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감각기관보다는 대상 세계, 대상
세계보다는 의근, 의근보다는 지성, 지성보다는 대아, 대아보다는 미현현 그리고
미현현보다는 정신이 더 높은 실재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나중에
상키야 철학에서 하나의 정돈된 세계 전변의 이론으로 정립되게 되는 것으로서, 상세한 것은
후에 검토키로 한다.
단지 여기서 한가지 언급되어야 할 점은 중기 우파니샤드에는 아직도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은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은 물질보다 높은, 그러나 그것과
존재론적으로 동일선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서, 신 혹은 브라흐만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신론적 이원론의 사상은 우파니샤드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기 우파니샤드의 또 하나의 중요한 문헌은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이다.
'카타 우파니샤드'보다 좀더 나중의 것으로, B C 2~ 3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우파니샤드에는 요가의 실천에 관하여 '카타 우파니샤드'보다도 더욱더 상세한 설명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요가를 행하는 장소, 정좌의 자세, 호흡의 조절, 요가의 실습에 따른
종종의 초자연적 능력 등을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가의 궁극적 목표는 신의 인식에
있으며 신의 인식은 개인의 영혼들을 물질세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한다. 신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일자로서, 만유를 창조하고 그 안에 내재하며 마자막에는 만유를
다시 회수하는 대주재자이다. 우리는 그의 은총에 의해 신과 그의 위대함을 보며 그를
신애하는 자는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본래 초기 우파니샤드에는 브라흐만이 대체로 비인격적인 형이상학적 실재로 이해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온 세계를 지배하는 인격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그를
베다의 신 가운데 하나인 루드라로 부르고 있으며 이 루드라신은 나중에 쉬바 신과
동일시되는 신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슈베타슈바타라'의 강한
유일신적 사상과 신애의 사상은 서력 기원전 3~ 4 세기경부터 대중의 신앙운동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쉬바 신과 비슈누신의 숭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경향은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와서 더욱더 본격적인 자세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의 사상 가운데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신과
물질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신을 환술사로, 물질세계를 그에 의하여 조작된 환술로
비유하고 있으며 개인의 영혼은 이 환술에 홀려서 붙들려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나중에 베단타 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개념의 하나인 '마야'라는 말이 여기에 비로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신과 개인 영혼과 물질세계와의 삼각관계는 후세의
유신론적 제철학체계의 근본을 이루는 문제인 것이다.
중기 우파니샤드의 인격적인 브라흐만의 이해와 더불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카타'와
'문다카 우파니샤드'에 나타나 있는 아트만의 계시의 사상이다. 즉 아트만은 어떤
가르침이나 지적인 능력에 의하여 알려질 수 없는 실재로서 자기가 선택한 자에게만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하는 사상이다.
지금까지 '카타'나 '슈베타슈바브라' 등과 같은 중기 우파니샤드 사상의 특징들을
살펴보았거니와 이들보다도 더 늦게 산출된 일군의 후기 우파니샤드들도 있다. '프라슈나',
'마이트리', '만두기야'와 같은 우파니샤드들이 이에 속하며 대략 B C 200에서 A D 2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는 '마이트리 우파니샤드'의 사상만을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마이트리 우파니샤드'에는 대체로 '카타 우파니샤드' 등에 나타나 있는 상키야 철학의
씨가 더욱더 분명하게 개념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예를 들면 상키야 학파에서 말하는
개인아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어 물질로부터 성립된 원소아와 확실히 구별되고 있으며,
윤회의 주체로서의 세신의 개념도 발견된다. 또한 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삼요소(sattva,
rajas, tamas)의 이론도 발견되며, 요가 철학의 근본이 되는 요가 수행의 팔지설에
가깝게 그 중의 6단계가 이미 언급되어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중후기의 우파니샤드들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상키야철학은 아마도 체계적인 학파 가운데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철학적 사유라는
점이다. 그것은 해탈의 종교로서 실천적인 요소가 강한 불교의 영향 아래 이에 상응할
만한 해탈의 방법과 이론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를 느낀 바라문 사상가들의 대응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제 4장 비바라문계 철학의 발흥
1.역사적 배경
인도의 서북부로부터 들어와서 인더스강과 쟘나강 사이에 자리를 잡고 발전했던
아바라문 계급의 주도하에 발전했던 아리안족의 베다문화는
동쪽으로 확대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철기문화의 수입으로 여태껏
밀림지대였던 곳이 개간되어 농작지가 확대되어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갠지즈강의 중류이동에는 여러 곳에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도시문화가 건설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종래에 촌락과 씨족적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돼 왔던
바라문교의 지위도 자연히 흔들리게되었다.더우기 아리안족의
동점에 따라서 원주민과의 인종적 혼합도 생기게 되어 전통적 바라문교의
약화는 더 한층 가속화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바라문의 사회적 특권이나 베다의 종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나 쟈이나교와 같은 새로운 자유사상적
운동들이었다.
이시기는 또한 인도가 정치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는 때였다.
종래의 군소 부족국가들은 마가다나 코살라와 같은 강대한
군주국가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정복당하였으며 이에 수반하는
이에 수반하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불안이 극심한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도시문화의 발달에 따라서 안정된 종족적 유대관계를
도시의 상공인들은 한편으로는 새로이 주어진 개인적 자유와
세속적 향락의 기회를 누리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무상함과 무의미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기도 한 것이다.
불교와 쟈이나교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도시상공인들의
새로운 종교적 욕구에 부응하여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잡게
된 종교이다.
불교와 쟈이나교는 물론 이러한 격변하는 시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종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밖에도 많은 유사한 운동들이 있었음을
불교나 쟈이나교의 문헌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들 자유사상들은 종래의
바라문들과는 달리 사문이라는 새로운 형의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사문이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촌락이나 도시에 유행하면서
걸식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출가자들이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자연히 그들의 교설을 따르고 실천하는 무리들에 의하여
승가라는 생활공동체가 형성되게 되었다. 이들 공동체들은 사회적 계급적 신분의
차별없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인 성격을 띤 집단이었다.
불교나 쟈이나교를 제외하고는 이들 군소 종교운동들의 사상은 제대로
있지는 않으나 불교의 경전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철학적
사유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불교의 경전에는 소위 육사외도라 하여 불타
당시에 그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여섯 가지의 사상들이 유행되고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쟈이나교는 나중에 항을 달리하여
고찰하기로 하고 나머지 다섯 가지의 교설들을 먼저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2. 육사외도
팔리어로 된 소승경전의 하나인 사문경전(1)에 의하면 첫째,
푸라나 카사파라는 사람은 살생,도둑질,간음,망언 등의 행동을 스스로
하거나 남에게 하도록 가르쳐도 악이 아니며 악한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업의 법칙을 부정하는 무도덕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마칼리 고살라라는 자는 인간의 도덕적 그리고 인격적 상태에는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상태는 단지 운명과 그들이 속한 종 그리고 그들의 천성
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운명론 혹은 결정론을
주장했다. 그는 본성론적인 결정론자로서 인간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
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회와 업을 인정했지만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다 꼭 같이 일정기간 동안 생사의 세계에서 정해진 량의 고통과 즐거움을 맛보기
마련이며 아무도 이것에 영향을 주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해탈이란 이 주어진 기간이
끝나는 것을 말하고 그때에야 비로소 고의 종식이 가능한 것이다. 그는 운명과 천성의 절대
적인
지배를 믿는 철저한 결정론자이나 동시에 이러한 요소들 이외에는 인간의 상황에 대하여 다
른
아무런 원인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인론자이기도 한 것이다. 마카리 고살라의 주장을 따
르는
자들을 사명파라고 부른다. 그의 견해나 경력은 쟈이나경전에도 전하여지고 있으며, 쟈이나
교의
조사인 니간타 나타풋다와 일시 수행을 같이 한 일도 있었다. 사명파는 제법 오랫동안 명맥
을
유지해 온 흔적이 남아 있다.(2)
세번째의 외도로서 아지타 케사캄발라라는 자는 감각적 유물론을 내세웠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땅, 물, 불, 바람의 사대로부터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누구든지 죽으면 신체가
파멸되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단멸론을 주장했다. 그는 감각만이 인식의 유일한
원천이며 업의 법칙을 부인하는 무업론(설무업)을 주장하고 사후의 세계를 부정했다.
네번째로, 파쿠다 카차야나는 세계는 땅, 물, 불, 바람, 고통, 즐거움, 운명은 불변하고
영원한
일곱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행위의 주체가 되는 존재란 없다고 하는 물질주의적이며
무인격적인 세계관을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예리한 칼로 남의 머리를 둘로 쪼
개도
사실 아무도 그의 생명을 앗아간 자가 없으며 단지 칼이 일곱 가지 요소들의 큼 사이로 침투
하여
들어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위와 사건의 철저한 비인격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다섯번째로 산자야벨라티풋타라는 자는 내세와 업보에 대하여 인식적 회의론을 주장했다.
즉
업이란 것이 존재하는가고 물으면 그는 그렇다고도 안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
고,
그렇지 않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마가다의 수도인 왕사성에서 살았으며
불타의 유명한 제자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도 처음에는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상의 5가지 이론들에서 우리가 특별히 유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대체로 말해서 물질주의
적인
인간관을 지녔고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인간의 깊은 영적인 자아 즉 아트만이나 우주의 궁
극적
실재인 브라흐만 등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심지어는 도덕적 가치 내지 법칙마저도 부인하게 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불타의 교설은 한편으로는 이런 사상들과 류를 같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회의주의나 형이상학적 단멸론과 같은 결론에는 빠지지 않는 소위 중도적
인
입장을 표방한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비판적 자유주의적 사상의 전통을 후세에 좀더 철학적
으로
체계화하여 정리한 학파가 다름 아닌 차르바카학파인 것이다.
3. 챠르바카의 철학
챠르바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분명치 않으나 여하튼 챠르바카는 인도철학사에서 유물론과
회의주의 및 향락주의를 대표하는 학파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나 자이나교 등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학파의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3) 세상 사람들의 천박하고 상식적인 견해를
따르는 철학이라 하여 순세파라고도 불린다.
이 학파의 주장하는 바는 그 학파 자체의 문헌이 별로 남아 있지 않고 비판자들의 저서를
통하여 알려져 있지 때문에 반드시 객관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철학적 입장을 내세웠음을 인도철학사가들은 말하고 있다.(4)
#1 땅, 물, 불, 바람이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2 몸과 감각기관과 감각의 대상들은 이 사요소들의 여러 가지 상이한 결합에 의한 결과이
다.
#3 의식이란 물질로부터 생긴 것이다. 마치 발효된 누룩으로부터 술의 최하는 성질이 생기
는
것과 같다.
#4 영혼이란 의식이 있는 몸에 지나지 않는다.
#5 향락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다.
#6 죽음만이 해방이다.
챠르바카는 인식론에 있어서 직접적인 지각만이 타당한 인식의 수단이라고 주장하여
인도철학의 제학파들이 대부분 인정하는 추론의 타당성을 부정한다. 추론이란 직접적인 경험
에
의하여 알려진 것에서부터 모르는 것을 알려는 시도로서, 거기에는 확실성이 없다고 한다.
연역적
추론은 결론이 아직도 입증되지 않은 대전제로부터 추리되어 나오기 때문에 선결문제해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대전제, 예를 들어 (연기가 나는 곳에는 불이 있
다)
(혹은 모든 사람을 죽는다)라는 일반적 명제를 옳은 것으로 알 수 있는가이다. 챠르바카에
의하면
보편적인 진술의 타당성은 우리의 지각이 경험한 범위내에서 타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
도
연기와 불 사이의 관계를 모든 경우에서 다 관찰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할 것 같
으면
귀납적 추리에 의한 결론에는 비약이 있다는 것이다. 대전제의 핵심은 두 현상간의 필연적이
고
보편적인 주연관계가(5) 성립되어야 하는 것인데 귀납적 추리는 이러한 관계를 확립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불과 연기 사이의 인과관계를 논하는 것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
인과관계를 아는 것도 귀납적 추리이며 이 추리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
해서 타인의 증언에 의하여 이 보편적인 관계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증언의 타
당성
자체가 추리에 의하여 알려지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챠르바카 철학의 추론에 대한 회의는
서양철학사에서 잘 알려진 흄의 귀납적 추리와 인과율에 대한 회의론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챠르바카는 또한 권위있는 사람들의 증언도 인식의 타당한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선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을 때 왜 그것을 믿는가를 밝힌다. 그러자면 자연히 추
론이
들어가게 마련이며, 이 추론의 타당성은 이미 부인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직접 말을
들어서
무엇을 알 경우에는 그것은 직접적인 지각으로 간주하여 타당하다고 한다. 따라서 베다의 권
위가
인정되지 않음은 이러한 견해에서 두말할 여지가 없다.
챠르바카의 형이상학은 이와 같은 인식론의 당연한 결과이다. 특 이 학파는 직접적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존재들의 실재를 모두 부인한다.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 그리고 업의 법
칙,
생전이나 사후의 존재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챠르바카는 주장하기를 이런 것들은 사제계급
이
무지한 사람들을 속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 낸 이론들이라고 한다.
또한
챠르바카는 이러한 세계관에 들어맞는 윤리관을 서슴없이 정직하게 편다. 인생의 최고의 목
표는
이 세상에서 육체의 고통을 최소한 줄이며 쾌락을 최대한 즐기는 데 있다고 한다. 이 이상
다른
도덕의 법칙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려는 해탈의 이상은 불가
능한
것이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쾌락과 고통은 반드시 섞여지게 마련이며, 그렇다고
그것이 두려워서 쾌락과 고통의 피안의 세계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껍데기 때문에
알맹이를 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네 가지 목표, 즉 욕망,
부,
의무, 해탈 가운데서 챠르바카는 첫번째인 욕망만을 인정한다. 부는 어디까지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므로 욕망만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다.
챠르바카 철학은 놀랍게도 현대적인 면을 많이 지닌 과격한 사상으로서, 고대 인도인의 사
유의
자유를 입증해 주는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여하튼 인도의 정통철학파들이 앞을 다투어 이
파의
견해를 논파하려고 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의 제기와 해결에 있어서 너무
나
과감하고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록 학파로서는 오래 존속하지 않았지만 챠르바카는 다른 학
파의
철학적 사유를 항시 자극해 왔다는 데 있어서 인도사상 사상의 특수한 기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전통 인도철학은 이 챠르바카가 제기한 문제를 얼마나 성공적으
로
해결하고 대답했는가에 그 사활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 원시 쟈이나교의 사상
불타와 동시대에 쟈이나교의 창시자 바르다마나가 있었다. 그는 인도의 북부 바이샬리시
부근에서 B.C 549년에 한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30세에 출가하여 고행과 명상에 2
년간
전념한 후, 모든 옷을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고행자로서 12년간 심한 고행의 생활을 하였다.
드디어 한 여름 밤에 완전한 앎을 얻어 독존위에 도달하였다. 그 후로는 마하비라, 즉 위대
한
영웅, 혹은 지나, 즉 승지라는 칭호를 얻어 여러 곳을 여행하며 포교생활을 하다 72세를 일
기로
하여 파트나 부근에서 생을 마쳤다. 대체로 불타와 매우 비슷한 생을 보냈으나 고행을 철저
히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쟈이나교의 전통에 의할 것 같으면, 마하비라는 그의 이전에 있었던 많은 지나들(여울을
만드는 자라는 뜻의 사람들)의 후계자로서 그는 제24조에 해당한다. 이들 마하비라 이전의
지나들은 모두 전설적인 존재들로 간주된다. 단지 제23조인 파르슈바는 대략 기원전 8세기
경에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간주되며, 그는 4개조의 수행상의 계율을 가르쳤다고 한다. 즉 살
생,
유도, 음행, 망언을 금했다고 한다. 마하비라는 거기에 수유를 금하는 5번째의 규칙을 더하
여
소위 오대경이라는 자이나교의 근본 윤리강령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마하비라는 그가 생존했을 때 이미 유력한 교단을 형성하였으나, 전설에 의하면 그가 죽은
후
교단은 여러 번 분열을 거듭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백의파와 공의파의 분열은 유명하다.
서력기원전 4세기 말경 챤드라굽타왕 때의 일로서, 마가다지방에 기근이 생기어 제6대 교단
장
바드라바후는 일부의 수도승과 같이 갠지스유역으로부터 데칸지방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후에
돌아와 보니 그 지방에 암아 있던 스툴라바드라를 우두머리로 한 승려들이 독자적으로 성전
의
편찬을 행할 뿐만 아니라 생활규범에 있어서 타락상을 보였다고 한다. 즉, 휜 옷들 몸에 걸
치고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한 오라기의 실도 몸에 걸치지 않는 공의파와 흰 옷을 입는
백의파로 교단이 분열되게 되었다고 한다.(6) 여하튼 백의파나 공의파 모두 바드라바후 이후
로는
바르다마나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성전에 관한 완전한 지식이 산일되게 되었다고 한다.
바드라바후가 죽자 백의파의 지도자 스툴라바드라는 파탈리푸트라에서 큰 결집을 열어 성전
을
12부문으로 재편성하고 백의파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공의파는 성전이
전멸되었다고 주장하여 그들 스스로가 만든 대체의 경전을 사용하게 되었다. 백의파는 서력
기원
5~6세기에 발라비에서 다시 결집하여 그들의 경전을 최종적으로 정하고 성문화하였다. 이
쟈이나교의 성전은 반마가디어라는 일종의 용어로 씌어져 있으며 마하비라 이후 거의 1000년
후에 편찬되었으므로 순수한 마하비라의 가르침만을 전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후세의
체계화된 쟈이나교리서들의 사상을 제외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원시 쟈이나교의 가르침을 서
술할
수 있다.(7)
불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하비라의 최대 관심사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로부터 해방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하비라는 윤회의 세계에 묶인 인간의 상황을 불타와는 달리 이해했다.
즉,
그는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영원한 명아들이 각각 그들을 내포하고 있는 물체나 몸들의 크기
에
따라 한계지어진 크기를 가지고 존재한다고 한다. 쟈이나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돌이나 흙과
같은
것들도 살아 있는 것으로서 그 안에 명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명아는 우리의 모든 정신적
인
작용들의 주체이며 행동의 주체이기도 하다. 명아는 본래적으로는 다 같으며, 무한한 지,
견,
력, 안의 성질들을 가지고 있으나, 육체, 말, 의식의 업으로 인하여 이러한 성품들이
가리워져 있고
서로간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마하비라는 업을 명아에 달라붙는 일종의 미세한 물질로
간주했으며, 이 물질 때문에 명아가 제 성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 업
은
인간의 여려 다른 행위들의 원인이 되며, 새로 몸을 받아 여러가지 다른 환경하에 다시 태어
남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현세에서의 생의 과정을 통하여 이 전생에 쌓인 업을 점점 진하
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업이 명아로 유입되게 된다. 이렇게 유입된 업의 물질을 명아
에
접착시켜서 그것의 속박을 가져오는 것은 사탁 즉, 분, 만, 기, 탕이라는 격정들로서 이들을
카사야(끈적끈적한 접착제라는 뜻)라 한다. 다시 말하면, 명아가 격정의 자극을 받아 업을
짓게
되면 이 업은 어떤 물질의 형태로 명아에 들러붙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명아는 업
신이
라는 업의 물질로 구성된 미세한 몸과 더불어 윤회를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은 상태로부터의
해탈은 어떻게 하여야 가능한가? 물론 명아가 업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하
여는
우선 더이상 새로운 업의 유입이 없도록 차단을 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도덕적 행위와
감각기관의 활동의 제어를 통하여 격정과 업을 줄여야 한다. 다음에는 이미 들어와 있는 업
을
소멸해야 한다. 이것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방법은 고행이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고행을 통
하여
이미 쌓여 있는 업이 자연적인 소멸보다도 더 빨리 소멸되어 버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명아
가
업으로부터 정화되면 다시는 환생하는 일이 없으며, 쟈이나교의 우주관에 따라서 우주의 맨
꼭대기로 승천하여 거기서 영원하고 행복한 전지의 삶을 영위한다. 이것이 명아의 해탈인 것
이다.
5. 원시불교사상
원시불교의 철학적 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가장 완벽하게 전하여 오는 것은 팔리어로
씌어진 상좌부전통의 경, 율, 론 삼장이다. 그 중에서도 불타의 설법을 내용으로 하는 경은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8) 불타의 교설이 구전 단계를 지나서 대체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
게
된 것은 B. C. 1세기 경이라고 본다. 따라서 오랜 구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부처님 자신이
말했다고 보기 어려운 후세의 여러가지 잡다한 종교적, 철학적 사상이 많이 혼입되어 전하게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진정한 불타 자신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가려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경들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거의 동일한 표현으로 거듭되어
강조되고 있는 사상들을 우리는 대체로 불타 자신에서부터 연유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예
를
들면 사성체, 팔정도, 오온, 십이지연기, 사념체 등과 같은 것으로서, 우리는 이들을 중심으
로
하여 원시불교의 사상을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불타는 히말라야 산록에 있는 조그마한 사키야족의 왕국의 왕자로서 태어났다고 한다. 당
시의
일반적인 정치적 추세에 따라 사키야왕국도 인근의 강대국인 코살라국에 의하여 압박을 당하
다가
결국 병합되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불타의 성은 고타마였고 그의 이름은
싯달타였다. 불타란 지나와 마찬가지로 수행 후에 얻어진 칭호이다. 그리하여 그는 고타마
불타 혹은 석가모니, 즉 사키야족의 성자라고 불리다.
그는 29세 때에 당시의 사문들처럼 출가하여 걸식여행을 하면서 종교적 수행을 했다. 그는
주로 마가다국에서 6년간이나 유행하면서 당시의 여러 수행자들을 만나서 선정과 고행을 배
우고
실천했으나 만족을 얻지 못했다. 어느날 그는 가야라는 곳에 있는 한 보제수 밑에서 명상을
하다가 진리는 깨달아 불타, 즉 각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의 나이 35세 때의 일이었
다.
도를 이룬 후 그는 전에 고행을 같이 했던 다섯비구들에게 설법을 하기 위하여 베나레스에
있는
녹야원에 가서 최초의 설법으로서 애용과 고행의 양극을 피하여야 한다는 중도 및 사성체와
팔정도를 가르쳤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초전법륜이다.
불타는 그 후 45년에 걸쳐서 교화활동을 벌이며 많은 귀의자를 얻었다. 그는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에서 보냈으며, 슈라바스티, 라자그르하, 바이샬리 등의 제도
시들을
활동무대로 삼았다. 그는 쿠시나라라는 곳에서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의 생의 마지
막
부분을 자세히 전하여 주고 있는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그는 자기가 죽은 후 교단은 그가 가
르친
법을, 그리고 각자는 자기 스스로만을 의지할 것을 권면했다. 그는 최후의 설법으로 모든
유위법은 멸하게 되어 있으므로 부지런히 목적을 달성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불타가 성도 후 최초로 녹야원에서 설했다고 하는 사성제의 첫번째 진리는 인생의 고통에
대한
진리다. 생, 노, 병, 사가 모두 고통이며, 싫어하는 자와 만나고 좋아하는 자와 헤어짐이 모
두
고통이며,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함도 고통이다. 불타는 나아가서 인간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오온, 즉 다섯 가지의 그룹들이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한다. 불타에 의하면
인간이란 색이라는 물질적 요소들, 수라는 6가지 감각기관들과 대상들과의 접촉에서 생기는
감정들, 상이라는 같은 방법으로 해서 생기는 지각들, 행이라는 업을 일으키는 여러가지 의
지적인
요소들, 그리고 식이라는 수와 사들에 의하여 주어지는 의식들이 한데 묶어진 묶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오온이 모두 고통인 것은 그들이 잠시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항
시
변하는 무상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 무상한 오온을 취하여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
아라
부를 것이 없다고 한다.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말하는 아트만이라고 부르는 자아의 개념은 영원불변하고 무한한 희
열이
되는 것이었다. 불타는 이러한 개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나, 그의 인간관은 우파니샤
드의
철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즉, 오온의 어느 것도 그러한 영원한 기쁨이 되는 것
은
없으며 인간에게는 오온의 화합이외에 따로, 혹은 이 오온을 소유하는 어떤 불변의 자아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단지 항시 변하고 잇는 제법들의 묶음 자체로서 오
로지
현상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비단 인간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은
법이라고 부르는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무수한 존재요소들의 결합으로서, 이 법들은 끊임
없이
생멸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어느 것도 상주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재
라는
것은 순간순간 작용하고 사라져버리는 법들뿐이며 인간과 세계란 이런 법들로 구성된 현상들
로서
그 배후에 어떤 불변하는 실체나 본질이 없다는 하나의 현상주의적인 세계관을 불타는 가르
친
것이다. 제법은 고통, 무상, 무아의 세가지 법인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불타의 두번째 진리는 이러한 고에는 고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 있다는 집체이다. 즉 다
시
태어남을 초래하는 애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타가 발견
한
매우 중요한 사상으로서 몇 가지 기본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고통으로서 인간자
재에는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고통이란 아무 원인도 없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타
는
무인론자가 아니었다. 둘째, 원인을 가진 것은 생성된 것이므로 유한한 것이며 없어질 수 있
는
것이다. 그 원인이 제거되면 결과도 제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으로서의 인간존재는 우
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타는 숙명론을 거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연론과 숙명론을 거부하는 불타의 사상은 그의 연기설에 잘 타나나 있다. 연기설의
일반적인 구조는 A가 있으면 B가 있고, A가 생기면 B도 생기고 A가 없으면 B가 없고 A가
멸하면 B도 멸한다는 것이다. 불타는 이 진리를 고통으로서의 인간존재의 원인을 구명하는
데에
적용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천명한 십이지연기설인 것이다. 사성체에서는 불타는 고의 원인
을
단순히 애욕이라고 들고 있지만 경전의 다른 여러 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12개의 요소들을 가
지고
생사에 유전하는 인간존재를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전통적으로 이 십이지연기설은 삼세(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인간의 유전을 설명하는 것
으로
해석되어 왔다. 즉 무명과 행은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과거세, 식으로부터 유까지는 현세,
그리고 생과 노사는 내세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불타의 이러한 연기설에 의할 것
같으면 인간존재의 여러 측면을 가리키고 있는 이들 제법은 우연적으로 무질서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일정한 필연적 규칙성 내지 법칙성을 가지고 상호관계
속에서 생멸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법은 이렇게 상의상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독자성
을
지니지 못하고 상대적, 조건적, 그리고 일시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제법이
상의상자하여 생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궁극적인 최초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불
타의
연기설은 우파니샤드의 철학처럼 인간과 우주의 어떤 궁극적인 제일원인이 되는 실재를 인정
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무상한 제법의 상호작용에 의한 생멸만을 얘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
시
무명으로부터 윤회의 과정이 시작할 필요는 없으며, 어디서 시작되든 꼭 같은 양상으로 생사
의
과정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무상 자체도 조건적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명으로 사의 순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그것이 보다 근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며 그것
은
제거해야만 다른 것들도 따라서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이지연기설에 있어서 또 한가지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불타에 의할 것 같으면 이러한
생사의 과정을 통하여 어떤 불변의 자아가 있음으로 해서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조건적으로 생기하는 제법의 연속으로서의 인간존재라는 현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의 생으로 다시 태어남에 있어서 전후 양존재
의
관계를 같은 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이 한 연료(오온이라는)를
다
태우면 다른 연료로 옮겨가나 그 옮겨진 불은 전의 불과 가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는 것이다.
같다고 생각하면 무아설에 배반되는 상주론에 빠지고, 다르다고 하면 인격의 연속성을 무시
하기
때문에 도덕적 인과율과 책임을 부정하는 단멸론에 빠지게 된다고 하여 불타는 이 두 견해를
배척하고 자기의 입장을 중도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의 우파니샤드적인 인간관이나
유물론적인 인간관, 또는 운명에 의한 결정론이나 우연에 의한 무결정론을 모두 배척하고 불
타는
연기론에 입각한 인간관을 설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타는 연기관을 중시하여 말하기를
연기를 본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본 자는 연기를 본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위에서 고찰한 십이지연기설에 의할 것 같으면 전생과 후생에 있어서 한 개인의 인격적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식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조건적으
로
성립되면 항시 변하고 있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며 어떤 영구불변의 영혼이나 자아는 아닌
것이다. 흐름이라 하여 식의 자기동일성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은 아니며, 변하는 가운데서도
어느
정도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현세에 있어서나 혹은 현세에서
내세로 넘어갈 때나 마찬가지라 한다.
사성제의 세번째 진리는 고가 멸한 상태가 있다는 진리이다. 즉 열반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
후세에 만들어진 구별에 의하면 열반에는 과거의 업의 결과인 현재의 오온을 그대로 지닌 채
로
경험하는 유여열반과 오온이 해체된 후 사후에 주어지는 무여열반이 있다. 유여열반은 생해
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무루성인 아라한이 체험하는 완전한 행복과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문
제는
이 아라한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가이다. 즉 인간에게는 영원불멸의 자아가 없는데도 아라
한은
어떤 형태로 존속하는 것인가? 도대체 누가 열반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불타 당시부터 많은 의혹과 논란이 있었음을 우리는 경전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이 문제는 불타가 대답하기를 거부한 소위 14무기의 하나였다.(9) 문제는 왜
불타가 이 문제에 대하여 답하기를 꺼렸는가 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다. 불타는 이 문제에 관
해서
여러가지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한 곳에서는 불타는 이런 문제는 사변적인 것으로서, 자기는
고의
원인을 알아서 고를 제거하려는 실제적인 관심을 떠난 문제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단상의 이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답을 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해탈한 자의 세계, 즉 열반이란 보통 인간들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을 회피한다고 하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열반의 세계는 누
구가
존재한다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열반에
드는 아라한이란 마치 연료가 다하여 꺼진 불과 같아서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온을 떠나서 별도의 자아가 있어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열반이란 오온의 불이 꺼
진
아라한에게 주어진 어떤 상태인 것이다. 네번째 진리로 불타는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르쳤
다. 즉
오견, 오사, 오언, 오업, 오명, 오정진, 오념, 오정의 팔정도이다. 이 8가지 수행을 셋으로
분류하여
계(오언, 오업, 오명), 정(오념, 오정, 오정진), 혜(오견, 오사)의 삼학으로 나눌 수 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이 삼학을 닦아나가는 수해의 종교이며, 부처의 가르침을 대부분이 이 팔정도의
내용을 여러가지로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고와 무상과 무아
를
깨닫는 지혜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무명이 제거되어야 생사의 순환이 깨어지고 인간존재
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2) A. L. Basham, History and Doctrines of the Ajivikas: a vanished Indian Religion
(London, 1951) 참조.
(3) 일설에 의하면 챠르바카는 유물론적 철학을 가르친 어떤 철학자의 이름이라 하고, 어
떤
견해에 의하면 유물론자들이 (먹고, 아시고, 즐기라 즉 먹는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는 철학을
가르치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밖에 다른 견해들도 있음.
(4) 불교나 쟈이나교의 경전을 제외하고 순세파의 철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요자료들
이
남아 있다: 8세기의 쟈이나교의 학자 Haribhadra Suri가 편찬한 육파철학집성 : 14세기의 베
단타
철학자 마다바의 전철학강요 : 7세기의 순세파의 철학자 쟈야라쉬 밧타의 진리재난의 왕.
(5) 나중에 냐야철학을 소개할 때 설명됨.
(6) 비판적 연구에 의하면 이 분열은 A. D. 1세기말경에야 비로소 최종화된 것으로 간주된
다.
양파의 교리상의 차이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리고 공의파의 수도승들도 나중에 사람들 앞에
서는
옷을 입었다.
(7) 이 방법은 대체로 Frouwallner를 따른 것임. 그의 Geschichte der indischen
Philosophie,
Vol. 1 참조
(8) 팔리어 경정에는 경장은 다섯 개의 부집으로 나뉘어 있다. 즉, 한역 장아함, 증일아
함,
중아함, 잡아함.
(9) 14무기 : 세계는 상(영원)인가 무상인가, 상이기도 하고 무상이기도 한가, 상도 무상
도
아닌가, 세계는 유변(유한)인가 무변인가, 유변이기도 하고 무변이기도 한가, 유변도 무변도
아닌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
것인가, 개인아는 육체와 같은가, 같지 않은 것인가라는 문제들이었다.
제 5장 소승부파불교철학의 발전
1. 부파불교의 전개
불타의 마지막 날들에 관하여 상세히 전하고 있는 소승경전의 "대반열반경"에
의할 것 같으면, 불타는 그의 입적을 앞두고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난다여, 너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스승의 가르침이 끝났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스승이 안 계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난다여, 너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고 제정한 법과 율을 나의 사후에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아라.(1)
그러나 문제는 불타의 입적 후 그의 법과 율에 대하여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서
서로 다른 해석과 전승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불타의 생존시에는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여러 의구심과 논란이 일어나도 그의 개인적인 높은 인격과 카리스마에
의하여 교단은 통일과 화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입적한 후 불교교단은
그에 비견할 만한 정신적 지도자도 없었고 교단의 조직 또한 교단의 통일을 유지할
만한 어떤 교권적 제도를 지니지 않았다. 따라서 불교는 지리적 양적 성장에 따라 불타의
가르침에 대하여 서로 다른 전통을 전수하게 되었고, 자연히 교단의 분열도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단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차의 결집회의를
했으나 결국 교단은 분열되고 만 것이다.
제일 처음의 공식적인 교단분열은 불타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표방하는 보수파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와, 교리와 승단의 규율에
있어서 신축성을 허용하는 진보적인 대중부와의 분열이었다. 이 분열의 시기는
세일론의 남방불교전통에 의하면 불멸후 약 100년 후에 소위 '십사'를 둘러싼
계율해석을 위하여 바이샬리에서 모인 제 2차 결집때였다고 하며,(2) 북방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아쇼카왕의 치세 때에 마하데바라는 사람이 소위 '오사' 즉,
아라한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다섯 가지 항목을 주창한 것을 계기로 하여
분열되었다고 한다.(3) 여하튼 불멸 후 100년부터 아쇼카왕의 사이에 불교교단내에
분열과 대립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왕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칙령을
내려 교단의 화합을 촉구하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교단의 분열은 아마도 왕의 불교 지원에 힘입어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더욱더 세분되어 급기야 대중부와 상좌부의 근본이부를 중심으로 하여 18개
혹은 20개의 부파가 파생하게 된 것이다.(4) 세일론의 '도왕통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18부의 분파를 언급하고 있다.
도표 [대중부에는 우가부, 일설부, 그리고 제다산부가 있고 다시 우가부에는 다문부가
있다. 상좌부에는 화지부와 발자자부가 있고 다시 화지부에는 설일체유부,
음광부, 설전부, 경부와 법장부가 있고 발자자부에는 법상부, 현위부,
밀림산부 그리고 정량부가 있다.
한편 설일체유부의 전승을 전하고 있는 세우의 '이부종윤론'은 다음과 같은
20개 부파의 분열을 말하고 있다.
대중부에는 일설부, 설출세부, 게윤부, 다문부, 설가부, 제다산부, 서산주부,
그리고 북산주부가 있고, 상좌부는 크게 설일체유부와 설산부(본상좌부)로
나뉘어 지며 설일체유부는 다시 독자부, 화지부, 음광부 그리고 경량부로
되어 있다. 독자부는 법상부, 현위부, 정량부 그리고 밀림산주부로 되어 있다.]
이들 부파들은 현재 이름 정도만 남아 있는 것도 많고 실제에 있어서
인도철학사에서 이렇다 할 학설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진 것은 불과 몇
개뿐이다. 특히 대중부 계통의 문헌은 거의 다 산일되었고 상좌부 계통으로서
문헌이 보존되어 있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교설을 알 수 있는 학파들은
주로 세일론 계통의 상좌부, 설일체유부, 경량부, 독자부 등이다.
이들 부파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관점에 입각하여 전수한 경, 율, 논
삼장의 문헌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현재 그 삼장이 비교적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은 팔리어로 된 세일론 상좌부계통의 삼장과 범어에서부터
한역되어 보존되고 있는 설일체유부 계통의 삼장이다.
경은 원래 불타의 설법을 모은 것이고 율은 불타가 정한 승려생활의
규범을 모은 것으로서, 일찍부터 경과 율은 구전으로 편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논은 이보다도 훨씬 후에 와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원래 불타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삼계, 사념처, 오온, 칠각지 등과
같이 법수에 따라 정돈되어 전해졌던 것이다. 이런 법수를 논모라고 불렀으며
그것만을 전담하여 전수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5)
이러한 경향은 각 부파간의 대립이 심하게 됨에 따라 더욱더 두드러져서
각 부파는 자기들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독립적인 논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세일론을 중심으로 한 상좌부에서는 '법집', '분별', '계론',
'인시설', '논사', '쌍', '발취'의 7론을 논장에 가지게 되었다. 세일론의
전통에 의할 것 같으면 아쇼카왕은 어느날 친히 자기의 별장에서 목갈리풋다
팃사의 주재하에 당시의 승려들을 모두 모은 다음 불타의 참 교설을 물었다
한다. 이에 목갈리풋다는 불타의 교설을 분별설이라 규정하여 승단내의 여러
이단을 제거하고 제삼의 결집회의를 연 다음 거기서 '논사'를 설했다고 한다.(6)
이제 이 상좌부의 철학을 먼저 고찰하여 보자.
2. 상좌부의 철학
상좌부는 스스로의 철학적 입장을 분별설이라 부른다. 여기서 '분별'이란
말이 뜻하는 것은 불타는 사물을 관찰함에 분석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미 불타가 인간존재를 오장의 모든 법이 결합된 것이라고 분석적으로 본 것을
고찰했다. 상좌부는 불타의 이러한 분석적인 정신을 충실하게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상좌부는 현상세계를 법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존재요소들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이 요소들은 서로 기능적으로 존재하여 생기하였다가 그
작용이 다하면 사라진다. 따라서 현존 작용을 하고 있는 것들만 존재하며 또한
과거의 법이라 할지라도 아직 그 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의 업으로서 아직 그 결과로서의 업보가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상좌부는 수많은 법들 가운데서 인간존재를 설명하기에 필요한 법들을 중심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유위법, 즉 상호조건적으로 발생하는 법들을
분석한다. 첫째는 우리의 육체적인 면을 구성하는 색법으로서 28법을 든다.
둘째는 우리의 정신적 현상들로서 의식의 대상이 되는 심소법에 52법을 들며,
세번째로 아무런 내용이 없는 순수한 의식의 작용 그 자체, 혹은 마음을
하나의 법으로 간주한다. 이 식(알 식자)은 실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다른 법들과
함께 공존한다. 식은 감각기관들에 의존하며 순간순간 이어지는 의식들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오온 가운데서 식에 해당하여 색법들은 색에 포섭되고 애, 상, 행은
심적인 법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이들 유위법 가운데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상 결정적 역할을 하는 52개의 심적인 요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의 행위, 즉 업과 해탈의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좌부는 이 52개의 심소법을 해탈에 도움을 주는 25개의 선법, 방해하는 14개의
불선법, 그리고 13개의 중성적인 법들의 3범주로 분류한다. 상좌부는 이상과 같은
81개의 유위법 외에 열반이라는 한 개의 무위법만을 인정하여 모두 합쳐서 82개의
법으로서(7) 인간존재와 인간의 체험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3. 설일체유부의 철학
상좌부는 불타의 전통을 가장 충실히 전수한다고 자부했지만, 상좌부는
일찍부터 인도의 본토에서는 그 맥이 끊어졌고 단지 세일론도에서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도본토에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다시피 하고 사상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부파는 오히려 설일체유부였다. 설일체유부가 상좌부로부터
언제 파생되어 나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논사'가 작성될 무렵, 즉 아쇼카왕의
때에는 이미 하나의 독립된 분파로서 존재한 것으로 간주된다. 설일체유부(간단히
'유부'라고 부름)는 특별히 인도서북부의 간다라나 카쉬미르 지방에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성행했으며, 서력기원 1-2세기 경에는 인도의 서북부와 중앙아시아에
걸쳐서 일대제국을 건설한 쿠샤나왕조의 카니쉬카왕의 지원을 받아 크게 세력을
떨쳤다.
유부도 역시 상좌부의 7론에 비견되는 일곱 개의 논서로 구성된 논장을
산출했다. 이 논서들은 현재 한역으로만 전해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가장
내용적으로 포괄적이며 중요한 것은 '발지론'이다.(8) 이 논은 서력기원전 약
1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카탸챠니푸트라에 의하여 씌어진 저서로서
잡, 결, 지, 업, 대종, 근, 정, 견의 8항목으로 불교의 교리를 다루는 체계적인
저서이다.
'발지론'에는 2세기 초반에 '대비파사론'이라는 200권의 방대한 주역서가
씌여지게 되었다. 이 주석서는 카니쉬카왕이 협존자라는 자에게 명하여
카쉬미르 지방에서 소위 제사의 결집회의를 열어 거기서 편찬하게 한 것이라
한다. 이 논은 단지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불교사상 및
수론이나 승논과 같은 외도의 철학까지 포함하여 다루면서 유부의 정통성을
확립하려고 하는 하나의 백과사전적인 저작이었다. '대비파사론'은 그후로
인도에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저서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유부의 학자들은
'비파사사'라 불리었다. 그러나 '비파사'라는 말(광어라는 뜻)이
나타내듯이 이 논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후에는 그 요점만을 추린
강요서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3세기 초에 씌여진 법승의 '아비운심론'과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요서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이다. 이 책은 문자 그대로 소승불교의 철학을 대표하는
명저로서,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도 소승교학의
입문서와 같이 연구되어 왔다. 세친은 대체로 4, 5세기 경의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간다라지방에서 태어나 카쉬미르지방에 가서 '대비파사론'을
연구한 뒤 그 요점을 뽑아서 600송을 지은 후 거기에다 자신의 주석을 가하여
'구사론'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유부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비판적인 안목을 잃지 않아 때로는 경량부등의 타철학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하기도 한다. 나중에 그는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많은 대승의 논서들을
남겼다. 이제 '구사론'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유부철학을
고찰하기로 한다.
'구사론'은 계, 근, 세간, 업, 수면, 견성, 지, 정, 파아의 구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법의 본체와 작용을
밝히는 계품과 근품이며 파아품에서는 외도의 철학까지 포함하여 아견을
파하고 있다. 이 3품을 중심으로 하여 '구사론'의 근본적인 철학적 입장을
규정할 것 같으면 '인공법유'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인공이란 말은 인간은 영원불변의 자아가 없고 단지 물질적, 그리고 심적
요소들의 혼합체에 불과한 현상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색, 수,
상, 행, 식이라는 오온의 화합으로 보는 불타의 인간관에 그대로 기초한
것이다. 다만 '구사회'에서는 오온 대신 75법을 들어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상좌부에서 82개의
법으로 인간존재를 설명하는 것을 보았거니와 '구사론'의 75법도 이와 같은
류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유부의 철학자들은 법을 존재의 기본적 요소로
보는 관점이 점점 철저해짐에 따라 법을 실체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공법유의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은 공(빌 공)하나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항구적으로 존속한다는 이론이다. 유부는 이 점을 '삼세실유 법체항유'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유부철학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즉 법의 나타남과 작용은
순간적인 현재뿐이나 법의 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하여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부가 법에 관하여 이런 실재론적 견해를 취하게 된 주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행한 행위(업)의 효력과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에 과거에 지은 업이 어떤 지속적인 힘으로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순간적인 것뿐이라면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그 결과가 나타날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업의 법칙을 부정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유부는 업력의 소재로서 삼세를 통한 법의 실유를 상정하는 것이다.
유부에서는 또한 우리가 신체나 언어로 지은 업의 작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무표업 혹은 무표색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설정한다. 무표색이란 11개의 법
중의 하나로서 외부에 나타나는 우리의 신체적 언어적 행위가 그친 후에도
계속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그 행위의 결과를 초래하도록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질을 말한다. 행위의 인과 과를 이어주는 일종의 색법인
것이다.
'구사론'의 75법은 유위법과 3개의 무위법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오위로
분류하기도 한다. 즉 색법 11개, 심법 1개, 심소법 46개, 심불상응행법
14개, 그리고 무위법 3개의 오위이다. 이것은 무위법 3개를 제외하고 모든
유위법을 오온에 준하여 분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다섯 가지의 법
가운데서 유부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특징적으로 잘 나타내주는 것은 네번째의
범주, 즉 14개의 심불상응행법들이다. 심불상응행이란 말은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주면서도 심소법처럼 의식의 대상은 되지 않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즉 심에 상응하지 않는 행법이란 뜻이다. 여기서 행법이란 행, 즉 의지적
성향에 의거하여 발생하는 유의법을 말한다. 이러한 심불상응행법으로서
유위법을 말한다. 이러한 심불상응행법으로서 유부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든다.
득과 무득 - 한 개인으로 하여금 업에 따라서 어떤 법을 얻거나 잃게 하는
힘들.
동분 - 유정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들이 속하는 류의 공통적 특성을 유지하게
하는 법.
