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개의 두개골과 설명 ▣
위 사진은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개의 두개골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개뼈와는 달리 두개골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있어
신석기 시대에 한반도 남해안 일대에 살던 원시견의 형태를 추정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입니다.
제가 키우고 있는 개의 두개골을 촬영하여 비교해 본 결과 두개장 : 안면장의 비율이 약 4 : 3.2 정도 나왔습니다.
지금 일본개의 표준은 6 : 4 인데
모리교수의 말처럼 진도개가 일본개가 주둥이가 약간 더 길다고 본다면
4 : 3 정도일 것입니다.
6 : 4 = 3 : 2 이고
4 : 3 = 3 : 2.2222 입니다.
두개장과 안면장의 비율 측정 기준은 아래의 리플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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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삼동패총의 문화층
지금부터 약 12,000년 전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한 강가나 바닷가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신석기인들이 모여 살던 곳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신석기인들의 생활을 보여 주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패총, 주거지, 분묘 등 있다.
이 중에서도 신석기인들이 생활하면서 버린 각종 폐기물들이 쌓여 만들어진 패총은 신석기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패총유적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동삼동패총이다.
동삼동패총은 광복전 1929년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 국립 중앙박물관과 부산 시립박물관의 발굴조사로 유적의 성격과 신석기 사람들의 문화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 석기, 일본 죠몽토기, 골각기, 토제품, 각종 조개류, 고기뼈, 동물뼈 등이 있다.
동삼동 패총은 다량으로 출토된 각종 유물의 특징과 유적의 규모로, 남해안 지역의 중심집단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럼 동삼동 조개무지의 각층별 문화 내용과 출토 유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재까지 조사된 동삼동패총의 퇴적층위와 층위에 따른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동삼동패총은 크게 5개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문화층은@@@
지금으로부터 약8,000년 - 7,000년 전에 만들어진 동삼동패총의 가장 오래된 문화층(9-7층)이다.
이 문화층의 특징적인 유물로 토기의 표면에 가는 점토띠를 여러 가지 형태로 붙여 문양을 만든 융기문토기(덧띠무늬토기)이다.
이외에도 덧문지른토기, 가는선무늬토기 등의 즐문토기와 곰모양토우, 숫돌, 망치돌, 흑요석제 석기, 골각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 중 곰모양토우는 그 당시부터 이미 곰 숭배 문화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옹관묘가 나온 곳 역시 제1문화층인데, 이 옹관묘는 함께 출토된 다른 유물들로 미루어 봤을 때, 약7000년 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질로 되어 있는 흑요석은 어느 돌보다도 단단하고, 결대로 잘라내어 가공하면, 칼 만큼이나 날카로워서 사냥과 음식물을 조리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 흑요석은 재질과 특징으로 보아 일본의 구주지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판단되며, 신석기의 이른 시기부터 바다 건너 일본과 교역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확실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제2문화층은@@@
눌러찍은무늬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소위 부산 영선동패총을 표식으로 하는 문화이며 지금부터 6000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제2문화층의 영선동식토기는 일본의 구주지역의 쇼바다식토기문화의 성립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조사한 동삼동패총 3호주거지는 제2문화층을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3문화층은@@@
지금으로부터 5,000 - 5500년년 전에 형성된 제3문화층은 동삼동패총의 가장 두터운 퇴적층이면서 가장 중심적인 문화층(제5층)이다.
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시문구로 토기표면을 그어 여러 가지 문양을 장식한 빗살무늬토기, 토기의 표면을 붉게 물들인 단도마연토기, 무문양토기가 이 문화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흙으로 만든 원반형의 토제 귀걸이와 투박조개 등으로 만든 조개팔찌는 당시 신석기인들의 미의식과 장신구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 문화층에서 발견된 집자리는 50cm정도 땅을 파서 원형이나 방형으로 만든 형태이다.
이 움집터 안에서는 불에 탄 조·기장이 출토되었는데, 신석기 인들은 어패류, 동식물 뿐 아니라 원시적인 농경을 통해 잡곡 등을 재배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고 있다.
@@@제4문화층은@@@
다음 문화층은 지금으로부터 4500년전 쯤에 형성된 신석기 시대 후기의 제4문화층(3층, 4층)이다.
이 문화층에서는 어패류의 양이 적어지고, 땅을 일구는 석기의 양이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고기잡이나 채집 중심의 생활에서 조금씩 벗어나 농경생활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문화층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퇴화된 빗살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석기와 골각기 등도 출토되고 있으나 앞 단계의 문화층과는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빗살무늬토기는 앞 문화층에 비해 장식성이나 정형성은 조금 떨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제5문화층은@@@
제5문화층은 동삼동패총의 마지막 문화층(2층)인 동시에 남부지방 신석기시대 종말기(만기)의 문화이다.
지금부터 약 3,500년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토기의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소위 겹아가리 빗살무늬토기가 중심을 이루는 문화이다.
이 문화층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고래의 척추뼈와 갈비뼈가 출토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외에 돌고래, 다랑어 등의 대형어류와 강치 등 바다 동물뼈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함께 출토된 각종 작살과 어로구 등을 통해 볼 때 신석기 인들은 먼 바다에서 까지 어로 활동을 하고, 소형의 고래 정도는 직접 포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지막 문화층을 살았던 동삼동 사람들은 밭농사 등을 통해 농경생활을 확대해 나가면서 점차로 청동기문화의 기반을 잡아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살펴본 동삼동패총은 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를 연구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면서 생활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 그 사람들의 문화가 이 곳 동삼동패총에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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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개의 두개골과 설명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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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2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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