명 - 명근으로서 개인의 수명을 결정하는 생명력.
무상과, 무상정, 멸진정 - 이 셋은 모든 분별작용이 사라진 정신상태를 이루게
하는 힘들.
상 - 모든 유위법의 특징인 생, 주, 이, 멸의 힘들.
명신, 구신, 문신- 소리와 말과 문장에 그들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힘들.
이상과 같은 14개의 심불상응행법들의 개념은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승론 철학의 다원적 실재론의 사고방식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서 유부의
철학이 정립될 당시 승론철학이 이미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부에서 말하는 3개의 무위법이란 허공, 지혜에 의하여 얻어
지는
열반인 택멸무위, 인연이 없어서 어떤 법도 생기함이 없는 비택멸무위로서 이들은 생, 주,
이,
멸의 사상을 여읜 절대적이고 영원한 법들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사론의 계, 근, 피아품을 중심하여 유부철학을 살펴보았다.
구사론의 나무지 부분들 가운데서 세간품과 업품과 수안품은 생사의 과와 인과 연을
설명하여 현성품, 지품, 정품은 수행과 증오의 과와 인과 연을 설명하는 것이다. 구사론은
이렇게 매우 포괄적이며 짜임새 있는 논서로서 유부의 철학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일반에 좋은
지침서이기도 하다. 세친 이후 안혜, 견혜, 진나, 세우 등의 논사들이 출현하여 구사론에
주석서를 썼다.
4. 경량부와 독자부
설일절유부의 철학은 제법의 실체와 현상을 구별하여 제법의 현상은 순간적으로 변하나
실체는
영원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다원적이고 실재론적인 사상이다. 이것은 제법의 무아와 무
상을
강조하는 원시불교의 현상주의적인 철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서, 변하는 것 가운
데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인간의 또 하나의 갈망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부의 실재론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그들이 의거하고 있던 논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순수히 불타가 설한 경만을 따를 것을 주장하고 나온 부파가 경량부였다. 경량부는 2세기에
구마라라타에 의하여 설일절유부로부터 분리해 나왔다. 그들의 저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나
구사론이나 다른 문헌들을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경량부는 법의 실체와 상을 구별하는 유부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이란 오직 순간
순간
변하는 상뿐이며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법은 순간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생기자마자 없어
진다.
따라서 경량부는 유위법의 사상인 생, 주, 이, 멸 가운데서 생과 별만을 인정한다. 한 마디
로
말해서 경량부는 유부의 근본적 입장인 삼세실유법체항유를 곧 바로 부정하고
현재유체과말미무체를 주장한다. 그들은 법의 분류에 있어서도 색법 가운데서 사대와 필법
하나만을 인정하며 나머지 모든 법은 인정하지 않는다. 열반이라는 것은 일체의 번뇌가 사라
지고
제법이 적멸한 상태로서 유부에서처럼 어떤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열반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법은 경량부에 의할 것 같으면 실체적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는
가명적인 것뿐이다. 이와 같이 볼 때 경량부는 실로 불타의 무상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유부의 실재론적인 철학을 거부하고 유명론적인 입장을 철저히 고수한 것이다.
경량부는 존재를 순간적인 법들의 연속으로 보기 때문에 지각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
다.
만약에 존지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떤 사물을 지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
나간
것만을 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각이 외계의 세계를 그대로 반
영한
다고 하는 소박한 믿음은 깨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모든 지각은 간접적인 것이다. 우리
가
지각하는 것은 대상 자체라기 보다는 지나간 대상에 관한 인상들뿐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상들로부터 단지 추리에 의하여 대상의 세계를 알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외계의
인식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나중에 외계의 실재성까지도 부인하는 유식철학으로 발전하게 되
는
것이다.
무상의 세계관을 저버린 유부의 실재론적 철학에 반발했던 경량부도 무아설과 업보를 어떻
게
조화시킬까 하는 문제에 와서는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만약에 인간존
재가
단지 순간적으로 변하는 제법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는 업의 주체로서의 나
와
업보를 받는 나 사이에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과거에 지은 업은 어떠한 형태
로
어디에 존속하다가 과보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경량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
로서
우선 인간존재의 밑바닥에 그 흐름이 의지하고 있는 바의 어떤 기체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
것은
일미온 혹은 근본온이라 부르며, 이 일미온은 언제나 동일한 본질로서 계속해서 작용을 하고
있는 미세한 의식으로서 윤회의 주체가 되는 존재라고 한다. 이 식은 우리가 행한 좋고 나쁜
업의 결과로서의 종자들을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이 종자들은 우리가 지은 업의 훈습에 의하
여
우리 안에 남게 되는 습기와 같은 것으로서, 이 종자들이 나중에 현행되어 업보로서의 열매
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자설로써 경량부는 업보를 설명하며 유부에서 말하는 무표
업의
이론에 대신하고자 한 것이다. 경량부에 의하면 종자들은 잠복기간 동안 불변하게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전변하며 있다가 결과로서 나타난다고 한다. 경량부의 이러한 사상은 자중에
대승불교의 유식철학에 직결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독자부(9)는 또 하나의 독특한 이론을 내세웠다. 인간에게는 오온과는
다른, 그러나 오온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 비즉비이온으로서의 푸드갈가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업보를 받는 존재로서 윤회를 하거나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독자
부는
이 푸드갈라와 오온과의 관계를 불과 연료와의 관계와 같다고 한다. 마치 불이 연료를 떠나
서
존재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연료 자체는 아닌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만약에 푸드갈라가
오온 이외의 어떤 존재라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어떤 영원한 존재일 것이며 이것은 상견에 빠
지는
것이며, 만약에 푸드갈라가 오온과 동일하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단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고 한다. 푸드갈라는 오온과 같은 유위법도 아니요 오온과 다른 무위법도 아닌 규정하
기
어려운 독특한 존재라고 한다. 이 이론은 항시 변하는 현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기동일성
을
확보함과 동시에 열반을 유부에서처럼 어떤 비인격적인 법으로 간과하기 않고 유위법과 무위
법의
중간적 존재인 자아의 상태로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경량부와 독자부의 이론들은 원시불교의 근본적 세계관인 무아의 사상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문제점들, 특히 윤회와 업보의 문제를 해
결해
보려는 시도로서, 후의 대승불교의 아라야식 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좌부, 설일절유부, 경량부, 독자부의 학설을 고찰함으로써 서력기원전
약
3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발전된 상좌부 계통부파들의 철학을 살펴보았다.
(9) 독자부란 이름의 뜻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다. 푸드갈라의 이론으로 유명
하기
때문에 pukgalavada라고도 부른다. 토마스의 전게서, 39쪽, 92~126쪽 참조.
5. 대중부의 불교사상
한편, 대중적 진보주의를 표방하면서 상좌부와 대립하여 자체 내에서 많은 부파을 파생시
킨
대중부는 불교교리발달상에 있어서 많은 새로운 이론들을 발생시켰다. 이들은 후에 대승불교
발전의 기반이 된 것으로서 보인다. 우선 종교적으로 대중부는 새로운 불타관을 전개했다.
불타가
입멸한 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에 대한 한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희박하여지게 되
고,
신도들 간에는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으로 인하여 그를 이상화하여 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삼는 경향도 보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불타는 그 외모에 있어서 인도인
들이
이상으로 하던 위대한 인간들이 갖추어야 하는 32상, 80종노를 갖추었고 그의 마음은 십력,
사무외와 같은 신비스러운 힘들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불타로서의 그의 생애의 위대한 업적
은
도저히 한 생애의 짧은 기간의 수행만으로서의 성취될 수 없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불타는 전
생에
서 수많은 훌륭한 공덕을 쌓았음에 틀림없다고 믿게 됐다. 이에 따라 그의 전생을 이야기하
는
본생담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타와 성자들을 추모한 나머지 그들의 유골이
나
유품들의 숭배도 성행하게 되어 신도들은 탑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안에 유골을 안치하고
탑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참배하며 헌화로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
타에
대한 경애감과 신심은 대중부에서 더욱 더 두드러져, 불타를 완전히 초세간적 존재로 신격화
해서까지 보게 된 것이다. 대중부에 의할 것 같으면 제불세존은 모두 출세간적이며 모든 여
래는
유루법이 없으며, 그의 말은 모두 설법이고, 그의 몸과 위력과 수명은 끝이 없으며, 그는 물
음에
답하되 생각이 필요없으며 일찰나의 마음에 일절법을 안다고 한다. 대중부는 또한 불타가 되
기를
희망하는 보살에 관하여도 말하기를 그들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악취(동물이나 아귀와 같이 나쁜 존재)에 태어나기를 원하며 또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
고
한다.
대중부는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중생의 심성은 본래 깨끗하나 객진과 같은 번뇌에 의하여
더럽혀질 뿐이라고 하여 모든 중생이 불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10) 유위법은 현재
에만
존재한다고 하여 경량부와 같이 유부의 법체항유의 사상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중부는
무위법으로 9개를 인정했다. 즉 택멸, 비택멸, 허공,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
비상처,
연기지성, 성도지성이다. 이것은 유부의 3무위법 이외에 신정의 사단계, 연기법, 팔정도 같
은 것을
영원한 실재나 진리로 간주한 것이다.
(10) 이상의 대중부의 교설은 기부종륜론, 대정신수대장경 49쪽, 15쪽에 근거.
6. 바라문교의 재정비
1. 바라문교의 불교
불교나 쟈이나교와 같은 자유사상적 종교운동은 종래의 바라문교의 전통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바라문전토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베다의 제사의식과 이에 따르는 바라문계급의 종교
적,
사회적 권위에 있었던 것이다. 불교나 쟈이나교의 강한 윤리적 합리성에 입각한 종교로서
반제사주의적 성격을 지졌고, 사회적으로도 또한 초세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유리관으로 인
하여
바라문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이미 바라문교의 내부에서도 일
어나
우파니샤드 사상의 배경을 형성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라문교의 전통에 가장 큰 위협
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불교였다.
불교는 특히 마우리야왕조의 아쇼카왕의 귀의를 받아 그의 지원 아래 크게 세력이 팽창하
여
전인도적인 종교로서 성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제국들에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아쇼카왕은 마우리야왕조의 건설자인 챤드라굽타의 손자로서 B.C. 269년경에 왕조를 물려받
았다.
챤드라굽타는 알렉산더대왕의 인도 서북부침입으로 인한 인도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당시
의
강대국이었던 마가다의 난다왕을 제거하고 수도 파탈리푸트라를 장악하여 마우리야왕조를
수립했다(B.C. 320). 챤드라굽타는 그의 대신이며 유명한 실리론의 제자로 전해지는 카우틸
리야의
보조를 받아 인도의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위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아쇼카왕의 치적에 관하여는 다행히도 그가 남긴 바위와 석주에 새긴 속령들을 통하여 많
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칙령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많은 정복활동을 통하여 그의 영토의 확장
에
힘쓰던 중 인도 중동부의 카링가 지방의 정벌 후에 전재의 참상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불
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로부터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정책을 포기하고 그 대신
법에
의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을 그의 대의정책으로 삼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이와 같은 도덕
적인
정책을 통하여 인접국가들로부터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정에 있어서도
그는
인정을 베풀어 여행자를 위하여 길가에 과실나무를 심고 휴게소를 만들고 우물을 파는 일,
약초의 재배와 요양원의 설치 등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그는 특별히 음식과 제사를 위한
살생의 유적지에 순례를 행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법에 의한 통치를 위하여 법대관들을
지방에다 파견하여 감독하게까지 하였다.
아쇼카왕은 당시의 모든 종교교단들에 관용을 베풀었지만 그 자신은 불, 법, 승의 삼보에
귀의한 불교신자였다. 그가 전파하려고 한 법이란 불타의 깊은 철학적 진리를 말한다기보다
는
주로 선한 도덕적 행위를 뜻했지만, 여하튼 그것은 바라문의 사회윤리로서의 다르마가 아니
라
불교의 보편주의적 평등사상에 입각한 윤리적 선을 의미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지녔던 것이
다.
마우리야왕조는 아쇼카왕의 사후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고 인도는 다시 정치적 혼란기로
들어갔다. B.C. 183년경에는 바라문 출신의 장군 푸샤미트라 슝가라는 사람이 나타나 마지막
마우리야왕을 제거하고 슝가왕조를 수립했다. 그는 정통 바라문주의의 신봉자로서 베다의
동물제사를 부활시키며 불교를 탄압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상황하에서 바라문교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전통을 재정비하며 불교와
같은
대중적 종교운동에 대항하여 그들의 사회적 저변을 확대할 필요에 봉착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바라문교가 대체로 세 방면으로 새로운 지반을 구축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로
불교와 같이 해설을 위한 수행의 체계를 조직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다. 이것은 요가사상
의
체계적 발전으로 나아간다. 둘째로, 바라문교는 비아리안 계통의 인도의 원주민들에 깊은 뿌
리를
박고 있는 토착적 신앙과의 습합을 통하여 대중적 신앙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세째로는 불교
에서
비교적 등한시해온 재가자들을 위한 생활규범으로서의 사회윤리체계의 확립에 힘썼다. 이러
한
노력들을 통하여 바라문교는 좀더 포괄적인 종교로서 그 지반을 확대하면서 불교의 도전에
대처하였던 것이다. 바라문교의 이러한 새로운 추세를 잘 반영해 주고 있는 문헌은 서력 기
원 약
200년경에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와 같은 서사시들이다. 특히
마하바라타는 실로 인도 고전문화의 총화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
하며
종교, 철학, 법률, 정치, 윤리, 신화, 역사 등의 백과사전적 보고와 같은 문헌이다. 이제 이
마하바라타를 중심으로 하여 바라문교의 새로운 모습을 검토하여 보자.
2.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신앙
본래 마하바라타는 베다시대의 아리안족들 중의 하나인 바라타족의 군담으로서, 현재의
델히부근인 쿠루크세트라라는 지방에서 벌어지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재의 이야기를 그
중심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약 1000년 정도(B.C. 800~200 A.D.)의 오랜 세월을 두고 자라
는
동안 바라문들의 손에 의하여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사상적 내용들이 혼입되어, 현재에는 약
10만송 가량의 방대한 서사시로서 18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종교적으로 보아 마하바라타는
많은
부분이 바라문의 베다적 전통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베다에서 찾기 어
려운
점들도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것은 힌두교의 가장 대중적 신앙의 대상인
쉬바신과 비슈누신의 등장이다.
쉬바신의 숭배는 하라파나 모헨조다로의 유적발굴에서 나온 인더스 문화의 유물들을 통하
여
제시되었듯이, 아리안족의 이주 이전의 인도 원주민들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는 듯 싶으나,
그 후
아리안족들의 베다전통에서는 거의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
드와
같은 후기 우파니샤드에 와서 쉬바는 베다의 신 루드라와 동일시되고 다름아닌 브라만 자체
로서
간주되게 된다. 이것은 그 동안에 쉬바신에 대한 신앙이 널리 발전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다.
마하바라타에 와서는 그는 온 우주를 창조한 위대한 신으로 숭배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신화적 전통도 풍부하게 형성되어, 히말라야의 높은 카일라사 산 속에서 심한 고행을 통하여
이
세계는 유지되며 상투를 튼 그의 머리꼭대기에는 초생달이 걸려 있고 이로부터 성스러운
갠지스강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그의 몸은 고행자들처럼 재로 덮여 있고 그의 모과 팔은 뱀
으로
휘감겨 있다. 그의 곁에는 그의 무기 삼지창과 그가 타고 다니는 황소 난디가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아내 파르바티 혹은 우마와 함께 히말라야 산 속에 거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쉬바
신은
또한 세계의 창조적 힘으로서 남근의 상징을 통하여 숭배되기도 한다. 남근숭배는 이미
하라파문화의 유적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마하바라타에서 쉬바신보다도 더 큰 대중적 신앙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슈누신이다. 비슈누신은 물론 베다와 브라흐마나에서도 이미 중요한 신으로 언급되지만,
그가
대중적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베다 전통의 밖에서 숭배되고 있던 바수데바나 크리슈나와 같
은
신, 혹은 바라문의 종교전통에 기원을 둔 또 하나의 신 나라야나와 동일시된 후로부터이다.
여하튼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 나라야나, 하리, 바수데바, 크리슈나 등이 모두 같은 존재로
동일시되고 있으며, 바가바트, 즉 존귀한 자, 주라는 뜻의 칭호로서 불리어지고 있어 그에
대한
신앙과 전통이 널리 퍼지고 발전되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비슈누신은 세계와 만물의 근원
으로
서, 유명한 신화에 의하면 그는 태고의 대양 가운데서 천수를 가진 뱀 쉐샤 위에서 잠을 자
고
있는 동안 그의 배꼽으로부터 연꽃이 자라난다. 이 연꽃으로부터 우주창조의 대행자 브라마
신이
태어나서 세계를 창조한다. 세계가 창조되자 비슈누신은 잠엣 깨어나 최상천인 바이쿤타에서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그는 주로 네 개의 팔을 가진 어두운 색깔의 인간으로 묘사되며 큰
독수리 가루다를 타로 다닌다. 그의 아내 락스미 혹은 슈리도 행운의 여신으로서 널리
숭배되었다.
마하바라타 가운데서 비슈누신앙을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유명한 바가바드
기타이다. 기타는 힌두교의 바이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한 종교적 철학적 문헌으로서, 인
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애독되고 잇는 고전이다. 이제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
다.
3.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
바가바드 기타는 원래 바수데바라는 인격신을 숭배하던 중인도 서부의 바가바타파에 의하
여
만들어진 독립적인 시편으로서, 나중에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으로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가바드란 말은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뜻이며, 기타는 이 지존의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듯이다. 이 바가바타파들이 거하던 지방에 크리슈나라는 영웅이 있었는
데, 이
영웅은 신격화되어 지존과 동일시되게 되었으며, 바가바드신앙이 점차 퍼짐에 따라 바라문
문화의 중심지인 중인도 동부에까지 미쳐, 결국 바수데바-크리슈나신은 비슈누신과 동일시되
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가바드 기타의 교훈의 주가 되는 크리슈나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까지
간주되게 된 것이다.
마하바라타는 바라타족중에서 사촌간인 판다바 형제와 카우라바 형제들 간의 왕위계승을
위한
싸움의 이야기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이 서사시의 제 6권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직접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다. 판다바 5형제 중의 세째이며 크리슈나의 친구인 아르쥬나는 그의 사촌들인
카우라바 형제들과 전장에서 대결하여 살육전을 벌이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용기를 잃고
만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동족을 죽이지는 못하겠다고 고백을 하자, 아르쥬나의 수레잡이로서
그를
돕던 크리슈나가 그에게 무사로서의 의무인 싸움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설득시킨다. 이것이
바가바드 기타의 형식상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 어
떤
체계적인 철학논서라기보다는 여러가지 해탈의 방법을 제시한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바가바드 기타는 그 전체적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요가의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3종의 요가를 말하고 있다. 즉 지의 요가, 행의 요가, 그리고 신애의 요
가이다.
각기 인간의 시, 정, 의의 3면에 상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의 요가는 지에 대한 전념
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타에서 지란 상키야철학에 있어서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의 참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와를 분명히 구별하는 지혜를 의미하며, 혹은 우파니사드적인 범아일여
의
진리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신애의 요가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신에게 온 정
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에 의하여 윤회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상이다. 신애의 사상은 이미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에도 나타나 있지만 바가바드
기타에 와서야
비로서 본격적인 자세를 보이게 되었으며, 그 후의 모든 대중적 신앙운동과 유신론적 철학사
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행의 요가는 기타에 있어서 가장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상으로서, 바라문의 사회윤리 질서
와
해탈의 길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해 주는 데 그 사상적 의의가 있다. 바라문의 사회윤리에 의
하면
사람이란 누구든지 자기가 속한 계급과 나이가 규정하는 올바른
행위 dharma를 하여야만 하며 그렇게 해야만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올바른 행위를 할지라도 우리는 자연히 그 행위의 결과를
얻기 마련이며 따라서 윤회의 세계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우파니샤드 이후에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어 버리고 고행과 더불어 신비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포기자의 이상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불교에 의하여 이러한 운동이 대폭적으로
확대됨에 사회윤리 및 질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바라문계급의
지도자들에게는 상당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바라문교 자체의
사회적 기반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바가바드
기타"의 행의
요가 사상은 사회윤리를 준수하는 행위 자체가 해탈의 이상에 비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기타"에 의하면 우리의 속박을 가져오는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는 욕망이라고 한다.
행위는 아무런 욕망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한 업보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행위자의 내면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기타"는 말하기를 사람은
자연의 본성상 잠시도 행위없이 존속할 수 없으며, 문제는 행위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가운데서의 체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윤리와 해탈간의 긴장관계는
카르마 요가에 의하여 지양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위를 하면서도 체념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여야
욕망이 없이 행위 아닌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기타"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지혜의 필요성이다. 특별히 상키야 철학에서
말하는 영원한 두개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되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혼동
없는 확실한 구별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우리의 물질적
자아가 하는 것이며, 우리의 참자아인 정신은 어떠한 행위에도 개입하지 않
으며 언제나 자유로운 방관자 내지 관조자와 같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때에는 우리는 아무 욕망 없이 우리가 지닌 프라크르티의
필연적 성품에 따라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카르마 요가의 다른 한 방법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신에 대한 전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순수한 것으로서
업보를 초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해 그와 사랑의 연합을
하는 구원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 결국 행의
요가란 지의 요가나 신애의 요가로부터 독립해서 있는 길이라기보다는 바로
지와 신애에 입각한 행위의 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기타"가
욕망없는 행위라는 개념에 착안하여 사회윤리적 의무와 해탈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동시에 살리는 적극적인 행동의 철학을 전개한 것은 인도사상사상
특기할 만한 사상이다. "기타"는 행의 요가라는 사상을 통하여 한편으로는
사성계급에 근거한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애의 길을 통하여 여자나 슈드라 계급까지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대중적인 구원의 길을 터준 것이다. 참으로 포기한 자는 외형적으로
출가한 자가 아니라 마음의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타"의 사상을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지와 신애를 둘 다 강조하고
있으며, 때로는 재에 가장 높은 수행의 목표를 두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최고의 길로 제시되고 있으며 지는 신애에 이르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바가바드 기타"에는 우파니샤드적인
일원적인 사상과 상키야철학의 이차론적 요소, 자각의 종교와 신앙의
종교와의 차이 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후세의 베단타철학의 거장들인 샹카라와 라마누자가 각기 자기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이 양면 중의 한 면을 더 강조하는 "기타"의 해석을
하게 된 것도 그 근거가 이미 "기타"내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해탈법품"에 나타난 철학사상
"바가바드 기타"와 더불어 "마하바라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부분은 제12권 "해탈법품"이다. "해탈법품"의 철학사상도 결코 어떤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잡다한 사상들이 여러 모양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가 하면 상호 모순적으로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상키야요가철학의 사상이다.
우리는 이미 후기 우파니샤드들에 상키야철학의 사상이 나타나 있음을
언급했거니와 "마하바라타"의 "해탈법품"에는 이 원시 상키야 사상이 더욱
발전되어 체계화된 상키야 사상에 아주 가까운 형태로 전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해탈법품"의 인도철학사적인 의의는 후기 우파니샤드와
마찬가지로 체계화된 상키야철학 이전의 상키야 사상의 발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특히 상키야 철학의 25윈리 및 세계전변설의 기초가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우선 감각기관의 수는 눈 귀 코 혀
몸의 5근으로 고정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여섯번째의 감각기관이라 불리는
의근이 심리기관으로서 모든 감각기관의 우두머리로 정립되어 있다. 또한
오원소설이 이론적 발전을 보아 오근에 해당하는 오대 혹은 오원소가
설정되게 된다. 종래에는 땅 물 불 바람의 사원소만을 말하던 것이 공이라는
소리의 성질을 지닌 원소가 추가되어 인도철학의 일반적인 정설로
형성되었다. 이 오대와 더불어 그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지배적 성품으로서
향 미 색 촉 풍의 오경이 언급된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고찰하겠지만
고전 상키야체계에서처럼 오경이 아직은 오유로 대체되어 있지 않으며,
오대도 오유로부터 전개해나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섯 개의 감각기관인
오지근과 오작근 및 의의 11근도 오대와 오경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어,자의적으로부터 전개된 것으로 보는 고전 상키야의 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정신적 원리인 푸루샤와 물질적 원리인 프라크르티의 개념은
물론, 상키야 철학의 세계설명의 중요한 이론이 되고 있는 3요소의 사상도
찾아볼 수 있다.
"해탈법품"에는 이론적인 상키야 철학뿐만 아니라 실천적 성격이 강한
요가의 사상이 아직도 상키야 철학과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은 채로 발견된다.
"해탈법품"은 요가는 사회계급이 낮은 자나 여자들도 실천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상키야의 주지주의적 철학에 대하여 요가의 대중적,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요가의 실천방법에는 여러 가지 상이한 견해들
발견되나, 그 핵심은 감각기관을 대상의 세계로부터 퇴거하여 의근에 붙잡고
모든 생각의 활동을 멈추어서 우리의 참자아를 밝게 드러내는 것에 있다.
아트만을 아는 것은 아트만 자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지성이라 하기도 하나,
의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의근이 아트만과 더불어 윤회의 주체가
된다는 사상도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고전 상키야 철학에 있어서 부디가 차지
하고 있는 지배적 역할과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5. 파라문적 사회윤리의 확립
불교가 아무리 왕성한 포교활동과 자유롭고 평등
윤리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대중적 종교로서 바라문교를 위협하는 세력을 형성하였다 하더라고,
불교는 종교로서 한가지 결정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불교가
불타 당시부터 출가승들을 중심으로 한 사원중심적인 종교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탈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과 갈망이 없는 재가자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한 불교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주는 윤리체계는
제공하지 못했다. 재가자들의 종교생활은 삼보에 귀의하여 오계를 지키며
승가에 필요한 물질적 포시를 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오히려 그들의 일상
생활의 관습속에 깊이 파고들어 가서 그들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베다시대
이래고 계속해서 내려오는 제의적 행위의 전통이었다. 더우기 우파니샤드
시대 이래로 고대인도인들 가운데서 윤회와 업보에 대한
믿음이 보편화되면서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들이 선한 행위로서 좋은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재가자들은 자연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같은 베다내에서도 브라흐마나와 같은 것은 제의를 주로 다루는
행위편으로서 우파니샤드와 같은 지식편과 별도로 연구되어 왔지만, 행위의
문제는 브라흐마나 이래로 계속해서 바라문 지도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베다적 의식들의 규범을 .취급하는 "천계경", 재가자들의
사회생활의 의무를 더 폭넓게 규정해 주는 "가정경", 이나 "의무경"들이
편찬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의무"란 것은 우주의 법칙 그 자체에 근거하여
그것을 유지한다고 믿어지는 제사의 의무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무까지
의미하게 되었다. "의무경"은 이러한 면에서 바라문교의 윤리전통상 매우
중요한 문헌으로서 누구나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의무와
의례적 규범들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경"은 더욱 발전하여
서력기원전 약 2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 사이에는 고대인도인의
생활규범을 더욱더 완전하게 체계적으로 제정해 놓은 법전들이 편찬되게
된 것이다.이 법전들 가운데서 가장 권위있는 것은
마누법전(200B.C~300 A.D)과 야즈나발키야법전(100~300) 같은 것으로서,
이들은 마우리야왕조 이후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점점 더 복잡해 가는
사회적 상황과 불교와 같은 비바라문계의 종교적, 사상적 위협에 대처한
바라문들의 대응으로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법전들도 우파니샤드처럼 지식과 해탈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서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제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현세의 삶 속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의무적 행위를 체계적으로 규정해 주는데 있다. 이러한
의무적 행위체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위
"마르나아슈라마"제도, 즉 사성계급의 사회적 의무와 인생의 사기에서
개인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제시해 주는 제도이다. 특히
생의 사기에 대한 이론은 현세에서 사회적 질서를 준수하며 사는 재가자의
삶과 초세간적 해탈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만들어 진 것이다.
즉, 생의 제1기는 범행자의 생활로서, 아동기를 마친다는 표식으로서
입문식을 한 다음 집을 떠나서 스승의 지도하에 베다 등의 학문을 배우며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제2기에는 학습기간이 끝난 다음 재가자로서 결혼을
하고 신들과 조상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 후계를 낳는 일 등을 하며
본능적 욕망과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한다. "마누법전"은 이 시기를
바라문적 사회질서의 핵심으로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제3기는 제가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마치고 손자를 본 다음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면서 명상과
금욕의 생활을 한다. 이것이 임서자의 생활이다. 마지막으로 제4기에는
완전히 일체의 사회적 축대관계를 끊고서 현세의 삶을 "포기한 자"로서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이와 같이 하여 바라문의 사회윤리체계는 인생이 추구해야 할 제가치들을
치우침 없이 균형있게 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불교의
해탈중심적인 경향을 제재하며 사회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자한 것이다.
제2부 인도철학의 체계화
제7장 상키야 요가철학
1 인도철학의 체계화
지금까지 우리는 서력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전 2세기 가량에 걸친
인도철학의 형성기를 고찰해왔다. 이 기간을 인도철학의 형성기라 부르는
것은 이 기간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철학적 사상들이 형성되어 후세에 와서
체계화된 철학적 학파들의 근본성격을 결정지어 주는 밑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다양한 사상들은 소승불교의 몇몇 학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직도 질서있는 논리와 인식론적 비판을 통하여 수립된 체계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수행과 체험에 입각한 단편적인 철학적 통찰들이라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철학적 문헌들은
그 형식에 있어서도 우파니샤드나 불교경전들과 같이 주로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어떤 일정한 철학적 세계관을 일관성있게 체계적으로
진술하거나 옹호하는 논문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약 200년부터는
종래의 바라문의 전통 내에서 여러 가지 흐름을 형성하여 오던 사상들이
각기 독자적인 학파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들은 자기들의 철학적 견해들을
간략하게 집약하여 진술하는 경이라는 문헌을 산출하게 되었다.이 경들은
각 학파의 근본경전이 되었으며, 그 내용이 너무 간결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에 대한 주석서인 소와 이 소의 내용을 체계화하여 다루는 논이
씌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도철학의 학파적 체계적 발전은 아무래도 불교
내의 부파철학적 발전에 힘입은 듯하며, 이로부터는 인도철학의 발전은
각 학파간의 상호의식과 논쟁 가운데서 진행되게 되었다. 따라서 각
학파들은 그들의 형이상학적 견해만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인식론적으로 밑받침하려는 노력도 보이게
되었다. 이로써 인도철학은 자기반성적인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상좌부, 설일체유부, 경량부와 같은 소승불교의 체계적
발전을 고찰했거니와 이제부터는 바라문의 정통육파철학과 대승불교철학의
체계를 그 철학적 내용에 중점을 두면서 학파별로 고찰하기로 한다.1)
1) 소승부파불교의 철학은 시기적으로도 아쇼카왕을 전후로 하여 일찍
전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서술의 편의상 1부(형성기)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설일체유부나 경량부 같은 학파는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2부(체계기)에서 다루어도 무방한 것임을 밝혀둔다.
2 상키야 요가철학의 전통
상키야철학은 인도의 체계화된 철학파 가운데서 가장 먼저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2) 상키야철학 사상은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카타우파니샤드'나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와 같은 후기 우파니샤드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또한 '마하바라타'의 제12권 '해탈법품'에도
여러가지 초기 상키야철학의 형태가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우리는 이미
보았다. 특히 '바가바드 기타'가 형성된 당시, 즉 서럭기원전 2~ 3세기
경에는 상키야는 요가와 더불어 하나의 잘 확립된 사상으로서 존재한 듯
보이며, '기타'에 사상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대 문헌들에 나타나 있는 나타나 있는 상키야 철학은 어디까지나 아직도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초기의 것으로서 나중에 형성된 고전적 무신론적
상키야 철학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상키야 철학은 전통적으로 카필라라는 기원전 4세기 경의 성현을 원조로
하며, 그의 제자 아슈리 판차쉬카 등에 의하여 대대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초기 상키야 사상가들의 저서는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카필라에 의해서 씌어졌다고 전해지는 '수론해탈경'은 학자들에 의하면
빨라야 9세기 정도에 씌여진 위작으로 여겨지고 있다.3) 17세기의
베단타철학자인 비즈냐나빅슈는 이 경의 주석서를 썼으며, 그는 또한
상키야철학에 대한 중요한 기본서로서 '수론정요'라는 책을 썼다.
현존하는 고전 상키야철학서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되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슈바라크리쉬나 자재흑의 '수론송'이다. 우리는 이 '수론송'에
와서야 수론철학이 분명히 이원론적, 무신론적 철학으로 정립되는 것을
보게 된다. '수론송'은 기원후 4세기 경에 씌여진 것으로 추측되며4)
모두 70절로 되어 있어 '수론70'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인도의 고전
철학서 가운데서도 백미로 간주되는 명저이다. 8세기의 철학자 가우다파다의
주석서 '수론송소'와 9세기의 베단타 철학자 바차스파티미슈라의 주석서인
'진리월광'이 있다.
상키야 철학은 독자적인 학파로서 근세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지는
못했으나 상키야 철학의 여러 이론들은 베단타 철학 등 타철학파들에
흡수되었으며 5) 인도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어 왔다.
상키야철학 연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는 요가학파의 문헌들이다.
요가는 상키야철학의 세계관과 형이상학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시에 실천 수행의 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학파로서, '요가경'이라는
근본경전을 갖고 있다. '요가경'은 전통적으로 파탄잘리라는 B.C. 2세기의
인물에 6) 의한 저서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상으로는 서력기원 후 4~ 5세기
경에야 완성된 고전으로 간주된다. 7) 그러나 물론 요가적인 수행의 전통은
이보다 훨신 이전으로 소급하여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요가의 기원은
아마도 이미 베다시대부터 바라문들이 제사 때에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힘과 지혜를 얻기 위하여 행하던 고행의 행위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보다도 더 앞서, 인더스문명의 유적 가운데서 요가의 좌법을 한
신상이 발굴됨에 따라 요가는 아마도 베다나 아리안족의 풍습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니라 비아리안적인 행법이 아니었는가라는 추측도 자아내고 있다.
여하튼 '카타 우파니샤드'에서는 '요가'라는 말은 감각기관과 마음을
제어하여 절대자를 인식하는 방법을 뜻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이미 불타나 혹은 그에게 선법을 가르쳐 주던 출가수행자들 가운데서
성행하였던 것이다.
'마하바라타'에 와서는 요가는 상키야와 더불어 두 개의 분명한 사상적
체계로서 인정되고 있다. 상키야는 해탈에 이르는 이론적인 접근으로,
그리고 요가는 같은 목적을 위한 실천적 수행적인 방법으로 구별되어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랜 실천적인 전통이 타사상가들이
철학적인 체계로 성립됨에 따라서 '요가경'에 와서 다듬어지고 정리되게
된 것이다.
'요가경'의 주석서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바샤의 '요가경소'이다. 경과
소가 모두 '수론의 해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씌어진 당시에 8) 이미 상키야 철학과 요가는 동일한 사상으로 이해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요가 철학은 유신론적인 사상으로서
본래부터 상키야와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여하튼
9세기의 바차스파티미슈라는 뱌사의 소에 '진리통효'라는 복주를 썼으며
이에 의하여 요가철학의 학설은 고정되게 되었다. 16세기의 비즈냐나빅슈도
뱌사의 소에 '요가평전'이라는 주석서와 '요가정수강요''라는 요가철학의
강요서를 저술했다.
이제 이슈바라크리슈나의 '수론송'과 파탄잘리의 '요가경', 그리고
바차스파티미슈라의 주석을 중심으로 하여 상키야 요가 철학의 대강을
살펴보기로 하며, 때에 따라 두 사상의 중요한 차이점들을 언급하기로 한다.
2) 상키야 철학은 세계를 25원리(tattva)에 의하여 설명하므로 수를
중시한다 하여 수론이라 불려왔다. 'Samkhya'라는 말도 '계산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3) 이 경은 Sankara에 의해서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9세기의
Vacaspatimisra는 이 경 대신에 '수론송'에 주석을 쓴 것으로 보아 상당히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4) '수론송'은 560년경에 진체에 의하여 주석과 함께 영역되었다.
5) 17세기의 비슈누파의 베단타 철학자인 비쥬냐나빅슈는 상키야 철학을
냐야-바이쉐시카 철학과 더불어 영원한 베단타 진리의 한 면으로 간주했다.
그는 상키야 철학을 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그들이 물질과
영혼의 차이를 알지 못할까봐 주어진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6) J.H. Woods는 그의 The Yoga System of Patanjali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14)에서 이 파탄잘리와 B.C. 2세기의 문법학자
파탄잘리와는 다른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Dasgupta는 양자를
동일인으로 본다. 그의 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Vol. I, p.
238참조
7) 이 점에 관해서는 Woods의 견해에 따름
8) J.H. Woods는 경의 연대를 300~ 500년경, 소의 연대를 650~800년경으로
잡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많은 이설들이 있어 확실하지는 않다.
3 물질
상키야 철학은 불교와 같이 세계를 고로 보며, 이 고를 극복하려는
데에 철학적 사유의 주목적이 있다. 또한 그 세계관에 있어서도
불교와 같이 요가의 체험에 기초한 심리학적인 세계관, 즉 인간의
심리현상의 관찰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파악하려는 경향이 짙으며,
일원론적인 세계해석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키야 철학은
불교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인간의 영원한 자아, 즉 푸루샤
(정신:purusa)라는 실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불교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키야 철학은 세계의 모든 존재를 정신
purusa과 물질 prakrti이라는 두 개의 형이상학적 원리로서 설명한다.
따라서 이 두개념을 바로 이해하면 상키야 철학의 근본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프라크르티, 즉 물질이란 개념은 상키야 철학에서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라크르티는 푸루샤를 제외한 세계의 일체현상이
그로부터 발전되어 나오는 모태와 같은 것으로서 미현현 avyakta이라
불린다. 즉, 경험의 세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한계를 지닌 현상들이
그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이전의 가능성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 자체는 어떤 원인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로부터는 모든 것이
발전되어 나오는 세계의 질료적 원인 upadana-karana,혹은 제1원인
pradhana이 되며, 무한한 창조적 힘 sakti이 되는 것이다. 상키야 철학에
의하면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결과도 원인에 이미
내재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잠재적으로
이미 원인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인도철학에서는 인중유과론 satkarya-
vada이라 부른다. 즉 결과 karya가 원인 karana속에 이미 존재 sat
한다고 하는 견해이며, 설일체유부와 같은 소승불교나 나야-바이
쉐시카철학이 대표하는 인중무과론 asatkaryavada과 대조를 이룬다.
인중유과론을 대표하는 철학 가운데서도 결과를 원인의 참다운
변형으로 보는 전변설 parinamavada이 있는가 하면, 결과를 원인의
환상적 나타남으로 보는 가현설 vivartavada의 인과론도 있다. 전자를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 상키야 철학이고 후자는 불 이론적 베단타
철학에서 그 전형적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전변설에 의할 것 같으면 진흙 안에 이미 항아리가 보이지 않는
형태이지만 존재하고 있고, 항아리는 진흙의 참다운 변형인 것이다.
반면에 가현설에 의할 것 같으면 진흙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항아리는
거짓 나타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키야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는 해체 pralaya와 진화 sarga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해체의 상태에는 만물이 프라크르티
속에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발전되어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진화란 프라크르티로부터 모든 현상이 순차적으로 발전되어
나오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 해체와 진화를 되풀이하게끔
하는가? 어찌하여 미현현인 프라크르티는 그 자체로서 해체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진화의 과정으로 넘어가는가? 이 문제에 대한
상키야 철학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라크르티 자체의 성격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상키야에 의하면 프라크르티는 사트바 sattva, 라자스 rajas, 타마스
tamas라는 세 종류의 요소 guna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요소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그 결과들로부터 추리된 존재들로서, 사트바는
지성, 가벼움, 즐거움, 빛남 prakasaka, 흰 색깔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라자스는 힘과 끊임없는 운동, 고통, 빨간색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타마스는 질량, 무거움, 저지, 무지, 무감각과 까만색의
속성을 지녔다고 한다. 세계의 만물의 차이는 프라크르티의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떤 비율로 결합되어 그 중의 어떤 것이 지배적인가
하는 데데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이 세 요소는 서로서로에 영향을
주며, 한계와 형태가 없는 프라크르티의 상태로부터 점점 더
분명한 한계와 형태를 가진 현상세계를 산출시킨다. 만약에 이 세
요소가 꼭 같은 비율로 섞여 있어 완전한 평형 samyavastha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비록 이 요소들 자체는 바삐 운동을 계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요소의 성질도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프라크르티는 아무런 변형도 없이 미현현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프라크르티의 이러한 평형사태가 깨어지게 되는가?
상키야철학의 이 문제에 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프라크르티는
단지 푸루샤의 곁에 있게 됨으로써 purusa-samnidhi-matra그 평형이
깨어진다고 한다. 마치 자석이 철을 당기듯이 양자의 접속 samyoga이
있어야만 비로소 세계는 프라크르티로부터 전개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두개의 이질적인 존재는 접촉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상키야는 말하기를 푸루사와 프라크르티의
접촉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푸루샤는
해방 apavarga이나 향수 bhaga, enjoyment를 위하여 프라크르티를
필요로 하며, 프라크르티는 자신을 보고 알며 즐기는 자로서
푸루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혹은 장님과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가
서로 협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키야철학의 설명은 설득력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상키야철학에서 주장하는 대로 해설이란
푸루샤와 프라크르티의 분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푸루샤가
해방을 위하여 프라크르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설명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키야철학은 어떻게 하여 전혀 이질적인
두개의 형이상학적 실재 사이에 처음부터 접촉이란 것이 가능
한가라는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키야철학은 그 접촉은 실제상의 접촉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보일 뿐
이라는 설 samyogabhasa을 내세운다.
여하튼 상키야에 의할 것 같으면 푸루샤와 프라크르티의 접촉에
의하여 프라크르티의 내적 평형상태는 깨어지기 시작한다. 이 접촉에
의하여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프라크르티의 삼요소 가운데서
운동의 성질을 갖고 있는 라자스 rajas이다. 이 라자스가 먼저
흔들리기 시작하면 샤트바와 타마스도 따라서 흔들리게 되며 진화의
과정은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그 균형이 깨어진 프라크리티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특정한 성격을 갖고 나타나는 것은 사트바를 그 지배적인
성품으로 하는 붓디 buddhi이다. 붓디는 우주론적으로는 그로부터
다른 모든 물질적 세계가 전개되어 나오기 때문에 (위대한 것
mahat)이라고도 불리고, 심리적.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기관으로서 붓디, 즉 지성이라고 불린다. 이 붓디는 그 속에
우주가 해체될 때 프라크르티 속으로 잠재해 버렸던 보든 개인적
붓디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붓디들은 과거의 무수한 전생을
통하여 얻은 기억들과 정신적 성향들 samskara, mental disposition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붓디는 어디까지나 프라크르티, 즉 물질의
산물로서 그 자체는 식 cit의 성품을 갖고 있지 않다. 붓디는 그것을
순수식인 푸루샤의 반사작용을 통하여 받는다고 한다. 붓디는 마치
거울과 같아서 푸루샤의 빛이 있을 때만 다른 물건들을 비추게
되어 우리의 정신활동, 인식, 경험 등이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붓디가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아주 섬세한 물질,
즉 샤트바의 요소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붓디는
푸루샤와 가장 비슷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푸루샤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푸루샤와 프라크르티의 중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든 경험과 인식 활동은 식을 지닌 푸루샤와
대상과 관계를 맺은 붓디가 상호 협력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경험과 인식의 주체는 푸루샤만도 아니고 붓디만도 아니고 양자의
교섭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상키야철학의 인식론에 있어서 흥미로운 사실은,
미세한 사유물질인 붓디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물의
형상 akara을 인지할 때나 혹은 사고행위를 할 때, 그 자신이 대상들의
각기 다른 형태들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붓디는 단순히 거기에 들어오는 여러 대상들을 수동적으로 수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상들에 따라 변모하여 인식과 경험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붓디로부터 아함카라 ahamkara(아만)라 불리는 개체화의 원리가
전개되어 나온다. 심리적으로는 아함카라의 기능은 무엇보다도
자아의식과 아집과 교만 abhimana이다. 푸루샤는 자신을 바로 이
아함카라로 착각하여 스스로를 행위의 자체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아함카라는 붓디와 마찬가지로 우주적 존재론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의 지배적인 성품이 사트바냐 라자스냐 타마스냐에
따라서 세 가지 방향으로 아함카라는 발전하게 된다. 라자스는
주로 운동의 성품을 지녔으므로 그 자체로는 독립적인 발전을
하지 않고, 사트바와 타마스를 도와서 지배하도록 하는 일만 한다고
한다. 사트바의 힘이 지배적이 되면 아함카라는 내적 감각기관인
의근 manas과 오지근 jnana-indriya, 즉,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맡는 능력과, 오작근 karma-indriya, 즉 말하고 손을
움직이고, 발을 옮기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능력들을 산출한다.
여기서 근 Indriya이란 말은 눈에 보이는 육체적 기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을 통하여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 sakti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추론 anumana을 통하여 아는 것이지 지각 Pra-
tyaksa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상의 프라크르티의 전개물 가운데서 붓디와 아함카라와 마나스
(의근)를 심리기관 antah-karana이라 부르며, 나머지 십근은 외적기관
bahya-karana이라 부른다. 숨 prana은 심리기관의 기능으로
간주된다. 외적 기관은 외부세계를 심리기관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며, 심리기관의 기능을 위한 조건이 된다. 마나스는 심리기관과
외적 기관의 매개체와 같은 것으로서, 감각기관을 통하여 들어온
무분별적 nirvikalpa 감각의 소여 sense data를 언어를 매개로 하여
분별하고 종합하고 해석하여 분별적인 savikalpa 판단적('이것은
돌이다', '저것은 빨갛다' 등) 지각으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 상키야
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마나스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감각기관들과 동시에 접촉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이것은 뒤에
고찰하겠지만, 냐야-바이쉐시카 Nyaya-Vaisesika에서 말하는 마나스에
대한 견해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마나스의 작용 다음에
아함카라는 지각활동을 '나'라는 개념에 연결시켜 자기 경험으로
만든 다음 붓디 buddhi에 전달한다. 붓디는 감각기관과 마나스를
통해 들어온 형상들에 따라 변모한다. buddhi-vrtti.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직도 인식이 성립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붓디는 어디까지나
프리크르티, 즉 물질의 발전된 상태이며 그 자체로는 식 cit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루샤의 빛을 반사하여서만 비로소 지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볼 것 같으면 프라크르티의 존재론적
전개 과정은 인간의 인식 과정과는 정반대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의 성립에 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하여 인식의 가능
근거를 이루는 존재요소들을 거꾸로 올라가며 찾는 것이 상키야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과정인 것이다.
다른 한편, 중량의 성격을 지닌 타마스가 지배하는 아함카라로부터는
오유 tanmatra, 즉, 음.촉.색.미.향의 본질을 이루는 미세한
물질이 방출된다. 이 오유의 배합에 의하여 오대 bhuta가 산출된다.
즉, 음의 본질로부터는 공 akasa, 음과 촉의 결합으로 풍 vayu,
음.촉.색의 결합으로 화 tejas, 음.촉.색.미의 결합으로 수 ap,
그리고 음.촉.색.미.향의 결합으로 지 ksiti의 오대가 산출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오유의 존재는 눈에 보이는 오대의 성질들에
입각하여 그로부터 역으로 추리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오유의
존재를 설정하게 된 것 같다. 이렇게 하여 제1차적인 진화 sarga의
과정이 끝나고 오대의 여러가지 결합에 의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세계의 다양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프라크르티는 그 내적 균형이 깨어진 후 붓디로 발전한
다음, 한편으로는 아함카라에서부터 11개의 근으로 발전하는
내적 전개와, 오유를 거쳐 오대로 발전하는 외적 전개 과정을 거쳐
현상세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아함카라와 오유는 더 특정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에 무결정자 avisesa라 하며, 십일근과
오대는 이미 특정지어져 있기 때문에 결정자 visesa라 부른다.
또한 붓디와 아함카라와 마나스는 오유와 함께 인간의 세신 linga-
sarira, subtle body을 이룬다고 한다. 세신이란 우리의 육체가 파괴
되는 때에도 계속해서 존속하여 또 다른 몸으로 태어나게 되는 윤회의
주제가 되는 몸이다. 이 세신은 그 안에 과거와 현세의 업을
통하여 형성된 우리의 정신적 성향 samskara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즉 덕 dharma과 악 adharma, 지혜 jnana와 무지 ajnana, 격정 vairagya,
무욕 avairagya, 초자연적 힘 aisvarya, 약함 anaisvarya의 8가지 성향
들이다. 세신은 이러한 성향에 따라 그것에 알맞는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연극배우가 여러가지 역할을 하듯이 이
세신은 여러형태의 몸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상키야철학에 의하면 이상과 같은 프라크르티의
전개과정은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어떤 목적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즉 푸루샤의 형수 bhoga나 해방 apavarga을 위한 목적론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푸루샤에 관한 상키야철학의 이론을
검토해 보자.
4 정신
프라크르티는 세계의 질료적인 원인은 되나 결과는 아닌 존재인
반면에, 푸루샤는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닌 어떤 존재이다.
상키야철학은 이 푸루샤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유물론적인 철학이
되지 않는 것이다.
푸루샤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부분과 성질들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아트만이나 브라흐만과는 달리
상키야철학은 푸루샤가 무한히 많은, 그러나 본질적 차이는 없는
개별자적 존재들이라고 한다. 이 푸루샤는 순수한 식, 혹은
방관자로서 결코 대상화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하며, 우리의 모든
지식이 성립되는 근저에 깔려 있으나, 대상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지식에 의하여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붓디이지
푸루샤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키야에 의하면 푸루샤의 존재도 프라크르티처럼 추론 anumana에
의하여 알려지는 존재라고 한다. 상키야는 푸루샤의 존재에 관하여
여러 가지 증명을 한다. 물질적 세계는 앎이 없으므로 그것을 경험하는
어떤 원리를 필요로 한다. 즉, 대상은 주체를 필요로 하며, 이
주제는 푸루샤인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윤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종교적 갈망이 있다. 그리고 이 벗어남은 벗어나고자
하는 것, 즉 물질의 세계와는 다른 어떤 존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프라크르티의 세계에 있는 모든 부분들로 구성된
사물들에게서 발견되는 목적과 수단의 일치는 어떤 의식적인 존재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상키야는 푸루샤를 이러한 자연 질서의 계획자
designer로서 이해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의도적 질서의 혜택을
받는 의식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우리는 여기서 무신론적인 상키야철학과 유신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요가철학의 차이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키야와 요가는
둘 다 프라크르티가 전개되는 과정 속에 일정한 질서와 합목적성이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원래 지성을 갖고 있지 안은
맹목적인 프라크르티의 어디서 그런 질서와 조화가 생기게 되는
것인가이다. 이 점에 관하여 상키야는 프라크르티 자체가 푸루샤에게
봉사하려는 목적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 전개 과정에 있어서
아무런 외부적 힘의 작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요가철학은
프라크르티에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목적성을
가질 수 없으며, 더군다나 그 전개 과정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가 행한 업에 합당한 업보를 받도록 전개할 수 있는 것은
프라크르티 자체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요가철학은
전지전능한 신 이슈바라 Isvara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 신의 영원한
의지에 따라서 프라크르티의 전개 과정은 인도되며 푸루샤의 이익이
보호되고 실현된다는 것이다.
본래 '요가경' 자체내에서는 신은 실제적인 기능과 활동은 하지
않고 다만 영원히 속박을 모르는 푸루샤로서 요가행자들의 명상의
대상이 되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주석가들에 와서는
이러한 비활동적인 신의 개념에 만족하지 않고 점점 더 그를 활동적인
존재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뱌사 Vyasa는 신을 미세한
물질로 몸을 삼아 종교적 교훈도 주며 은총으로 신자들의 구원을
도우기도 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으며, 바차스파티미슈라는 세계의
주기적인 진화와 해체, 그리고 우주의 도덕적 법칙을 관장하며
베다를 계시하는 자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5 해탈론
그러면 푸루샤의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문제를 살피기 위하여
우리는 우선 무엇이 상키야철학에 있어서 속박의 상태인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이미 프라크르티는 해체와 진화의
과정을 끓임없이 반복하고 있음을 얘기했다. 이 프라크르티의 전개의
시작은 프라크르티와 푸루샤의 접속 samyoga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특히 푸루샤는 프라크르티의 최초의 전개물인 붓디와 가장
가까와서, 그 양자의 교섭상태에서 경험과 인식이 가능해지며, 따라서
모든 욕망과 업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붓디는
푸루샤가 프라크르티에 혼입되게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접촉 혹은 혼입은 실제상의 섞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푸루샤는 본성상 순수한 의식으로서 언제나
자유로우며 프라크르티의 방관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지로
인하여 푸루샤가 붓디로 착각되어 마치 붓디가 겪는 모든 마음의
상태들을 푸루샤가 체험하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상키야철학에 있어서의 속박이란 푸루샤와
붓대를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무지를 말하는 것이다.
붓디는 사트바의 성질을 지배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주 섬세한
물질이어서, 푸루샤의 빛을 반사하여 마치 그 자체가 의식이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붓디의 상태가 푸루샤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키야철학에서 말하는
무지인 것이다.
요가철학은 좀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를 우리가 붓디의 상태를
마치 푸루샤인 양 간주하는 것이 무지라 한다. 푸루샤는 본래
순수식으로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며 변화를 겪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변하는 붓디의 비추어진 상태들과 혼동되기
때문에 푸루샤가 자체가 인식과 경험의 주체로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런 형태도 없는 철구의 불이 둥근
형태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차가운 쇳덩어리가 뜨겁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혹은 달이 흔들리는 물결에 비치게 되면 마치
달 자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며 물 자체가 빛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푸루샤와 붓디를 분명히 구별하는
분별지 viveka-jnana가 해탈에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 것이다.
상키야철학에 의하면 이러한 분별지의 가능성은 붓디 자체 내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프라크르티는 푸루샤의 해방이라는 영적인 목적을
위하여 부단히 활동하고 있으며, 프라크르티는 본래 푸루샤를
속박하려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결국 해설과 속전은 모두 프라크르티
자체 내의 사건이며 붓디가 그 관련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붓디 내에 이러한 분별지가 생기게 되면, 붓디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인식과 행위도 그치게 되며 푸루샤도 그 본래의 모습인 순수한
독재 kaivalya의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수론송'의 저자
이슈바라크리쉬나 Isvarakrsna는 말하기를 프라크르티는 매우 수줍은
무희와도 같아서, 일단 푸루샤라는 방관자가 자기 춤을 쳐다보고
있다는 의식이 생기면 춤을 그치게 된다고 한다. 푸루샤는 프라크르티를
일단 보고 나면 모든 흥미를 잃어버리고 프라크르티는 푸루샤에
보여졌다고 생각하면 모든 행위를 그치게 된다는 것이다.
요가철학에서는 이 붓디에다가 아함카라 ahamkara와 의근 manas을
포함시켜서 심 citta이라 부른다. 심은 그 안에 전생에서 경험한
경험들의 자취 samskara나 인상 vasana들, 혹은 업의 공과들을
지니고 있는 윤회의 주체로서, 이들 잠재적인 힘들이 현세나 내세에서
적당한 조건들을 만나면 환생하게 된다고 한다. 요가철학은 이
심의 잠재적인 힘들을 강조하기 때문에 상키야철학에서처럼 푸루샤의
해방을 단순히 분별지만으로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 속에 잠재해 있는 모든 과거의 습관적인 힘들이 제거되어
심이 푸루샤처럼 순수한 상태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습관적인 힘과 업의 자취를 생성하고
있는 심의 모든 작용들이 그쳐야만 citta-vrtti-nirodha 해설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가철학에 의하면 심은 다섯 가지의 습관적인 힘 혹은 번뇌 klesa에
의하여 침투되어 있다고 한다. 즉 무명 avidya, 아견 asmita, 탐
raga, 증 dvesa, 현탐(현탐이란 현세의 향락에 집착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한다)인데, 이 중에서 무명이 힘이
가장 크며, 나머지 4가지 번뇌를 낳게 된다. 이들 번뇌에 의하여 우리는
업을 짓게 되며, 우리가 행한 업은 또 심 속에 그 자취와 영향을
남기게 되어 우리는 후에 그에 상응한 업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요가철학은 우리의 심작용을 5종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정지 pramana, 부정지 viparyaya, 분별지 vikalpa, 수면 nidra,
기억 smrti이다. 정지는 지각 pratyaksa과 추론 anumana과 증언 sabda의
세가지 타당한 인식의 방법으로부터 오는 지식이고 부정지는
적극적으로 틀린 지식을 말한다. 분별지는 대상이 존재함이 없이 순전히
말해 의해서만 아는 지식, 예를 들면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고,
수면이란 인식의 부재를 뜻하는 것으로서 이것도 심작용의 하나로
간주된다. 마지막으로 기억은 남겨진 인상을 통하여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작용들과 전에 축적되었던 습관적인 힘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요가철학은 구체적인 수행방법으로서 8가지 단계로 구성된
팔지 요가 astanga-yoga를 제시한다. 즉 금제 yama, 권제 niyama,
좌법 asana, 조식 pranayama, 제감 pratyahara, 집지 dharana, 정려
dhyana, 삼매 samadhi로서, 이 중에서 처음 다섯은 나머지 셋을 위한
준비 단계로 간주되며, 요가의 궁극목표는 모든 심작용이 그친
삼매 samadhi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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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승론학파의 철학
1. 승론철학의 전통
상키야와 요가철학이 같이 가듯이 승론 Vaisesika철학1)은 보통 정리
Nyaya학파의 철학과 함께 논의되어 왔다. 어느 때부터 이 두 학파가
같이 취급되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두 학파는 처음부터
근본적인 세계관에 있어서 일치한다고 생각하여, 서로 상자관계를
이루어 온 것으로 보아 왔다. 승론학파는 주로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학파인 데 반하여, 정리학파는 이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논리학과 인식론을 통하여 뒷받침해 주는
학파이다. 인도의 다른 모든 정통학파들이 불교를 비판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두 학파는 극단적인 실재론적 입장을 대표하는
철학으로서 불교의 철학적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하여 왔다.
승론과 정리는 비록 바라문계의 정통육파로서 간주되어 왔지만
실제상에 있어서 이 두 학파의 정통성은 오히려 다분히 명목적인
것이다. 베단타나 미맘사, 그리고 상키야.요가학파가 분명히
베다의 철학적 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반면에 승론과 정리학파는
베다나 그 후의 종교적 문헌들인 서사시나 푸라나 Purana 같은 것에
분명히 그 기원을 찾기 어려운 철학이기 때문이다.2)
우선 승론학파의 주요 철학적 문헌들을 살펴볼 것 같으면, 카나다
Kanaka라고 하는 아마도 가공적 인물의 저서로 전해지고 있는
'승론경 Vaisesika-sutra'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력기원 1-2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내용은 극히
간결한 격언조로 된 철학적 진술들을 모아놓은 것으로서 다른 학파의
근본경전들처럼 주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다. 승론철학의 결정적인 체계적 정립을 한 것은 서력기원
500년경에 씌어진 프라샤스타파다 Prasastapada의 '구의법강요 Padar-
tha-dharma-samgraha'로서, 형식상으로는 '승론경'에 대한 주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상에 있어서는 하나의 독자적인 논서이다.3)
프라샤스타파다의 논서에 관해서는 뵤마쉬바 Vyomasiva(900-960년경)의
'여허공 Vyomavati', 슈리다라 Sridhara(950-1000년경)의 '정리파초수
Nyayakandali' 그리고 우다야나 Udayana(1050-1100년경)의 '광휘연속
Kiranavali'와 같은 주석서들이 씌어졌다. 또한 이 무렵 승론과
정리철학을 함께 섞어서 취급하는 쉬바아디티야 Sivaditya의 '칠구의론
Saptapadarth'eh TmldjwuTek.4) 이제 '승론경'과 프라샤스타파다의
'수의법강요'를 중심으로 하여 승론철학의 대강을 샬펴보기로 한다.
1) 승론'Vaisesika'란 말은 '특수', '구분' 등을 의미하는 'visesa'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서 이 학파가 세계를 6범주로 구별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의 불교전통에서는 'Vaisesika'란 말을
'뛰어나다(주승)'의 뜻으로 이해하여 이 학파를 승론이라고 불러왔다.
본서에서는 이 용법을 그대로 따른다.
2) 승론철학의 기원에 관하여는 쟈이나교, 순세파 Lokayata, 혹은
미맘사학파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제학설 등이 있으나 모두 확실치
않다. H.v. Glasenapp, Die Philosophie der Inder (Strttgart: Alfred
Kroner Verlag, 1974), pp.234-37 참조.
3) S.N. Dasgupta, 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Vol. I, p.306 각주 참조.
4) 이 외에도 동류의 저서로서 Kesavamisra의 Tarkobhasa, Annambhatta의
Tarkasaingraha 등이 그 후에 씌여졌다.
2 육범주
승론철학은 세계를 여섯 가지 범주 padartha(구의)로 구별하여
분석한다. 여기서 범주라 함은 단순히 추상적인 관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들에 해당하는, 실제로 존재하며 언표할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승론철학은 세계를
여섯 가지 측면으로 구성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범주는 실체 dravya다. 실체란 거기에 어떤 성질이나 행위가
속할 수 있는, 즉 성질이나 행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다.
또한 실체는 어떤 물건들의 질료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승론에
의하면 실체에는 9가지가 있다. 즉 지 prthivi, 수 ap, 화 agni,
풍 vayu, 공 akasa, 시간 kala, 공간 dis, 의근 manas, 자아 atman이다.
지, 수, 화, 풍, 공은 5가지 물질적 요소 panca-bhuta로서, 5가지
외적 감각기관에 의하여 각각 지각될 수 있는 고유의 특수성질
visesa-guna들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흙은 코에 의하여
지각되는 냄새의 성질을 지녔고, 공은 귀에 의하여 지각되는 소리의
성질을 지녔다고 본다. 지.수.화.풍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미세한
원자 paramanu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원자들은 무수히
많으며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나눌 수도 없고,
생성도 될 수 없고 파괴도 될 수 없는 영원한 nitya 존재들인 반면에,
이들로 구성된 지.수.화.풍은 생성.소멸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원하지 못하다 anitya. 승론에 의하면 원자에는 지.수.화.풍을
구성하는 이질절인 4가지 종류가 있고, 개개의 원자들도 각각
양과 질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고 한다. 공 akasa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승론에 의하면 실체가 외적으로 지각되려면 크기와
나타나는 색깔이 있어야 하는데, 공은 그렇지 않으므로 지각
될 수 없다. 그러나 소리라는 성질이 속해야 하는 어떤 실체로서
그 존재가 추리되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간 kala과 공간
dis은 공과 마찬가지로 지각될 수 없고 추리로 아는 실체들로서,
각각 하나이며 영원하고 모든 것에 편재하는 것이다. 즉 시간은
우리가 과거.현재.미래.젊음.늙음 등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추리된다. 공과 시간과 공간은 비록 눈으로 볼 수 없는 통일적
실체들이지만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제한적 조건들 upadhi
때문에 다수의 부분적인 존재들인 것처럼 흔히 말하여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방이라는 제한적 조건 때문에 방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겨, 원래는 하나인 공간이 마치 부분적인 존재들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자아 atman 혹은 영혼은 우리의 의식현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실체로서 영원하고 편재적이다. 영혼에는 개인영혼 jivatman과 최고
영혼 paratman, 즉 신 Isvara의 두 종류가 있다. 신은 하나이며
세계의 창조자로서 추리되는 존재이다(신의 존재증명은 정리철학에서
다룰 것임). 신은 전지한 영혼으로서 모든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다. 개인영혼은 하나가 아니라 많으며, 그들이 속한
몸에 따라 각각 다른 특수성을 같고 있다고 한다. 개인영혼은
의근 manas과 관계되어 있지만 않는다면 본래 신과 같이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 한다. 영혼은 의지, 욕망, 기쁨,
아픔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들이 속하는 실체로서, '나는
안다', '나는 원한다' 등의 표현으로부터 우리는 자아가 의식이
속하게 되는 바의 실체인 것을 알 수 있다고 산다. 그러나 승론철학은
상키야나 베단타철학과는 달리 식 cit을 영혼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고 우연적인 성질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깊은
수면의 상태에 빠질 때에는 우리의 영혼은 식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승론철학은 의근 manas이라는 것을 독립된 실체로
인정한다. 의근은 우리의 내적 감각기관 antarindriya으로서, 승론에
의하면 우리의 외적 감각기관들이 외적 대상들을 지각하듯이
영혼의 여러 상태들과 같은 내적 대상들을 지각하는 어떤 내적
감각기관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근인 것이다.
즉 우리의 자아는 외적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들과 상대하며
의근이라는 내적 감각기관을 통하여는 자신의 상태들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외적 감각기관들은 항시 그 대상들과
접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들이 동시에 다 지각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지각활동을 한 번에 하나씩으로 제한하는 어떤 요인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것이 의근의 기능으로서, 지각이란 의근의
주의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상으로 향해져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근은 감각기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대상 세계와
자아와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통하여 자아는 세상과
접촉을 하며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근은 일종의 미세한
원자와 같아서 아무런 부분을 갖고 있지 않은 영원하고 통일적인
존재라고 한다. 만약에 마나스가 부분을 갖고 있다면, 그것의 활동도
분화될 수 있으며 우리는 많은 대상을 동시에 지각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각 자아는 각자의 의근과 관계하고 있으며
이 의근이 우리의 자아에다 개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근은 윤회의 과정을 통하여 자아를 동반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승론철학의 6범주 가운데서 실체 dravya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승론철학의 둘째 범주는 성질 guna이다. 성질은 언제나
실체에 속하여서만 존재하며 그 자체는 아무런 성질이나 행위를
갖고 있지 않다. 성질은 어떤 사물의 성격이나 본성은 결정할
수 있으나, 그것의 존재와는 무관하다. 또한 행위와는 달리 성질은
실체의 움직이지 않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속성이다. 승론은 가장
기본적인 성질을 24종(색, 말, 수, 연장 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각종을 더욱 더 세분하여 고찰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승론은 세번째 범주로 행위, 혹은 연동 karma을 든다. 행위는
성질과 마찬가지로 실체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나,
성질과는 달리한 실체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타 실체와 접하거나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 원리이다. 행위는 물론 어떤 성질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질은 실체에만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 시간, 공간이나 영혼과 같은 편재적인 실체들은 운동이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제한된 물체적 실체, 즉 지 수, 화, 풍, 의근에만
운동이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무제한한 것은 위치를
바꾸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승론은 행위를 다섯가지로 분류
하는데 상투 utksepana, 하투 avaksepana, 굴 akuncana, 신 prasarana,
행 gamana 등이다.
네번째 범주는 보편 samanya이다. 즉, 한 사물을 다른 이름이
아닌 그 이름으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되는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실재를 말한다. 유명론적인 견해와는 달리 승론에 의하면 보편은
단순히 우리 마음의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물에 내재하는 실재이다. 보편은 개물에 내재하며 그들이 가지는
공통성에 대한 관념, 즉 류개념의 기반이 된다. 보편은 그 범위에
따라 가장 높은 보편, 즉 유성 satta의 5개념과 가장 낮은 보편,
즉 고양이성 같이 일류의 사물 안에 국한된 보편, 그리고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보편, 예를 들면 실체성 dravyata과5) 같은 것으로
구분된다. 보편은 실체와 속성과 행위의 범주에만 내재한다.
보편이 사물의 공통성을 설명해 주는 것임에 반하여 승론의
5번째의 범주인 특수성은 부분을 갖지 않는 영원한 실체들 즉,
시간, 공간, 공, 의근, 영혼, 원자 등의 궁극적인 특수성 혹은
차이점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부분을 갖고 있는 사물들의 차이점은
부분들의 차이에 의하여 설명이 되지만, 부분이 없는 실체들의
차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수성에 의하여야만 설명이 된다고
한다. 이 특수성은 영원한 실체들 속에 존재하므로 그 자체가
영원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승론철학은 내재 samavaya라는 범주의 실재성을 말한다.
승론에서는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에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연결 samyoga, conjunction이고 다른 하나는 내재 samavaya,
inherence이다. 연결이란 한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의 잠정적인
외적 관계로서 그것이 없어도 그 사물은 존재할 수 있다. 연결이란
따라서 두 실체들이 가지는 우연적 성질 혹은 속성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내재의 관계는 영구적이고 불가분리의 관계로서 전체와 부분,
실체와 성질들과 같이,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관계인 것이다. 내재는 승론에 의하면 지각될 수 없으나, 정리
철학에서는 지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여섯 가지 범주 외에도 '승론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10세기 이후의 승론철학의 저서들은 일곱번째의 범주 Padartha
로서 부존 abhava을 들고 있다.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의 한 면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과 언어 pada는
대상 artha이 있게 마련이며 대상은 지식과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므로 부존이라는 것도 부존을 아는 지식과는 별도의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승론철학은 네 가지 종류의 부존을 구별한다.
첫째는 전부존 pragabhava, 즉 어떤 사물의 생성 이전의 부존이다.
둘째는 후부존 pradhvamsabhava, 즉 사물의 파멸 후의 부존이며,
세째는 상호부존 anyonyabhava, 즉 한 사물이 다른 어떤 사물로
존재하지 않음으로써의 부존이다. 네째는 절대부존 atyantabhava, 즉
'토끼의 뿔', '허공의 꽃' 등과 같은 부존이다. 전부존이 없다면
모든 사물들이 시작이 없을 것이고, 후부존이 없다면 모든 사물이
영원할 것이고, 상호부존을 부인하면 사물들의 구별이 없어질 것이며
절대부존이 없다면 모든 사물들이 항상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게
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승론철학은 이상과 같은 7가지의 범주들을
단지 알아야 하는 지식의 객관적인 대상 padartha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실재의 7가지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서, 승론철학은
이 범주론에 의하여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고 있는 다원적
실재론의 철학이다. 상키야철학의 이원론이나 베단타철학의
일원론적인 세계관과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5) 마찬가지로 성질됨, 행위됨도 이런 부류의 유개념이다.
3 신 불가견력, 해탈
승론철학도 인도의 전통적 세계관인 세계의 주기적인 창조와 해체를
받아들인다. 원자들의 결합과 해체에 의하여 물질세계는 창조되고
해체되는 것이다. 초기의 승론사상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듯하나 후에 와서는 세계의 도덕적 성격을 설명하기 위하여 신의
존재를 받아들였다.6) 즉 원자의 결합과 해체는 맹목적이고
우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온 우주의 대주재자 Mahesvara인 신의 창조와
파괴의지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의지는 도덕적인 경륜을 배려하여
'불가견력 adrsta'이라고 불리는 개인영혼들의 보이지 않는
도덕적 공과에 따라서 그들에게 합당한 경험을 하도록 원자들의 운동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신은 이 영원한 원자들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을 결여한 맹목적인 원자들을 도덕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세계의 능동인이며 질료인은
아니다. 승론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원자는 그 자체로서는 운동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며, 오히려 개인의 영혼들 안에 존재하고 있는
불가견력에 의하여 운동이 전달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불가견력
그 자체도 지성이 없는 맹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지성적인
신이 있어서 원자들의 운동을 도덕법칙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원자론에 입각한 승론철학은 서양철학에서처럼
유물론적인 결론으로 가지 않고 인도인 일반이 가졌던 도덕적 세계관에
적응하는 유신론적 원자론을 전개한 것이다.
인도의 다른 모든 학파들과 마찬가지로 승론철학도 자아의 해방에
그 최종목표를 두고 있다. 자아의 해방이란 자아가 아무런 속성이나
성질들을 지니지 않고 순수하게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또한
그 안에 내세에서의 업보를 초래하는 어떠한 불가견력도 남아 있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승론철학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아의 본성이나 원자의
이론 등을 바로 알면, 이러한 지식은 우리의 모든 이기적 욕망과
행위들을 제거하게 된다고 한다. 승론철학은 인간의 행위를 자발적인
것과 자발적이 아닌 것으로 구별하며, 자발적인 행위는 욕망과
염악 dvesa에 근거한 행위로서, 이것만이 도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해탈이란 이러한 자발적인 행위가 모두 그쳐서 새로운
도덕적 공과가 축적되지 않고 과거에 축적된 공과가
서서히 진하여 버린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자아는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를 느끼지 않고 어떠한 의식도 없는
상태가 된다. 모든 속성을 떠나서 실체로서의 자아가 그 자체로서
존재할 따름인 것이다.
승론철학의 인식론은 현량, 즉 지각 pratyaksa과 비량, 즉
추론을 지식의 두 가지 타당한 방법으로 간주한다. 베다의 권위는
인정하지만 정리학파처럼 베다를 하나의 독립적인 타당한 지식의
방법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베다에 나타난 진술들의
타당성은 그 저자들의 권위적인 성격으로부터 추론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교량(성스러울 성, 가르칠교)은 추론의 일종인 것으로 간주된다.
6) 프라샤스타파다의 '구의법강요'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대주행신 Mahesvara의 개념이 나타나 있으며, 그후 우다야나와
슈리다라 등의 주석서 등에서 유신론적 사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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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and Notes. London, 1917.
우정백수, '인도철학연구', 제일, 제3권.
제9장 정리학파의 철학
1 정리철학의 전통
정리 Nyaya학파의 철학체계는 전통적으로 가우타마 Gautama 혹은
안족 Aksapada이라는 사람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서력기원전 1-2세기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정리경 Nyaya-sutra'은 기원후 2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정리경'에 대한 현존하는 중역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며 권위있는 것은 밧샤야나 Vatsyayana(450-500년경)에
의한 '정리소 Nyaya-bhasya'이며, 이 소는 그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른 주석서들을 낳았다. 비록 '정리경'은 2세기 전후에
씌어졌다고 하나, 올바른 사고의 형태와 논증의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이 학파의 연원은 훨씬 더 멀리 소급된다고 볼 수 있다. 정리
nyaya란 말은 아마도 원래는 베다시대 이후에 점차로 잃어버리게
되었던 제식의 올바른 규범을 추리해내고 논증하는 것을 의미했다.
천문, 문법, 법률 등과 같은 인도의 많은 학문들이 베다의 연구를
기초로 하여 발전된 것과 같이 정리학도 원래는 베다의 연구와
관련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미맘사 Mimamsa학파가 제식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룸에 따라 정리는 학문의 일반적인 논증방법만을
추상적으로 다루는 형식논리학 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정리는
다른 이름으로 사택 tarka 혹은 심구 anviksiki라고도 불리었다.
우리는 '가우타마법전 Gautamadharma-sutra', '마누법전 Manavadharma-
sastra', 카우틸리야 Kautilya의 '실리론 Artha-sastra'과 같은
고대문헌들에서 그러한 학문의 공부가 정치나 법의 수행을 위해서
권장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밧샤야나의 '정리소'에 대한 주석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6세기 경의 웃됴다카라 Uddyotakara에 의해서 씌어진 '정리평역
Nyaya-varttika'으로서 웃됴다카라는 불교의 세친 Vasubandhu과 진나
Dignaga의 설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반박하고 있다. 이후
약 300여년간에는 정리학파의 저술로서 이렇다 할 만한 것이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샨타락시타 Santaraksita나 카말라쉴라 Kamaasila와
같은 8세기의 불교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하여 이 동안의 정리학파
사람들의 견해를 엿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정리철학의 중요한
인물로는 인도서북부의 카쉬미르지방 출신인 브하사르바즈나
Bhasarvajna(850-920 A.D.)가 있다. 그의 저서 '정리정요 Nyayasara'는
정리철학을 간략히 요약해 주는 대표적인 저서이고 그의 '정리장사
Nyayabhusana'은 '정리정요'에 대한 주석으로서 정리학파 내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대저이다. 최근에야 비로소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1) 정리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파들의 철학에도 대표적인 저술들을 남긴 바차스파티미슈라
Vacaspatimisra(9세기)2)는 웃됴다카라의 '정리평역'에 대한 주석서인
'정리평역진의주 Nyayavarttika-tatparyatika'를 썼고, 우다야나
Udayana(1050-1100)는 이 주에 대한 복주로서 '정리평역진의주해명'을
썼다. 우다야나는 많은 현대의
학자들에 의하여 정리와 승론철학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서 간주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 '자아진리분별 Atmatattvaviveka'은 불교의
무아설에 대한 비판으로서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며, 그의
'정리 화속 Nyayakusumanjali'은 냐야-바이쉐시카 철학에 있어서
신의 존재의 증명에 대한 결정적인 저술로 여겨지고 있다. 우다야나의
철학은 그후 냐야-바이쉐시카 학파를 풍미하다가 14세기에 와서
간게샤 Gangesa가 출현하여 '진리여의주 Tattvacintamani'라는
논리학서를 써서 소위 신정리학 Navya-nyaya의 기초를 수립했다.
신정리학은 주로 까다롭고 기술적인 논리의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형식논리학파로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1)Karl H.Potter, ed. Indian Metaphysics and Epistemology.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pp.6, 410-24 참조.
2) Vacaspatimisra의 년대에 관해서, 동상, pp.453-4 참조.
2 지식의 의미와 방법
'정리경'은 정리철학이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16가지로 분류하여
언급하고 있다.
참된 지식의 수단인 량 pramana, 지식의 대상인 소량 prameya,
불확실한 의심의 상태인 의혹 samsaya, 토의가 지향하거나 피하려는
목적 prayojana, 추리에 도움이 되는 적절한 예 drstanta, 옳다고
받아들이는 정설 siddhanta, 추리의 5가지 단계를 구성하는
명제들인 지분 avayava, 가설적 논법을 통한 논파 tarka, 정당한 논의를
통하여 도달한 확실한 지식으로서의 결정 Nirnaya, 인식의 수단과
논리의 전개를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려는 논의 vada, 승리만을
일삼는 부정한 논쟁 jalpa, 상대방의 논파만을 목적으로 하는 논결
vitanda, 추리에 있어서 타당한 이유같이 보이나 사실은 틀린 이인
hetvabhasa, 상대방의 주장이나 논리를 왜곡시켜 비난하는 기변
chala,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부단한 논란인 오란 jati, 논쟁에 있어서
상대방을 패하게 만드는 약점 혹은 부처 nigraha-sthana등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정리철학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
보다도 인식과 논리전개의 문제들임을 알 수 있다. 승론철학에서
말하는 7가지 범주는 모두 2번째의 것, 즉 수량 prameya에 포섭되며,
정리철학은 이 소량보다는 량 pramana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철학이다.
정리철학은 지식 jnana을 인지 upalabdhi,(혹은 anubhava; apprehen-
sion)로 정의하며, 모든 지식은 대상의 계시나 나타남 arthaprakaso-
buddhi이라고 한다. 지식은 자아가 자아가 아닌것, 즉 대상들과
접촉할 때 생기는 것으로서, 자아의 본질적인 성품은 아니다. 타당한
지식 prama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 yathartha-anubhava이며,
진리란 대상과의 일치를 말한다. 올바른 인식은 성공적인 행위
pravrtti-samarthya로 이끌며, 그릇된 인식은 실패와 실망으로
이끈다고 한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인식의 옳고 그름은 자명한 것이거나
혹은 지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성품이 아니라, 일단 지식이
생기고 난 후에 대상과의 일치와 불일치에 따라 별도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진리의 내용은 대상과의 일치이고,
진리의 시험기준은 성공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정리의 인식론은
따라서 실재론적이고 실용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리철학은 타당한 지식 prama의 수단 pramana으로서 현량 혹은
지각 pratyaksa; perception, 비량 혹은 추론 anumana; inference, 경유량
혹은 비교 upamana; comparison, 그리고 성교량 혹은 증언 sabda;
testimony을 인정한다. 이들을 통하여 얻은 지식은 대상에 관한 확실하고
충실한 오류가 없는 지식이며, 의심 samsaya, 오류 viparyaya,
가설적 논파 tarka나 혹은 기억 smrti에 의하여 얻은 타당치 못한 지식
aprama과 구별해야 한다. 의심이란 확실치 못한 지식으로서 타당한
지식이 못 되며, 오류란 확실한 지식이 될지언정 대상에 충실치
못한 지식이다. 가설적 논파란 예를 들면 '만약에 불이 없으면
연기가 안 났을 것이다'라는 형식의 가설적 논증으로서 자기가 이미
추론, 즉 '연기가 있으니까 불이 있다'라는 추리를 통하여 얻은 지식을
옹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다. '불이 있다'라는 사실은 추론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설적 논파는 타당한 지식이
못된다고 한다. 기억이란 대상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을 주지않고
단지 과거에 가졌던 지식을 재현시켜 주기 때문에 타당한
지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과거의 타당한 지식을 재현시켜
주느냐 혹은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서 그 자체가 타당한 기억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타당한
지식이란 이미 언급한 대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 anubhava하는
것으로서, 기억에 의한 재현적 지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타당한
지식 prama이란 지각과 추론과 비교와 증언의 4방법 pramana을
통한 대상의 인지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4가지 방법을
하나하나 고찰해 보자.
3 지각의 이론
정리철학은 지각 pratyaksa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보통
laukika 지각이요, 다른 하나는 특수 alaukika지각이다. 보통 지각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에서 생기는 참다운 지각을 말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에 여섯이 있으므로 보통 지각도 여섯 종류가 있다.
즉 안, 이, 비, 설, 신의 다섯가지 외적 감각기관 bahyaindriya과
각각의 대상들과의 접촉에서부터 생기는 시각 caksusa, 청각
srauta, 후각ghranaja, 미각 rasana, 촉각 sparsana이 있고, 여섯번째의
감각기관으로서 마나스 manas;, 즉 의근이라는 내적 기관
antarindriya을 통하여 자아의 여러 상태들, 즉 욕망, 혐오, 쾌락,
고통, 지식 등을 지각하는 내적 manasa 지각이 있다. 외적 감각기관들은
각각 그들에 의하여 지각되는 대상들의 물질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의근 manas은 물질적 요소 bhuta들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그 기능에 있어서 외적 기관들처럼 어떤
한 종류의 사물의 인식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모든 종류의 지식에
공통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우리의 외적 감각기관이 대상과 접촉할 때면 반드시 의근이 먼저
그 감각기관들과 접촉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의근이 인식주체인 자아 atman와 접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의근은 자아와 감각기관들 사이의 중개자와 같은 것으로서, 의근과
감각기관을 통하여 외적 대상은 자아에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지각적 지식은 자아의 상태 혹은 속성인 것이다.
정리철학은 보통지각의 두 단계 혹은 두 양태를 구별한다. 즉
무분별적지각과 분별적지각이다.
무분별적 지각이란 어떤 대상을 그 대상의 성격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나 판단 없이 감지하는 지각인데 반하여, 분별적
지각은 대상을 그 성격에 대한 의식과 판단을 가지고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분별적 지각은 무분별적 지각의 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정리철학은 재인식 re-cognition, 즉
어떤 대상을 전에 지각했던 무엇으로 인지하는 것도 또 한 종류의
지각으로 간주한다.
특수 alaukika 지각이란 그 대상이 특별한 것이어서 보통의 지각과는
달리 특별한 수단을 통하여만 감각기관에 주어지는 것이다. 정리철학은
이러한 특수지각에 3종을 들고 있다. 첫째는 보편상의 지각이다.
보편상이란 한 류에 공통된 성질 혹은 보편적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보편상의 지각을 통하여 우리는 한류에 속한 특수한
사물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성격을 지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보편은 특수 안에 내재하고 있는
실재이다.3) 따라서 사물의 지각에서 우리는 특수만을 지각할 뿐만
아니라 이와 더불어 특수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성질인 보편상도
지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을 지각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특수한 모습이나 성품만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내재하여
있는 인간성 일반도 특수지각을 통하여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종류의 특수지각은 지상을 통한 지각이다.
우리가 흔히 '독이 무거워 보인다' 혹은 '얼음이 차가와 보인다'라고
말할 때 '무겁다', '차다'는 눈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나
그렇게 말한다. 이러한 지각은 과거에 가졌던 찬 얼음의 지식을 매개로
하여 현재의 얼음이 차다고 보는 것으로서 일종의 특수지각이라
한다. 세번째로 정리철학은 요가의 수련 yogabhyasa에 의하여
얻어진 신통력에 근거하여 과거와 미래의 사물들, 혹은 특징하거나
숨겨진 것들을 직관적으로 지각하는 지각을 특수지각으로 들고 있다.
요가에 의한 yogaja 지각인 것이다.
3)정리철학은 보편적 속성 가운데 객관적으로 사물에 내재하여 실재하는
것 jati과 우리의 마음에 의하여 부가된 것 upadhi, 즉 실재하지 않는
것과를 구별한다.
4 추론의 논리
정리철학은 두번째의 인식의 방법으로서 추론 anumana을 들고 있다.
추론에 관한 이론은 정리철학의 인식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정리철학은 추론의 타당성을 옹호하기
위하여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추론이란 우리가 직접 지각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표징 linga을 보고서
그 표징과 보편적 주연관계 vyapti를 갖고 있는 다른 어떤 것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산에 불이 나고
있다. 왜냐하면 연기가 나고 있기 때문이며; 연기가 있는 곳에는
불이 있기 때문이다'와 같은 것이다. 즉 연기라는 표징을 보고
불의 존재를 추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추리에 있어서 산을 소명사
불을 대명사, 표징되는 연기는
중명사 linga, middle term라 하며, 이 중명사는 소명사와 대명사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서 이유 hetu라고도 부른다. 위에 든 예는
우리가 혼자서 추리할 때 생각하는 위자비량 svartha-anumana의
과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서, 타인을 위하여 정식으로 추론을
전개하는 위타비량 parartha-anumana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명제들을 갖추어야 한다(오지작법)
1 종, 즉 주장 -산에 불이 있다.
2 인, 즉 이유 -연기가 나기 때문이다.
3 ?, 즉 예 -연기가 나는 곳에는 모두 불이 있다; 예를
들면 아궁이에서처럼.
4 합, 즉 적용 -이 산에도 연기가 난다.
5 결, 즉 결론 -그런고로 이 산에는 불이 있다.4)
이러한 추리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연기가 나는 곳에는 불이 있다'라는 보편적 진리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립 안되면, '이 산에 불이 있다'라는 결론적인 추리는
타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챠르바카 Carvaka의
회의론적 철학이 바로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추리를 인식의
방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정리철학은 이 점을
4) Aristoteles의 3단론법에서는 3, 즉 대전제를 먼저 드나, Nyaya
철학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든다. 혹은 Aristoteles의 3단 논법은 1과
2를 생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감안하여 추리의 근거와 추리가 증명하고자 하는 바와의
틀림없는 주연관계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우선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이 보편적 주연관계의 개념을 좀더
세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5) 주연관계란 두 사물간에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의하여 포섭될 때 성립되는 상호관계를 말한다.
포섭된다는 말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의하여 언제나 동반된다는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불은 연기에 항시 동반하므로 불은 연기를
포섭하는 것 vyapaka이며 연기는 불에 의하여 포섭되는 것 vyapya이다.
그런데 연기는 반드시 불에 의하여 포섭되지만 불은 연기에 의하여
반드시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불덩어리의 철구는
연기가 없으며 마른 연료가 탈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이 경우의
양자의 상호관계는 어떤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주연관계라 부르지 않는다. 오직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을 항시 무조건적으로 포섭하는 경우만을 보편적 관계라
한다. 이와 같이 A는 B를 반드시 포섭하나 B는 A를 반드시
포섭하지는 않는 경우의 A와 B의 상관관계를 부등주연관계라
부른다. 이에 반하여 양자가 반드시 서로 포섭하고 포섭되는
경우의 상관관계를 등가주연관계라고 한다. 예를 들면,
'모든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물은 알 수 있는 사물이다'라고 할 때
'이름을 댈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과는 등가주연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편적 주연관계를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연기와 불과의 보편관계는 물론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온 경험들에 의거한 귀납추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리철학은
인정한다. 정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귀납추리는 4가지 조건
혹은 절차를 만족시켜야만 한다. 첫째는 존재연관 anvaya이다.
존재연관이란 A(예:연기)가 있으면 반드시 B(예:불)가 있다는
동반관계를 확인 경험함으로써 세워지는 관계이다. 둘째는 부존연관
5) 여기서 주연관계란 논리학에서 보통 사용하는 대로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사이의 관계를
자칭하는 개념으로서, 편충관계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vyatireka이다. 즉 B가 없으면 반드시 A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험에 의한 관계이다. 세째는 부반례 vyabhicaragraha이다. 즉
A는 있는데 B가 없는 반증의 경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귀납추리의 네째 절차는 주연관계의 무조건성 upadhinirasa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과 연기와의 관계를 다각적인
상황하에서 여러 번 관찰하여 연기가 발생하는 데 어떤 조건이 있지
않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4가지 절차를 다 걸쳐서 얻은 귀납적 결론이라
할지라도 의심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정리철학은
인정한다. 챠르바카 Carvaka와 같은 회의주의는 바로 이 점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과거의 경험적 관찰에 따르면 A와 B 사이에 주연관계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나 미래에도 그러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리철학은 두 가지 방법에
의하여 귀남추리와 주연관계 vyapti의 타당성, 따라서 추론 anumana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려고 한다. 첫째는 가설적 논파 tarka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주연관계를 부인할 때 생기는 결론의 부합리성을
지적하여 주연관계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만약에 '연기가 있으면 언제나 불이 있다'는 주연관계를 부인한다면
불이 없어도 연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며 이것은
원인이 없어도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불합리성에 빠지게 되므로
연기와 불사이의 주연관계는 인정되야만 한다는 논법이다. 주연관계를
뒷받침하는 다른 하나의 이론은 정리학파에서 애기하는 특수한 지각중의
하나인 보편상의 지각 samanyalaksana-pratyaksa에 근거하고 있다.
이 이론에 의할 것 같으면 귀납적 결론은 단순히 개별적 사례들을
관찰하여 이를 일반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물의 보편상 saman-
yalaksana의 지각을 통하여 그 사물이 속한 유전체의 지각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와 불과의
주연관계는 여러 개의 구체적인 경우들을 보고서도 알지만 연기성이라는
보편상을 지각함으로도 모든 연기와 불과의 관계가 지각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기의 본질을 지각하므로 연기가 언제나
불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지각에
의하여 귀납적 결론은 보증된다고 한다. 따라서 귀납적 결론이란
단지 몇몇이 그러하니까 모두가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비약이 아니라,
개별적 사물에 내재하고 있는 보편상의 지각을 ?개로 하여
구체적인 예로부터 일반적인 결론을 얻는 추리인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정리철학의 추리에 관한 이론을 고찰했다. 끝으로
추론의 삼종류를 언급한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정리학파의
오단계추론은 귀납과 연역을 둘다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정리철학은
추론을 귀납법과 연역법으로 나누지 않고 대신 주연관계 vyapti의
성격에 따라서 삼종류로 나눈다. 첫째는 보이는 원인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결과를 추리하는 원인적 purvavat 추리이고, 둘째는 보이는
결과로부터 보이지 않는 원인을 추리하는 결과적 sesavat추리이며,
세째는 보편관계가 인과적 연관성을 지니지 않을 때의 추리이다.
예를 들어 뿔이 달린 동물을 보고 갈라진 발굽을 추리하는 것과 같이
닽지 여러 경우를 관찰한 결과로 엳어지는 일반적 유이성에 입각한
유추적 analogical 추리를 말한다.
5 비교와 증언
온당한 지식의 세번째 방법으로 정리철학은 비유량 upamana,
comparison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비유량이란 한 이름과 그 이름을
가진 어떤 사물과의 관계를 알게 하는 지식의 방법으로서, 근본적으로
비교나 유추에 의거하고 있다. 과거에 본 일이 없지만 이름만
알고 있는 한 사물을 그 사물에 대한 묘사에 의거하여 알게 되는것을
비유량이라고 한다. 불교철학은 이 비유량을 지각과 증언에
환원시키고, 수론과 승론철학은 추론에 환원시킴으로써 하나의
독립된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리철학은 성교량, 혹은 증언 sabda, testimony을
인식의 방법으로 들고 있다. 'Sabda'란 소리라는 뜻이며 정리철학의
인식론에서는 주로 믿을 만한 사람의 말이나 증거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생기는 지식을 의미한다. 증언은 그 내용 혹은 대상에 따라서
가시적 대상 drstartha과 불가시적 대상 adrstartha에 대한 증언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혹은 주구의 증언이냐에 따라서 성전적 vaidika인것,
즉 완전무결한 신의 말씀으로서의 베다와,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에 의한 세속적 laukika인 것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승론철학은
이 증언 역시 하나의 독립된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추론의 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증언이란 다른 사람의 어떤 진술이나 문장의 의미를 이해함에서
오는 지식을 말하므로, 정리철학은 자연히 의미론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즉 말과 의미와의 관계, 문장의 성격 등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정리철학에 의하면 문장이란 낱말들 pada이 모여
어떤 일정한 양식으로 배열됨에서 성립한다고 하며, 낱말이란 글자들이
어떤 고정된 순서로 배열된 것이라 한다. 낱말의 본질은 그
의미, 즉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에 있으며 말과 대상과의 관계는 항시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의 말은 반드시 일정한 대상을 의미하게끔
되어 있다고 한다. 정리철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들이 각각 그
고유의 대상들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떤 힘 sakti, potency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힘은 세계의 질서의
궁극적 원인이며 최고의 존재인 신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통하여 정리철학은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단순한
사회관습론적인 설명을 배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의미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에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말이란 개물을 지칭하는가, 아니면 보편적 속성 jati 자체를 가리키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정리철학은 대체로 이 문제에 관하여 말이란
개물들을 지칭하되 그 개물들이 보편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개념으로서 여러 개의
개물들을 지칭할 수 있다고 한다.6)
정리철학에 의하면 문장이란 낱말들이 어떤 의미를 갖도록 조합된
것이다. 문장이 의미를 가지려면 낱말들을 조합함에 있어서 4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된다고 한다. 첫째 조건은 낱말들이 서로
서로를 함축하거나 필요로 하는 기특성 akanksa을 지녀야 한다. 예를
__________
6) 이 미묘한 문제에 관하여 B.K.Matilal의 Epistemology, Logic,
and Grammar (The Hague: Mouton, 1971), pp. 62~77 참조.
들면, '가져오다'라는 동사는 목적어로서 '무엇을'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합성 yogyata이다. 정합성이란 한 문장
안에 있는 낱말들 사이에 모순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불로 적시어라'라는 말은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세째는 인접성 samnidhi이다. 즉 한 문장 안에 들어 있는 낱말들은
시간적으로 혹은 공간적으로 어느 정도 서로 인접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로 하는 문장은 낱말들이 시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그로 씌어진 문장에서는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번째로, 동일한 낱말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 다른 뜻을 지니므로 문장이 이해되려면 말한사람의
취지 tatparya가 알려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에 의한
보통의 문장인 경우에는 그 논제 prakarana로 보아서 의도를 알 수
있으며, 베다의 경우는 미맘사 Mimamsa학파에서 규정하는 해?의
규칙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의미론을
종하여 정리철학은 증언 sabda에 의한 지식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증언에 의한 지식이란 증언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네 가지 타당한 지식의 방법들에 의하여 정리철학은 세계나
인간이나 신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한다. 물리적 세계의
구조에 관해서는 정리철학은 승론철학과 대동소이한 견해를 따르므로
인간과 신에 대한 정리철학의 형이상학적 견해를 잠시 검토해
보기로 한다.
6 자아, 신, 해탈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자아 atman는 개인아 jivatman로서
인식, 의식, 감정, 마음의 상태 등과 같은 정신적 현상들이 속하는바
영원한 실체이며, 몸이나 의근 manas이나 감각기관들과는 다르다.
자아는 불교철학에서처럼 항시 생멸하는 정신적 현상들의 연속적
흐름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기억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부이론적 베단타철학에서
애기하는 것처럼 자아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svayamprakasaka
순수의식 cit도 아니라고 한다. 정리철학은 어떤 주체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대상에도 관계하지 않는 순수의식의 존재를 부인
한다. 자아란 의식 자체가 아니라, 의식이라는 정신현상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실체이다. 자아는 모든 인식의 주체, 행위의 주체,
경험의 ?애자 bhoktr이며 윤회의 세계에서 업보를 받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자아 그 자체는 아무런 인식활동도 하지 않는다.
오직 의근 manas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에서 인식이 가는한 것이다.
자아의 존재는 타인의 증언에 의하여 알든지 혹은 간접적인 추론에
의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욕망, ??, 인식등과 같은 정신적
현상들은 모두 기억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억이란 몸이나 의근이나
외적 감각기관에 속할 수 없기 때문에 항구적인 영혼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후기 정리철학자들은 또한 자아가 내적
감각기관인 의근에 의하여 직적 지각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의근은
자아를 대상으로 하여 순수한 자아의식을 가직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리학자들은 이러한 자아 그 자체의 직접적인
지각가능성을 부인하고 자아는 항시 어떤 정신적 상태의 지각과
더불어 그러한 상태를 가진 주체로서만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안다', '나는 행복하다'등의 지각적 판단에서 '나'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한편 타인의 자아는 그의 지성적 혹은
의도적인 육체적 행위로부터 추리하여 알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도적인 행위는 비지성적인 육체에 의하여서는 행하여질
수 없고 의식적인 자아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리철학에 있어서 해탈의 개념은 이상과 같은 자아의 이해에
직결된다. 정리철학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apavarga을 의미하며, 이것은 자아가 아닌 것들, 즉 몸과 감각기관
들과의 관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 가능하다고 한다. 몸과
감각기관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아의 상티는 정리철학에 의하면
고통뿐만 아니라 어떤 즐거움이나 행복도 느끼지 않는 상태이다.
아무런 감정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아는 그 자체에
차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기의 정리철학 사상가들은
해탈을 단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성취로 이해했다. 아마도 베단타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해탈을 얻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자아가 몸이나 감각기관이나
의근과는 다른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자아에 대한 성전, 즉 베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sravana, 항상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야 하며 manana, 요가 원리에
따라 명상해야 한다 nididhyasana. 그리고 자아에 대한 그릇된
지식 mithya-jnana이 사라지면 자아는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고 행위 karma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결국 윤회의
세계에 다시 태어남이 없다는 것이다.
정리철학은 인간의 영원한 자아외에 세계의 창조와 유지와 파괴의
주가 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7) 신은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거나
자기자신으로부터 방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영원한 원자들고, 공, 시간, 공간, 의근들을 도덕적인 원리에 따라서
질서있고 의미있는 세계로 형성하고 유지하는 자이다. 즉 신은
세계의 질료인 upadana-karana이 아니라 능동인 nimitta-karana인
것이다. 그는 또한 세계를 도덕적인 필요가 있을 때에는 파괴하기도
하는 자이다. 신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는
영원한 의식을 갖고 있으나 의식은 그의 본질이 아니라 속성이라고
본다. 베단타철학의 견해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은
세계의 능동인으로서 또한 모든 생명체들의 행위를 조정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신의 인도하에
행하여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행위의 능동적 수단인 instrumental
cause이나 신은 인간행위의 능동적 지도인 prayojaka-kartr이다.
정리철학자들은 이러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증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논증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전형적인
증명들이다. 즉 세계는 결과 karya로서 원인이 되는 창조자가 있다.
제현상간에 발견되는 질서와 목적과 조화 등은 지성적인 능동인
__________
7) 정리.승론철학의 초기사상에서는 신의 개념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으나 후기에 와서는 분명히 유신론적 경향을 띤다.
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원자들은 근본적으로 맹목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나, 신이 원자들에게 운동을 제공하며
조정한다. 또한 최초로 말들이 각각 그 대상을 의미하도록 하는 용법을
가르쳐 준 자는 신이다. 신은 오?가 없는 완전무결한 베다의 지식의
원인이 되는 저자로서 베다는 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행위로부터 불가견력이라고 불리는 도덕적 공거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 불가견력 자체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최고의
지성을 가진 신의 인도가 있어야만 우리가 행한 행위는 그것에
합당한 결과를 거두게 된다는 등의 논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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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대승불교의 전개
1 대승불교의 흥기
대승불교 Mahayana의 역사적 기원에 대하여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들이 많이 남아 있다. 대승불교가 발생한 시대와 지역, 대승불료와
소승 Hinayana 부파불교와의 관계, 대승불교의 교단적 성격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아직도 학자들의 연구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력기원 2세기 후반에 쿠샤나 Kusana국으로부터 후한에 온 문처가?은
대승경전 중에서 '반야삼미경' '수방엄경' '도행반야경' '보적경' 등을
번역했다. 이로 보아 우리는 그때에 대승불교가 쿠샤나국에
성행되고 있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경전들이
형성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대승불교의 발생은 적어도 서격기원
1세기까지는 소급할 수 있을 것이다. 반야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읻어지는 도행반야경(소품반야) Astasahasrika-prajnapa-
ramita-sutra에는 '?가? Mahayana'이라는 말이 쓰여지고 있으며,
??불 Aksobhya Euddha에 대한 신앙도 나타나 있다. 또한 지처가?이
번역한 '반?삼미경'에는 하??불 Amitabha Buddha의 쟁토신앙도
발견된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이루어 보아 우리는 불 고?에
대한 신앙과 반야 prajna 사상을 기반으로하는 대승불교가 적어도
서력기원 전후에 이미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승 Mahayana'이란 말은 '큰 수레'라는 말로서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보든 중생을 피?의 세계로 날라다 주는 큰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반면에 대승불교의 운동을 전개한 자들은 종래의 불교를
소?' 즉 '작은 수레'라 불러 그것이 출가승만을 위주로 한 편협한
불교임을 비난했다. 대승불교자들은 왕이나 당상들의 지원 아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출가승들의 안일한 삶과, 신도들의
물질적 공양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만의 정신적 평안만을 구하는
그들의 소극적이고 현세??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일절중생의
제도할 것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대승적 불교를 제창한 것이다.
본래 석가모니 불? 자신은 성불 후에도 인도의 각 지방에 여행하면서
중생의 제도에 힘썼으며 원시불교의 출가승들도 그를 본받아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교화활동을 폈다. 바로 이러한 활동이 불교의
전퍄에 큰 역활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려 samgha의 생활이 점차
조직화되고 안정된 경제적인 기반을 갖춤에 따라 출가승들은
재가신종들의 삶과 조교적 관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사원에 안주하며 ?상과 ??의 ?정만을 추구하는 고?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한편 재가신종들은 그들에게 물질적 포시 dana를 하고
세속적인 공덕 punya을 얻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세속적인 공덕 punya을 얻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더우기 사원의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하여 발달된 교학적
abhidharma 불교는 한가롭게 번거로운 이론적 논의을 일삼게 됨에
재가자들의 종교적 팰요와 욕구로부터 점점 더 유리되게 된 것이다.
대승불교운동은 이러한 교단적 상황에 대한 재가자들의 종교적
각성에서 일어난 것이다. 대승불교자들은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생사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이타행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적인 불교를 제창하고 나왔다. 이러한
대승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의 개념이다.
??은 ?제?? bodhisattva의 약어이며 ?제??라는 말은 ?어로서
?제 bodhi, 즉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정 sattva, 혹은 '깨달음을
본질로 하는 자'라는 뜻이다.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지향하는
새로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대승은 소승의 이상인 ?나한 arhat을
자기의 이익만을 돌보는 이기적인 존재로 배척한다. 보살은 자신의
구원에 앞서 남부터 구원한다는 자배 karuna의 순 pranidhana을
세워서 ??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생사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도는 재가자나 출가자를 막론하고 ??심을 발하고
bodhicittotpada 자비의 순을 세운 자는 누구든지 다 실천할 수 있는
길이었다. 소승불교에서는 초고의 아라한과를 얻으려면 재가생활을
버리고 출가자로서 수도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보살은 원래 대승
경전들에 자주 나오는 '선남자'와 선여자'들과 같은 재가자들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출가한 보살도 생겼으나 출가보살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250의 구척형 pratimoksa를 받아 승려의 일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활동부대는 재가신종들이 많이 찾아오는
불?의 유골이나 유품을 봉안한 불탑이었다. 그들은 형 sila는 지켰으나
증단생활을 지배하는 률 vinaya은 없었던 것같이 보인다.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이란 부엇보다도 석가보니불의 성불 이전의
존재를 의미했으며 그의 전생의 행적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산출되게 되었다. 소승경전의 본생경 Jataka은 바로 이러한 석가보살의
전생에서의 수많은 이타적인 행위와 업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이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불과
같이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지위였고 불이든 보살이든
다 범부중생들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이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반하여 대승불교자들은 바로 이러한 보살의
이상을 보편화하여 주구든지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아닌 석가모니불이 이룩했던 것과 같은
성불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마도 석가모니불의 전생?이나 전기
등에서 우리는 대승의 재가자들 자신이 추구하던 삶이 이상이 이미
반영된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승의 보살들이 닦아야 하는 수행의 방법도 자연히 소승과는 달리
팔정도 대신 육파나밀다 paramita, 즉 6개의 '완성' 혹은 '도피?'을
닦는다.1) 즉 포시 dana, 특형 sila, 인? ksanti, 정진 virya,
__________
1) 'Paramita'란 단어는 'parama(최상, 완전의 뜻)'이라는 형용사의
여성형 parami+ta로 해석되기도 하며 혹은 param(??의 뜻)+i(간다는
뜻)+ta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한역 전통적으로는 후자를 사용해 왔다.
'도피?', '도', 아니면 음역으로 '피나밀'이라고 번역되었다.
?정 dhyana, 지혜 prajna이다. 파라밀다의 개념은 소승의 문헌들에
이미 발견된다. 유부의 '대??소론'은 사파나밀다설을 언급하고 있으며
본생경에는 십파나밀다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육파나밀다를
선정하여 확고한 수행의 원리로 세운 것은 대승불교자들에 의해서였다.
육파나밀다 중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포시 dana의 개념이다.
포시란 소승불교에서는 주로 재가자들이 출가승들에게 행하는
물질적인 공양을 의미했으나 대승불교는 그것을 보살들 자신이
실천해야 할 첫번째의 항목으로 삼은 것이다. 다음에 유의할 것은
반야파나밀다로서 대승에서 반야 prajna란 주로 제법의 '공', 즉
공실체성의 진리를 깨닫는 지혜를 의미한 다. 이러한 지혜의 바탕에
근거하여서만 남은 다섯 파라밀다도 올바르게 닦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불교는 일찍부텨 반야파라밀다를 주제로 한
많은 경들을 산출한 것이다.
대승불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보살에 대한 신앙이다. 대승불교에
의하면 보살은 수없이 많이 있으며 이 세상뿐만 아니라 심방세계의
곳곳에 살아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위하여
열반을 구하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하는 중생들을
도우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승불교에서는 해탈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이지 타력의
신앙은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보살의 무한한
자비심을 믿기 때문에 엄격한 영적인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신앙적
불교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관세음보살 Avalokitexvara, 대세지보살
Mahasthamaprapta, 문수보살 Manjusri, 보현보살 Samantabhadra등은
이러한 신앙의 대상이 되어온 대표적인 보살들이다.
대승불교는 불사관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초래했다. 보살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었듯이 불사의 개념도 일반화되어 삼세십방에 수없이
많은 불사가 조재한다고 믿는다. 소승불교에서는 불사라 하면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석가모니불을 의미했다. 물론 소승불교에서도
과거 칠불 혹은 이십오불, 또 미래불인 ??불 Maitreya Buddha의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승에서처럼 불의 개념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승에서는 과거의 불들은 모두 열반에 들어가서
생사의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을 갖지 않는 존재들로 이해되는
반면에, 대승에서는 제불은 우주의 객방에서 보살들과 함께
쟁사를 이루며 거기서 살아 활동하고 있는 존재들로 간주된다. 대승
불교의 사상가들은 이러한 불사관의 변화를 밑받침하기 위하여
불사의 삼신설 trikaya을 전개했다. 즉 불사에는 3가지 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화신 혹은 응신 nirmanakaya으로서 중생의 교화를
위해 지상에 태어난 역사적인 불사를 의미한다. 둘째는 보신
sambhogakaya으로서 보살이 현을 발한 후 오랜 수행을 하여 그 결과로서
얻은 초자연적인 몸을 말한다. 하?불사 Amitabha Buddha은 그
가장 좋은 예이다. 세째는 법신 dharmakaya으로서 어떤 보이는
형상도 초월하며 모든 불의 근거가 되는 진가의 깨달음 그 자체를
뜻한다.
제불과 보살들에 대한 신앙과 더불어 자연히 신주들 가운데는 그들을
형상화하여 숭배하려는 열망도 생기게 되어 많은 불상과 보살상들이
제작되게 되었다. 특별히 중아인도의 마투라 Mathura라는
곳과 서북인도의 간다라 Gandhara지방은 이러한 불상제작의 중심지였다.
간다라지방의 불상은 불의 형상을 희랍의 신상들에서 발견되는
우아함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어 알레산더대왕 이후로부터 그 지방에
성행했던 희랍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승불교는 제가자들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여 불 보살의 숭배
이외에도 불사의 유골이나 유품을 봉안한 불탑 stupa의 참배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대승경?의 숭배도 행했다. 즉 보통의 재가자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진리를 담은 경?을 탑 안에 안치하고
붕배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경?의 수지, 매통, 서사의 행위도
다른 어떤 것보다 많은 공덕 punya을 지닌 것으로 권장되었다.
사실 이것은 국왕이나 부호들만이 할 수 있는 사탐의 건림이나
장원의 기진과 같은 것에 비하면 비교적 큰 경제력이 없는 자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로서,대승불교가 일어날 다시에 확고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던 소승교단에 대한 대승의 대중적인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승불교는 또한 이상과 같은 객종의 신앙적 행위를 통하여
얻어지는 공덕을 한 개인이 자기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넘겨 준다는 소위 윤회 parinamana의 샐행도
강조했다. 이것은 물론 업의 법칙에 대한 엄격한 개인주의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배의 정신의
표현인 것이다. 실로 이상과 같은 대승의 조교적 운동은 종래의
불교에 비하면 훨씬 더 종교적으로 다채롭고 풍부하며, 한 마디로
표현하면 대승의 종교세계는 소승불교처럼 외롭지 않은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전기의 대승경전들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은 자연히 그들의 종교적 이상을 담은 경전들을
산출하게 되었다. 대승경전들도 형식상으로는 '불설 Buddha-
vacana'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들이 석가모니불의 설법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승불교자들은 그들의 경전이
본래 언어를 초월한 불타의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런 뜻에서 '불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주장에
의하면 불타의 참 가르침은 오직 하나의 진리뿐이나 ekayana
(일승) 듣는 사람들 각각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다르게 설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들은 상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설법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대승경전의 형성은 대체로 전후이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서력기원 1세기부터 대승의 최초의 론사인 용수 Nagarjuna의 때
까지이다. 용수의 년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150~250A.D.)의 인물로 추정된다. 그를 전기대승경전들의
종점으로 삼는 이유는 '대지도론'을 비롯하여 그의 저작들이
다수의 대승경전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둉수가 당시의
모든 대승경전들을 다 인용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에 의하여
인용된 것은 확실히 전기경전으로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전기의 대승경전들 가운데서 주요한 것만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대무량수경 Sukhavativyuha-sutra'
하?사불 Amitabha (Amitayus) Buddha에 대한 신앙은 대승의 불.
보살신앙 및 쟁사왕생 신앙의 가장 대표적인 표현으로서 많은 대승불교
신자들의 귀의처가 되어 왔다. '무량수'라는 말은 'Amitayus'를
번역한 말로 '무한한 수명'이란 뜻이고, '대무량수경'2)의 범명
'Sukhavativyuha'라는 말은 '극락의 장엄'이라는 뜻이다. '무량수경'의
내용은 법? Dharmakara이라는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48개의 ??을
세운 후 오랜 기간 동안의 수행을 거쳐 성불하여 서방에 있는
글락세계sukhavati의 쟁토를 이루었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48개의 ??으로서 이들은 장차 법장보살이
성취하고자 하는 쟁토의 모습과 중생들이 거기에 태어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제십팔현은 '설아득불 십방중생
지심신락 용생아국 아지십념 야불생자 불취정각'이라하여 중생들이
쟁토에 왕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하고 있다.3)
쟁토신앙은 보살의
자비와 공덕에 힘입어서 이 혼탁한 세상에서 닥치는 고통과 죄와
유혹이 없는 안락한 곳에 왕생하여 거기서 성불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자들의 염원의 표현인 것이다.
2 반야파나밀다 Prajnaparamita계통의 경전들
반야계통의 경에는 ?(32 음절의)의 수에 따라 길고 짧은 여러 개의
경들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성립됐다고 간주되는 것은
'ㄴ팔간공반야 Astasahasrika'(소품반야)이며 이것이 확대되어 25,000?의
'대품반야'가 성립되었으며 용수의 '대지도론'은 바로 이 대품반야'의
주역서이다. 그 외에도 18,000?,100,000?으로 된 것도 있었으며
짧은 것으로는 '금강반야파나밀다경 Vajracchedika-prajna-
paramita-sutra'의 500?, '반야심경 Prajnaparamita-hrdaya-sutra'의
300?과 같은 것이 있다.
__________
2) '대무량수경'은 '하?사경'과 '관무량수경'과 더불어 쟁토종의
소의경전으로서 쟁토삼부경이라 불린다.
3) '대정신수대세경' Vol. 12,, p.268a. 범본과 이용상 차이가 있다.
Max Muller, trans., The Larger Sukhavati-vyuha, Buddhist Mahayana
Tests, The Sacred Books of the East, Vol. XLIX, p.15 참조.
반야경전의 주요 사상은 공사상으로서 제법은 자성 svabhava이 없이
공하여 이것이 제법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승불교, 특히
설일체유부에서 법을 실체시하는 경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대승불교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다. 제법이 공함을 깨닫는
것이 반야, 즉 지혜 prajna이며, 이러한 지혜에 입각하여 보살은
보살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공관에 의거한 보살의 수행을 '금강경'은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 표현하고 있다. 제법이 공하고 모든 현상적
차별들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으면, 불사와 중생, 제도하는 자와
제도받는 자, 세간과 출세간, ??과 생사의 차별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불사의 설법도 설법이 아니라는 것을 반야경전들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3 '유마결소설경 Vimalakirtinirdesa-sutra'
위와 같은 공사상에 입각하여 '유마경'은 세속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재가불교의 이상을 가르친다. 이 경의 주인공은 유마결
Vimalakirti이라는 거사로서 그는 지혜에 있어서 불사의 다른 출가한
제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나 그는 지혜에 있어서 불사의 다른 출가한
제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나 그들을 무색하게 하고, 어디서나 자유자재하는
거침없는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실재는 모든 대립을 초월한
불이 advayatva의 절대평등한 경지로서 불가사의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상이 강조되고 있다. 경의 구성도 드라마틱한 면이
있는 흥미로운 경전이다.
4 '정법연화경 Saddharmapundarika-sutra(법연경)'
'유마경'이 아직도 대승의 이상을 소승에 대립시켜 논하고 있는
반면에, '법화경'은 이러한 대립적 견해를 초월하여 불사의 여러
교설들은 결국 모두 중생의 교화를 위한 방편 upaya에 지나지 않고,
성문 Sravaka, 녹각 Pratyekabuddha, 보살 Bodhisattva의 삼승은 결국
일승 ekayana혹은 일불승에 귀결한다는 대승불교의 포용적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 일불승에 의하여 모든 중생은 성불하는 것이다.
불사관에 있어서도 '법화경'은 불사가 출생하여 출가하고 성불한 후
입멸한 것은 단지 중생의 교화를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고 실은 불사의
수량은 불가수량이고 그의 성도는 무량?의 전에 이룬 것이라고
한다. '법화경'은 이상과 같은 진리들을 여러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으며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경전이다. 불탑신앙과 경권신앙도
이 경에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5 화엄계통의 경전
'화엄경'에는 한역으로 40권본, 60권본, 80권본의 상종이 있으나
중국에서는 5세기에 불??사나 Buddhabhadra에 의하여 번역된
60권본의 '대방확불화엄경 Mahavaipulya-buddha-avatainsaka-sutra'이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다. '화엄경'은 매우 방대한 문헌으로서 본래는
독립적으로 유통되던 여러 경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있다.
'화엄경'은 조요 내용으로서 '십지품'에서 불의 정각에 도달하기
위하여 십파나밀을 닦아가는 보살의 인행을 십지의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4) 또한 십지의 전단계로서 십주, 십행, 십회향도
논하고 있다. 다음에 '입법계품'에서 는 보살의 수행과정을 선재
Sudhana 동자의 구도기로서 실감있게 그리고 있다. '법계'란 보살이
여래가 되기 위하여 깨달아 들어가야 하는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선재동자는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설법을 득고 마지막으로 ??불을 만나서 법계를 증득한다.
'십지품'에는 '삼계허망' 항시일심작 십이인록분 계의심'이라는
유명한 유심사상 citta-matrata을 설하는 구절이 발견된다. 이것은
십이지인록분 가운데서 제삼지, 즉 식 VIJNANA, CITTA을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서 유식사상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__________
4)십파나밀은 육파나밀에다 방편, 현, 력, 지의 파나밀을 더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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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ser, M., Prajnaparanita: Die Vollkommenheit der Erkenntnis.
Gottingen, 1914.
제11장 중관철학
1 용수와 중관철학의 전통
대승불교는 처음에는 소승불교의 번잡한 교리의 연구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고 이에 반발하여 대중적인 종교운동으로 일어난
것이었으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대승불교도 자연히 철학적으로 자신을
정립하고 옹호할 필요에 봉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승불교와
같이 많은 론 sastra등을 쓰게 된 것이다. 대승의 론서들 중에서
제일 일찍 씌어진 것은 새승의 최고의 론사로 추앙되어 오는 용수
Nagarjuna의 것들이다. 용수는 서력기원 후 2-3세기 경의 인물로
추정되며 남인도 출신의 사람으로 불교의 여러 사상뿐만 아니라
외도 사상에 입각하여 이에 어긋난 여러 실재론적 견해들을 논파하고
있다. 용수 당시에는 전에 언급한 초기의 대승경전들, 즉 반야경전,
'화엄경', '법화경', 쟁사경전들이 비록 지금과 간은 형태는 아니겠지만
이미 성립되어 유통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용수의 저서들을 통하여
알 수 있으며, 용수는 이들 제경전들을 해석하는 논들을 지은
것이다. 그의 저서들 가운데,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반야경전 계통의 공사상에 입각하여 그긋된 실재론적인 견해들을
논파하는 저서들로서, '중론 Mulamadhyamaka-karika', '십이문론
Dvadasanikaya-sastra', '공칠십론 Sunyatasaptati'
2) 역시 공사상에 입각해 외도를 피하는 '회쟁론 Vigraha-vyavar-
tani'
3) '대품반야'의 주역서로서, 용수사상의 여러가지 측면을 포괄적으로
보이는 저서인 '대지도론'
4) '화엄경'의 '대지품'의 주역서인 '십주비파소론'과 화엄의
유심사상을 논하는 '대승이십론'등이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용수의 교학은 상당히 포괄적인
것이었으며 단순히 반야경전의 공사상만을 전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공사상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중론'을 중심으로 하여 중관철학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용수의
제자로서 제? Aryadeva라는 사람이 있어서 '백론 Catuhsataka'을
저술했다. 이 '백론'은 용수의 '중론' 및 '십이문론'과 함께 중국
삼론종의 기본 논서를 이루었다. 서럭기원 350년경에는 청목 Pingala
이라는 자가 나와서 '중론'의 주석서를 썼으며, ?마나? Kumarajiva에
의하여 한역되어 중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4세기부터는
유색철학이 인도불교에 풍미함에 따라 중관철학은 자연히 유식철학의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6세기에는 불호 Buddhapalita와 청변
Bhavaviveka이 나와서 '중론'의 주석서를 썼으며, '중론' 해석상의
차이를 보여 중관학파의 두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불호 계통으로
월칭 Candrakirti이 나와서 '?명구론 Prasannapada'이라는 '중론'의
주석서와 중관철학의 입문서인 '입중론 Mudhyamakavatara'을 써서
티벳불교에 유행하게 되었다. 청변은 '반야증론 Prajnapradipa'
이라는 '중론'의 주석서를 썼으며 그는 의식적으로 유식철학자인 호법
Dharmapala의 유식설은 비판하여 중관과 유식 양파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불호의 중관학파를 프라상기카 Prasangika학파라 부르며,
자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의 견해만을 모순적인
것으로 논파하는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반면에, 청변의
중관학파를 스바탄트리카 Svatantrika라고 부르며, 자기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천명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변의 계통으로 7세기의
지광 Jnanaprabha은 ?가행철학에 대항하여 공사상의 우위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불사의 가르침을 삼시로 나누는 교판을 제시했다. 즉
소승은 사성?를 통하여 심경구유를, ?가행파는 만법유식설을
통하여 경공심유를, 그리고 중관철학은 제법계공의 이치를 통하여
심경구공을 진리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2 중론의 철학
'중론'에 나타난 용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중론'의
'중'의 개념을 먼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소승
경전에서 불사 자신이 인간존재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중도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즉 그는 인간에게 어떤 불변의
형이상학적 실재가 있다고 인정하는 유의 입장도 거부했으며, 동시에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부로 돌아간다는 부의 입장도 거부했다.
'중론'의 '중'은 이와 같은 불타의 기본적 입장을 더욱 더 확대하여
세계 전체에 대한 존재론적 규명을 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법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성 svabhava이 없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
그러나 공은 결코 무가 아니며, 다만 자성이 없이 조건적으로 생기하고
있는 현상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공이란 비유.비무이며 중도 madhyama pratipad인 것이다. 비유.
비무라는 것은 공이라는 말과 같이 실재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타파의 말이요, 중도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현정의 말인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세계의 참 모습이 비유.비무이며, 중도란 말인가?
이것을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이 '중론'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다: '인록소생법' '아설즉시공', '적위제가명', '적시중도의'.
인록에 의해 조건적으로 생기는 모든 법은 자생이 없이 공하다는
말이다. 즉 공은 녹기 pratityasamutpada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둉수는 견기설을 소승불교, 특히 유부에서처럼 제법의 존재를 일단
인정하고 나서 그들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녹기설의 참 철학적 의미는 어떤 법도 녹기의 지배를
받는 조건적이며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성을 결여하고 있는 무자성 nihsvabhava, 따라서 공 sunyata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제법의 실상이 공임을 알면, 그 제법이 아무것도
아닌 무인 것이 아니라 공한 그대로, 즉 있는 모습 그디로 여러
이름을 가지고 논재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말과 같이 '색즉시공'
이요, '색즉시색'인 것이다. 이것을 용수는 가명 prajnapti이라 부른다.
'가'란 말은 공즉시색', 혹은 '진공소유'의 현상 세계가 공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방편상으로 인정된다는 뜻으로서, 가명이란 자성을
결여한 공한 법들이 그런대로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는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중도의 소유인 것이다.
문제는 모든 것이 가명이라는 진리를 모르고 현상적 차별의 세계를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유나 무의 견에 빠지며 고통을
받는 것이 보통사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용수는 이러한 잘놋된
견해를 타파하여, 실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타파 그 자체가 다름아닌 현정인 것이다.
용수에 의하면 사람들이 세계의 실제의 모습인 바 공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요하고 있는 언어와
개념들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물을 실재론적으로 보게 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이 일상언어를 매개로 하여 세계를 보는 한 사물들이 각각 독립되고
고정된 본질을 갖고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색안경을
쓴 사람이 바깥세계가 모두 그 안경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용수는 '중론'의 초두에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생. 멸. 상. 단. 일. 이. 래.
출 등의 개념을 예로 들어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그들이 순전히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구성해낸 개념 vikalpa들로서 모두 허론 prapanca에
지나지 않음을 갈파한다. 여기서 용수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일종의 파?적인 변증법으로서 제개념들의 하나하나를 고찰하여
그것들이 결국 모순적이고 상대적이고 불합리한 것임을 드러내는
귀?법 prasanga, reductio ad absurdum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용수에
의하면 모두 우리가 공의 진리를 모르고 사물을 실재론적으로 보는
습관에서 유래하는 헛된 관념들인 것이다. '생'의 개념 하나만을
분석함으로써도 용수는 당시의 인도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절의
형이상학적 인과론을 궁극적으로 불합리한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녹기, 즉 공의 세계는 불생, 불멸, 불단, 불상, 불일, 불이, 불래,
불출(팔불)이며 모든 언어와 개념들이 타당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지이다. 언어는 진리를 왜곡하개 때문이다.
그렇다고 용수는 일상적 언어나 개념의 타당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이?설에 접하게 된다. 용수에
의하면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높고 앚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관점에 따라서 진? paramartha-satya와
속? samvrtti-satya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진?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반야 prajna(wlgP)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서 언어를 초월한 공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속?란 세상 사람들의 상식적인 눈으로 보는
세계로서 진리가 가리원진 samvrtti 모습을 말한다. 용수는 이러한
일상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공의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모든 언어의 사용과 철학적 사유는 다름아닌
속?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수는 말하기를 속?를
떠나서는 진?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한다. 모든 불사의 교설들은 주로
루리의 일상적인 관념들에 근거하여 이루어졌으나 그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언어를 초월하는공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주구든지 진?를 깨닫기 이전까지는 속?의 방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진?인 공이라는
것 자체가 소유와 가명의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깨달은 자의
관점에서 볼 것 같으면 속?란 진?의 자유로운 활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속?와 진?의 구별 자체가 하나의 방편상의 구분은
될지언정 어떤 궁극적인 대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인 공의 세계는 모든 차별과 대립이 사라저 버린 불이의 advaya
세계로서 유와 무, 생사와 열반, 미와 오, 중생과 불사, 그리고 속?와
진?의 구별조차 부정되며 공마저도 공인 일절무소득 anupalabdhi의
세계이다. 그러나 공의 세계는 동시에 모든 차별의 상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다의 세계이기도 하다. 용수는 바로 이 다의 세계에
입각하여 속?를 건립하고 '중론'의 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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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후기대승경전들의 사상
1 역사적 배경
불교는 바라문교내의 한 분파적인 종교운동으로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분파들과는 달리 불교는 왕성한 포교활동을
통하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쇼카와 카니쉬카와 같은 숭불
군주들의 지원에 힘입어 인도 전역에 융성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결코 정통 바라문 종교를 제압하지는 못했다.
불교는 이미 인도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베다의 권위나 제사주의적인 종교행사를 거부함으로써 언제나
이단적인 종교로 간주되어 온 것이다. 불교는 또한 바라문 계급의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세워 놓은 사성제도와 생의 단계 varna-asrama를 중심으로 한
사회윤리질서, 즉 '다르마 dharma'의 체계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따라서
일반 재가자들의 생활윤리는 어디까지나 바라문교의 전통에 의하여
지배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쇼카 Asoka왕의 마우리아 Maurya
왕조가 망한 후 슝가 Sunga왕조는 불교를 억압하고 바라문교를
부흥시켰다. 또한 이민족에 의해 세워진 쿠샤냐 Kusana왕조 때에도
불교의 세력은 북부인도를 석권했지만 남쪽에는 순수 인도적인
샤타바하나 Satavahana, (Andhra)왕조가 일어나서 바라문교를 국교로
받들고 보호하는 정책을 썼다. 쿠샤나 왕조와 샤타바하나 왕조는
약 3세기부터는 세력을 잃기 시작하였으며 인도는 여러 소국가들이
대립한 가운데 정치적 혼란기로 들어갔다. 그러나 320년경에는
찬드라굽타 Candragupta1세가 굽타 Gupta왕조를 세우고 사무드
라굽타왕 Samudragupta(330년경 즉위) 때에는 전인도를 통일함으로써
마우리아 Maurya왕조 이후 약 500년만에 비로소 통일국가를 다시
형성하게 되었다. 그 후 굽타 왕조는 6세기에 흉노족의 침입등으로
망하기까지 안정된 사회질서 밑에 학문 예술 등 각 방면에서
찬란한 문화를 건설했다. 종교적으로는 바라문교가 국교로
인정되어 바라문의 윤리질서가 전인도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또한
굽타왕조 때에는 쉬바신과 비슈누신에 대한 대중적인 신앙도 널리
퍼져서 인도전역에 수많은 웅대한 신단들이 건축되었다. 바라문들에
의하여 전수되어 온 산스크리트 Sanskrit 언어와 문화는 전인도에
보급되었으며 고전산스크리트어가 전국적인 공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인도의 세익스피어라 불리는 칼리다사 Kalidasa와 같은
시인도 굽타왕조의 초기에 활약한 사람이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바라문의 정통철학파들은 각기 잘 ㄷ,듬어지고 세련된 고전
산스크리트어로서 많은 체계적인 저술들을 산출하게 된 것이다. 실로
이 시기는 인도고전문화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굽타왕조는 바라문교를 국교로 삼기는 하였으나 불교를 압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굽타왕조는 종교적인 관용성을 보여 불교도
지원해 주었다. 이와 같은 지원에 힘입어 5세기초에는 불교의 옛
고장인 마가다지역에 유명한 나란다 Nalanda라는 대사원이 세워지고
그 후로부터 수백년 동안 불교교학연구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사상면에 있어서도 불교는 자연히 이러한 정치적 문화적 추세에
영향을 받아 바라문의 교학에 대응하여 많은 체계적인 철학적 문헌들을
고전산스크리트어로 산출하게 되었다. 이들은 내용에 있어서도
정통바라문 사상의 영향을 받거나 그것에 대하여 변호적인 잣;를
취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으며 동시에 바라문의 철학적 사유를 크게
자극시키기도 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대승경전들의 중요한 것들을 든다면 우선 열반을
적극적으로 상.락.아.쟁으로 규정하며 법신상주를 설하는 '대?열반경',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여래가 될 가능성의 근거로서
여래?이라는 자성청쟁심이 있다는 사상을 설하는 '승"경 Srimalasutra'이나
'여래?경', 유식철학의 근본경전으로서 하하??식 녹기사상과
만법유식을 설하는 '해심밀경 samdhinirmocana-sutra', 여래?사상과
하뢰?식사상과를 융화시켜 여래?록기설을 발전시킨 '?가경
Lankavatara-sutra'등을 들 수 있따. 이들 후기 대승경전들은
모두 용수 이후 세친 Vasubandhu에 이르기까지 3-5세기초에 걸쳐서
형성된 것으로서 주로 여래? tathagatagarbha혹은 불성론적 사상과
유식사상 vijnapti-matrata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은 반야경전이나
중관철학의 공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실재에 대한 부정적 접근방식을
지양하여 불이나 열반을 상주불멸의 실재에 간주하며 인간에 있어서도
불이 될 수 있는 어떤 영원한 성품이 있음을 강조하여 우파니샤드적인
바라문사상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래의
무아설 anatman을 지키면서도 윤회의 주체로서 하뢰?식 alaya-
vijnana이라는 존재를 설정하여 인격의 연속성을 보장하며 업보를
설명하려고 꾀했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들을 더욱더 철학적으로
발전시키며 이윤화한 사람들이 유가행파 Yogacara의 철학자들로서,
??존자 Maitreyanatha, 무자 Asanga, 세친 Vasubandhu의 사상은
대승교학의 극치를 이룬다. 우선 그들의 철학을 고찰하기 전에 이
시기에 형성된 조요 경전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검토해 보자.
2 유식사상의 계통의 경전
1 '해심밀경 Samdhinirmocana-sutra'
이 경은 유색사상계통의 경전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해심밀경'은
매우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경전으로서 경이라기보다는 논에
가까운 경전이다. 이 경은 범어 원본은 남아 있지 않으나 티벳어역본이
있으며 한역본으로서 ?시유지역(514)과 현장역(647)이 남아
있다. 이 경은 '승의?상품'은 반야경전의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승의?, 즉 진? paramartha-satya의 다섯가지 면을 설하고 있다. 승의?는
유위무위의 이상이 없으며, 일절의 명언을 떠난 상, ?사를
초월하는 상, 제볍과의 일이성을 초월한 상, 일절에 편재하는 일미상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일절법상품'과 '무자성상품'도
공사상에 입각하여 제법의 실상을 삼상 trilaksana과 삼무자성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삼상이란 망망정에 의한 언설 vyavahara과
가명 prajnapti 때문에 제법의 명칭들을 설정하고 집착하는 편계소집상
parikalpita-laksana, 십이지록기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제법이록에
의하여 생개하는 의타기상 paratantra-laksana, 그리고 일절법의
평등한 진가의 모습인 바 원성실상 parinispanna-laksana을 말한다.
삼무자성이란 삼상에 각각 해당하는 진리로서 편계소집의 상은 자성
svabhava이 없다는 상무자성, 의타기상ㅇ; 의하여 생기하는 것은
자성이 없다는 생무자성, 그리고 제법이 본래 무자성이라는
승의무자성을 말한다.
이상과 같은 이론은 모두 공, 즉 일절제법계무자성의 진리를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 그러나 '해심밀경'은 이렇게 공의
진리를 더 자세히 밝혔다고 하여 스스로를 불사의 가르침을 충분히
드러낸 요의 nitartha경으로 간주하고 반야경전이나 소승경전은 불료의
neyartha경으로 본다. 따라서 '해심밀경'은 불사의 설법(전법")에
삼시가 있었음을 말한다. 첫번째 전법?은 성문승을 위하여
사?의 상을 설하였고, 두번째는 대승에 나아가는 제들을 위하여
일절제법무자성에 근거하여 ?밀의 상을, 그리고 세번째로 일절승에
나아가는 자를 위하여 같은 일절제법무자성에 의거하면서도 현료의
상을 설했다는 것이다. 현료의 상이란 반야경전과 같이 제법의
실상을 단지 공으로만 설하지 않고 이 공의 이면에 숨어 있는
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심밀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법상종에서는 이와 같은 설에 근거하여 소승과 중관과
진가를 각각 유와 공과 중을 가르치는 철학으로 교상판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색경전으로서의 '해심밀경'의 의의는 이러한 삼상이나
삼무자성 등의 이론뿐만 아니라 '심의식상품'이나 '분별유가품'과
같은 곳에 나타나 있는 식 vijnana의 이론에서 발견된다. '심의식상품'의
심은 일절종자식으로서 아뢰?식 alayavijnana이라 부른다.
이 식이 갖고 있는 종자의 발육에 의하여 양심환경의 세계가 전개
된다는 것이다. 이 식은 일절의 종자를 집특하고 있고 우리의 감각
기관과 몸 등 일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집특식 adanavijnana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의 세계를 아라야색의
현현으로서 보는 것을 아라야식록기설이라 한다. 그러나 '해심밀경'에는
아직도 이 아라야식설이 유색무경의 사상, 즉 대상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이론과 분명하게 직결되어 있지는 않고, 업보에
의하여 현상세계를 설명하는 업감록기론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아라야식의 개념은 무엇보다도 소승불교철학에서부터
계속적으로 문제되어 온 업의 소재와 윤회의 주체의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답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심의식'의 '의식 mano vijnana'은 전신적인 현상을 대상으로 하여
분별작용을 하는 식으로서 유색철학의 팔식설에서 제육식에
해당한다. '해심밀경'에는 아직도 제칠식 즉 말?식 manas의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해심밀경'에서 만법유식의 사상이 분명히 나와 있는 곳은
'분별?가품'으로서 미륵보살과 불타와의 문답 가운데서 불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법을 한다. 즉 삼마지 samadhi(삼미)와 ????
vipasyana(관)를 행할 때 나타나는 영상은 심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그 영상은 단지 식뿐이므로 vijnapti-matra; ideation-only
식 vijnana의 소록 alambana(대상)은 단지 식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뿐이다.
이와 같이 영상과 심이 다를 바 없다면 결국 심이 심을 보는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치 거울에 얼굴을 비추고서 얼굴의 영을
본다고 말하지만 얼굴을 떠나 영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라 한다. 이상과 같은 영상의 유식에 관한 설법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식사상은 본래 지관, 즉 요가 yoga의 수행과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식철학을
유가행 yogacara의 철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2 '아?달마경 Abhidharma-sutra'
이 경은 현존하지는 않지만 유식계통의 경으로서 중요한 것이었음을
다른 문헌들을 통해서 알수 있다. 특히 무자의 '?대승론'은
이 경의 '?대승품'을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경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경의 제목 자체가 말해주듯이
매우 체계적이고 교학적인 경전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3 여래장사상 계통의 경전
후기대승경전들 가운데서 유식사상을 설하는 경전들과 더불어 또
하나의 부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여래장 tathagatagarbha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들이다. 여래장사상의 근본은 일절의 중생들의
마음은 본래 정쟁하여 누구나 다 수행을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상은 소승경전들 가운데서도 이미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이미 고찰한 대로 대중부는 이것을 하나의 근본적
교설로 내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대승불교에 의하여 계승되고
발전되어서 ''열반경'과 같은 대승경전에서는 '일절중생?유불생'이라는
불성의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래장사상은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의 결정으로서 여래? 계통의 경전들은 이 여래장의
개념을 이윤화하고 발전시킨 경전들인 것이다. '여래장'이란 말의
범어는 'tathagatagarbha', 즉 '여래의 ?'라는 뜻으로서 중생들은
그 안에 여래를 키우는 ?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래적인
의미가 나중에는 여러 가지로 확대되어 해석이 되었다. '불성론'에
의할 것 같으면 여래장의 '장'의 개념에 삼종의 뜻이 있다고 한다.
즉 소?장과 염?장과 능?장의 뜻을 말한다. 소?장은 일절중생이
여래의 지에 의하여 ?장된다는 뜻이고, 염?장은 가리우고
감추어졌다ㅑ는 뜻의 '장'으로서 여래가 번뇌 때문에 중생 속에 가리워져
있다는 것을 말하여, 능?장은 중생이 본래부터 불위에 도달했을
때에 얻어지는 모든 공덕을 ?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제 고찰할 여래장사상 계통의 경전들은 주로 두번째와 세번째의
의미로서 여래장을 설하고 있으며 첫번째의 뜻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자유스러운 해석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1 '대방등여래장경'
여래장사상계통의 경전 가운데서 제일 먼저 형성된 것은
'대방등여래장경'이다. 이 경은 일절중생은 그 안에 여래를 장하고
있는 여래장 tathagatagarbha이라고 한다. 어래는 지혜와 여래의 눈을
갖고서 무량의 번뇌에 감싸여 있는 중생들의 내부에 자기와 똑 같은
지혜와 눈을 가진 여럐가 좌신하고 있는 것을 본다고 말한다. 이와같은
진리를 득고서 수행하는 보살은 번뇌로부터 해방되어 여래가
된다고 한다. 중생 안에 들어 있는 여래를 여래장경은 '여래지',
'여래지견', '여래법성', '여래의 종성', '법장', '지장', '여래신'
등의
여러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래를 장하고 있는
중생의 모습을 '시들은 운화 중의 불', '군봉 중의 미밀', 빈천한
여자가 ?임한 전윤왕' 등의 9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든
비유는 인간은 누구나 다 여래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2 '부증불감경'
이 겅의 주요 내용은 중생계가 곧 법계이며 중생의 깨달음의
증감에 관계없이 중생계와 법계는 증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중생계,
즉 중생의 본질은 여래장이고 여래의 법신이다. 그리고 이 여래장이
무량의 번뇌에 감싸여 있는 것을 중생이라 부르며, 세간을 멀리
떠나서 ?제행을 닦을 때에는 보살이라 부르고, 일절의 번뇌를 떠나
정쟁히질 때에는 여래라 부른다고 한다. '여래장경'이 여래장을
중생과 동일시하는 반면에 '부증불감경'은 여래장을 중생계, 즉 중생의
본질(성 dhatu)과 동일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때의 '여래장'의
뜻은 여래를 장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여래의 정?, 흑은 법신의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3 '승만경'
이 경의 주인공은 승만 Srimala부인으로서 '유마경'과 같이 재가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승만경'은 법신이 번뇌에 의하여 감싸여
있을 때를 여래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여래장은 고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제심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래장에 불공여래장과
공가래장의 이의의 구별을 하고 있다. 전자는 여래의 지와 불가분적인
여러 덕성을 갖춘 여래장을 말하고 후자는 여래의 지와 거리가
먼 번뇌가 본래적으로 없는 여래장을 의미한다.
4 '열반경'
이 경의 주제는 불사가 입멸할 즈음에 임하여 열반에 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방사에 불과하며 사실 여래는 상주불변하는 법신이며
열반은 상락아쟁의 사파나밀을 갖추어 있다는 것이다. 이절중생이
여래장이라는 사상을 '열반경'은 일절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일절중생?유불성). 열반을 상, 락, 쟁,으로
이해하는 것은 소승불교경전에서도 앚아볼 수 있는 것이지만
아 atman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무아 anatman설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으로서 분명히 불사의 본래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사상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반경'은 대승의 법신사상과 불성론적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대담하게 열반을 '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파니샤드적 사상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4 '?가경과'과 '대승기신론'은 후기대승경전들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
형성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서 사상적으로도 이들은 아라야게
형성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서 사상적으로도 이들은 아라야
식록기설의 유식사상과 여래장사상을 ?화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경'은 443년의 안역본이 있으므로 늦어도 4세기 말경에는
성립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가경'도 역시 아비달마
abhidharma적인 경전으로서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제종의 대승사상들을
거의 다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경의 내용이 번잡하고 때로는
상호?순적이기도 하다. '?가경'은 스스로의 중요한 내용을 오법,
삼자성, 팔식, 이무아로 규정하고 있다. '오법'이란 명 naman, 상
nimitta, 망상 vikalpa, 성지 samyag-jnana, 여여 tathata를 말하고,
'삼자성'이란 망상자성, 녹기자성, 성자성(분벌성, 의타성, 진실성)을
뜻한다. 오법 중에서 명과 상은 망상자성에 해당하고, 망상은 녹기자성,
성지와 여여는 성자성에 상응한다. ''팔식'은 아라랴식, 의 manas,
의식 mano-vijnana 및 안, 이, 비, 설, 신의 오식을 말하고
'이무아'는 인무아와 법무아를 뜻한다.
'?가경'의 사상적인 의의는 무엇보다도 아라야식과 여래장
tathagatagarbha을 동일시하는 데에서 발견된다. 본래 아라야식은
생사의 세계를 현성하는 망식이었으나 '?가경은 이것을 여래장과
동일시하므로 제법은 곧 여래장의 현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즉
아라야식록기설이 여래장녹기사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경의
비유적인 설명대로 깊은 바다와 그 위의 물결은 결국 같은 것으로서
생멸의 세계 자체가 곧 진가의 나타남이라는 사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가경은 아라야식이 단순히 자성정쟁심이 여래장이
아니라 진망화합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음도 누차 설하고 있다.
위와 같은 '?가경'의 사상과 ?를 같이하여 여래장녹기 혹은
진가녹기를 논하고 있는 것이 '대승기신론'이다. '기신론'은 진가와
생멸을 같은 일심(중생심)의 양면으로 본다. 일심법계의 무차별상은
진가이며 일심법계의 차별상은 생멸의 세계인 것이다. 이 차별상으로서의
일심법계(심생멸)가 곧 여래장자성정쟁심이며 아라야식이라고
한다. 아라야식은 중멸과 불생멸이 화합하여 비일비이한
양상이며 쟁과 염, 각과 불각을 포함하는 진망화합의 식이라고 '기신론'은
말한다. 아라야식의 불각에 의하여 염록기인 수록유전의
생사의 세계가 전개되며, 아라야식의 각으로 인하여 쟁록기인 반유환멸의
열반의 세계가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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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유가행철학
1 유가행철학의 전통
유가행철학은 중관철학과 더불어 인도의 대승불교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철학이다. 유가행철학은 용수에 의하여 확립된 중관철학의
진리에 대한 부정적 접근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공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론을 전개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물들이 자성이 없이 전녕 공이며
순전히 우리의 마음에 의하여 구상되거나 조작된 것이라면, 결국
이들 사물들은 우리의 식 vijnana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식을 떠나서 그들이 객관적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꿈에서와 같이 그들은 오히려 의식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아래 유가행철학은 존재를 인식으로 환원하는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유가행철학의 근본사상은 우리가 전장에서 고찰한 경전들, 특히
'해심밀경'에 발견되지만, 그것이 조직적으로 체계화되어 학파를
이루게 된것은 서력기원 4세기 초의 인물로 추정되는 ??Maitreya
(약 270-350년경) 존자로부터이다. 그는 '유가사지론 Yogacarabhumi',
'대승장엄경론 Mahayanasutralamkara', '중변분별론 Madhyanta-
vibhaga', '법법성판별론 Dharmadharmatavibhanga', '현관장엄론
samayalamkara', '금강반야경역론(칠십?) Karika-saptati'등이 중요한
논서들을 저술했다.1) '유가사지론'은 유가행철학의 기본서로서
'유가사지론'이라는 이름은 이 책의 처음의 '본지분'에서 요가행자가
수행해야 하는 17개의 명상단계를 설명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유가행 Yogacara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ㄴ 것이다.2) '유가론'은
유식사상과 여래장사상에 입각해 요가의 수행에 철학적인 기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식설은 요가의
수행이라는 실천적 기반을 가졌다는 점이다. ''?결역분'에는
아라야식의 존재의 증명과 그 성격을 규정하며 아뢰?식 녹기석에
입각한 유식사상이 취극되고 있다. '대승장엄경론','중변분별론',
'법법성변별론'은 유식사상을 조직적으로 설명하는 논서들이다.
??존자의 뒤를 이어 유식사상을 크게 발전시킨 사람은 무자
Asanga(310-390년)과 그의 동생 세친 Vasubandhu이다. 무자은 처음에
소승교단에 출가했으나 나중에 미륵존자를 만나서 대승불교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서는'순중론', '현양성교론',
'대승아?달마집론', '?대승론' 등이 있으나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것은
'?대승론'이다. '?대승론 Mahayana-samgraha'은 대승아?달마집론'이나
미륵의 '대승장엄경론'에 의거한 논서로서 유식철학에
입각하여 대승불교의 특성을 10개 항목으로 논하는 체계적인
저술이다. 첫째 항목은 '소지의분'으로서 앎의 대상, 즉 제법이 의특하는
바로서의 아라야식 alayavijnana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소재상분'으로서
제법의 실상인 삼성설 trisvabhava을 논하고 있다. 즉 편개소집성
parikalpita-svabhava, 의타기성 paratantra-svabhava, 원성 실성
parinispanna-svabhava의 삼성이다. 세째 항목은 '입소지상분'으로서
유식 vijnapti-matrata의 진리에 들어가는 실전을 다루며, 네째
'피입인과분'은 들어감의 인과 과로서 보살의 육파나밀다에 관한
장이다. 다섯째 '파수차별분'은 위의 수행의 등급으로서 보살의
십지 dasabhumi를 논한다. 여섯째 '증상형학분'은 위의 수행 가운데서
보살의 형률에 관하여 논하며 일곱째 '증상심학분'은 보살의 신정을
__________
1) Tibet 전통에 의하면 Maitreya는 '구경일승보성론 Mahayana-
uttaratantra-sastra'도 썼다고 한다.
2) '유가사'란 말은 현장이 'yogacara'라는 말을 'Yogacarya'라고
오인하여 번역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다룬다. 여덟번째 항목은 '증상?학분'으로서 무분별지 nirvikalpa-
jnana의 수행을 취급한다. 아홉째는 '과단분'으로서 이상의 수행의
결과로서 얻게 되는 보살의 무주처열반을 논한다. 무주처열반이란
소승의 열반과는 달리 보살들이 얻는 열반으로서, 모든 번뇌
klesa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기는 하나 생사의 세계와 절단되지 않고
자비 가운데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상태의 열반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대승론'은 '피과지분'에서 불의 삼신 trikaya을
논하고 있다. 유식사상을 직접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소지의분'과
'소지상분'이며 나머지는 수행과 그 결과에 관한 것이다.
2 세친의 유식철학
미륵존자와 무저의 유식사상을 더욱 더 발잔시키고 완성시킨 사람은
무저의 동생 세친 Vasubandhu이었다. 그의 연대에 관하여는 논란이
많으나 대략 4-5세기의 인물로 추정된다.3) 세친도 역시 처음에는
소등을 공부하여 '구사론'과 같이 소승교학의 명저을 냈지만
그의 형 무저의 영향을 받아 대승으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그는 미륵과
무저의 대부분의 저서들에 주석을 썼으며 '법화경', '부량수경',
'십지경' 등의 대승경전의 해석서도 썼다. 한편 독자적인 저술로서
'대승성업론', '불성론', '유식이십론', '유식삼십?' 등을
저술했으며, '유식이십론 Vimsatika'과 '유식삼십? Trimsika'은
그의 유식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로서 유식철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저서들이다. 따라서 이 두 론을 중심으로 하여 유식철학의
근본을 살펴보기고 한다.
식 vijnana 혹은 심 Citta의 중요성은 처음부터 불교사상에서
인정되어 왔다. 식은 오? 가운데 하나이고, 십이지록기설에서 제삼의
요소로서 인간의 윤회과정 속에서 전생과 후생을 이어 주는 중요한
요소힌 것이다. 아?경전에도 '심은 법의 근본이다'라고 말하는가
__________
3) 이 문제에 관하여 S. Dutt, Buddhist Monks and Monasteries of
India(London, 1962) PP.280-85참조. 문제의 핵심은 '구사론'의 저자
세친이 대승의 유식론사 세친과 동일인인가 아니면 동명이인인가이다.
여기서는 전자를 따른다.
하면4) 또 '심이 더럽기 때문에 중생이 더럽고, 심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이 깨끗하다'라고 말하고 있다.5) 또한 상응부경전 Samyutta
Nikaya에도 '세간은 마음에 의하여 이끌리고 마음에 의하여 뇌란되나니,
마음이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종속시킨다'6)라는 말을 찾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이미 고찰한 대로 경량부의 철학에서는 일미?이라 하여
일종의 미세한 식을 종자식으로 삼아 윤회의 주체로 간주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뿐만 아니라 '화엄경'의 '십지품'가운데도 삼게유심의
사상, 즉 이 세계는 오로지 심 citta, vijnana(식)뿐이라는 사상이
발견되는 것도 언급했다. 유색철학은 이러한 깊은 뿌리를 가진
사상으로서 '해심밀경', 미륵, 무저, 등에 의한 이론적 발전을 거쳐서
세친에 와서 일단 그 절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선 세친의 학설을 논하기 전에 '유식'이라는 말부터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유식'에서 '식'이란 범어로 'vijnana'sk 'vijnapti'를
번역한 말이다. 'Vijnana'란 말은 주로 의식 혹은 인식의 작용
그 자체를 말하며 그것이 어느 감각기관에 의존하여 생기는가에
따라서 안식, 이식, 의식 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vijnana'란 말은
단지 식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을 내용으로 하는 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식'의 '식'을 'vijnana'로 이해하면 '유식'이란
말은 '삼계유심'이라고 할 때 처럼 삼계는 오로지 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뜻에서 유식 vijnna-matrata철학은 유심
citta-matrata의 철학이라 부른다. 물론 유식철학에서 말하는 유식이란
우파니샤드나 베단타철학에서 말하는 아트만 atman과 같은 식
cit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변하고 있는 흐름 samtana오로서의
식을 뜻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식은 'vijnapti'를 번역한 말로서
'Vijnapti' 란 인식되어진 것, 인식의 내용, 혹은 표상 Vorstellung;
__________
4) '대정친수대장경' Vol. 1, p.827b, '심위법본'
5) '상동', p.69c, '심뇌고중생죄 심쟁고중생쟁'
6) Mrs. R. Davids, trans., The Book of the Kindred Sayings (Samyutta-
Nikaya), Part 1, p.55: 'Its thoughts are that whereby the world is led,
And by its thoughts it ever plagues itself, And thought it is above all
other things That bringeth everthing beneath its sway.' 여기서 'thought'
는 'citta(심)'를 번역한 말이다.
representation, ideation을 의미한다. 이 때의 '유식 vijnapti-matrata'
이란 유식무경, 즉 우리가 보통 인식의 대상(경)으로 여기고 있는것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마음에 나타난 표상뿐이라는 주관적 관념론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식'의 보다 일반적인 뜻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vijnana'와 'vijnapti'의 구별은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세친의 '유식이십론 Vimsatika'은 주로 해서 유식무경을 해명하는
논서이다 만약에 사물들이 우리의 표상이나 관념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여 우리는 사물의 시간적 공간적
구별을 설명할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는 동일한 대상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한 대상에 따라서 취하는 성공적인 행위들을 설명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유식이십론'은 시작한다. 세친은 이 문제를 꿈의
현상에 비교하여 대답한다. 즉 꿈과 같이 깨어나고 보면 허망한
것에서도 우리는 위의 네 가지 현상을 다 경험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은 결코 외경의 실재성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악업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거기서 지옥의 문지기들을
보는데 문지기들은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지 않느고로 객관적인
존재일 리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지옥에 가는 자들의 나쁜 업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업이 남긴 힘 혹은 습기
vasana란 식 안에 존재하는 것인 반며, 사람들은 업의 결과는 식 밖에
손재한다고 잘못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럴 수가 없으며
따라서 행위의 습기나 결과도 모두 식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세친은 주장한다. 불사가 마치 인식에 내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얘기한 것은 중생의 교화를 위한 것이며 사실은
인식은 식 자체의 종자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서 주체(자아)와 객체는
다 식의 나타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식이십론'은 주로 유식무경에서 '무경'의 면에 역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론은 어떻게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가라는 유식 vijnapti-matrata의 구체적
메카니즘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유식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 세친의
'유식삼십? Trimsika'이다.
이 논의 초두에서 세친은 유식설의 핵심을 일?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유가설아법 유종종상전
피의식소변 비능변유삼
atmadharmopacaro hi vividho yah pravartate
vijnanapariname sau parinamah sa ca trividha
이것을 번역하면: '아와 밥과 같은 종종은 가설은 식의 전변에
의하나니, 이 전변은 삼종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아 atman와 법
dharma은 주체와 객체의 세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들은 순전히
가설 upacara, 즉 방편상 임시로 설정된 개념들로서 무지로 인한
망분별의 소산 parikalpita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와
법이라는 허구적인 존재는 식 vijnana의 전변 parinama에 의거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선 유식철학은 종종의 가설을 단지 허구난 공이라고만
하지 않고 그러한 비존재들이 식이라는 어떤 존재에 의거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능변의 식에는 삼종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유식의 팔식설에 접한다.
식의 제일전변에 의하여 제팔식인 아뢰?식 alayavijnana 혹은
이열식이 성립한다. '아라야 alaya'라는 말은 장, 즉 창고라는 말로서
이 식이 그 안에 업에 의하여 ?습된 습기 vasana, impressions들을
종자의 형태로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혹은 우리의 업의 결과(열 vipaka)라고 하여 이열식이라고도 불리며,7)
나머지 모든 식들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근본식이라고도 한다.
이로부터 다른 모든 식들이 마치 대해상의 파랑과도 같이 전변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라야식의 전변이란 아라야식 안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들이 발아하고 성국하여 나타나게 되는 제식의
분별작용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세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아라야식내에 ?재해 있던 종자들이
__________
7) '이'란 말은 우리의 행위는 선.악의 구별이 있지만 과보로서의
아라야식 자체는 비선.비악의 무기로서 이류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현세화하여 나타나는 식들을 전식 pravrtti-vijnana이라 부르며 이와
더불어 현상세계가 나타나는 것을 현행이라 한다. 주체와 객체,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 자체와 환경, 이 모든 것이 아라야식의
전변에 의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현현된
세계에 근거하여 우리는 업을 짓고 업은 또다시 종자들을 ?습하여
아뢰?식에 저장되게 된다. 어떤 종자들은 현현되지 않고 종자로서
남아 있으면서 서로 자류상속을 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관계들을
말하여 유식학에서는 '종자생현행, 현행?종자, 종자생종자'라 한다.
아뢰?식은 흐르는 물과 같이 항시 변천하면서 윤회의 주체를 이루는
존재이다. 아라야식은 항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인식작용도 하지 않는다. 아라야식 자체는 번뇌에 덮여 있지도
않고(무?) 선과 악에 대하여 중성적인(무기) 존재이나, 아라야식
내에 있는 종자들은 선악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
아라야식의 활동과 함께 제칠식인 말?식 manaseh도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식의 제이전이다. 말?식은 사량 manana을 위주로 하는
사량식으로서 아라야식을 대상으로 하여 아집을 일으키며 항시 아견
atma-drsti, 아? atma-moha, 아만 atma-mana, 아수 atma-sneha의
사번뇌를 동반한다고 한다. 상키야철학에 있어서 아함카라 ahamkara에
해당하는 개념인 것이다. 마나식은 아라야식과 같이 자나깨나
언제나 활동하고 있는 식으로서, 나머지 여섯 가지 식들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활동의 전제가 된다. 다른 여석 가지 식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활동하다가 중지하지만 마나식은 끊임없이 활동
하면서 인간의 정신활동의 연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심층적인 식인
것이다.
제칠식의 활동에 따라서 아라야식의 전식인 나머지 육식도 작용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식의 제삼전변인 것이다. 육식은 안, 이, 비,
설, 신, 의의 육근에 의존하여 각각의 대상을 요별 visaya-vijnapti
하기 때문에 요별경식이라 부른다. 이 가운데서 처음 오식은 오직 각각의
감각기관에 현존하는 대상들만을 아무런 사유나 분별도 없이
지각하는 데 비하여 제육식인 의식 mano-vijnana은 정신적 현상들
(심소법들)뿐만 아니라 오식을 통하여 주어지는 대상들에 대하여도
분별과 집착을 한다. 그 뿐 아니라 의식은 현존하지 않는 대상에까지도
관여할 수 있다. 즉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기도 하며
아무런 대상이든 상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의식이
오식과 함께 생기할 때를 오구의식이라 부르며 의식이 그 자체만으로
단독으로 생기하는 경우를 독두의식이라 부른다.
이상과 같은 삼종의 식전변에 의하여 만법이 현현한다는 것이
유식 vijnapti-matrata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 유식의 진리를 모르고
사람들은 아와 제법에 대한 방분별 vikalpa을 하고 집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물의 편계소집성 parikalpita-svabhava, 즉
망분별된 모습이라 부른다. 오직 식 vijnapti 뿐인 것을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망분별하는 식의 작용
자체들도 아라야식의 종자에 의존하는 의타적 존재인 것이다. 이것을
의타기성 paratantra-svabhava, 즉 타의 인록에 의존하는 모습이라
부른다. 그러나 바로 제식의 의타기성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식의 본성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차별성과 주객의 분별과
대립을 초월한 진가 tathata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이것을 원성실성
parinispanna-svabhava이라 부른다.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 의타기서을 바로 깨달으면
원성실성을 깨닫는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편계소집성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삼성 trisvabhava의 진리를 다른 각도에서 볼 것 같으면
삼무자성 trividha nihsvabhavata이 된다. 삼성의 개념이 중관파의
부정적 공사상을 넘어서서 실재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삼무자서은 공의 다른 표현이 된다. 즉, 분별된 상들은 공하기
때문에 상무자성이요, 녹기에 의하여 생기한 것은 공하기 때문에
생무자성이요, 제법의 실상이 본래 공이기 때문에 승의무자성인 것이다.
유가행철학도 설일절유부와 같이 제법을 오위로 분유한다. 그러나
유부의 75법 대신 100법을 든다. 물론 유가행철학은 유식사상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법을 유부와 같이 실재적으로 보지 않고
식의 구상으로 볼 뿐이다. 그러나 수행의 목적을 위하여 제법의
구별과 분류는 의미있는 것이다. 100법은 심법의 8개(즉 8식), 심소법의
51개, 색법의 11개, 심부상응행법의 24개, 무위법의 6개로 되어 있다.
유가행 yogacara'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유식의 철학은 단순히
이론적 사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요가의 수행을 통한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요가의 단계가 깊어짐에 따라 유가행자는 유식의 진리를
깨달아 주체도 객체도 사라져 버린 상태에 도달한다. 모든 집착과
미망으로부터 해방되며 그의 인격의 심층, 즉 아라야식 내에서
일종의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전의 asraya-paravrtti
라 부른다. 아라야식에 있은 유?종자는 무?의 종자로 바뀌게 되며
번뇌가 바뀌어 열반을 등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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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세친 이후의 유식철학
1 진?와 불교 인식론
유식무경을 주장하는 유식철학은 자연히 인식의 문제를 불교철학의
근본적인 관심사로 만들었다. 유식철학에서는 결국 존재론이
인식론이요, 인식론이 존재론인 것이다. 인식의 문제에 관한 관심은
세친의 철학을 계승한 진?(Dignaga; 5-6세개)에 와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체계적인 불교인식론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진?의
저서로는 '관소록론 Alambanapariksa', '원집요의론 Prajnaparamita-
pindartha-samgraha', '?중론 Hastavalaprakarana', '집량론 Pramana-
samuccaya'이 있다. '관소록론'은 유식의 입장에 서서 인식의 대상을
(소록) 논하고 있고 '원집요의론'은 '소품반야경'의 공사상을 편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삼성에 의하여 해석하는 논서이다.
'?중론'은 외경이란 식의 소현이며 삼계는 가명뿐이라는 것을
논한다. 마치 사람들이 밧줄을 보고서 뱀이라 착각하듯이 외계가
허망한 것을 모르고 실유로 망집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는 '?중론과 '집량론'에서 이와 같은 유식무경의 설을 뒷받침해
주는 특유의 인식론을 전개하고 있다.
잔? 당시에는 이미 인도의 각철학학파들의 형이상학적
견해들을 체계적으로 진술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인식론적
성찰에 의하여 더욱 공고히 다지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존재론을 인식의 문제로 대치한 유식철학이
인식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단연한 일인 것이다. 진?는
유식철학뿐만 아니라 불교의 근본적 세계관인 무아와 무상의 진리를
인식론적으로 옹호함과 동시에 정리학파와 이맘사 Mimamisa 철학의
이론들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이에 응하여 정리학파의 웃됴타카라
Uddyotakara는 그의 '정리평역 Nyaya-varttika'에서 정리철학의
입장을 옹호했으며 진?의 설을 반박했다. 불교측에서는 법칭(Dharmakirti;
7세기)가 나와서 진?의인식론 및 론리학을 더욱더 조직적으로
발전시킬 뿐 아니라 '집량론'의 주석서인 '양평역 Pramana-
varttika'에서 웃됴타카라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한 미맘사
학파의 이론도 공격하여 미맘사의 구마릴라 브핫따 Kumarila Bhatta는
그의 Sloka-vartlika에서 이에 응수했다. 한편 9세기의 바챠스파티미슈라
Vacaspatimisra는 그의 '정리평역해주'에서 진?와 법칭의
이론을 비판하며 정리철학의 입장을 옹호했다. 정리, 미맘사,
베단타 등의 정통학파들의 도전하에 불교인식론을 끝까지 옹호한 자는
8세기의 샨타락시타 Santaraksita ?호와 그의 제자 카말라쉴라
Kamalasila였다. 전자는 '진리강요 tattvasamgraha'를, 그리고 후자는
이에 대한 주석서를 써서 웃됴타카라와 구마릴라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학파들을 론파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들은 티벳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드며 그들은 인도불교에 있어서 마지막 거?들이
되었던 것이다. 진?에 있어서 시작된 불교와 정통 바라문철학
학파들과의 논쟁은 인도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고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였다.1) 이제 진?와 법칭의 설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
인식론의 대강을 살펴보기로 한다.
본래 불교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불사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여 오직 지각 Pratyaksa과 추론 anumana만을 인식의
정당한 방법으로 인정해 왔다. 이것은 진?와 법칭에 와서도 마찬가지로서
그들의 인식론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불교인식론은
__________
1) 정리철학과 진?에 의하여 대표되는 불교철학과의 논쟁에 관하여 B.K.
Matilal의 Epistemology, Logic, and Grammar in Indian Philosophical
Analysis(The Hague, 1971) 참조.
지각에 관한 이론과 추론에 관한 이론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추론에 관한 이론은 곧 인명학 Hetuvidya이라
불리는 불교논리학인 것이다. 우선 진?와 법칭에 있어서 지각에
관한 이론부터 먼저 고찰해 보자.
지각의 문제를 둘러싸고 인도철학에는 두 가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이론이 있다 하나는 무형상인식론 nirakara-vada이요, 다른 하나는
유형상인식론 sakara-vada이다. 무형상인식론이란 우리가 외계의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 감각기관에 의하여 지각되는 형상 akara은
외부의 대상들 자체에 속한 것이며 지각활동은 그 형상을 반영하는
것뿐이라는 이론이다. 정리착파나 승론철학에서는 지각이란
자아 atman가 내적, 외적 감각기관을 통하여 대상 artha과 접촉하는
것을 의미하며, 설일절유부에서는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을
말한다. 이에 반하여 유형상인식론은 지각이란 객관적 세계를 직접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지각상만을 상대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내부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표상들만에 관계한다는
이론이다. 경량부와 유식철학은 이러한 이론을 따른다. 그러나
경량부가 외적 대상세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반면에 유식철학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경량부에 의할 것 같으면 우리의 지각은
대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속에 주어지는
상들에만 고간여하지만, 이 상의 나타남의 근거로서 외부세계를
추리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진?을 중심으로 한 불교인식론자들은
ㅇ한편으로는 유식무경의 사상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식이론을 전개함에 있어서는 경량부의 학설을 방편상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또한 경량부에서 강조하고 있는 제법의
순간성에 입각하여 지각과 추론의 구별을 더욱더 날카롭게 했다.
지각이란 진?에 의할 것 같으면 사물의 순간순간 부단히 변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자상 svalaksana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것으로서,
어뗜 개념적 판단 vikalpa도 개입되지 않는 인식의 양태이다.
추론은 이와는 달리 추상적인 개념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인식양태로서, 사물의 보편상 samanyalaksana을 내용으로 하여
오성의 개념적 구성 kalpana 혹은 판단작용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자상이란 직관상이고보편상이란 마음에 의하여 구성되고 분별되는
관념 혹은 개념인 것이다. 직관상이란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사물의
실재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것임에 반하여 보편상이란
이러한 언표될 수 없는 유동저거인 실재를 언어와 오성의 분별작용
vikalpa에 의하여 고정시킨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별작용에
의하여 순간적인 것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 사물들을 실체화하여
어떤 불변하고 안정된 것으로 착각하며, 그러한 인위적이고 거짓된
세계에 안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불꽃을 양태들을 보면서 '불꽃'이라는 하나의 추상화된 개념으로서
그것을 파악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각이란 바로 이런
언어나 오성의 활동에 의한 구성 kalpana을 떠나서 순수하게
역동적인 실재에 순간적으로 접하는 인식행위이다. 불교인식론은 따라서
정리철학과는 달리 지가의 두 종류, 즉 부분벌적 nirvikalpa 지각과
분별적 savikalpa 지각의 구별을 받아들아ㅣ지 않는다. 분별적
지각이란 이미 언어와 사고작용이 개입된 것으로서 역동적인 실재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는 이상과 같은 인식이론에 의하여 언어의 의미에 관한 독특한
견해를 폈다. 진?에 의하면 말이란 우리의 마음에 의하여 구셩된
인위적인것으로서 보편의 세계를 지칭하기 때문에 결코 순간적
특수들의 연속인 실재의 세계를 지칭할 수가 없다 실재란 언어의
피?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에 의하면 언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실재를 드러낸다고 한다. 즉 개념이나 이름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개졈을 사용할 때는 그 개념은 그것과는 다른
모든 개념을 비제 apoha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한 특수한 사물을
지칭하게 된다는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을 '소'라고 할 때는
그것은 '말' 아닌 것, 혹은 소 아닌 어떤 것이 아닌 것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보편적인 개넘을 특수한 사물의
지칭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용법은
결국 추론에 의거한 것이다.
잔?는 이렇게 지각 pratyaksa과 오성적 구성 kalpana과를 일단
확연하게 구별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적 소여와 오성적 구성과의
종합에서부터 오는 지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양자 사이에 어떤 중간적
혹은 모계적인 존재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소위 정신적
지각 manasa-pratyaksa: mental sensation이라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 지각이란 내적 감각기관인 오근 manas에 의한 지각, 즉 의식
mano-vijnana의 활동으로서, 우리가 외적 감각기관을 통해서 어떤
순간적인 대상을 순간으로 ??한 바로 다음 순간에 주어지는
지각이라 한다. 그러나 이 지각도 역시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지식
Pratyaksa의 일종으로 간주하며 개념적인 간접적 지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진?와 법칭에 의하면 식전변에 의하여 일어나는 우리의 모든 인식은
자의식 svasamvedana을 수반한다. 모든 의식은 동시에 사의식이며
우리의 앎은 스스로를 비추는 자명성 svayamprakasa을 지니고
있다. 마치 등불이 그 자체를 비추기 위하여 다른 또 하나의 등불이
필요없듯이 짓ㄱ이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진?에 의하면 지각적인 지식에 있어서도 직하는 주체
(grahaka-akara; 견분, 능취, 능량)와 지각되는 마음의 대상(grahya-
akara; 상분, 소취, 소량)과 더불어 인식의 자기인식이라는 제삼의
요소가 인식의 결과(pramana-phala, svasamvitti; 양과, 자증분)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가 주장하는 인식의 삼분설로서 식의
전변에 의하여 일어나는 인식의 구조를 밝히는 이론인 것이다. 인식의
활동에 있어서 하나의 식이 세 가지 양상을 띠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에 있어서는 인식의 대상은 인식의 행위 안에 내재하여
있고, 인식의 행위는 인식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인식의
결과, 곧 자증분을 떠나서는 언떤 인식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존재하는 것은, 인식의 결과 즉 자증분으로서의
인식의 현상뿐이고 별도로 인식의 주체와 객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자증분은 하나의 흐름으로서의 식일 뿐이며
영혼이나 자아 atman에 속한 속성이나 상태가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자증분의 인식론은 유식사상에 입각해서 존재를 하나의
비인격적인 인식현상으로 환원 내지 해제시켜 버리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진?의 인식론은 정리나 미맘사 Mimamsa와 같은
실재론적인 철학의 인식론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령 정리철학의
인식론에 의하면 인식이란 자아 atman의 행위로서, 인식의 주체
atman와 대상과 수단(외적, 내적 감각기관)과 결과는 모두 별개의
요소들인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자의식(자증분)이란 내적 감각기관인
의근 manas이 인식이라는 자아의 상태를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또하나의 자아의 상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진?는 세친의 유색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많은 유식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철학은 무성(5-6세기), 호법 Dharmapala
(6세기 전반), 계현 Silabhadra(6-7세기)에 의하여 대대로 계승되었다.
무성은 '?대승론역'을 저술했으며 진?아의 인식의 삼분설을 계승했다.
호법은 '유식이십론' 및 '유식삼십?'에 주역을 썼으며, 그는
자증분 이외에도 그것을 의식하는 또 하나늬 의식으로서 증자증분을
세워 사분설을 주장했다. 호법의 '유식삼십?'에 대한 해석은
그의 제자 계현을 통하여 당나라의 현장(600-664)에 소개되었다.
현장은 이에 근거하여 '성유식론'을 번역하여 동아시아 불교의
유식철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법상종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한편 진?의 계통과는 달리 그와 동시대의 유식학자로서 덕?
Gunamati가 나와서 세친의 논에 주석을 썼으며 그의 제자 안?
Sthiramati(6세기)는 '중론', '중변판별론', '구사론', 그리고
'유식삼십?'에 주석서를 썼다. 안?는 인식론에 있어서 오로지 자증분
하나만을 일정하고 그것을 의타기성의 법으로 간주했으며 상분과
구분은 편계소집의 방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진?나 호법은 삼분 혹은 사분을 모두 의타기서의 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두 견해 모두 인식이란 심 자체, 즉
아라야식의 전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는 유식철학자들로서 의건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난사 Nanda(6세기)라는 유식학자는
상분, 견분만을 인정하는 이분설을 주장했다.
2 법칭의 불교 논리학
지금까지 우리는 지각 pratyaksa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진?의
인식론을 고찰했다. 불교논리학은 인식의 다른 하나의 방법인 추론
anumana에 관한 이론으로서, 인명 hetuvidya이라 부른다. 인명은
소위 오명이라 부르는 인도의 전통적인 다섯 가지 학문의 하나이다.
오명이라 부르는 인도의 전통적인 다섯 가지 학문의 하나이다.
오명이란 성명 sabdavidya 즉 문법학 내지 훈고학, 공?명 silpa-
karma-sthana-vidya 즉 기술, 공예, ?수의 학문, 의방명 cikitsa-vidya
즉 의학과 약학, 인명 hetu-vidya 즉 논리학, 그리고 내명 adhyatma-vidya
즉 자기의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바라문교에서는 베다에 관한 학문을
말하며 불교에서는 물론 불교의 학문)을 말한다. '인명'이란 말의
'인 hetu"이란 논증의 형식에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이유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것이 논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논리학을
인을 밝히는(명) 학문이라 하여 '인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불교온리학의 전통을 살펴볼 것 같으면, 용수의 '방편심론',
'해심밀경'의 제팔품인 '여래성소작 품', '진가사지론'의 '본지분',
무제의 '대승아?달마집론의 '론의품', 세친의 '여실론' 등에서
논증법에 대한 논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논증법의 새로운 경지를 수립한 자는 진?였다.
그는 '집량론'과 '인명정리문론'을 저술했으며 인의 삼상설, 구구인론
및 삼지작법 등의 이론을 통하여 소위 신인명의 전통을 수립했다.2)
진? 이전에는 추론의 논법으로 오분작법, 즉 다섯 가지의
명제(종, 인, 아ㅠ, 합, 결)를 사용했으나 진?는 이중에서 '합'과
'결'을 불필요한 것으로 제거하고 삼지작법을 세운 것이다. 이것을
신인명이라 부르며 그 이전의 것을 고인명이라 부른다. 진? 이후
그의 문하에서 상?나주 Sankarasvamin는 '인명입정리론'을 썼으며,
또한 7세기에는 법칭 Dharmakirti(650년경)이 출현하여 '집량론'의
주역서 '양평역 Pramanavarttika'과 '정리적론 Nyayabindu'이라는
__________
2) 인의 삼상설과 구구인론은 후에 설명될 것임.
논리학서를 저술하여 진?의 논리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이제
불교놀리학의 명제로 높이 경가되고 있는 법칭의 '정리적론'에
의거하여 불교논리학의 대강을 살펴보기로 한다.3)
법칭은 정리철학과 마찬가지고 추론을 자기자신을 위한 위자비량
svartha-anumana과 남을 위한 위타비량 parartha-anumana으로 구별하고
먼저 위자비ㅣ량을 다룬다. 우리가 정리철학에서 이미 본 대로
추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추리의 근거가 되는 인 hetu, 즉 대명사
sadhya와 소명칭 paksa를 연결시켜 주는 중명사 혹은 표징 linga에
있다. 예를 들어,
종--'산에 불이 있다'(불=대명사; 산=소명사)
인--'연기가 나는고로'(연기=중명사)
유--'연기가 나는 곳에는 불이 있다', 아궁이에서처럼
라는 추론이 가능하고 타당한 것이 되려면 추론의 근거가 되는 인,
즉 '연기'를 바로 짚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칭은 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먼저 제시한다. 이것을 인의 삼상이라
한다.4) 첫째 조건은 인(연기)이 결론의 주어, 즉 소명사(산)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편시종법성). 거기에'만'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여하튼 거기에 존재해야만 결존이 타당하다는 애기다.
둘째 조건은 인은 반드시 걸곤의 ㄴㄴㄴㄴ술어, 즉 대명사(불)와 동류의
것인 경우에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동품정유성). 인이 대명사와
함께 언제나 존재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대명사에 한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인의 세번째 조건은 바로 이 점을 더욱
명확히 하는 것으로서 대명사와 이류적이 되는 것에는 인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법칙이다(이품편무성). 둘째와 세째 규칙은
인과 대명사와의 보편적 조연관계 vyapti를 알기 위하여 양자의
일치관계를 하나는 ?정적 anvaya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__________
3) Th Stcherbatsky, trans., Buddhist Logic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nc., 1962), Vol. 2에 근거함.
4) 인의 삼삼에 관한 이론은 진?와 법칭뿐만 아니라 세기의 승론철학자
프라샤스타파다에서도 발견된다.
vyatireka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다. 동일한 조건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으로서 둘 중에 하나만이라도 예외 없이 들어맞으면 된다고
한다. 실용적인 이유로 해서 양자를 다 언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법칭은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즉 부정과 동일성과 인과성이다. 만약에
추리된 술어(대명사, 불)가 붕정적으로 표현되었을 때에는 인도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다. 반면에 결론이 긍적적으로 표현될 경우에는
인은 그 추리된 서술어와 동일성 아니면 인과성의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동일성이란 인 자체로부터 서술어가 논리적으로 추리되어 나올
때, 혹은 인이 단순히 존재하기만 해도 이에 의존하여 결론적인
술어가 따라나올 때 svabhava-anumana 성립되는 인과 대명사와의
관계를 말한ㄷ,. 예를 들면, '이것은 나무이다, 왜냐하면 은행나무
(혹은 마로니에)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은행나무'로부터
'나무'라는 서술어는 논리적 필연성을 갖고 나오는 결론인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분석판단 analytical judgment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인과성이란 인과 대명사가 인과적 관계를 가질 때 성립하는 것이다.
Karya-anumana. '산에 불이 있다, 연기가 나므로'라는 식의
추론이다. 즉 경험에 의존한 종합판단 synthetic judgment에 해당하는
개념인 것이다.
법칭에 의할 것 같으면 동일성이나 인과성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인과 대명사 사이에 필연적인 본질적 의존관계 svabhava-pratibandha가
존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양자 사이에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불란의 관계 avina-bhava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성의 경우에는 연역된 사실(대명사,'나무')에 그로부터
연역하고자 하는 바의 사실(인, '은행나무')이 본성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의존하여 있으며, 인과성의 경우에는 추리근거로서의
인('연기')이 추리결론으로서의 대명사('불')에 자연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인의 세 종류 가운데서 동일성과 인과성을 논한 다음
법칭은 부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부정적 판단의 문제를 다룬다. 즉
부정적 판단의 원리와 11가지 형태들, 그리고 부정적 판다느이 성격과
형이상학적 의의 등을 논의한다. 부정적 판단이란 법칭에 의하면
정리나 승론과 같은 실재론적 철학과는 달리 단순히 지각될 수
있는 것의 무지각 anupalabdhi에 근거하는 것이지 '부재 abhava'이라는
범주 padartha가 별개의 인식대상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미맘사학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부존을 인식하는 특별한
인식방법으로서 '부존량'이라는 것도 설정할 필요가 없다. 지각될
수 있는 것의 무지가이 그 사물의 부존에 대한 타당한 인식이 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칭은 말하기를 온당한 인식의 방법 Pramana,
즉 지각이나 추론을 통하여 주어질 수 없는 대상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의심의 원인 samsaya-hetu이 되는 것으로서 지식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사물에 대해서 전혀 인식의 방법이
없을 때에는 그 대상의 부존은 지식으로서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올바른 인식의 존재는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인식의 부족은
그 대상의 부존을 증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위자비량 svartha-anumana, 즉 혼자서 스스로를
위하여 추리하며 판단하는 과정에 대한 법칭의 이론을 고찰했다.
다음으로 그는 타인을 위하여 자기의 판단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위타비량 parartha-anumana의 논증과정을 다룬다. 위타비량이란
인의 삼삼을 타인에게 전달시키는 데 있다고 법칭은 정의한다. 그 형식은
위자비량과는 달리 아리스토테레스 논리학의 삼단론법 syllogism과
같다. 즉 유와 더불어 대전제('연기가 나는 곳에는 불이있다:
아궁이에서처럼')를 먼저 세우고 그 다음 구체적인 경우로 들어가서 결론을
내리는 ㄴ형식을 취한다. 다시 말하면 위자비량은 귀납적 성격을
띠고 위타비량은 연ㅇ역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법칭은
위타비량의 두 형태를 구별하고 있다. 이 둘은 의미상의 차이는 없고
혀어식상의 차이뿐이라고 한다. 하나는 소명사(결론의 주어)와 유
(예가 인을 공통적인 성질로 지님에 따른 양자의 일치에 근거한
논증의 형식으로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유-'모든 산물들은6) 무상하다', 병과 같이
인-'말소리는 그런 산물이다'
결-'말소리도 무상하다'
다른 하나는 불이치의 형식을 취한다:
유-'영원한 것들은 산물이 아니다', 허공7)처럼
인-'말소리는 산물이다'
결-'말소리는 무상하다'
법칭은 다음에 이들 두 형태의 위타비량에 대하여 여러가지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위자비량에서와
같이 부정과 동일성과 인과성에 근거한 추론의 양태들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법칭은 삼단론법에서 결론은 반드시 내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결론은 유와 인과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법칭은 결론적 명제의 정의, 논리적 오진의 삼종, 즉
성립될 수 없는 asiddha 인, 불확실한 인, 반인, 그리교ㅗ 논파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상으로 우리는 법칭의 '벙리적론'에 따라서
불교논리학(신인명)의 대강을 살펴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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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ner Zeitschrift fur die Kunde des Morgenlandes 3(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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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alls, D.H.H., trans., Materials for the Strdy of Navya-Nyaya
Logic. Harvard Oriental Series, Vol. 40. Cambridge, Mass., 1951.
Matilal, B.K., Epistemology, Logic, and Grammar in Indian Philo-
sophical Analysis. The Hague, Paris, 1971.
_________
6)'산물 krtaka"이란 불교에서 유위법 samskrta-dharma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7) 허공 akasa은 특별히 소승불교와 유가행철학에서 무위법 asamskrta-
dharma으로 간주된다.
Mookerji, S., The Buddhist Philosophy of Universal Flux. Calcutta, 1935.
Randle, H.N., Fragments from Dinnaga. London, 1926.
_____, Indian Logic in the Early Schools. London, 1930.
Tucci, G., trans., Nyayamukha of Dignaga: the Oldest Buddhist
Text on Logic, Materialen zur Kunde des Buddhismus, Heft 15.
Heidelberg, 1930.
_____, trans., Pre-Dinnaga Buddhist Texts on Logic from Chinese
Sources. Gaekwad's Oriental Series, Vol. 49. Baroda, 1929.
Vidyabhusana, S.C., A History of Indian Logic. Calcutta, 1921.
우정백수 '불교논리학'
제15장 쟈이나 철학체계
굽타왕조 시대에 들어와서 꽃이 피게 된 각 철학파의 왕성한 철학적 활동들은
불교철학뿐만 아니라 쟈이나교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 이 시기에 우리는
쟈이나철학도 체계적으로
정립되는 것을 본다. 쟈이나 사상가들은 원시 쟈이나교의 해설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과
윤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타학파의 철학적 이론들을 의식하여 자신의 인식론과
존재론적 사유를 좀더 조직적으로 전개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지적 추세에
응답하여
나온 쟈이나교의 대표적 철학자로서 공의파의 쿤다쿤다와 백의파의 우마스바티를 들 수
있다. 전자는 "오운리정요", "교의정요"와 같은 교의강요서를 썼으며, 후자는 "진리증득경"
이라는 아주 조직적인 쟈이나교 강요서를 저술했다. 1)우마스바티 이후로도 쟈이나철학은
많은 사상가들을 배출했지만 큰 철학적인 변화는 없었고 다분히 인도철학사에서 하나의
방계적인 흐름으로 존속해 왔다.
이제 상기 강요서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쟈이나교의 체계화된 철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이나 인식론
쟈이나철학은 지식을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으로 나눈다. 간접적인 지식은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지식으로서, 의견과 청견의 두 종류가 있다. 의견이란 지각적인
인식이나 추론을 말한다. 지각적 지식은 타학파에서는 보통 직접적인 지식으로
분류되지만, 쟈이나에서는 순수한 감각만으로는 지식이 성립되지 못하고 사유의 행위가
개입하여야만
되기 때문에 지각적 지식은 간접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청견은 권위있는 자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지식을 말한다.
쟈이나철학이 인정하는 직접적인 지식이란 일종의 특수한 지각적 지식으로서, 제한지,
타심지, 완전지의 3종이 있다. 우선 완전지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쟈이나교의 영혼관을
잠깐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자이나교에 의하면 영혼은 마치 태양의 빛과 같이 의식이라는
것을
본질적으로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아무런 방해가 없는 한 영혼은 대상들을 직접적으로
완전히 드러내는 지식을 소유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영혼은 업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그러한 완전지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업의 산물인 바 우리의 몸과 감각기관과 의근은
영혼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완전지를 제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느
정도 업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보통 사람이 감각기관이나 마음을 통하여 얻을 수 없는
미세한 혹은 잘 보이지 않는 사물까지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완전지에 대하여 제한지라 부른다. 아직도 시, 공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타심지는 문자
그대로 타인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아는 지식으로서, 영혼이 미움이나 시기와 같은 번뇌들을
제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시, 공의 제약 아래 이루어진다. 제한지나
타인지는 감각기관이나 의근의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이다.
쟈이나 인식론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의 지식에 대한 상대성이론이다. 쟈이나교는
마하비라 당시 때부터 실재에 대한 어떤 독단적 견해를 주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관용의
정신을 지녀왔다. 이 전통이 지식에 대한 상대성의 이론을 통하여 더욱더 분명한
인식론적 입장으로 발전된 것이다. 쟈이나에 의하면 실재나 혹은 하나의 사물조차 무수히
많은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보통으로 가지는 지식은 한 사물의 여러 측면들을 다
인식할 수 없고 오로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서 한 면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제한된 부분적 지식과 이에 근거한 판단을 '나야'라 부른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적인
판단은 사물의 한 측면과 보는 입장에 따라서만 참이지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많은 논의와 논쟁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부분적인 지식을 무조건적 진리로
간주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쟈이나철학은 주장하기를 불완전한 지식의
소유자인 우리의 모든
판단들은 '어떻게 보면' 혹은 '아마도'하는 조건적 표현을 수반해야 한다고 한다. 쟈이나의
이러한 이론을 조건주의라 부른다. 쟈이나철학은 이러한 조건적 명제들의 일곱 가지
형태를 구별한다. 즉 우리는 한 사물에 대하여 말할 때, 다음과 같은 7가지 관점을
갖고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 S는 어떻게 보면 P이다
2. S는 어떻게 보면 P가 아니다
3. S는 어떻게 보면 P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4. S는 어떻게 보면 말할 수 없다
5. S는 어떻게 보면 P이기도 하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다
6. S는 어떻게 보면 P가 아니나, 말하기 어렵기도 하다
7. S는 어떻게 보면 P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나 말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진리의 상대성을 무시하고 오직 하나 입장만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쟈이나철학은 독단주의라 부른다. 그러나 쟈이나의 인식적 상대주의는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제한된 조건하에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판단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판단이 다른 각도에서 볼 때는 그릇된
것일 가능성도 갖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하면 된다는 것이다.
2 쟈이나 형이상학
쟈이나의 인식적 상대주의는 쟈이나의 실재관에 근거하고 있다. 쟈이나에 의하면 한
사물은 수없이 많은 성격들을 지녔다고 한다. 즉 그것이 어떻다는 긍정적인 성격들과
그것이 어떠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성격들을 합쳐서 생각하면 하나의 사물이라 할지라도
무수한
측면을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의 사물이라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오직 완전지를 소유한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쟈이나에 의하면
이러한 수많은 성질들은 그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속하여 있다. 후자를 곧 실체라 부른다.
실체에 속한 성질 가운데는 없어서는 안될 본질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의식은 영혼의 본질적인 성질이며 욕망,쾌락,고통 등은 변하는
우연적인
성질들인 것이다. 실체가 변하는 것은 이들 우연적인 성질들 때문이며, 이 성질들은
실체의 양태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쟈이나철학은 실재란 변하지 않는
면과 변하는 양면을 다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불교는 변하는 것만 강조하고
베단타철학은 불변하는
것만 강조하는 일방적 견해들이라고 비판한다.
쟈이나철학은 실체를 연장을 지닌 것과 연장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대별한다. 전자는
다시 두 종류로 분류된다. 즉 영혼 혹은 생명과 영혼이 없는 비생명이다. 생명 혹은 영혼은
또다시
해방된 영혼과 속박된 영혼으로 구분되며 속박된 영혼은 가동적인 것과 고정된 것으로
나뉜다. 고정된 영혼은 지,수,화,풍,식물 등의 가장 불완전한 몸에 살고 있으며 촉각만을
가졌다고 한다. 반면에 가동적인 영혼은 이보다 더 높은 형태의 몸들을 가졌으며
감각기관도 두 개 이상 다섯개까지 가졌다. 의식은 영혼의 본질적 성질로서 모든 영혼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같다. 단지 그들이
갖고 있는 업의
장애에 따라 의식의 정도에 차이가 생길 뿐이다. 영혼의 고유한 상태는 믿음,무한한 앎,
무한한 행복,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영혼은 지식과 행위와 경험의 주체이다. 속박된
영혼은 그것이 태어난 육체에 편재하여 비추고 있으며 그 자체는 형태가 없으나 빛과
같이 그것이 속해 있는 육체의 크기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연장을 가진
실체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영혼은 영원하나 유한한 것이라고 한다.
비생명체인 실체에는 물질,시간,공간,운동,정지가 있다. 물질적 실체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나누어질 수도 있고 합쳐질 수도 있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부분을 원자라 부르며 그들의 결합에 의하여 물체들이 이루어진다. 쟈이나철학에서는
우리의 감각기관과 의근(뜻 의, 뿌리 근)과 숨까지도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물질은
원자들과는 달리 촉,미,향,색의 네 성질을 갖고 있으며 성은 물질의 본래적 성격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공간은 연장을 가진 실체들에게 장소를 제공해 주며 연장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그 존재가
추리되어 알 수 있다고 한다. 공간은 연장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연장의 장소인 것이다.
쟈이나철학은 두 가지 종류의 공간을 말한다. 영혼과 다른 실체들이 거하는 세간적 공간과
이것을 넘어서서 있는 초세간적 공간이다. 해방된 영혼들은 세간적 공간의 맨 꼭대기에
거한다고 쟈이나교는 생각한다. 쟈이나철학은 또한 시간을 실체로 인정한다. 시간은 연속,
변형,운동,새로움,오래됨을 가능하게 하는 필연적 조건으로서, 공간과 같이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그 존재는 추리에 의해 알려진다고 한다. 시간은 다른 모든 실체들과는
달리 연장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은 하나요, 나눌 수 없으며 꼭 같은 시간이
세계의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운동과 정지라는 실체도 역시 추리에 의하여 그
존재가 알려진다고 한다. 즉 움직임과 멎음이라는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조건으로서이다.
쟈이나철학은 주장하기를 물고기가 스스로 운동하기는 하나 물이라는 매개체가 없이는
운동이 불가능한 것처럼 영혼이나 물체들도 움직임의 필수조건으로서 운동이라는 실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운동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움직일 수는 없으나 움직임의 수동적인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정지도 마찬가지이다. 운동과 정지는 영원하고 형태가 없으며
움직이지 않으며 온 세간적 공간에 편재해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쟈이나교의 실체관
및 형이상학은 승론철학과 같은 다원적 실재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쟈이나교의 윤리와 해탈의 방법에 대하여서는 이미 원시쟈이나교를 다룰 때 언급한
바가 있다. 쟈이나교에서 속박이란 영혼이 업의 물질과 붙어 있는 것을 말하므로 해방이란
우선 업의 물질이 영혼에 유입되어 달라붙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이미 붙어 있는 물질은
소모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혼에 물질을 달라붙게 만드는 것은 결국 무지에 근거한
산정(흩어질 산, 정 정)들이므로 쟈이나교의 수행은 실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인
정지(바를 정, 지혜 지)를 강조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쟈이나교의 가르침에 대한 기초적
이해와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하므로 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신과 정지 후에는
정행을 필요로 한다. 우마스바티는 그의 "진리증득경"에서 이 셋을 해탈의 방법으로
강조한다.
정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철서이다. 또한 이미 영혼에 달라붙어 있는 업을 일찍
소모시키는 방법으로서 고행이 특별히 강조된다. 마치 망고열매가 더위를 더 많이 받으면
더 일찍 익듯이, 우리의 업도 고행을 통하여 더 빨리 소모되어 힘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해방된 영혼들은 자기의 본성을 되찾아 신들의 세계보다도 더 높이 있는 우주의
꼭대기에 상승하여 거기서 해탈의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제 16 장 미맘사학파의 철학
1 미맘사철학의 전통
인도철학에서 육파철학은 불교나 쟈이나교와는 달리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통학파로
간주되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미맘사와 베단타 학파는 가장 정통적인 학파라고 할 수
있다. 타 학파들의 베다와의 관계는 사실상에 있어서는 명목적인 것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미맘사와 베단타는 본래부터 곧바로 베다의 충실한 연구와 해석을 주요
관심사로
하여 발전된 철학들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베다는 그 내용상 제신들에게
바치는 송가들을 모아 놓은 본집의 부분과 이것을 설명하고 제식의 규정들을 취급하는
브라흐마나로 구분된다. 그러나 브라흐마나의 나중 부분에는 제사의 관심을 벗어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지식의 문제를 다루는 우파니샤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을 지식편이라 부르며
제사의 행위를 주로 하는 부분인 행위편과 구별되어 왔다. 미맘사와 베단타는 각기 이 두
부분을 탐구하고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파로서, 미맘사학파는 먼저 부분, 즉
행위편을 고찰한다 하여 푸르바미맘사라 부르며, 베단타학파는 나중 부분을 연구한다
하여 웃타라미맘사라 불러왔다. 혹은 그 연구 대상이 각각 행위와 브라흐만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카르마미맘사와 브라흐마미마사라 부르기도 한다. 1)'미맘사'란 말은 '심구'라는
뜻을 지녔다. 통상적으로 미맘사라 하면 푸르바미맘사를 지칭하며 웃타라미맘사는
베단타라 부른다.
제식에 관한 전통은 원래 본집이나 브라흐마나를 통해서 완전하고 분명하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구전에 의하여 보충되어 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구전이
점점
불확실하게 됨에 따라 베다의 행위편으로부터 직접 추리와 논증을 통하여 제식의 올바른
규범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이 추리의 활동을 냐야라 불렀으며 이것이 나중에
가서는 제식의 문제와는 별도로, 올바른 사고의 규범을 다루는 독립적인 형식논리학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한편 제식의 규범과 명령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돈하는 작업은
계속되어 이것이 미맘사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미맘사학파의 창시자는 기원전
2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자이미니로 전해지고 있으며, 근본경전은 "미맘사경"으로서
서력기원 1세기 전후에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미맘사경"은 다른 학파의 경들과 마찬가지로 간결한 문장들로 되어 있어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존하는 주석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경에 샤바라스바아민에 의하여 씌어진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브르티카라라는 사람의 "미맘사경"에 대한 해석의 일부분이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보며, 거기서 브르티카라는 불교의 철학적 견해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아마도 미맘사철학에 상당한 깊이를 제공한 자로 간주된다.
샤바라스바민핫따라는 미맘사철학의 거장들이 출현하여 샤바라스바아민의 저서에 주석을
가하고 미맘사철학의 양대 학파인 구루파와 브핫따파를 각각 형성하게 되었다.
미맘사학파에다 철학적인 이론을 부여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 둘의 공헌으로 간주되며
그들 이후에는 미맘사철학은 별로 이론적인 발전을 보지 못했다. 프라브하카라의
주석은 Brhati라 불리며 이 주석에 그의 제자 샬리카나타 미슈라는 Rjuvimala라는 복주를
썼다. 그는 또한 프라브하카라의 미맘사해석에 대한 강요서인 Prakaranapaancika도 썼다.
한편 쿠마릴라는 샤바라스바민의 주석에 3부의 해설서를
저술했다. 즉 Slokavaarttika, Tantravarttika, 그리고 Tuptika의 3부이다. 쿠마릴라의
문하에 만다나미슈라가 나와서 Vidhiviveka, Mimamsanukramani,
Tanyravarttika를 저술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샹카라의 영향으로 베단타철학으로
전향했다. 그 외에도 쿠마릴라의 브핫따파에 많은 학자들이 출현하여 프라브하카라의
구루파를 압도하게 되었다. 쿠마릴라는
본래 불교를 공부했으나 나중에 바라문교로 전향했다고 하며, 그의 저서를 통하여 불교의
공사상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쿠마릴라는 샹카라와 더불어 인도에서의 불교사상의
쇠퇴에 큰 역할을 한 철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쿠마릴라와 프라브하카라를 중심으로
하여 미맘사철학의 대강을 살펴보며, 필요에 따라서 양론사의 차이점도 언급하도록 한다.
2 미맘사 인식론
"미맘사경"은 베다가 명하는 제식의 행위를 올바로 행하도록 하는 해석의 원리들을
규정하는 것을 그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미맘사철학은 '미맘사',즉 심구의
방법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미맘사철학에서 규정한 론구의 이론은
타학파에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미맘사에 의하면 어떤 본문의 의미를 확정지으려면
다음 5가지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1. 주장의 대상의 확정
2. 이에 대한 의문의 토론
3. 반론, 즉 타주장의 검토
4. 정설, 즉 최종결론
5. 결론이 본문의 다른 부분에 대하여 갖는 관계
이러한 논리전개의 문제 외에, 미맘사학파의 근본 철학적 관심사는 어디까지나 베다가
명하는 행위의 의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데 있다. 왜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하여 그 수행이 선한 업보를 거져오게 되는가 등의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우리는 브라흐마나에서 이미 제사의 주관심이 제사의 대상인 신에서부터 제사의 행위
자체로
옮겨졌음을 보았거니와 이러한 경향은 그후 더욱더 발전하여 신의 존재여부와 무관하게
제사행위는 자동적으로 그 결과를 거져오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미맘사철학은 행위의 결과를 보증하는 어떤 최고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그
존재조차 부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베다 자체의 권위에만 의거하여 제사행위의
의무와 그 보이지 않는 결과에 대한 믿음이 받아들여질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베다의
권위는
어떻게 성립이 되는 것이며 베다에서 명하는 의무와 그 의무를 행하면 천상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맘사의 인식이론에 접하게 된다.
미맘사는 올바른 지식의 수단으로서 현량,비량,경유량,의준량,부존량등을 인정한다.
현량, 즉 지각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에 의하여 직접적인 지식을 얻는
인식방법으로서, 두 단계로 성립된다고 한다. 첫번째 단계로서 감각기관이 물체와 접할
때 자아에 무분별적 지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사물의 성격에 대한 어떠한 의식이나
판단없이 대상의 존재만이 주어지는 인식단계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분별적 지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대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지각을 말한다. 그러나
미맘사철학은 말하기를 두번째 단계에서 분명히 알려지게 되는 것은 이미 첫번째
단계에서도 암시적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이 단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의 대상을 분별하는
것뿐이지 어떤 새로운 내용이나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동방의 인식론에서
말하고 있는 분별작용의 왜곡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불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보편적 성격이 전혀 없는 사물의 순간적 특수상만
인식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베단타철학에서처럼 아무런 특수한 속성도 없는
순수존재만 의식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여 미맘사철학은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유량이란 현재에 경험한 것과 과거에 경험한 것을 기억에 의하여 비교하여 양자의
유사성을 아는 지식이다. 비량(추론)에 대한 이해는 정리철학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이상의 세 가지 인식방법은 모두 경험에 의거한 것으로서 미맘사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업보에 대한 보증을 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맘사철학은 성량을 중요한
인식방법의 하나로 의거하고 있다. 성량에는 인격적인 것과 비인격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다. 구루파는 후자만 인정하고 브핫따파는 양자를 모두 인정한다. 베다는 미맘사철학에
의하면 비인격적인 성량이다. 베다는 신에 의하여 된 것도 아니고 믿을 만한 사람에
의하여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미맘사철학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가? 미맘사철학은
베다 그 자체가 영원한 권위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언어에 관하여 많은
독특한 이론들을 전개하게 되었다.
미맘사철학에 의하면 말이란 단순히 발음과 함께 비로소 생기는 소리로서의 현상이
아니다. 말의 본질은 소리들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글자들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글자로서의 말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발음되지만 그 자체는 언제나 동일하며
시공을 초월한 영속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말이란 소리로 표현이 안될 때에도 항시
가능적으로 잠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인간이나 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영원한 존재인 것이다. 미맘사는 이와 같은 언어 일반에 관한 이론을 통하여 결국 베다의
영원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맘사에 의하면 언어의 의미도 인간의 계약이나 관습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신의 뜻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연적인 것이라 한다.
언어와 대상과의 관계는 본래적인 것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맘사에 의하면 세계나
인간에는 시초가 없었으며, 따라서 어느 한때에 인간의 관습에 의하여 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사물들에 대하여 이미 말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이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며, 때에 따라 여러 조건하에 표현될 따름이다. 말이 개물을
나타내는가, 아니면 류(종류 류)를 나타내는가에 대하여서도 미맘사철학은 말은 영원하기
때문에 변하는 개물들을 뜻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류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말이
보편성을 지녀야 베다의 여러 명령들이 보편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미맘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말의 본질적인 성격은 사물의 표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을 명령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것은 물론 미맘사철학의 제식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이론이다. 우파니샤드를 제외하고는 베다 전체가 미맘사에 의하면
우리의 종교적 의무에 관한 것으로서, 베다의 모든 문장은 이러한 의무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다섯번째 수단으로서 미맘사철학은 의준량이라는 것을 든다. 의준량이란 설명을
요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반드시 요청되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필연적인 유일한 가설로서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설은 진리로 받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미맘사철학은 제물을 받고 복을 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행위 그 자체이다.
이 행위는 전에 없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즉 무전력이라는 것을 자아에 산출하며, 이 힘은
필연적으로 그 업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제사의 행위 자체는 잠깐동안에
끝나 버리는 고로 무전력의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위가 결과를 가져온다는 베다의
진리는 설명이 안되고 거짓일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전력이란 것은
현재의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하여 장차 내세에 천상에서 얻게 될 업보와의 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행위로 인하여 자동적으로 자아에 생기게 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가정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맘사철학의 브핫따파는 부존량이라는 것을 독립적인 인식의 방법으로
인정한다. 즉 무엇이 존재 안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직접적인 인식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을 통해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론에 의하여 부존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추론이 가능하려면 우리는 이미
부지각과 부존과의 사이에 주연관계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존은 지각이나 추론에 의하여 인식될 수
없다.
그렇다고 경유량이나 성량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존이란 비교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말에 근거해서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부지각 자체를
부존을 아는 독립된 인식의 방법으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존량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부지각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존을 알려 주는 것은 아니다. 지각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각되지 않는 경우에만 부존량은 성립되는 것이라고 한다.
미맘사는 지식의 타당성에 대하여 정리철학과는 아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미맘사에
의할 것 같으면 모든 지식은 그 자체에 스스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타당성에
대하여 다른 어떤 외적인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그것에 대한 믿음을 자연적으로 발생시킨다. 물론 나중에 의심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추론에 의하여 그 지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의
타당성은 일단은 자명하여 추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우리는 우선 그것을 믿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성량의 경우에 적용할 것 같으면 우리는 의심할
이유가 없는 한
베다의 말을 일단 믿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다의 권위는 자명하다. 따라서
미맘사학파는 베다를 의심할 만한 이유들을 논박하기만 하면 되지 베다의 진리를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맘사의 학설을 인식의 본유적
타당성의 이론이라
부른다. 이에 따라서 미맘사학파는 오진에 관한 이론들도 전개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인식의 본질적 타당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프라브하카라는 동방의 인식론과 비슷하게
인식의 3면을 말하고 있다. 즉 지식은 언제나 스스로를 드러내는 빛을 갖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그것의 주체와 객체를 드러낸다고 한다. 따라서 프라브하카리에 의하면 모든
지식은 자아의 인식, 대상의 인식, 그리고 인식의 인식이라는 세 가지 인식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자아는 모든 인식에 있어서 앎의 주체로서 알려질 뿐이지 결코 앎의
대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지식과 같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명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베단타철학의 자아관과 다른 점의 하나다.
한편 쿠마릴라는 지식의 본유적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프라브하카라와는 달리 지식은
스스로의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지식은 스스로를 인식할 수 없다.
마치 손가락의 끝이 스스로를 건드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식이란
자아의 변형상태로서 자아가 대상을 아는 행위나 작용이다. 지식은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으며
오로지 그 대상이 자아에 의하여 알려졌다는 사실로부터 간접적으로 추리되어서 알려질
뿐이다. 어떤 대상이 친숙하게 혹은 이미 아는 것으로 나타나면 우리는 이로부터
미루어서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을 안다는 것이다.
3 미맘사 형이상학
미맘사의 세계관에 의할 것 같으면 우선 영원하고 무한한 영혼들이 개인의 수만큼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형성되는 데에는 업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는, 영혼이 과거의 업의 결과로서 태어나게 되는 생명체들과
업보를 감수하는 도구인 감각기관들과 감수되어야 할 업보로서의 대상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미맘사의 형이상학은 대체로 실재론적인 승론철학의 강한 영향을 받아 많은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는 승론철학에서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결합과 재결합과 파괴, 그리고 원자와 영혼과의 관계를 성립시키는 창조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미맘사는 그런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힌두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인 세계의 주기적인 창조와 파괴와 반복과정도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가 항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영혼들의 주기적인 전개와 퇴전은 부인한다. 모든
생물들은
자연적으로 생성하며 신은 사람들의 공과를 알 수 없으며 감독할 수도 없다고 한다. 또한
원자들이 신의 의지에 따라서 행동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감독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은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에서 뿐이며, 영혼은 오직 자기의 업의 공과에 따라 육체를
차지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쿠마릴라는 당시의 여러 가지 창조설들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있다. 그는 물질의 창조
이전에 프라자파티와 같은 신이 존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신이 몸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창조의 욕망을 낼 수도 없으며, 몸이 있었다면 그의 창조적 행위
이전에 이미
물질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또한 창조의 동기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도덕적 공과는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또한 세계의 많은 고통과 죄악을 보아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은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고 한다. 신이 단순히 자기 즐거움을
위하여 세계를 창조했다면 그는 완전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과 모순되며 쓸데없이 그가
바쁜 일에
애쓰기만 하는 셈이 된다. 쿠마릴라는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의 입장도 반박하여 말하기를,
만약에 절대자가 절대적으로 순수하다면 세계도 순수해야 할 것이며 그런 상태에서는
무지도 있을 수 없는 고로 창조도 있을 수 없다. 만약 다른 어떤 것이 무지를 일으킨다면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존재라는 진리는 무너진다. 한편 만약 무지가 자연적인 것이라 할
것 같으면 절대로 제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쿠마릴라는 상키야철학의 세계전변설도
비판한다. 그는 말하기를 세계의 창조가 세계의 구성요소의 평형상태가 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최초에는 과보를 초래하는 인간의 업이란 것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
평형이 깨어지기
시작했는가라고 반문한다.
미맘사철학은 최고신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무신론을 주장하지만 업보를 누리게 되는
자아의 불멸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맘사철학은 자아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불교의 견해를 신랄하게 공격한다. 불교에 의하면 자아란 순간순간의 관념들의 연속적
나열에 지나지 않으며 먼저의 관념은 후의 관념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것과
나중 것의 근저에 어떤 공동의 실체가 없는 한 관념과 관념 사이의 어떤 연결이나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행위를 한 사람이 자기가 행한 행동의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행위의 합리적 기반이 무너진다고 비판한다. 또한
관념들이
어떻게 하여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질 수 있는가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윤회라는
것도 설명되기 어렵다고 한다. 쿠마릴라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육체의 요소들은 지성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결합은 결코 지성을 산출하지
못한다. 육체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라는 것도 그것이 그것을 다스리는 어떠한
타존재의 목적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한다. 우리가 '나의 몸'이 라는
말을 하는 것도 내가 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또한 기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도 어떤 정신적인 실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미맘사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지식은 본유적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프라브하카라는 지식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명성까지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맘사학파에 의하면 자아 자체는 그러한 빛이나 식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자아의
존재는 자명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정리철학에서처럼 직접적인 지각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고 한다. 프라브하카라에 의하면 자아는 우리의 모든 인식활동에 필연적으로
관여되며 이러한 인식활동들을 통하여서만 드러난다고 한다. 즉 대상을 아는 인식활동에
있어서
자아는 그 지식의 주체로서 항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식이 '나의 인식'이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쿠마릴라는 자아의식이 대상의 의식을 항시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단지 우리가 가끔 자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생기는 자아의식 가운데의
대상으로서만 우리는 자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루파는 이 견해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자아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의식의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기능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4.해탈론
미맘사학파는 본래 제사의 행위와 이에 따른 업보를 궁극적인 관심사로 한
철학이다. 따라서 구원의 개념에 있어서도 본래는 올바른 제식의 행위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천상의 복락을 이상으로 하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타학파의 영향을 받아 자아의 해탈,
즉 육체와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최고의 삶의 이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해탈이란 자아가 좋고 나쁜 행위와 육체를 떠나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자아의 상태에는 아무런 인식이나 경험도 있을 수 없다.
희열도 느끼지 않는다. 자아는 식이나 희열을 그 자체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맘사학파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자아를 아는 지식과 의무적인
행위를 이해심 없이 순수하게 행하는 것을 강조한다.
바가바드기타에서 말하는 karma-yoga의 실천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맘사철학은 베다의 명령 및 제식행위에 대한 의무와
해탈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다.
제17장. 불이론의 베단타철학
1. 샹카라 이전의 베단타철학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veda의 끝anta 혹은 목적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도시에 베단타는 우주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우파니사드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철학체계를 지칭한다. 베단타철학은
인도의 여러 철학 가운데서 가장 많은 추종자들을 가져왔고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으로서 과거 약 1000년을 통하여 다른 모든 학파들을 지적활동에 있어서 압도하게
된 철학이다. 베단타철학은 그 근본경전으로서 우파니샤드 자체는 물론이고, 우파니샤드
철학의 연장이나 다름없이 간주되는 바가바드기타와 또한 우파니샤드의 다양한
철학을 간략하게 체계적으로 단명하고자 하는 베단타경 혹은 브라흐마경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흐마경은 서력 기원전 1세기경의 인도 인물로 추정되는 바다라야나가 저자로 전해져
왔으나 그 내용상으로 보아 4-5세기경에 이르러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바라흐마경에 의하면 상층계급의 사람만이 절대자인 브라흐만을 알 자격이 있다.
브라흐만에 대한 지식은 베다성전에 근거하며 인간의 독립적인 사고나 이론도
베다성전과 더불어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브라흐만은 최고자, 인격적 존재,
순수한 정신적 실체, 순수한 유(있음)로서 상주편재 무한불멸의 존재이다.
만유의 생기와 존속과 귀멸을 일으키는 존재로서 만유의 모태이다.
브라흐만은 세계의 질료인이기도 하며, 세계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브라흐만은 전변에
의하여 세계를 산출하며, 이렇게 전개돼 나온 현상세계는 세계의 원인으로서의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다. 세계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돼 나올 때는 공(빈 것,
하늘), 풍(바람), 화(불), 수(물), 지(땅)의 순서로 전개되어 나오며, 이 다섯개의
원소가 다시 브라흐만으로 돌아갈 때는, 전개과정의 역순으로 소멸한다고 한다.
세계의 창조와 존속과 귀멸(돌아가 소멸됨)의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개인아(개개인이 가진 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는 브라흐만의 부분이며
그것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무시(시작점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이래로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 업의 응보는 무전력(없을 무, 앞 전, 힘 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의 재정에
의해 받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 목적은 브라흐만과의 합일을 통한 해탈에 있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서 브라흐만의 명상에 의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브라흐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자는 죽은 뒤 신들의 길을 따라서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 이렇게 해탈을 얻은 자는 세계의 창조와
유지의 힘을 제외하고는 절대자와 꼭 같은 완성과 힘을 갖춘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우파니샤드 철학이 후기에 가서, 다분히 상키야samkhya적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았거니와 상키야철학이 본격적으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전개함에 따라, 우파니샤드의 연구가들 가운데서는 이에 반발하여 우파니샤드의
본래적인 일원론적 사상을 옹호하려는 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흐마경은
이러한 상키야철학의 무신론적 이원론을 곳곳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흐마경은 내용이 지극히 함축적이고 간략해서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후세의 많은 철학자들은 이 경전에
주석서를 썼으며, 이들 주석가들은 각기 서로 다른 철학적 해석과 견해들을
보이므로 자연히 베단타철학 자체내에서도 이 주석들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학파들이 성립되게 되었다.
모든 베단타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개의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실체들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다원적인 견해를 배척하고 다양한 현상세계의 배후에
단 하나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실재가 있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따른다.
문제는 어떻게 이 궁극적인 실재와 현상세계, 즉 물질 및 개인의 영혼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베단타철학자들은 상호간에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인 실재(브라흐만이라 부르는)와 함께 서로 다른 실체들의
존재들도 인정하며 세계를 이 실체들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되 브라흐만은 그들을
초월하고 그들을 초월하고 그들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어떤 존재로 간주하는
견해가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유일한 존재인
브라흐만이 다양성의 세계로 자기를 전개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현양태로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입장에서는 다양성의 세계는 유일무이한
실재인 브라흐만을 가리고 있는 베일과 같은, 그러나 알고 보면 단지 가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상도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브라흐만경의 주석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유명한 것은
약 800년경에 씌어진 샹카라의 브라흐마경소로서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의 견해 가운데서
세번째 입장을 옹호한 해석서이다. 그러나 샹카라의 주석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 전에도
브라흐마경에 대한 많은 해석과 주해가 가하여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샹카라의 철저한 불이론(아닐 불, 둘 이,논설할 논)인 철학적 입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해석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브라흐마경 자체의
철학적 입장은 샹카라의 불이론적인 철학과는 상당히 다른 차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
그의 불이론적 해석은 무엇보다도 그의 스승 고빈다파다govindapada를 통하여, 혹은
직접적으로, 가우다파다 gaudapada라는 철학자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우다파다는 만두키야카리카mandukya-karika라는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다루는 논서의 저자로서, 그곳에서 그는 우리가 아는 한 처음으로 철저한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샹카라는 이 만두키야 카리카에 대한
주석서를 썼으며 거기서 샹카라는 베다의 불이론적인 철학이 가우다파다에 의하여 비로소
되찾아졌다고하여 가우다파다에 대한 상당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가우다파다는 대승불교의 공관(빌 공, 볼 관)사상이나 유식사상의 강한 영향을
받은 자로서, 그의 저서에서 우리는 이들 불교철학에서 사용하는 술어들이나 비유 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이 불타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체의 생멸하는 현상세계는 실재인 신의 불가사의한
힘의 환술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실재의 세계는 어떤 다양성이나 이원성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진제의 궁극적인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꿈의 세계와 '깨어 있는 세계는
마찬가지이며 외부의 세계나 마음속에 나타나는 세계나 모두 우리의 망상의 소산으로서 거짓
이라고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밧줄을 뱀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실재의 세계에는 주객의 구별이나 상이한 주체들과 객체들도 사라지며, 생멸도 인과도
없으며, 속박된 존재도 없으며 해탈을 원하는 자도 없다. 오직 빛나는 하나의 아트만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우다파다는 아트만을 무한한 공간에 비유한다. 개인아는 병속의 공간과
같이 제한된 것같이 보이나 결국 하나의 아트만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명한 자는 요가의
수행을 통하여 이와 같은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가우다파다는 이렇게 만물을
브라흐만의 가현으로 보는 베단타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마야'의 개념은 이미 "슈베타
슈바타라 우파니 샤드"나 '바가바드 기타'에 나타나 있지만, 거기서는 마야란 어디까지나
신이 스스로를 다양성의 세계로 전개하는 창조적 힘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후 점차 마야는
인식주관의 무지, 혹은 우리를 속이는 신의 환술로서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가우다타다에 와서 결정적으로 가현설 혹은 마야설로 성립되게 된 것이다.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 해석은 바로 이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다.
2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
가우다파다의 철저한 일원론적인 실재관을 이어받아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을 대성시킨
사람은 샹카라였다. 그는 "브르하드 아라니야카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주요 우파니샤드에
주석을 가했으며 또한 "바가바드 기타"에도 주석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저서는 "브라흐마경"에 대한 주석서 "브라흐마경소"로서 여기서 그는
여러가지 타학설들을 비판해 가면서 불이론적인 베단타철학의 입장을 확고히 다진 것이다.
그는 남인도 출생으로서 인도 각 지방으로 여행하고 다니면서 자기의 학설을 전파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철학에 입각한 종교적 실천을 위하여 불교의 사원들처럼
많은 출가자들의 단체를 만들어 고행의 실천과 더불어 브라흐만의 지식을
추구하였다. 샹카라는 불교의 사상적 영향하에 베다의 사상을 재해석함으로서 바라문교의
부흥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이미 쇠퇴해 가고 있던 불교에 큰 타격을 가하게 된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든 형상과 성질과 차별성과 다양성을 초월한
브라흐만이라는 절대적 존재뿐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실제이다. 브라흐만은 절대적으로
동질적이며 아무런 성질도 갖고 있지 않은 순수한 존재 그 자체이다. 이 브라흐만은
우파니샤드의 진리대로 인간의 참 자아로서 (tad tvam asi, aham brahma asmi) 스스로
빛을 발하는 자명성을 가진 순수한 식이다. 이 식은 브라흐만의 속성이 아니라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식으로서의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은 모든 존재의 내적 자아로서 그 존재는
결코 의심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하는 행위 자체가
이 자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아는 모든 인식의 주체이기 때문에
결코 대상화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는 우리의 모든 정신적 작용 내지
인식활동을 통하여 그 배후에서 항시 빛을 비추어 주고 있는 증인과 같은 존재로서
그 자체는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샹카라에 있어서 실재의 개념은 부정될래야 부정될 수 없는,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부정된다'는 말은 어떤 경험된 사실이 또 다른 어떤 경험에 의하여 거짓됨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꿈속의 실재는 꿈에서 깨어난 후에는 실재성을 부정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샹카라에 의하면 자아는 도저히 부정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 있는 자아의 네 가지 상태에 관한 우파니샤드 철인들의
사유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인 것이다. 즉 깨어 있는 상태에서나 꿈을 꾸고
있는 상태에서나,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상태이거나 선정의 상태이거나를 막론하고 결코
부정당함이 없이 항존하고 있는 순수식으로서의 자아야말로 실재라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러한 자아가 곧 다름 아닌 브라흐만이요, 브라흐만이 유일의 실재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일상적 경험의 다양한 현상 세계를 샹카라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샹카라에 의하면 이 하나의 실제인 브라흐만은 우리의 무지나 환술의 힘
때문에 잡다한 이름과 현상을 가진 현상세계로 나타나 보이게 된다고 한다. 즉 세계는
브라흐만의 가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샹카라의 이러한 입장을 브라흐만
가현설이라 부른다. 세계를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돼 나온 것으로 보는 브라흐만
전변설과 구별되는 이론이다. 양자 다 브라흐만을 세계의 질료인으로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자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가현으로 보고 후자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전변으로 보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양자 모두 결과가 원인에 이미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인중유과론으로 간주되나, 브라흐만 가현설은 원인만이 실재하고 결과는
원인의 가현이라고 보는 반면에, 브라흐만 전변설은 결과를 원인의 전변으로 보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무지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무지도 브라흐만에 근거해야 하는 고로 무지는
존재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현상세계를 나타내게끔 하므로 비존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지의 본질은 샹카라에 의하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물을 오인하게끔
하며, 그 위에서 다른 사물을 보게끔 하는 가탁에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두울 때
길에서 밧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 뿐인데 사람들이 무지로 인하여 잡다한 현상과 대상의 세계를
그 위에 뒤집어 씌워서 본다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 무지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는 본래 아무런 속성도 없는
브라흐만을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주재신으로서 인식한다고 한다. 이 신은
세계의 질료인과 능동인이며 성스러운 베다를 고취해 냈고 세계의 윤리적 질서를
보호하는 자이다. 따라서 샹카라는 브라흐만을, 아무런 속성도 없는 높은 브라흐만과
속성을 가지고 현상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가진 낮은 브라흐만의 두 가지로 구별한다.
전자는 어떤 현상이나 속성이나 제한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엄격히 얘기해서
우리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순수한 존재이다. 우파니샤드에 따라서
오직 "무엇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라는 부정적 표현밖에는 할 수 없는 실재인 것이다.
단지 명상을 통하여 순수 존재와 순수 식으로 체험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주재신은
인격적인 신으로서 수많은 훌륭한 속성과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동시에 제한된
존재인 것이다. 이 신은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우리의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다. 샹카라는 이렇게 '높은 브라흐만'과 '낮은 브라흐만'을 구별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두 개념을 엄격히 구별함이 없이 혼용하기도 한다.
무지는 또한 브라흐만, 즉 우주의 궁극적 실제인 최고아를 수없이 많은 제한된 개인아로
나타내게끔 한다. 개인아란 다시 말해서 최고아가 무지의 영향 아래서 나타내게 되는
수많은 현상적 자아들인 것이다. 마치 해나 달이 하나이지만 많은 물통에 비칠 때 여럿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혹은 한없는 공간이 좁은 병 안에서 제한된 공간들로 나타나
보이는 것과도 마찬가지라 한다. 이렇게 절대아를 제한된 개인아로 나타나게끔 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감각기관과 의근과 같은 한정적 부가물들의 영향 때문이며, 이 부가물들은
곧 무지의 소산인 것이다. 따라서 무지를 제거하는 순간 우리는 제한된 현상적 자아가
망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절대적 자아 즉 브라흐만 자체임을 깨달아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높은 브라흐만과 낮은 브라흐만, 최고아와 개인아의 구별은 높은 지식과
무지로 인한 낮은 지식, 혹은 궁극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의 구별을 초래한다. 용수와
같이 샹카라도 철저한 일원론적인 존재론을 위하여 인식적 이체설을 주장해야만 한
것이다. 즉 궁극적 진리에 의할 것 같으면 개인아와 창조신은 어디까지나 모두 망상에
지나지 않으나 세속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볼 것 같으면 개인아와 창조신, 속전과 해탈,
윤회 등이 모두 실재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샹카라는 이와 같은 지식의 이중성의
이론에 입각해서 베다와 '기타'와 '브라흐마경' 등을 철저히 일원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베다는 개인아, 업, 윤회, 해탈, 창조, 주재신 등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다. 정통 바라문교도로서의 샹카라는 이들도 다 베다의
성스러운 진리이므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이체설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세속적 진리는 궁극적 진리로 이끌기 위한 수단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베다는 양자를 다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베다 자체도
다양성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무지를 제거하고
참다운 인식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현상세계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부정하고 최고아만의 유일무이한
실재성을 주장하는 샹카라의 철학을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이라 부른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궁극적 진리의 관점에 따라서 현상세계가 비록 망상이라
할지라도 세계는 결코 '공주의 꽃'이나 '토끼의 뿔'과 같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망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는 어디까지나 브라흐만이라는 실재를 근거로 하여 나타난 가현이지
전혀 사실무근의 환상은 아닌 것이다. 샹카라는 또한 불교의 유식철학의 주관적 관념론을
배척한다. 샹카라에 의하면 외계가 비록 가상이기는 하나, 유식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식의 전변으로서의 주관적 가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상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단순히 관념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지고선인 해탈에 있다. 샹카라에 의하면 해탈은 오직 지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선한 행위와 신에 대한 경배도 물론 해탈에 도움을 주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무지에 근거한 것으로서 우리를 현상의 세계에 계속 얽매는 것이다.
높은 지식은 지각이나 추론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식은 오로지 계시, 즉
베다의 공부로부터 얻어진다고 한다. 베다 가운데서도 특별히 지식편인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샹카라에 의하면 베다는 전체가 다 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물론 세속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얘기되는 진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통하여 샹카라철학의 전통성과 보수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베다의 공부와 더불어 선한 행위와 명상, 특히 우파니샤드의
말들을 경건하게 숙고하고 반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개인아가 곧 최고아라는 것을 아는 지식, 현상세계의 다양성과 윤회의 세계가 환상
뿐이라는 지식은 모든 업을 파괴한다고 한다. 지식을 얻은 자에게는 업도 존재하지 않고
업의 결과인 육체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는 또한 지켜야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샹카라에 의하면 지식은 업의 씨를 태워버린다. 그러나 이미
그 씨가 발아하기 시작한 업, 즉 현세의 원인이 되고 있는 업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완전한 지식을 획득한 자라 할지라도 현재의 몸은 당분간 존속한다고 한다.
마치 도공의 녹로가 그릇을 다 만든 후에도 얼마 동안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한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현재의 몸을 파괴할 수는 없으나 그것에 의하여
더이상 속임을 당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생해탈의 상태이며 사후에야 비로소 육체를 완전히
벗어버린 탈신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다.
한편 낮은 지식의 소유자는 브라흐만을 자기의 자아로 깨닫지 못하고 창조신으로 믿고
숭배한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러한 사람의 영혼은 사후에 신들의 길을 통하여 낮은
브라흐만과 연합한다. 이 상태는 아직 해탈은 아니지만 점차적인 해방을 통하여 완전한
지식과 해탈에 이른다고 한다. 이보다도 더 낮은 단계의 사람은 높은 지식도 낮은 지식도
없는 사람으로서 단지 선행을 행한 사람이며, 이들은 사후에 조상들의 길을 따라서 달에
도달하여 거기서 업의 보상을 누리고 난 후 또다시 지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 때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은 개인아이며, 이 개인아는 무지의 소산인 여러 부가물들을
동반하고 사후에 존속한다고 한다. 우리의 거친 육체는 사후에 물질적 요소들로
되돌아가지만 개인아는 다른 부가물들과 함께 존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가물들에는
의근과 감각기관들, 목숨, 세신이 있다. 여기서 감각기관이란 것은 육체적인 기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 혹은 씨를 말하며,세신은 육체가 파멸한 후에도
남게 되는 '육체의 씨를 형성하는 미세한 요소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부가물들은
우리가 해탈을 얻기전까지는 영원히 개인아들에 부착되어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개인아는 미래의 생을 결정할 업의 소의를 변하는 부가물로 지니고 있다고 한다.
3. 샹카라 이후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은 인도철학사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며 그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서 추앙받아 왔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수많은
그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의하여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의 저술들에도
다시 많은 주석서들이 씌어지게 되었다.
샹카라의 제자인 파드마파다(9세기)는 "브라흐마경"의 처음 4절에 대한 샹카라의
주석의 복주인 "판차파디카"라는 중요한 저술을 했으며 이 주석은
프라카샤아트만(1100년경)의 "판차파디카주해"라는 또 하나의 복주를 낳았다.
한편 샹카라의 제자 수레슈바라는 샹카라철학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나이스카르미야싯디"와 샹카라의 "브르하드아라냐카 우파니샤드"의 주석에
대한 복주를 썼다. 샹카라의 또 하나의 제자인 아난다기리도 "브라흐마경소"에
대하여 "냐야니르나야"라는 복주를 저술했다. 한편 9세기의 바차스파티미슈라도
"브하마티"라는 유명한 주석을 써서 샹카라철학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싸르바나주나아트만은 샹카라의 경소에서 요점을 간추려 "쌈크셰파샤리라카'라는
강요서를 저술했다.
이들 샹카라의 추종자들에 있어서 논의된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무지, 또는
환술의 존재론적인 가치에 대한 문제였다. 이들은 대체로 무지나 환술을 상키야철학의
프라크르티와 같이 다양성의 세계를 산출시키는 어떤 창조적인 원리로 보았다.
샹카라에 있어서 무지가 단순히 그로 인해 현상세계가 나타나게 되는 망상적인 힘이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샹카라의 추종자들은 무지를 좀더 실체화해서 보는 경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무지는 모든 현상 세계를 나타나게끔 하므로 비존재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존재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에 의하여 무지는 사라지게
되며 결국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불이론적 철학자들은
모두 무지를 구성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무지가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속한 것인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철학자들의 입장을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요지만을 말할 것 같으면 답은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지는 브라흐만에 근거를 두고 브라흐만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힘이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무지는 개인아에 근거하며 브라흐만은 무지의 대상은 되지만 소의는
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만다나미슈라와 바차스파티미슈라와 같은 베단타철학자는
후자를 택하고 있으며 바차스파티의 주석서의 이름에 따라 '브하미티'학파라 부른다.
반면에 수레슈바라, 파드마파다, 프라카샤아트만, 사르바쥬나아트만 등의 학자는
전자의 견해를 취하고 있으며 이들을 프라카샤아트만의 주석서의 이름에 따라
'비바라나'학파라 부른다. 브라흐만에 근거를 둔다고 하는 이론의 장점은 세계의 원인을
브라흐만 자체에서 찾는다는 것이나, 문제는 어떻게 무지가 순수식인 브라흐만에 근거할
수 있으며 어떻게 브라흐만 자체가 세계의 다양성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이다.
반면에 무지의 소의가 개인아이며 브라흐만과는 무관하다고 할 것 같으면, 문제는 무지가
브라흐만을 떠나서 하나의 독립적인 힘으로 간주되는 것이며 논리적으로도 순환논법을
범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아가 이미 무지의 산물인데 어떻게 무지가 개인아에
속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현상세계를 브라흐만의 가현으로 보는
브라흐마가현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난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은 또한 슈리하르샤(A.D 1150년)와 그의 제자 칫츠카(A.D
1220)에 의하여 새롭게 계승 발전되었다. 전자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서는
'논파의 미미'이고, 후자는 슈리하르샤의 저서에다가 주석을 썼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등'이라는 독자적인 저서도 썼다. 이들은 특별히 불이론적 입장에 서서
경험의 세계에서 주어지는 여러 범주들을 실재론적으로 해석한 정리철학을 공격했다.
슈리하르샤는 용수의 방법과 비슷하게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모든 사유의 범주들을 모순적인 것으로 떨어뜨리는 파괴적 변증법에 주력하였다.
결국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은 모든 현상세계의 사유의 범주와 언어를 초월한 실재라는
것이다. 현상세계 또한 무지의 소산이므로 존재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브라흐만을 근거로 하여 분명히 나타나 보이는 세계이므로 비존재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규정불가능한 어떤 것이다. 따라서 슈리하르샤에 의하면 이러한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하여 어떤 범주를 채용하여 분석을 하고 한계를 짓고 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며 자기 모순에 빠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슈리하르샤는 이 점에서 정리철학이
제시하는 여러 범주들의 정의와 설명이 공허하고 타당치 못함을 밝히고, 결국 그 범주들은
정의할 수 없고 따라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것은 현상세계 자체도 궁극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거짓 존재임을 말한다는 것이다. 슈리하르샤는 자신의 논의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철학적 논의가 결국 속체에 준한 것임을 말하며, 궁극적인 실재는 직접적으로 깨달아야
하고, 진체와 속체의 구별마저 현상세계에서만 타당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슈리하르샤가
정리철학의 범주들을 비판함에 있어 주로 우다야나에 의한 정의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
정의들이 타당치 못함을 증명하려고 한 반면에, 그의 제자 칫추카는 좀더 나아가 범주들의
정의뿐만 아니라 범주들의 개념들 자체를 논파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파괴적인
논파뿐만 아니라 그의 '진리의 등'에서 불이론적 베단타의 여러 중요한 개념들에 대하여
자신의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가 중관철학의 이체설을 미맘사학파의 쿠마릴라 브핫따의
비판으로부터 홍호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는 말하기를 이체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현상세계에서 활동하는 지성에 의해 하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비실재적이고
진리는 하나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지 속에 있는 한 우리는 이 구별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속체를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상세계가 토끼의 뿔이나
공중의 꽃과 같이 전혀 근거없는 비존재가 아니라, 비록 가상이기는 하나 브라흐만이라는
실재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것이라는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의 실재관에 입각한 것이다.
제3부 교파적 철학
제18장 한정불이론적 베단타철학
1. 한정불이론의 종교적 배경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은 베다의 지식편 즉,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일관성있는 체계로 해석한 것으로 그 후 인도철학의 가장 정통적인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샹카라의 철학은 종교적인 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인격적 신에 대한 신애는 샹카라의
철학에 의할 것 같으면 궁극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속제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종교적 신앙을 구원의
최고의 길로 간주하는 많은 힌두교 신자들에게는 샹카라의 철학은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불이론적 철학의 원리에 의할 것 같으면
인격적인 신과 개인적인 영혼이라는 것은 무지나 환술에 의한 브라흐만의
환상적 나타남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의 고통과 속박과 윤회라는 것도 결국
환술이며 해탈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샹카라의 지식의 길이란 결국 이
모든 종교적 노력과 추구를 궁극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후기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 기타"의 철학사상에서 쉬바신과
비슈누신에 대한 신앙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았거니와 이 두 신을
중심으로한 대중적 신앙운동 그 후 점점 더 확대되어 중세인도의 종교생활을
지배하게 되었다. 서력기원 후 약200년경에 대체로 완성되었다고 보여지는
"마하발타"와 "라마야나"와 같은 서사시에도 이러한 신앙운동은 반영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푸라나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헌들 속에서 본격적인
표현을 보게 되었다. 본래 푸라나란 서사시처럼, 베다를 연구하는 학파들
밖에서 음문체, 신들과 성인들의 계보등 "고사"를 다루고 있는 문헌이었다.
그러나 쉬바신 비슈누신의 숭배자들은 이 문헌들에다가 각각 그들의
신앙적 내용을 부가하여 약 1000년경까지 많은 교파적인 푸라나들을
산출하였다. 그리고 이들 푸라나들은 실제상에 있어서 베다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대부분의 힌두교도들의 종교적 생활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특히 비슈누신의 숭배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목동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담고 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북돋우는 "비슈누 푸라나"와
"바가바타 푸라나"등을 통하여 더욱더 대중화되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굽타 왕조의 지배자들은 비슈누와 그의 화신들에 대한 신앙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여 많은 석조신전과 신상들을 만들어서 비슈누신앙을
보급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비슈누와 쉬바의 숭배자들은 번거로운
베다적인 제사 대신에 가정이나 신전에서 간단하게 그들의 신상을 모시고
신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대중적인 푸자의식을 발전시켰다.
여기서 우리는 교파적 푸라나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비슈누 푸라나"의
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푸라나에 나타나 있는
세계관은 후세에 라마누자를 비롯한 많은 비슈누파의 베단타사상가들의
철학에 종교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슈나 푸라나"는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언급되고 있는 판차라트라라고
불리는 비슈누신앙의 일파에 의하여 산출된 문헌으로서 이 판차라트라파는
"마하바라타"의 "해탈법품" 중의 나라연천장이라는 비슈누파의 문헌도
산출했다고 여겨진다.
"비슈누 푸라나"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은 세계의 창조와
주기적 변화에 관한 설화와 목동 크리슈나의 이야기이다. "비슈누 푸라하"에
의할 것 같으면 비슈누신은 브라흐만으로서 자기 자신 안에 온 우주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정신과 물질과 이 양자를 결합시키고 분리시키는
시간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 삼자를 갖고서 창조의 행위를 하나의 유희로서
영위한다. 창조의 과정은 대체로 상키야철학에서 논하는 물질의 전개과정을
따르나 단지 이 물질의 원초적인 균형상태를 깨뜨리는 것은 세계의 정해진
주기에 따라서 신이 정신과 물질을 자극함에 의해서라고 한다. 물질로부터
일차적인 세계의 진화가 이루어지면 물질로부터 전개된 제요소들은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알과 같은 덩어리를 형성하여 물위에 떠 있게 된다. 이 때에
비슈누는 창조신 브라흐마의 형태로 이 우주적 알 속으로 들어가서 하늘과
땅과 공중권을 창조하며 제신과 생명들을 거하게 한다. 다음에 그는 세계의
유지자인 비슈누신으로서 세계를 유지하다가 때가 오면 세계의 파괴자
루드라로서 세계를 불로써 파괴하고 비를 내려 온 우주를 하나의 대양으로
만든다. 그리고 비슈누는 이 대양위에 있는 쉐사라고 부르는 큰 뱀위에서
밤의 수면과 휴식의 상태로 들어간다.
브라흐마 신의 세계창조로부터 파괴에 이르는 기간을 일거라 부르며
브라흐마신의 하루의 낮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일거동안에 세계는 대유가라
불리는 주기들을 경과하며 각 대유가는 또한 4개의 소유가로 되어 잇다.
대유가의 길이는 인간에게는 4320000년이며 신들에게는 12000년에 해당한다.
4개의 소유가는 크리타 유가 4800년(신들의), 트레타 유가
3600년, 드바파라 유가 2400년, 그리고 칼리 유가 1200년으로 되어있으며,
이 소유가들이 경과하는 동안 인간사회에 온갖 불법은 점점 더 증가하며
인간의 수명은 점점 더 단축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기의 소유가들로 된
대유가가 1000번 반복되는 것이 일겁이며 이것이 브라흐마신의 한 낮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루의 낮이 지나면 이 낮과 같은 길이의 브라흐마신의
밤이 오며 이 때에는 비슈누신은 잠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의 밤이
끝나면 비슈누는 깨어나서 브라흐마신으로서 세계를 다시 창조하고
브파흐마신의 낮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브라흐마신의 낮과 밤은
360일 100년간이나 계속되어 반복되며 이 기간이 끝나면 시간과 물질과
정신은 무한한 비슈누신 안으로 흡수되어 비슈누신만이 홀로 남게 되며,
그가
다시 유희를 시작하면 전과정이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이다.
"비슈누 푸라나"에 있어서 후세의 철학적 영감을 불러 일으킨 또 하나의
설화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과 목동으로서의
이야기들이다. 특별히 브린다바나라는 숲에서 전개되는 목동 크리슈나와
목동들의 아내들과의 열렬한 연애의 이야기는 인간의 영혼과 신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 비슈누파의 철학사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비슈누와 쉬바의 신앙운동은 서력기원 약 6세기경에 이르러 남인도의
타밀지방에서 출현한 여러 시인성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종래의 베다,서사시, 푸라나 등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대신
그들의 지방어인 타밀어로 시와 노래를 지어 비슈누신과 쉬바신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을 노래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종전보다도 훨씬 더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을 거침없이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종교적
갈망은 어떤 비인격적인 절대적 존재로서의 브라흐만과의 합일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섬기는 인격적인 신과의 강렬한 사랑의 교제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이들 타밀지방의 시인성자들이 지은 많은 종교적 시와 노래들은 자연히
성전으로 수집되게 되었으며 이들 성전들은 비슈누파와 쉬바파의 교리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쉬바파에서는 10세기경에 나야나르라고 불리는 역대의 시인성자들의
찬가를 모아서 12성전을 편찬하였으며, 이것은 샤이바 싯단타파의 중요한
성전을 이루었다. 샤이바 싯단타는 13세기에 일어난 쉬바파의 하나로서 신과
인간의 차이, 인간의 죄와 신의 은총을 강조하며, 쉬바신앙에 하나의
신학적,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한편 비슈누파는 11세기에 알바르라
불리는 그들의 시인성자들의 노래를 수집하여 4000성시를 편찬했다.
이 성시의 편찬은 나타무니에 의하여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 성시들을 비슈누신전에서 정기적으로 노래하며 그들의 신앙을
표현했다. 알바르들의 시는 특히 목동 크리슈나와 목동들의 아내들과의
강렬한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인간과 신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찬미했다. 나타무니와 그의 후계자들은 슈리 바이쉬나바라는
유력한 교파를 형성했다.
슈리 바이쉬나바파는 샤이바 싯단타파와는 달리 베다전통의 연구를
통하여 자기들의 신앙과 종교적 사상을 뒷받침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산스크리트어로 철학적 저술들을 산출하여 타밀지방을 넘어서서 인도 전역에
사상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슈리 바이니쉬나바파의 종교적
사상을 철학적으로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은 라마누자였다. 그는 남인도
타밀지방에서 태어난 슈리 바이쉬나바파의 사제로서, 비슈누신에 대한
신앙의 정통성과 신앙을 통한 구원의 길을 옹호하기 위하여 "브라흐마 경"과
"바가바드 기타"의 주석서를 써서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독자적인 베단타철학의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그후로부터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은 많은 이와 비슷한 노력들에 의하여 도전을
받게 되었다.
라마누자의 사상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그가 속해 있던 슈릴
바이쉬나바파의 신앙적 전통에 있으며 그의 철학의 골격은 그가 존경하던
슈리 바이쉬나바파의 학자 야무나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야무나는
나타무니의 손자이며 후계자로서 "바가바드 기타"의 해석서인
"기타의강요"를 썼으며 라마누자의 "기타" 해석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야무나는 또한 "싯디트라야"라는 그의 저서에서 상키야와 냐야철학을 빌어서
개인아와 현상세계가 최고신과는 별개의 실재들임을 논하고 있다.
라마누자는 바로 이러한 야무나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완성시킨
철학자이다. 그는 또한 "브라흐마경"의 주석서인 "성소"에서 자기가
보다야나라는 사람의 "브라흐마경"의 해석을 따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 라마누자의 형이상학
라마누자의 형이상학적 입장은 단적으로 말해서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과
샹키야의 이원론적 철학의 절충적 혹은 중간적인 철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샹카라철학의 근본적 입장인 브라흐만의 유일한 실재성를 말하면서도 그
안에 상키야철학의 불이론적 세계관 즉, 푸루샤와 프라크를티의 두 원리를
포섭하려고 한다. 라마누자에 의하면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이다. 그러나
이 브라흐만은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에서처럼 아무런 속성도 없는
순수한 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속성과 차별성을 지닌 인격적인 신이다.
따라서 라마누자철학을 한정불이론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브라흐만은
다양성과 속성을 지닌 일자이다. 그의 속성은 혹은 양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물질과 영혼이다. 물질과 영혼은 브라흐만을 떠나서 독립적인
존재로 존재하지 못하며, 언제나 브라흐만에 의존하고 브라흐만은 그들의
실체이다. 영혼과 물질은 비록 브라흐만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샹카라철학에서처럼 환술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들로 간주된다. 라마누자에
있어서 "마야"란 무지를 의미하지 않고 신의 창조적 힘을 말한다. 따라서
라마누자는 상카라의 이체설이나, 이에 근거한 "높은 브라흐만"과 "낮은 브
라흐만"의 구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마누자는 브라흐만과 세계, 즉 영혼들과 물질과의 관계를 영혼과
육체와의 관계에 준하여 설명한다, 영혼과 육체는 서로 다르나 육체는
영혼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영혼은 육체를 재배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은 개인의 영혼들과 물질세계의 내제자이며 이들은 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라마누자는 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전체와
부분의 관계로서 설명하기도 한다. 물질과 영혼들은 신의 부분들과 같다는
것이다.
샹카라와 라마누자는 모두 세계가 브라흐만에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상카라에 의할 것 같으면 세계는 브라흐만의 가현인 반면에
라마누자에 있어서는 세계는 이미 브라흐만 안에 내재하여 있다가 그로부터
전변하여 나온 실재인 것이다. 라마누자에 의하면 브라흐만에는 두 가지
상태가 있다. 하나는 세계가 아직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되어 나오지 않은
상태이거나 혹은 세계가 해체되어 브라흐만에 흡수되어 있는 상태로서,
이것을 브라흐만의 원인적 상태라 한다. 다른 하나는 세계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되어 왔을 때의 상태로서, 이것을 브라흐만의
결과적 상태라고 부른다.
브라흐만은 그 안에 부분과 차별성을 지녔으며 세계의 내적 지배자이며
세계의 질료인도 되고 능동인도 되지만, 브라흐만 자체는 변화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속성과 양태들만이 변화할 뿐이다. 신은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완전한 성품들을 지니고 바이쿤타라는
천계에서 다른 신들과 성자들과 해방된 영혼들과 함께 거하고 있다.그는
세계라는 육체를 지녔지만 그의 육체는 그를 속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속박이란 업의 결과인 반면에 신은 바로 업의 주재자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해체될 때에는 물질을 미세하고 무구분적인 잠재적 상태로 있으나
신은 이러한 물질로부터 영혼들의 업에 따라서 그들의 몸과 감각기관들과
대상들의 세계를 전개시킨다고
한다. 신의 전능한 의지에 따라서 미세한 상태의 물질은 우선 화.수.지의 미세한
요소들로 바뀌고 이들이 섞여서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현상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화.수.지.의 삼요소는 사트바와 라자스와 타마스라는 물질의 삼성질을 각각
나타낸다고 한다. 상키야철학과는 달리 라마누자는 사트바,라자스,타마스를
물질의 삼요소가 아니라 삼성질으로 본다.라마누자에 의하면 라자스와 타마스의
성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순수히 사트바만의 성질로 된 특수한 성질도 존재한다.
이물질은 따라서 비정신계 보다는 정신계에 속하는 것으로서,신이나 해방된
자들의 몸과 그들이 거하는 곳에 있는 사물들은 이러한 특수한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한다.
영혼 지바들은 비록 브라흐만의 양태요 그의 몸의 일부이기는 하지만,그들
나름대로 영원히 실재하는 존재라고 한다.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신의 양태인
고로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영혼은 원자의 크기만한 개별적 단자들로서, 그들은
은 어디까지나 신의 양태인고로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영혼은 원자의 크기만한
개별적 단자들로서,그들은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한다.세계의 창조의
상태에서는 영혼들은 각각 그 업에 따라서 육체를 입고 있으나 세계의 해체상태에서나
혹은 해방된 영혼은 육체로부터 벗어나 존재한다.영혼은 윤회의 세계에서
무지와 업으로 인하여 자신을 이들과 혼동하고 있을 뿐이다.이러한 혼동에서
생기는 자아의식으로서의 아만은 영혼이 본래가지고 있는 자의식과는 다르다고
한다.
영혼은 앎과 행위와 경험의 주체이다.영혼은 그 자체에 있어서 빛을 가진 자 의식적인
존재이다.영혼은 자가 자신을 알기도 하고 대상을 알기도 하며 자기 자신을
드러내나,대상을 드러내지는 못한다고 한다.대상은 오직 지식(앎)을 통하여
영혼에 드러나는 것이다.반면에 지식은 그 자체와 대상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들을 알지는 못한다.아는 것은 영혼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마뉴자는
미맘사의 프라브하카라와는 달리 지식은 영혼의 본질적 성질이지 우연적인
성질은 아니라고 한다.지식은 깊은 수면의 상태나 해방된 상태에서도 언제나
영혼에 존속한다는 것이다.지식이 영혼의 본질적인 성질이기는 하나,그렇다고
해서 라마누자는 샹카라처럼 영혼 그 자체가 지식 혹은 순수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라마누자에 의하면 순수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식 이란 어디까지나 주체에
속하며 대상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식은 언제나 한계되어져 있고 특수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우리는<나는 의식하고있다>라고 말하지 아무도 <나는 식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그리고 영혼이 영원한 것처럼 지식도 영원하며
본래는 편재적이고 무한하고 전지적이라고 한다.그러나 우리의 업의 제한과
방해를 받아 우리의 지식은 한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지식과 마찬가지로 영혼은 본질적으로 희열을 갖고 있다고 한다.따라서
현상세계에서의 불완전함과 고통들은 영혼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해방된 영혼은 무한한 지식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3 해탈론
라마누자에 의하면 영혼의 해방은 무지와 업의 제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라마누자는 샹카라와는 달리,행위와 지식을 둘 다 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베다의 연구에 있어서도 행위편과 지식편 그리고 푸르바 미맘사와
웃타라 미맘사를 둘 다 강조한다.즉 푸르바 미맘사의 연구는 베단타철학의 연구를
위한 준비로서 간주되며 행위는 순수한 마음으로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행하면
영혼의 정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이점에 있어서 행위에 대하여 지식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하는 샹카라와 차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라마누자에 의하면 해탈이란 궁극적으로 영혼은 물질과 다르다는 지식에 의하여서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라마누자가 말하는 지식이란 단순한 베단타철학에
대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요가적 명상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서, 이러한
지식은 영혼을 속박과 윤회의 세계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한다.그러나 이렇게
물질로부터 해방된 영혼은 육체를 떠나 순수하게 존속하기는 하나 아직도 신과
함께 거하는 행복에 참여하지는 못한다고 한다.이러한 최고의 구원은 오직 신에
대한 사랑의 명상을 실천하는 신애의 요가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
신애란 요가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신애란 신에 대한 끊임없는 기억과 명상을
의미하며,이러한 신애를 행하는 자는 신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적 지식을 얻으며
자기는 신의 잔여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서 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신애의 요가는 베다에 대한 명상을 필요로 하므로 슈드라 계급의 사람들은
이 길을 따를 수 없다.따라서 라마누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별도의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신을 믿는 마음으로 그를 향하여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귀의하며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자는 신의 은총에 의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라마누자는 생해탈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영혼이 업의 결과인 육체와의 교섭을
떠난 상태, 즉 사후라야만 비로서 해탈이 가능한 것이다.라마누자에 있어서는
개인적 영혼과 속박과 윤회가 단지 무지로 인해 나타나는 환술일 수는 없다.
따라서 라마누자는 생해탈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신과 개인영혼과의 차이는
언제나 남아 있으며,영혼은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그 고유의 완전성을 회복하고, 순수한
사트바적인 몸을 갖고서 무한한 행복속에서 신과 사랑의 교제를 향유한다는
것이다.
라마누자의 사후 그의 추종자들은 벤카타나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의 바다갈라이파와
로카차리야를 중심으로 하는 남쪽의 텐갈라이파로 분립하게 되었다.이 양파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노력에 관하여 상이한 견해를 지녔다.바다갈라이파에 의하면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원숭이가 어머니의 목에 매달리려는 것과 같이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신에게 매달리려는 개인적인 노력을 해야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텐갈라이파는 그러한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인간의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입으로 자기의 새끼를 물어올려서 안전한 곳으로
운반하듯이 신은 그의 은총을 죄인들에게도 선사하며 그들은 윤회의 세계로부터 구원한다는
것이다. 라마누자의 철학은 많은 후계자들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샹카라나 또 하나의 위대한 베단타철학자인 마드바의 문하생들과 같이
철학적 능력이 예리하고 뛰어난 사상가들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제 19장 비슈누파의 베단타철학
1. 라마누자 이후의 인도철학의 경향
베단타철학이 일단 라마누자에 의하여 샹카라의 불이론과는 달리 신앙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이 보여짐에 따라, 그의 철학은 베단타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라마누자의 뒤를 이어 나타난 여러 비슈누파와 쉬바파의
철학자들은 모두 물질세계와 영혼을 주저없이 실재하는 것으로 보고, 이들과
최고신으로서의 브라흐만과의 관계를 각기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라마누자만 하여도 영혼과 물질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아직도 불이론적 입장,
즉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에, 그들은 더욱더
영혼과 물질이 브라흐만과는 별개의 실재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구원의 방법으로서도 라마누자는 지식과 신애와를 결부시켜 해석하는
반면에, 이들 신앙적 베단타 철학자들은 신애만이 유일한 길임과 신의 은총을
강조하여 중세 인도의 종교적 경향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라마누자를 전환점으로 하여 이들 신앙적 교파적 사상가들에 의하여 전개된
신학적 구원론으로서의 철학들은 인도철학의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은 어떤 특정한 신을 섬기는 종교적 입장을
초월한 것이었으나, 라마누자 이후의 베단타철학자들은 모두 특정한 종파적
입장에 서서 베단타 사상을 각각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샹카라의 철학은 어떤 특정한 신만을 섬기지
않고 제신을 의무로서 관습적으로 섬기는 많은 정통 바라문들에 의하여 지지를
받아오게 된 것이다.
2. 마드바의 이원적 베단타철학
마드바(Madhva, 1199-1278)는 서남인도의 우디피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일찍부터 베다를 공부하고 고행자가 되었다. 그는 원래 샹카라철학의
추종자였으나 그의 스승이며 샹카라철학의 신봉자인 아츄타프렉샤와의 논쟁을
통하여 샹카라의 철학을 버리고 이원적인 베단타철학을 전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비슈누신과 그의 화신 크리슈나를 지고의 신으로 섬기는 자로서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자기의 고향인 우디피에다
크리슈나신을 위한 신전을 만들고 그의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마드바는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는 '브라흐마경',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마하바라타', '바가바타 푸라나' 등에 해역서를 썼으며, 자기의
베단타철학을 옹호하는 '수해설'의 주석서인 '정리감로'를 썼다. 자야티르타의
저서들은 또한 뱌사티르타와 라가벤드라 야티 등과 같은 후계자들에 의하여
대대로 주석되었다. 마드바와 그의 추종자들은 특별히 샹카라의 불이원적
베단타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많은 논쟁을 벌였다.
마드바는 인식의 방법으로서 지각과 추론과 성전을 인정한다. 실재의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는 증언에 의지하여야 하며, 성전에는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인간적인 것과 절대적 확실성을 가진 초인간적인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베다는 후자의 것으로서 어떤 인간적 저자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인식은
반드시 주체와 객체로서 구성되며 양자의 관계는 직접적이다. 인식에는 파악되는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명증성이 있다고 한다. 이 명증성은 직관의 주체로서의
자아가 갖는 명증성인 것이다. 마드바에 의하면 우리의 지식은 별다른 장애와
결함이 없는 한 자의식적인 직관적 주체에 의하여 그 타당성 혹은 자명성을
부여받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마드바의 지식의 본유적 타당성에 대한 견해이다.
뿐만 아니라 설령 우리의 인식에 결함이 있어서 그릇된 인식이 발생한다 하여도
그 인식도 어떤 객관적 대상의 근거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릇된 인식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와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상세계는 순전히
망상일 수가 없으며 망상이란 실재하는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나
보일 뿐이지 전혀 아무런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이
그릇된 것이라면 옳은 관념과 틀린 관념의 차이는 설명될 수 없으며, 사물의
객관적 차별이 없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드바에 의하면 실재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독립적 실재요, 다른 하나는
의타적 실재이다. 신만이 독립적 실재이며 의타적 실재는 유와 무로 구분된다.
유에는 의식적인 영혼들과 무의식적인 물질이나 시간과 같은 존재들이 있다.
무의식적인 존재에는 베다처럼 영원한 것도 있고 시간, 공간, 물질처럼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한 존재도 있으며, 물질의 전개물들과 같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마드바는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을 불교의 공사상에 영향을 받은 거짓된
이론으로 신랄히 공격하며, 차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세계관을
세웠다. 그는 라마누자와 같이 신과 영혼과 물질을 각각 영원한 실재로 간주하고
이 삼자간에 오종의 차별이 있음을 주장했다. 즉 영혼과 신, 영혼과 영혼,
영혼과 물질, 신과 물질, 그리고 물질로 된 사물들 사이의 차별이다.
신은 무한히 많은 성질들을 지니고 있으며, 삿트(존재)와 칫트(식)와
아난다(희열)를 그의 본질로 삼는다. 그는 세계의 창조자요 유지자요, 파괴자이다.
그는 자신을 여러 형태와 화신으로 나타내며 성스러운 신상들에 현존하고 있다.
신은 세계의 초월자이기도 하며 세계와 영혼들의 내적 지배자로서 내재하는
자이다. 물질과 영혼은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의존하고 있다. 마드바는 신의
의지와 활동을 강조한 나머지 영혼들이 비록 제한된 자유와 의지를 지니고 있기는
하나 그들의 구원이 신의 결정에 달렸다는 일종의 예정설과 같은 것을 주장한다.
그의 철학은 존재론적으로는 다원론적이지만 만유가 신의 의지와 힘에 종속되고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기능적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드바는
라마누자와 같이 신과 세계(즉 물질과 영혼들)와의 관계를 영혼과 몸의 관계로
보거나, 세계를 신의 속성이나 양태로 보지 않는다. 영혼들과 물질들은 비록
신에 의존하지만, 신과는 별개의 실체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신은 세계의
능동인이기는 하나 질료인은 아니다. 여기서 마드바는 결정적으로 '우파니샤드'나
'바가바드 기타'의 만유내신론인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드바의 철학적 입장을 이원적 베단타라 부르며, 샹카라의 불이론이나
라마누자의 한정불이론과 구별한다.
영혼들은 영원하고 무수히 많으며, 크기에 있어서 원자적이라 한다. 마드바에
의하면 쟈이나교에서처럼 땅 위의 모든 존재들은 생명이 있는 유기체들이다.
영혼은 식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속해 있는 물체에 편재해 있다. 이런
면에서 모든 사물에 편재해 있는 신과는 다른 것이다. 영혼은 본성상 식과 희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업의 결과인 물질적인 몸과 감각기관과의 연결 때문에 고통과
불완전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이 비록 영혼들을 내적으로 지배하지만, 그들은
각기 행위와 지식과 경험의 주체이다. 마드바는 영혼의 인식기관을 증인이라
부른다. 이것을 통하여 영혼은 스스로를 의식하며 이것이 영혼의 개별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마드바에 의하면 영혼들은 질적으로도 상이하다고 한다. 각각의
영혼들은 그 자체의 특수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방된 상태에서도
그들의 식과 희열에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영혼에는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과 해방된 영혼과 속박된 영혼의 세 종류가
있다. 비슈누신의 창조적 힘의 인격화이며 그의 아내로 간주되는 락스미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본래부터 영원히 자유로운 존재라고 한다. 속박된 영혼들
가운데는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과 그렇지 못한 영혼의 구분이 있으며, 후자는
영원히 윤회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이다. 마드바에 의하면 아무리 순수한
영혼들이라 할지라도 신의 완전한 희열은 못느끼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느낄
뿐이며, 신과 영혼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고 한다. 영혼은 결코 브라흐만과
같이 될 수는 없다.
물질은 신에 의하여 형태를 가진 현상세계로 전개되며 세계의 해체시에는
사물들은 다시 원초적인 물질로 되돌아간다. 전개 이전의 미세한 상태의 물질은
동질적인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상이한 원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마드바는
무명을 물질의 한 형태로 간주하며, 무명에는 영혼의 영적 능력을 은폐하는 것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마드바에 의하면 윤리적인 의무의 집착없는 순수한 실천은 영혼의 구원에
도움은 되지만, 구원은 무엇보다도 신을 아는 지식에 의하여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지식을 위해서는 베다의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자와 슈드라계급은
베다 대신 푸라나나 전승들을 통해서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신을 아는
지식이란 우리가 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감정과 그에 대한 사랑을
가져온다. 이것이 곧 신애이며 신애는 신에 대한 깊은 명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명상과 신이 은총을 통하여 그에 대한 직접지를 얻는다고 한다. 이
직접지는 바로 현세에 있어서도 우리를 세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해방된 영혼들은 사후에 비슈누신의 낙원에서 순수 사트바적인 몸을 입고서
각종의 유희와 찬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린다고 한다.
3. 님바르카의 이이불이론
님바르카는 텔루구어를 사용하는 남인도 출신의 바라문이었다. 그는 크리슈나신의
열렬한 숭배자로서 크리슈나파의 성지인 브닌다바나 즉 북인도의 마투라 지방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의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2세기 내지는 13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된다.
님바르카도 역시 '브라흐마경'의 주석서인 '베단타 파리자타 사우라바'를
썼으며 또한 자기의 철학적 입장을 간략하게 주장하는 '십송'을 지었다. 그의
철학은 스리니바사(14세기), 케샤바카슈미린(16세기)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케샤바카슈미린은 '기타'의 주석인 '진리해명'에서 님바르카의 사상을 옹호했다.
님바르카는 라마누자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입고 있으며 브하르트르프라판차,
브하스카라, 야다바와 같은 베단타철학자들에 의해 대표되었던 차별불차별론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즉 신은 세계의 능동인이며 질료인으로서 신과 세계와의
관계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견해이다. 그는 라마누자와는 달리 물질과
영혼들이 신의 속성이거나 혹은 신의 몸을 이룬다는 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속성이란 어떤 존재를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해 주는데, 신 외에 그로부터
구별되어질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고로 속성이란 무의미하다고 한다.
또한 만약 물질과 영혼들이 신의 몸을 이룬다고 하면, 신은 세계의 온갖 불행과
불완전함에 종속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신의 몸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님바르카에게는 영혼과 물질은 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의존성은 그들과 신과의
차별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물질과 영혼은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 독립성의 결여는 그들이 신과 동일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님바르카는
이이불이론을 주장한다. 마치 태양과 태양빛, 불과 불꽃, 대양과 파도의 관계처럼
신과 세계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세계는 신의 본성 안에 이미 미세하게 존재하고 있던 것의 전변이지 가현이나
환술이 아니다. 신은 자기 안에 식과 무의식, 즉 영혼과 물질이라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이 힘이 창조 때에 전개되어 나오는 것이다. 신은 세계의 질료인인
것이다. 그는 또한 창조 때에 영혼들을 각기 그들의 업에 따라서 알맞는 업보를
받도록 하는 세계의 능동인이기도 하다. 님바르카에게 있어서는 신은 곧
크리슈나신을 말하며 크리슈나는 신의 화신이 아니라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님바르카는 또한 크리슈나의 애인 라다를 신의 창조적 힘을 나타내는 원리로
삼았다.
무의식물에는 세 종류가 있다. 즉 시간과 물질과 물질로부터 나오지 않는
순수한 사트바이며, 이 후자로서 신의 지체나 거처는 되어 있다고 한다.
영혼은 무지의 결과인 업에 의하여 가리워진다. 영혼의 해방을 위해서는 지식과
신을 향한 자기포기와 신애, 그리고 그의 은총이 필요하다.
4. 발라바의 순정불이론
발라바(1479년에서 1531년)는 텔루구지방 출신 바라문의 아들로서 베나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님바르카와 마찬가지로 마투라 부근에서 활약했으며 크리슈나교의
일파를 창시했다. '브라흐마경'의 주석 '아누브하시야'와 '바가바타 푸라나'의
주석인 '바가바타티카 수보디니'를 썼으며, '진리등화해역'이라는 저서, 그 외에도
수많은 작은 저술들을 했다. 그의 철학은 그의 아들 비탈라나타와 그밖에
기리다라 고스바민, 발라크리쉬나 밧타, 푸루숏타마 등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그의 철학적 입장은 브라흐만이 세계를 전개할 때에 환술과 같은 불순한 원리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 순정불이론이라 부른다. 또한 최고의 해탈의 상태는
신애를 통한 신의 은총의 길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하기 때문에 은총의 도라고도
부른다.
발라바에게는 브라흐만은 곧 크리슈나신으로서, 그의 본질은 존재와 식과
희열이다. 세계는 불에서 불꽃이 나오듯, 혹은 등불로부터 빛이 발하듯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영혼들과 물질은 신의 힘의 현현으로서 전체와 부분의 관계처럼
신과 그들은 동일하다고 한다. 브라흐만은 그의 의지에 의하여 물질과 영혼들을
현현시키되 그들은 그의 세 가지 성품을 각각 다른 비율로 나타낸다고 한다.
즉 브라흐만의 존재로부터는 물질의 세계가 나오고, 그의 식으로부터는 원자와
같은 영혼들, 그리고 그의 희열로부터는 영혼을 지배하는 내적 지배자가 나온다고
한다. 따라서 물질세계에는 브라흐만의 식과 희열은 숨겨져 있고, 영혼에는 그의
희열만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신은 세계의 능동인이고 질료인이며 그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하여 있는
내재인이다. 혹은 신은 온 우주의 최고의 내적 지배자라고 한다. 신은 세계의
실체이며 원인이다. 실체는 정말로 속성을 나타내며 원인은 정말로 결과로
나타나나 양자는 동일하다고 한다. 또한 내재라는 것도 발라바에게는
승론철학에서처럼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을 뜻한다고 한다.
발라바에 의하면 환술이나 무지는 신이 자기 자신을 다양한 세계로 나타내는
힘이며, 이렇게 나타난 세계는 결코 거짓이나 환상이 아니라 참 현현이라고 한다.
발라바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가현으로도 전변으로도 보지 않는다. 세계는 신의
자연스러운 발생으로서 이것을 발라바는 불변전변이라 한다.
발라바는 특이하게도 세계와 생사를 구별한다. 세계는 신의 실재적 현현이므로
언제나 존속하나, 생사는 우리가 영혼의 참 본성, 즉 그것이 곧 브라흐만
자체(희열만 감추어진)라는 것을 모르고 영혼을 육체와 동일시하는 무지 때문에
단지 상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무지가 사라지면 생사의 실재나
고통도 사라지는 것이다. 세계(물질과 영혼들)는 브라흐만의 현현으로서 실재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무지 가운데서 잘못 볼 것 같으면, 다시 말해 브라흐만과
다른 다양성의 세계로 볼 때는, 실재하지 않는 허구인 것이다. 라마누자와 같이
세계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샹카라와 같이 생사의 세계를 무지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무지에 의하여 묶여진 영혼은 신의 은총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지식만으로는 낮은 구원만 얻을 수 있을 뿐이며 최고의 구원은 지식보다도 신애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한다. 신애는 모든 죄를 멸해 주는 신의 은총에 의하여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발라바는 따라서 구원을 위하여
육체에 대한 고행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신의 은총에 의하여 최고의 구원을 얻은 자는 해탈이라기보다는 크리슈나신과
함께 하늘의 낙원 브린다바나에서 그를 섬기며 영원히 그의 유희에 동참한다고
한다.
5. 차이타니야 게통의 베단타철학
발라바와 동시대에 동인도의 벵갈지방에 차이타니야(1485년에서 1533년까지)라는
성자가 나타나 열렬한 크리슈나신의 신앙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크리슈나의 화신으로 추앙한다. 차이타니야는 어떤 저서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사상은 루파와 사나타나, 그리고 그의 조카인 지바에 의하여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지바는 특히 차이타니야파의 가장 좋은 교리서로 간주되는 '육편'을 저술했다.
18세기 초에 와서는 발라데바 바댜브후사나라는 철학자가 나와서 이 교파를 위한
'고빈다소'를 써서 철학적인 깊이를 제공했다.
이 학파에서는 브라흐만은 곧 세계의 주인인 크리슈나신이다. 신은 여러가지
힘을 통하여 작용하며 자기 자신을 물질과 영혼들로 나타낸다. 신의 힘 가운데는
우선 그의 내적, 본질적 힘 혹은 그의 식력이 있다. 이 힘은 그의 세 가지 성질,
즉 존재, 식, 희열에 따라서 세 가지 힘으로서 작용한다. 자신과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힘, 자신과 타존재들로 하여금 인식을 갖게 하는 힘,
그리고 자신과 타존재들로 하여금 희열을 느끼게 하는 힘이다.
신은 다음으로 내적, 외적인 중간적인 힘으로서 영혼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
힘에 의하여 자신을 개별적 영혼들로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나타난 영혼들은
자신의 신적인 본성을 망각하고 외계에다 자신을 잃어버리지만 때로는 신을
추구하기도 한다.
신은 또한 그의 외적인 힘 혹은 환술력에 의하여 자신을 물질적인 세계로
나타낸다고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신은 능동인이며 동시에 질료인이다. 뿐만
아니라 이 힘에 의하여 신은 자신을 시간, 업, 그리고 지와 무지 등을 일으키는
모든 것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세계는 이러한 능력을 지닌 신의 영원한 유희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물질세계와 개인영혼은 신의 힘의 현현으로서 다 실재하는 것이나
동시에 신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신과 그들과의
관계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신비한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챠이타니야 계통의 철학적 입장을 불가사의 차별무차별론이라 부른다.
개별적 영혼들과 신과의 관계는 태양빛과 태양 혹은 불꽃과 불과의 관계로서
이해되며 개인영혼들은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해탈이란 이 점을
깨닫고 신을 믿고 의지하는 신애에 의하여 주어진다. 신애는 인간이 신과 합일되어
신으로 충만하게 되는 황홀경을 가져오는 사랑의 극치로 이끈다. 차이타니야파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랑의 극치는 '바가바타 푸라나'등에 그려져 있는 목동
크리슈나에 대한 목동들의 아내들, 특히 라다의 열렬한 사랑에 있어서 이상적으로
나타나 있다. 라다는 동시에 크리슈나의 창조력을 나타내는 원리로서 이해되며
크리슈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불가사의 차별무차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제20장 쉬바파의 철학
1. 쉬바파 철학의 종교적 배경
우리는 전장에서 라마누자의 이후에 전개된 비슈누파 계통의 베단타철학을
살펴보았으며 이미 그 종교적 배경도 서술한 일이 있다. 비록 쉬바파의 사상가들은
우파니샤드나 [브라흐마경]등의 해석을 통한 베단타 철학을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자연히 베단타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기들의 신앙적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6세기경에 남인도의 타밀지방에서 시인성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
쉬파파의 신앙운동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지만 쉬바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베다적인
전통 밖에서 별도의 교파를 이룬 것은 이보다도 더 이전의 일이다. 우리는 [마하바라타]나
푸라나 등에서 이미 파슈파타라고 불리는 쉬파파의 일파가 존재했음을 알수 있다.
'파슈파타'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가축의 주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가축의 주'란 쉬바신의 여러 이름중의 하나였다. 이 교파는 인간을 가축에, 그리고
신을 그 주인으로 비유하며, 인간을 무지한 집착의 근에 의하여 세계에 묶여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 인생의 목적은 신에 의하여 이 끈으로부터 해방되어 해설을
얻는 것이라 한다.
[바유 푸라나]나 [아타르바쉬라스 우파니샤드]라는 쉬파파에 의하여 만들어진
후기 우파니샤드에 의할 것 같으면 파슈파타들은 몸에다 재를 뿌리고 심한 고행을
하며 파슈파타 요가라는 묵상을 했다고 한다. 또한 파슈파타들 가운데는 쉬바신의
화신으로 간주되는 라쿠리라고 불리는 3세기 경의 인물의 가르침과 수행을 따르는
분파도 있었다. 이들은 라쿨리샤 파슈파타라고 불리었다.
파슈파타파와 그 밖의 쉬바파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교리와 수행 등을 규정하는
28개의 아가마라는 문헌들을 산출했으며, 이 아가마들은 비슈누파의 삼히타와
신의 창조적 능력을 별도의 여신으로 숭배하는 샥타의 탄드라와 더불어 중세인도의
교파적 철학들의 종교적 배경을 형성하는 문헌들이 되었다. 아가마들은 보통 지식부,
유가부, 제사부, 행작부의 사부로 구성되어 있으나 반드시 지켜지는 구분은 아니다.
특히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바 신과 인간의 개별적 영혼과 세계와의 관계가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쉬바파의 학파들은 비슈누파의 베단타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이 문제에 관해서 각기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쉬바파의
철학체계들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14세기의 베단타철학자 마다바의 [전철학강요]는 당시의 철학체계를 모두 16개로
다루고 있는 가운데서, 쉬파파의 철학체계로서 4개를 다루고 있다.
즉 나쿨리샤 파슈파타체계, 샤이바체계, 프라티아 비즈나 혹은 재인식 체계, 그리고
라세슈바라 혹은 수은파 체계이다. 이중에서 나쿨리샤 파슈파타파는 이미 언급한대로
파슈파타파의 일분파로서 고행과 요가의 실천을 주로 하는 교파였으며 철학적으로는
그리 활발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학파의 학설을 천명하는 저서로서는 10세기말의
브하사르바즈나의 [가나 카리카]라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브하사르 바즈나는 정리철학의 저술들도 했으므로 이 교파와 정리철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6-7세기의 정리철학자 웃됴다카라도
역시 파슈파타파의 지도자로 전해지고 있으며 승리철학의 프라샤스타파다도
쉬바신의 숭배자였다. 아마도 쉬바파의 학자들이 자기들의 신앙에 철학적인 근거를
마련함에 있어서 승론과 정리철학의 이론을 채용하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은파는 일종의 연금술 학파로서 최고신과의 합일을 추구함에 있어서 수은으로
만든 연금술액을 마심으로서 순수한 신적 육체를 얻어서 오가를 통한 해설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이 학파 역시 철학적인 사상에 있어서는 활발한 이론을
전개한 것 같지는 않다.
마다바가 언급하고 있는 나머지 두 학파, 즉 샤이바체계와 재인식체계는 반면에
상당한 체계적 이론을 지닌 학파로서 좀더 상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샤이바 싯단타의 철학
샤이바체계는 주로 아가마의 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남인도의 타밀어를
말하는 쉬바파인 샤이바 싯단타파에 의하여 교리적 체계를 이룩했다. 이 교단의
역사적 배경은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가 있다. 샤이바 싯단타.라는 말은
'쉬바파의 완성된 교리체계'라는 뜻이며 이 파에다가 처음으로 교리적 체계를
제공해준 사람은 13세기의 마이칸다라는 슈드라계급 출신의 철학자였다. 타밀어로
된 그의 [쉬바지의 각성]은 12절로된 간략한 작품으로서 [라우라바 아가마]의
일부분에 근거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아룰난디, 우마파티(14세기)등에 의하여
발전됐다. 전자는 [쉬바즈나나 싯디], 후자는 [쉬바프라카샤]라는 저서를 썼다.
샤이바 싯단타는 3개의 영원한 실체로서 그들의 종교적 세계관을 설명한다.
즉 주인과 가축과 소구(파사)으로 상징되는 신과 개인영혼과 개인영혼을 속박하는
비정신물이다. 신은 여덟가지의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즉 자존, 청정, 지혜,
무한한 지성, 모든 속박들로부터의 자유, 무한한 은총, 권능, 그리고 무한한 희열이다.
그는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며 세계를 창조하고, 보호하고 파괴하는, 그리고 영혼들을
혼미하게 하며, 해방시키기도 하는 5가지의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는 세계의
능동인으로서 그의 힘을 수단인으로 하여 위의 다섯가지 활동을 한다. 이 힘은
신의 본질적인 면으로서, 의식이 있고 불변하며 영원한 에너지이다. 또한 신은
세계의 질료인이 되는 마야라 부르는 물질적인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야는
그의 힘과는 달리 그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개인의 영혼들을 가축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축과 같이 무지의 끈에
의하여 이 세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영혼들은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존재들이다.
영혼은 순수식으로서 비록 세신이나 구신과 연합해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영혼은 욕망과 생각과 행위의 기능을 가지며 편재적이다. 영혼의 수는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고 한다.
영혼을 속박하는 소구와 같은 비정신물 혹은 부정물(말라)에는 삼종이 있다고
한다. 즉 무지와 업과 마야이다. 무지는 시작이 없고 모든 사람들에 공통된 것이다.
무지는 순수식으로서의 편재적인 영혼을 지식과 힘에 있어서 유한하고 육체에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무지는 아나바말라 즉 미세한
부정물이라고 부른다. 영혼의 거짓된 세세성 혹은 원자성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지가 다름아닌 속박된 영혼의 속박성을 이룬다고 한다. 영혼을 속박하는
두번째 부정물인 업은 영혼의 행위에 의하여 산출된다. 업은 미세하므로 보이지 않고
영혼과 육체를 결합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업 자체가 자동적으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에 따라서 업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세번째로,
마야라는 부정물은 세계의 질료인으로서 그것으로부터 물질세계가 전개되어 나온다.
이상과 같은 세가지 부정물 가운데서 어느 것에 의하여 묶였는가에 따라서 영혼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어떤 영혼은 미세한 부정물만에 의하여, 어떤 것은
미세한 부정물과 업의 부정물에 의하여, 또 어떤 영혼은 세가지 부정물 모두에 의하여
속박되어 있다고 한다. 샤이바 싯단타에 의하면 세가지 속박의 원리들 자체는 상키야철학의
프라크르티처럼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혼과의 관계는 잠정적이기에 영혼은
그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해방을 얻기 위하여는 이 세가지 부정물을 제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신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신은 모든 영혼이 그를 알기를 원하기 대문에,
그의 은총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질 수 있으며 , 우리가 단지 그것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해방된 영혼들은 쉬바신과 하나가 되어 그이 영광과 위대함을
함께 한다. 영혼의 개체성은 남아 있지만, 희열 때문에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마치 소금이 물에 녹으면 물과 같이 편재하는 것처럼, 영혼들도 신과 같이 편재한다고
한다. 전에 언급한 세계의 창조활동 등과 같은 신의 다섯가지 기능은 쉬바신만의
것이지만, 영혼들은 신의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영혼의 본래적 성품이란 자신을 대상과 동
일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박된 영혼은 자신을 물질과 동일시하며, 해방된 영혼은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샤이바 싯단타의 철학은 주로 타밀 시인성자들의 신앙적 전통과 아가마의 사상에
근거하여 형성된 철학이다. 그러나 쉬바파의 사상가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교파적인
전통을 정통 베다의 전통에 연결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슈리칸타를 들 수 있다. 그의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4세기의 인물로 추정된다. 그는 쉬바신앙의 입장에 서서 [브라흐마경]의
주석서인 [샤이바소]를 썼으며 그의 주석은 16세기의 아파야 딕쉬타에 의하여
또다시 주석되었다. 이들의 베단타 해석은 대체로 샤이바 싯단타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라마누자의 한정불이론과 매우 흡사하다.
3. 재인식파의 철학
샤이바 싯단타파가 남인도에 근거를 둔 쉬파파임에 반하여 재인식파는 북쪽
카쉬미르지방에서 전개된 쉬바파의 철학이었다. 14세기 초엽부터 카쉬미르지방이
이슬람교로 개종되게 됨에 따라서 재인식파도 일찌기 그 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재인식파의 이름은 개인영혼이 자신을 쉬바신으로 다시 인식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교리에서 생긴 이름이다.
재인식파의 창시자는 9세기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바스굽타로서, 전통에 의하면
그는 쉬바신에 의하여 꿈에 계시를 받아 히말라야산의 마하데바봉에 있는 돌 위에
새겨진 [쉬바경]을 발견하여 이 교파의 교설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스판다 카리카]라는 저서를 썼다. 이 학파는 다른 이름으로는 [스판다론]이라고
불린다. 신의 진동에 의하여 다양한 현상세계가 나타난다는 이론에 근거한 이름인
것이다. 혹은 쉬바신과 그의 힘과 영혼의 세원리를 취한다 하여 삼체론이라고도 불린다.
바스굽타 이후 소마난다의 [쉬바지견]웃트팔라(10세기)의 [재인식경],
아비나바굽타(11세기)의 [최상의정요], 크세마라자(11세기)의 [쉬바경성찰]등에 의하여
재인식론의 철학은 완성되게 되었다.
샤이바 싯단타와는 달리 재인식파는 강한 일원론적인 철학을 전개했다. 그러나
불이론적 베단타와는 달리 이 학파는 다양성의 세계를 단지 우리의 주관적 무지의 소산으로
보지 않고 신의 사유의 객관화된 실재로 본다. 반복되는 세계의 주기적 변화는
신의 의식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신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깨어남, 깨어 있음, 잠들음,
잠의 네 상태를 순차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우주의 생성, 지속,
소멸, 휴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세계의 능동인이며 질료인인 것이다.
그의 창조적 활동은 화폭이나 물감 등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창작적 활동과 비슷하다고 한다.
신은 그의 본질적인 여러 힘들을 통하여 활동한다. 식력, 희열력, 의지력, 지력,
행위력과 같은 힘들이다. 그는 또한 마야라는 힘으로서 무한한 정신인 자신을 유한하고
원자적인 개별적 정신으로 나타나게끔 한다. 이상과 같은 힘들에 의하여 개인영혼들과
다양한 현상세계, 주관과 객관의 세계가 나타나나 사실은 신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다양성은 신의 사유로서 신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사물들이 거울에
나타나는 것처럼 신은 세계를 자신 안에 나타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재인식철학은 다양한 세계의 현현을 설명하기 위하여 상키야철학의 25원리에다
11원리를 추가하여 모두 36원리를 수립한다. 만물의 근원인 최고신 쉬바를 제일원리로
하여 36번째의 원리인 지(땅)가지의 전개를 논하는 것이다.
해설은 개인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을 독립적이고 개체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고
신과의 동일성을 은폐하는 무지를 제거해야만 가능하다. 무지의 제거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신의 은총으로써 그의 특수한 힘이 신자에게 하강하여 그를 사로잡아야만
한다고 한다. 이러한 힘에 의하여 영혼은 신과 본질적으로 하나됨을 재인식하며
모든 제한성과 차별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재인식을 획득한 사람은 생존시에 이미
신과 동등해지는 해탈을 얻으며 사후에는 개인성을 영원히 초월하게 된다고 한다.
제4부 현대의 인도사상
제21장 현대인도사상의 역사적 배경
1. 이슬람과 힌두교
굽타왕조에서 찬란한 꽃을 피웠던 인도의 고전문화는 굽타왕조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후에도 여전히 계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외적으로는 인도의 문화가 중국과
티벳, 그리고 동남아시아 각 지역으로 수출되었으며, 내적으로는 인도의 사회제도와
종교적 전통들이 더 공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굽타왕조의
몰락으로 인하여 인도는 남과 북에 많은 지역적인 왕국들이 분립하게 되었으며,
수백년 동안 끊임없는 대립과 정치적 혼란의 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인도에 정치적인 통일과 질서를 가져 온 것은 인도의
원주민들이 아니라 회교도들이었다. 서력기원 632년에 모하멧이 죽은 후 곧 시작된
이슬람교의 정치적, 종교적 팽창은 삽시간에 중동지방을 점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세력은 동쪽으로 팽창하여 중국국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약10세기 말부터는
터키족의 회교도들은 아프카니스탄으로부터 인도를 공략하여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3세기부터는 북인도의 대부분이 회교도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였고, 14세기에는
데칸지방에 회교왕국이 세워졌다. 16세기에는 아크바르(1556~1605)의 정복에 의하여
남쪽 끝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은 회교제국인 무굴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무굴제국의 정치적인 힘은 아우랑젭의 때에 이르러 극치에 달했다. 그러나 아우랑젭이
죽은 후 무굴제국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이 때와 더불어 서구라파 제국의
세력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영국은 이미 인도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발판을 굳혔으며, 19세기 초에는 전인도를 통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도는 13세기부터 1947년에 정치적 독립을 되찾을 때까지 약 700여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다.
이슬람은 그 성격상 강한 비타협적 종교였으므로 힌두교와의 동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많은 힌두교도들이 이슬람에 개종하기는 하였으며 힌두교 그 자체는 이슬람의 오랜
정치적 지배에는 불구하고 비교적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지속되었다. 우선 수적으로
보아서 회교신자는 열세였고 힌두교의 사회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캐스트제도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슬람에 개종된 사람들까지도
이 제도를 여전히 준수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성자들에 의하여 주도된
신앙운동은 중세인도의 전역을 휩쓸면서 힌두교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정신적
위로와 안정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힌두사가들은 이슬람의 순수하고 엄격한 유일신 신앙의
영향을 받아 다신교적 힌두교의 개혁과 더불어 이슬람과의 융화를 꾀하는 종교적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을 대표하는 자로서 카비르(1380~1460)와
나낙(1469~1538)을 들 수 있다.
카비르는 베나레스 출신으로서 힌두교의 오랜 신앙적 전통을 이어 받았다. 그는
비슈누의 화신 라마만을 신으로 섬기는 고행자들의 교단을 창시한 라마난다의
제자였다. 그러나 카비르는 힌두교의 불이론적 철학과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과의
결함을 꾀하였으며 스스로를 라마신과 알라의 자식이라 불렀다.
그는 이슬람이나 힌두교의 독단과 배타주의를 배격하고 신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의 많은 이름들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음을 주자했다. 그에게는 신상숭배나
신전이나 이슬람의 모스크나 모두 신을 어떤 장소에 제한시키려는 그릇된 것으로서
신은 돌이나 건물에 관계없이 그를 예배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알린다고
한다. 카비르는 이슬람인 힌두교의 의식주의를 배척하고 성스러운 자면 누구든지
가까이했다.
카비르의 사상은 나낙에 의하여 더욱더 발전되었다. 나낙은 힌두교와 이슬람으로부터
결별하고 힌두교신자와 회교신자를 망라하여 하나의 신을 섬기도록 하는
씨크스(<제작들>이라는 뜻)라 불리는 새로운 종교 교단을 창설했다. 씨크족의
사상은 주로 힌두교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이슬람의 엄격한 유일신앙을 강조하며
신상숭배를 배척했다. 나낙의 사상 씨크교도들은 찬송들을 수집하여
그란트(<책>이라는 뜻)라는 성전을 만들어 그들의 예배의 중심을 삼았다.
한편 무굴제국의 수립 이후 이슬람교내에서는 그 강한 비타협성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의 융화를 꾀하는 자유로운 사상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무굴왕조의 제4대왕 샤자한의 장남 다라 쉬코(1615~1659)였다. 그는 아크바르 이래
대대로 내려오는 무굴왕들의 종교적 관용성을 이어받아 이슬람과 힌두교의 융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의 영향 아래 힌두교의
신비주의, 특히 우파니샤드의 사사에 심취하여 양자의 동일성을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는 우파니샤드를 순수한 유일신사상를 가르치는 신의 가장 분명한 계시로 간주하였으며,
당시의 우파니샤드 문헌 52점을 수집하여 범어로부터 페르시아어로 번역할 정도로
우파니샤드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다라 쉬코의 이와 같은 융합적인 태도는 보수적인
이슬람 지도자들의 반발을 사서 결국 그는 배교자로 처형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그의 동생 아우랑젭(1658~1707)은 보수적인 순니파의 회교도로서 그는 아크바르 이래
무굴왕실의 다분히 편애주의적 경향에 종지부를 찍었다.
2. 영국의 통치와 힌두교의 개혁운동
이슬람의 지배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의 인도지배는 힌두사회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영구의 통치는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왔던
힌두교도들에게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영국인들의 영향은
이슬람의 경우와는 달리 대체적으로 세속적이었기 때문에, 이슬람의 경우보다는
비교적 받아들이기 쉬운 편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인들에 의하여 도입된 영어를
통한 근대식 교육은 비록 대다수의 힌두교도들에게 혜택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 교육을 받은 소수의 인도 지성인들에 의하여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영국식 교육은 처음에 오히려 이슬람교 신자들 가운데서 더 강한 반발을 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인도지배는 비록 이슬람의 지배보다 시간적으로는 훨씬 더 짧았지만,
인도사회와 문화에 대하여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영국인들에 의하여 세워진 법질서 및 그들이 도입한 근대적인 합리적인 교육은 종래의
바라문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전통적 사회질서와 관습에 상충되는 점이 많았으며,
인도인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원리와 가치관을 제시했던 것이다. 바라문의 사회적
특권이라든가 노예계급과 천민들에 대한 차별, 여자아이들의 조혼제도,과부들의
재혼금지, 사티제도(남편의 죽음과 더불어 부인을 화장하는 것)들의 비합리성은 영국인들에
의하여만 지적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을 받은 소수의 힌두 지성인들 자신에
의하여도 자각되게 되었으며, 이들은 사회적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개혁운동들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더불어 들어온 기독교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힌두교의 여러 종교적 현상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았다. 힌두교의 다신교적 신앙과 신상 숭배와 같은 것은 항시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비난은 새로운 교육을 받은 일부 인도의
지성인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제 힌두교 내에서 일어난 몇 가지
대표적 개혁운동과 사상적 강성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1. 브라흐모 사마쥬
이 운동은 1828년에 람모한 로이(1774~1833)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람모한 로이는
영국식 교육을 받은 최초의 힌두 개혁자로 간주되며, 그는 힌두교의 사회적 전통의
개혁뿐만 아니라 서구식 교육의 확립을 위하여 힘썼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면
다신교적 신앙이나 신상 숭배와 같은 당시 힌두교의 모습들은 힌두교의 본래적인
가르침으로부터 타락한 것이다. 그의 해석에 의하며 우파니샤드는 유일신적인
사상을 가르치며, 그는 이것에 의하여 당시의 힌두교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1815년에서 1819년 사이에 벵갈어와 영어로 우파니샤드를 번역했다.
람모한 로이에 의하여 시작된 <브라흐모 사마쥬>의 운동은 그후 데벤드라나트 타골 등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다.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골(1861~1941)
은 데벤드라나트 타골의 아들이었다.
2. 아리야 사마쥬
'아리야 사마쥬'운동도 역시 힌두교의 종교적, 사회적 개혁에 힘썼으나, 한편으로는
브라흐모 사마쥬가 너무 서양의 가치와 문화를 숭상한다고 비판하면서 종교 및
사회개혁의 원리를 베다의 권위에서 찾으려는 좀더 보수주의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다야난다(1824~1883)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그에 의하면 베다는
어디까지나 유일신사상을 가르치며, 신상숭배와 캐스트간의 차별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힌두교의 개혁은 어디가지나 베다의 원리에 서서 해야지, 서구라파의 학문이나
가치를 척도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운동은 힌두교의 전통에 대한
새로운 프라이드를 심어 주었으며, '브라흐모 사마쥬'보다 좀더 대중적인 개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양자 모두 그 운동에 참여한 자의 범위 이상을 넘어서서
힌두사회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3. 라마크리슈나 선교회
라마크리슈나(1836~1886)는 벵갈지방에서 출생했다. 그는 벵갈지방의 16세기의
성자 챠이타니야와 같이 그 지방의 비슈누-크리슈나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자였다.
그는 수많은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여러 종교가 궁극적으로 하나임을 깨달았으며,
또한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을 통하여 이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도 얻었다.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까지도 공부하였으며, 심지어는 모하멧과 예수의 환상까지도
보았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케샵 챤드라 센과 비베카난다(1863~1902)와 같은
유능한 제자들에 의하여 널리 전파되게 되었다. 특히 비베카난다는 1893년에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종교회의'에서 베단타철학에 입각한 힌두교의 포용적 종교관을
소개했으며, 1896년에는 '뉴욕 베단타협회'를 창설했고, 인도에 돌아와서는
'라마크리슈나 선교회'를 창설했다. '라마크릭슈나 선교회'는 인도와 세계 곳곳에다
지부를 발족시켜서, 베단타 철학을 중심으로 한 힌두교의 세계관을 서양에 소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4. 타골
라빈드라나트 타골(1861~1941)은 아마도 간디와 더불어 현대 인도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간주되는 사상가이다. 1912년에 출판된 그의 시집 [기탄잘리]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현대인도를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는 세계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면서 근세의 민족주의의 광란과 물질주의의 악을
강조하면서 전인류의 정신적 자산을 일깨웠다. 그는 특히 인도와 아시아의 자신과
세계를 위한 영적 사명을 강조하면서 서양의 민족주의적 전철을 밟지 말 것을
경고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인도의 정치적 독립을 원하면서도 극단의 정치일변도인
투쟁방식을 반대했으며 인도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그러기에 그는 간디에 대한
깊은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체적인 자치의 운동들을 좁은 민족주의적인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비판했던 것이다.
타골은 베단타철학의 일원론적 사상을 이어받고 있지만 세계를 단지 환술로
보지는 않는다. 신은 세계속에서 자신을 나타내며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힘을 인식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5. 간디
간디(1869~1948)는 인도의 민족주의자 정치가로서 영국의 교육을 받은 변호사
출신이었다. 그는 그의 사상적 기반을 예수의 산상보훈이나 톨스토이의
평화주의에서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전통에서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이 점이 그로 하여금
인도의 대중에 막대한 영향력과 호소력을 지니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마하트마
즉(위대한 영혼)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하나의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되었다.
그는 모든 인도인들에게 자치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그의 자치의 개념은 단지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개인의 정신적인 자기수련과 완성까지 의미했다. 간디는
이러한 정신적인 자기수련의 지침으로써 [바가바드 기타]의 행동주의적 철학인
'카르마 요가'의 사상을 생활속에 실현하고자 했다. 인도의 자치를 얻기 위한 그의
'진리의 지지'와 비폭력의 실천은 전세계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간디는 타골의 비판에 대하여 자기가 전개한 외국상품의 거부등 구체적인
자치의 운동들은 수백만의 굶주린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이라고
옹호하면서 경제와 윤리, 정치와 종교의 불가분리설을 주장했다. 그는 인도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이고 침략적인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것이며 인도는 세계를
위하여 죽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22장 현대의 인도철학
1. 오로빈도의 철학
타골과 간디는 그들의 막대한 사상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라기보다는
시인과 정치가, 그리고 넓은 의미로서의 사상가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인도의 철학적 전통을 등에 업고서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인도적 현대철학의
대표적 존재로서 오로빈도와 라다크리쉬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로빈도(1872~1950)는 간디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교육을 받은 후 귀국하여
인도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힘썼다. 그도 역시 [바가바드 기타]의 '카르마 요가'사상에
심취하였으나, 나중에는 직접적인 정치활동에서 물러서서 요가의 수행자로서, 철학자로서
인생을 마쳤다. 그의 사상은 대체로 베단타철학의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인도철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은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며 브라흐만은 만유의 통일적인 원리인
일자이면서도 현상세계의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브라흐만은 일이면서도 다이고,
다이면서도 일인 것이다. 오로빈도에 의할 것 같으면 불교는 일을 무시하고 다만
보았으며, 샹카라의 철학은 다를 무시하고 일만 본 맹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순수존재, 순수의식, 순수희열로서의 브라흐만은 순전한 희열 가운데서 일종의 유희로서
스스로를 현상적 세계로 나타낸다. 이 세계는 그의 마술적인 힘인 마야 혹은 샥티로서
실재하는 것이다. 오로빈도는 브라흐만이 자기 자신을 제한하여 다양한 현상세계로
나타내는 힘을 '수퍼 마인드'라 부른다. 수퍼 마인드는 삿트, 칫트, 아난다로서의
브라흐만과 다양한 현상세계와를 매개해 주는, 브라흐만의 자기의식으로서의
힘인 것이다. 브하흐만이 수퍼 마인드를 통하여 자기 스스로를 현상세계로 나타내는
과정을 오로빈도는 하강 혹은 퇴전이라 부른다. 이 하강의 결과로 세계는 브라흐만을
은폐하는 베일과 같기도 하나 동시에 세계안에는 브라흐만이 내재하여 세계는
끊임없이 영적인 진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 진화의 과정을 오로빈도는 상승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물질에서 생명이 진화하고, 생명에서 정신이 진화한다. 인간은
이 하강과 상승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지 물질, 생명, 정신뿐만이 아니라, 신적인 영혼, 혹은 자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진화과정 속에서 무지를 제거하고 자신에 대한 영적인 자각을 통하여
물질, 생명, 정신으로서의 좁은 자아를 초월하여, 수퍼 마인드의 무한한 힘과 지식에
도달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수퍼 마인드에 도달하면, 우주내에 처음부터 잠재해 있던 영적인
힘이 삿트, 칫트, 아난다는 완전히 드러나고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인간의
자기 실현이요, 온 우주의 진화적인 자기실현인 것이다. 인간과 우주가 영적으로
실현된 상태를 오로빈도는 신적인 삶이라 부르며, 이러한 변화된 인간을 영지적
존재 혹은 초인이라 부른다. 그는 이러한 신적인 삶의 궁극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는 통일적 요가라는 수행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로빈도에
의하며 초월적 세계의 신적인 삶에 도달한 초인은 또 다시 하강하여 수퍼 마인드의
빛과 힘을 이 세계에 퍼지게 하며 모든 존재의 초월화와 성화를 돕는다고 한다.
오로빈도의 철학은 베단타 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현대 서구라파의
진화론적인 영향을 받아, 샹카라의 세계 부정적인 브라흐만 가현설을 버리고
브라흐만 전변설적인 입장에 서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영적 해석을
시도한 철학이라 볼 수 있다.
2. 라다크리쉬난의 종교철학
라다크리쉬난(1888~)은 현대의 살아있는 인도 지성을 대표하는 사상가다.
그는 비베카난다가 일찌기 힌두교의 세계관과 종교사상을 서양에 소개했던 것과
같이 베단타철학에 입각하여 종교의 본질과 의미를 해석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도의 철학과 종교사상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풍부한 종교적 다원성을 수용해 온 힌두교의 포용적
정신을 밑받침으로 하는 종교철학을 전개하여 현대에 있어서 종교간의 이해와 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라다크리쉬난은 수많은 저서들을 통하여 일관성있게 종교적 독단주의와 세속적
물질주의의 양극을 비판하며 온 인류의 영적생활의 공통성과 통일성을 웅변적으로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종교란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교리, 신학, 제도, 의식등
종교의 외적 표현은 다양하고 서로 많은 차이들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내적인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한다.
종교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체험에 있는 것이지 교리나 신학과 같은 외적인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그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체험은 종교의 영혼이요,
표현은 종교의 육체라고 그는 말한다.
종교적 체험이란 우리의 모든 가치들과 경험들을 통일시켜 주는 것으로서 영원하고
절대적인 실재에 대한 우리의 전인적 추구를 의미한다. 라다크리쉬난은 종교적
체험의 특성으로서, 첫째로 주객의 분리를 초월한 통일적 의식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자아의 체험과 같이, 이러한 통일적 의식의 상태에서는 아는 자와 알려진 것,
의식과 존재, 사유와 존재의 대립이 초월되며 여러 가지 관념들과 감정들의 구별도
사라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좁은 개인적 자아의 테두리가 보편적 자아에 의하여
무너진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그 자체에 있어서 충족적이고 완전하여 그 의미와
진리와 타당성에 있어서 다른 어떤 외부적인 보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자명성과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 체험에는 일상생활의 긴장이 사라지고 내적인 평화와 기쁨이 지배한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또한 모든 언어적 표현과 논리를 초월한다. 단지 상징적
표현이나 암시만이 허용될 따름이다. 이들 표현들은 물론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특수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라다크리쉬난은 말하기를
절대적으로 순수한 종교적 체험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종교적 체험은 어디가지나
어떤 특수한 종교적 전통안에서 발생하며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의 내용, 즉 대상은 우리의 모든 해석을 초월하는 지고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그것을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으로 체험하고 해석할 때는
절대자라 부르고, 우리가 그것을 의식과 희열의 존재로 해석할 때는 신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는 인격과 비인격 및 모든 해석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초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것과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영혼 혹은 자아가 이 실재에 참여하고 있기 대문인 것이다. 따라서 실재와의
접촉을 위하여는 우리의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닦아서 자아에 부착되어 있는 이질적인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특별히 묵상을 자아발견의 길로 강조하고 있다.
종교의 목표는 수행을 통하여 자아를 변화시키고 온 인류의 삶을 성화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인 교수인 것이다.
부 록
1. 인도철학의 실재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경험되는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과 사건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그들 상호간에 어떤 체계나 통일적 법칙을 찾아서
파악해 보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지적요구이다. 이러한 지적요구는
동시에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고 혼돈된 세계속에서 삶의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위한 실천적인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듯한 무상하고 유한한 세계 가운데서 그 배후에 어떤 불변하고
무한한 참다운 실재를 찾는 것도 또한 온 인류가 추구해 온 공통적인 종교적 철학적
관심사였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지적, 실천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한 마디로 말해 실재관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본서에서 인도철학의 다양한 실재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다양한 실재관들을 각 학파의 전통과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 좀더 체계적이고
유형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인도철학의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선 인도철학은 다양한 현상세계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실재를 어떻게 보았는가를
먼저 정리해 보자.
1. 초기의 베다인들은 대체로 다양한 현상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식적인
세계관을 지녔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세계는 여러 놀라운 힘들에 의하여 지배된다고
믿었고 이 힘들을 인격적인 신으로서 숭배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복잡다단한
현상세계를 영혼이나 원초적 물질이나 원자와 같은 몇 가지 존재원리로 환원시켜
이해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베다인들도 초기에 와서는 제신의
배후에 어떤 통일적인 하나의 실재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실재에 대한
추구는 우파니샤드에 와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브라흐만이라 불렀으며 이 브라흐만을 또한 인간의 본질적 실재인
아트만과 동일시했다. 동시에 인간의 영원한 본질은 인간의 의식의 탐구를 통하여
순수식으로 파악되었다.
2. 불타는 우파니샤드의 하나의 영원한 실재를 탐구하는 일원론적인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세계와 인간을 단지 여러 가지 존재요소들, 즉 여러가지 성질, 상태 혹은
사건들의 복합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일종의 현상주의적인 세계관을 주장했다. 이러한
존재의 요소들은 결코 독자성을 지닌 영원한 실재들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상의상자하며
조건적으로 발생하는 작용이나 힘들로서 간주되었다. 그러나 불타도 이러한
상대적이고 무상한 존재요소들만을 존재하는 것의 전부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첫째는 이러한 존재요소들이 완전히 소멸된 적정한 상태로서 열반이라는 어떤
절대적이고 언어로서 규정하기 어려운 실재를 인정한 것이다. 둘째는 존재요소들간의
상호작용과 생멸에는 어떤 일정한 법칙성이 있음을 불타는 가르쳤다. 십이지연기설과
같은 것이다. 이 연기법 자체는 어떤 항구적인 진리인 것이다.
3. 정리와 승론철학은 소승불교와 같은 다원적 세계관을 대표하면서도 불교와는
달리 다원적 요소들을 무상한 것들로 보지 않고 영원한 원자들과 이 원자들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 지, 수, 화, 풍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시간, 공간, 의근들과 자아들도
영원한 실체로 간주한다. 이러한 실체들 외에도 성질, 행위 혹은 운동, 보편성, 특수성,
내재의 범주들로서 세계를 파악하며 이들 범주들을 모두 객관적으로 실재의
모습들을 본 것이다.
쟈이나교는 존재를 다섯 가지의 연장적 실체로, 즉 공간, 운동, 정치, 물질, 영혼들로
파악하며 챠르바카의 유물론적 철학은 지, 수, 화, 풍의 4요소만을 영원한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드바의 이원적 베단타 철학은 신과 영혼들과 원초적 물질을
세가지 영원한 실체로 파악하며, 상키야철학은 단지 하나의 통일적인 원초적 물질과
다수의 영혼들만을 영원한 실체라고 주장한다.
4. 이상과 같이 세계를 다원적으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모든 다원성과 현상세계의
다양성을 무지로 인해 나타난 환술로 보고 하나의 실재에 의하여 세계를 통일적으로
해석하는 일원론적 실재관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우파니샤드에서 이미 찾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본격적인 이론으로 전개된 것은 대승불교의 철학과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에서이다. 우선 중관철학에서는 모든 세계의 차별상을 일단 공에 의하여
부정한다. 공이 곧 실재이며 다름 아닌 열반인 것이다. 그런 중관철학에서는
공이란 현상세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실체도 아니며 사후의 세계를 초월하여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실재도 아니다. 생사 자체가 곧 바로 공이며 열반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종종의 차별상은 무지의 소산인 환술이며 오직 속세의 단계에서
가명으로만 인정될 뿐이다. 유식철학은 공을 말하면서도 식의 전변을 통하여 가명의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위와 같은 대승불교의 실재관에 영향을 받아 우파니샤드와 [브라흐마경]을
재해석하고 철저한 일원론적인 실재론을 전개한 것이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인
것이다. 여기서는 순수한 존재, 식, 희열로서의 브라흐만만이 유일무이한 실재이며
그 이외의 개인적 영혼들이나 차별적 사물들은 모두 무지의 영향아래 나타나는
환술일 뿐이다. 그러나 같이 브라흐만의 유일한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라마누자를
중심으로한 신앙적 베단타 철학자들은 동시에 개인영혼들과 물질의 실재성도
인정하려는 수정된 베단타철학을 발전시켰다.
다음으로 이상과 같은 실재관에서 보고 있는 궁극적인 실재와 현상세계와의
인과관계내지 실재론적 관계를 살펴볼 것 같으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4종의 이론을
구별할 수 있다.
1. 시기설:이 설은 정리와 승논학파에서 주장하는 것으로서 세계의 사물들은
영원한 원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원자들의 결합에 의하여 원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들이 비로소 생기한다는 이론이다. 이것은 과가 인 속에서 이미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인중무과론을 따르는 것이다.
2. 전변설:이 설은 수론철학의 실재론에 입각한 것으로서 다양한 현상세계를 어떤
통일적인 근본적 실재의 전변으로 보는 견해이다. 즉 과는 인의 변화나 변형에 지나지
않으며 인 속에 이미 가능적으로 잠재해 있다는 인중유과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위의 두 입장은 인중유과론과 인중무과론이라는 근본적 차이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현상세계의 원인은 어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임을 말하는
데서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와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은 이러한 인과론을
배척한다. 왜냐하면 원인이 영원한 것이라 할 것 같으면 결과도 영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반론이다. 그러나 불교와 불이론적 베단타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두개의 정반대되는 결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즉 불교에 의하면 결과가 무상하므로
원인도 무상한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반면 불이론적 베단타는 무상하고
다양한 결과는 환상에 지나지 않을 뿐 전혀 실재성이 없음을 주장한다. 브라흐만이
유일의 실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인과론을 더 추가하게
된다.
3. 중합설:이 설은 불타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근거한 것으로서 모든 사물들은 무상한
제법의 협력과 화합에 의하여 조건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며 영원한 실체란 피안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제론철학의 원자설과 같이 세계에 대한
다원적 견해이며 인중무과론을 주장하지만 승론과는 달리 인의 영원성이나 실체성을
부정한다. 승론은 사물의 원인으로서 영원한 원자적 실체를 주장하지만 불교는
무상한 원자적 사건들만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영원한 실체를 부정하고 일절을 순간적인 제법의 중합과 연속으로 보는 불교의
입장은 인격의 연속성이나 업보의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설이절유부에서는 삼세실유법체항유를 주장하여 법을 실체화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반고경전의 공사상이나 용수의 중관철학은 이러한 경향을 배척하고 제자의 무자성과
일절계공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공이라는 실재의 세계에서는 인과와
생멸이란 성립하지 않으며 단지 속세의 관점에서만 인정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유가행철학은 실재를 공으로 보되 다른 한편으로는 식전변설을
주장함으로서 수론의 전변설적인 인과론과 약간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물론 식과 물질은 전혀 다른 존재론적 원리이다.
4. 가현설:이것은 현상세계의 모든 차별성과 다양성을 무지 때문에 나타나는 환술로
보며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만이 실재임을 주장하는 견해로서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의
입장이다. 중관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인과론이란 가현으로서의
현상세계에서만 타당한 이론이며 일상적 진리의 관점으로부터는 인정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진리의 관점에서는 허망한 세계와 더불어 사라지는 것이다. 절대 유일의
실재인 브라흐만은 모든 인과관계를 떠난 실재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볼 것 같으면 현상세계는 어디까지나 브라흐만을 토대로 하여 나타나는 고로
브라흐만을 세계의 원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은
브라흐만가현설의 인과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한편 라마누자를 위시한 신앙적
베단타철학자들은 가현설을 피하고 일종의 전변설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인도인의 전통적 우주관
1. 힌두교의 우주형상지
베다에 나타난 우주관에 의하면 우주는 삼층구조를 가진 것으로 간주됐다. 위로는
해와 달과 별들과 하늘의 신들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하늘이 있고 그 밑에는 새와
구름이 공중의 신들이 활동하는 공중권과 아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납작하고 둥근 땅이
있다. 그러나 후에 힌두교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할 것 같으면 우주는 이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즉 우주는 연기적인 창조와 해체의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영원하고 방대한 체계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수히 많은 세계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는 브라마신의 란과 같이 계란 모양을 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모두 21개의
대(구역)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지구는 그 중에서 위로부터 일곱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지구의 위로는 올라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운 6개의 천계가 있으며 거기에는
주로 신들이 거하고 있으며 지구 밑으로는 파탈라라 부르는 7층의 지하세계가 있어서
나가(인면사신의 동물)등의 신화적 존재들이 살고 있다. 이 파탈라 밑에는 또 7층으로 된
지옥이 있어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고통스러운 곳이 된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세계는 빈 공간 속에 떠 있으며 다른 세계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한다.
지구의 크기와 모양에 관하여 인도의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구형이라고 생각했고
크기가지도 거의 오늘날과 비슷하게 계산했지만, 종교적인 세계관은 베다 이래로
내려오는 전통을 쫓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하고 납작한 원반으로 생각했다. 지구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어 해와 달과 별들이 그 주위를 돌고 있다. 이 수미산의 사방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4개의 대륙이 있으며 그 가운데서 남쪽에 있는 것이 소위
간유제로서 이곳이 인간들이 사는 곳이며 이 대륙의 남쪽에 히말라야산에 의하여
격리되어 '바라타자손들의 땅'즉 인도가 위치해 있다고 믿었다.
푸라나들에 나타나 있는 우주형상지는 이보다 더 상상적인 비약을 한다. 그리하여
간유제는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환형으로 생각되었으며 환유제는 또한 '플락사디파'
라 불리는 다른 하나의 대륙에 의하여 환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식으로 하여
지구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모두 7종의 환형의 대륙으로 되어 있으며 대륙과
대륙 사이에는 각각 소금, 당, 술, 버터유, 밀크, 의유, 물로 된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다.
2. 불교의 우주관
불교의 우주관에 의할 것 같으면 온 우주는 속세, 색계, 무색계의 삼계로 되어있다.
이 삼계는 물론 생사의 세계로서 열반을 얻기까지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속계는
색, 성, 향, 미, 촉, 법을 지각하는 6가지 감각기관을 지닌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서
그들의 업에 따라서 태어나게 되는 5가지의 존재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지옥으로부터 시작하여 아귀, 축생, 인, 그리고 속세의 맨 위에
잇는 신들이 거하는 영역이다. 지옥은 지하에 있으며 어두운 것, 추운 것,
더러운 것의 삼종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8가지의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축생과 인은 지구의 표면에 거하며 신들은 수미산의 정점위에 있는 천계에 거한다.
삼심삼천, 야마천, 아율천(투시타)등을 포함한 6개의 천이 있다.
속세의 위에는 미세한 물질로 된 색계가 있다. 여기에는 미, 향, 촉의 3감각은 없으나
여기에 거하는 자들은 아직도 형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색계는 사단계의 선정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으로서 17개의 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색계의 위에 무색계가 있다. 이것은 비물질적인 세계로서 여기에는 색과 성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정신적인 자취만 남아있을 분이다. 이 무색계도 역시
선정에 의하여 들어갈 수 있는 세계로서 사무색정의 등급이 있다. 즉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그리고 비상비비상처이다. 색계와 비색계를 합쳐서 범계 혹은
범천이라 부른다.
3. 인도철학 및 정치, 문화사 연표
* 기원전 2500-1500
정치, 문화사: 모헨조다로 하라파의 인더스 문명
* 기원전 1500-1000
정치, 문화사: 아리아인의 인도침입
철학사: 베다의 본집 사미히타 형성
* 기원전 1000-700
정치, 문화사: 부족국가들의 형성, 브라흐마다의 형성
* 기원전 700-600
정치, 문화사: 아리아인들이 갠지스강 유역을 개간하고 정착함
철학사: 초기 우파니샤드의 형성, 파르슈바
* 기원전 600-500
정치, 문화사: 군주국가(마가다,코살라등)와 도시문화의 발달
철학사: 고타마 불타의 탄생(566), 육사외도, 마하비라
* 기원전 500-400
철학사: 고타마 불타의 입적(486), 왕사성에서의 제일결집
* 기원전 400-300
정치, 문화사: 파니니의 범어문화 정리, 알렉산더대왕의 인도침입(326),
챤드라 굽타의 마우리아 왕조(320년경), 카우틸리야
철학사: 상좌부,대중부의 근본분열, 중기 우파니샤드의 형성, 카필라
* 기원전 300-200
정치, 문화사: 아쇼카왕의 즉위(269)
철학사: 불교의 확장과 세일론 전번, 후기 우파니샤드, 설일절유부
* 기원전 200-0
정치, 문화사: 슝가왕조의 성립(186),서북부의 희랍왕국들
[마누법전] 편찬, [마하바라타]형성, 사타바하나왕조(기원전 1세기)
철학사: 부파불교의 발전, [바가바드 기타],
정통철학파들의 원조들: 파탄잘리, 카나다, 가우타마, 쟈이미니, 바다라야나
* 기원 1-100
정치, 문화사: 쿠샤나왕조
철학사: 대승불교의 흥기와 초기대승경전들, [미맘사경] [발지론]
* 기원 100-200
정치, 문화사: 카니쉬카왕
철학사: [승론경] [정리경] [대비자자론]
* 기원 200-300
정치, 문화사: Mahabharata와 Ramayana의 완결, Yajnavalkya Smrti
철학사: [해탐밀경], Aryadeva Harivarman, Maitreya
* 기원 300-400
정치, 문화사: 굽타왕조(318), Kalidasa, Visnu-purana, 법현의 방인
철학사: Asanga, Vasubandhu [브라흐마경], [요가경], [수론송], [릉가경]
* 기원 400-500
정치, 문화사: 융노족의 인도침입
철학사: 진나, 덕혜, 불음, Vallabhi 결집
* 기원 500-600
정치, 문화사: 굽타왕조의 붕괴
철학사: 불호, 청변, 호법, 안혜
* 기원 600-700
정치, 문화사: Harsa왕의 즉위(606), 현장, 의정의 방인
철학사: 계현, 지광, 월칭, 법칭
* 기원 700-800
정치, 문화사: 팔라왕조
* 기원 1000-1100
정치, 문화사: 회교도의 인도침입
* 기원 1200-1300
정치, 문화사: 회교도의 북인도 지배
* 기원 1300-1400
정치, 문화사: Vijayanagara 왕조
* 기원 1500-1600
정치, 문화사: 무굴제국 Akbar
* 기원 1600-1700
정치, 문화사: 동인도회사 설립
* 기원 1700-1800
정치, 문화사: 영국의 불란서 세력 제거
* 기원 1800-1900
정치, 문화사: 영국 통치
* 기원 1900-
정치, 문화사: Gandhi, Tagore 인도의 독립(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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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도철학사 - 지은이: 길희성/펴낸곳: (주) 민음사|작성자 관문
첫댓글 이책 한권만 습득하면 종교(특히 불교)에 대해서 이해가 갈것으로 봄,(아이고 이복잡한 종교가 우째서 나하고 인연됐을꼬^^)
저작권으로 막아 둡니다..인도 철학사 검색하면 네이버 블러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