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염성 질환으로 진화하나?
동물에서 새로운 전염성 암 발견
최근 국제보건기구(WHO)는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지카바이러스가 사람들 간의 성관계를 통해서도 전염되며, 그 전염 빈도가 예상 외로 높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새로이 발견되는 전염성 질환으로 지구촌에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암도 전염성 질환으로 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며 가장 위험한 질병으로 꼽히는 암은 오직 환자 본인에게만 영향을 끼칠 뿐 다른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다행스러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보고된 몇몇 연구들에 의하면 인간에게도 전염성 암이 곧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내용의 기사가 ‘뉴욕타임스’에 게재됐다.
여기서 전염성 암이란 자궁경부암처럼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전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또 위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나 간암의 대표적 요인으로 꼽히는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전파도 아니다. 암 세포 자체가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자신을 증식시키는 경우를 의미한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 ‘인간에게도’란 단서가 붙은 것은 다른 동물의 경우 이미 이 같은 전염성 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염성 암은 개와 태즈메이니아 데빌이라는 단 두 척추동물에게서만 발견됐다.
개에서 발생하는 전염성 암은 ‘성기육종’으로서, 교미를 할 때 다른 개에게로 전파된다. 예전에는 이 암의 원인이 암세포 자체의 전염이 아니라 바이러스 등 암을 유발하는 인자가 전염되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비교적 최근에 암세포 자체가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히 개에게서만 이런 암이 존재하는 이유는 개의 경우 교미 시간이 약 30분에 이를 만큼 매우 길기 때문에 성기 조직의 마찰 및 파괴가 암세포의 전이를 쉽게 만들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전염성 암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호주 고유동물
지난 2014년 ‘사이언스’ 지에 발표된 영국 연구진의 논문에 의하면, 이 암은 약 1만1000년 전 상당한 근친교배에 의해 태어난 중간 크기의 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고립된 개체군 속에서만 전염되다가 15세기 말 탐험의 시대가 열리면서 세계 곳곳을 항해하는 탐험가들을 따라다닌 개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두 번째로 발견된 전염성 암은 1996년 호주의 고유동물인 태즈메이니아 데빌에게서 확인된 안면암이다. 호주 남부의 태즈메이니아 섬에만 서식하는 이 동물은 유대류의 주머니고양이목으로서 태즈메이니아산 주머니곰이라고도 불린다.
태즈메이니아 데빌은 먹이를 두고 다툴 때나 혹은 짝짓기를 할 때 서로의 얼굴을 물어뜯으며 싸우는 습관이 있다. 그때 얼굴에 생긴 상처를 통해 암세포가 전염되는 것. 개에게서 전염되는 암인 성기육종은 항암치료를 받을 경우 대부분 호전되며 가끔씩은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이 동물에게서 전염되는 안면암은 매우 치명적이다.
얼굴에 생긴 종양이 커져서 눈이 튀어나오거나 이빨이 빠지는 등 흉한 모습으로 변해 결국은 먹이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로 굶어죽게 된다. 이로 인해 1996년 당시 10만 마리 이상에 달하던 태즈메이니아 데빌이 불과 10년 만에 2만 마리 이하로 급감하는 등 개체 수가 대폭 줄어 2009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태즈메이니아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 등의 공동연구진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실은 논문을 통해 태즈메이니아 데빌 사이에서 전염되는 또 다른 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이 암은 1996년에 발견된 암과 유전적으로 구별될 뿐더러 조직학적으로도 구별되는 얼굴 종양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의 전염성 암 생성 가능성 조사해야
태즈메이니아 데빌이 특별히 전염성 암에 취약한 이유는 제한된 서식지 및 인간의 사냥으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면 면역체계가 새로운 암세포를 원래 자신의 체세포와 잘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태즈메이니아 데빌에게서 새로운 암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전염성 암이 기존의 추측보다 자연에서 훨씬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들은 “인간에게도 이러한 암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사람들 간에 암이 전염된 사례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났다. 실험실에서 결장암 세포가 든 주사기를 만진 연구원의 손에 암이 생긴 사례와 암 수술을 하던 외과의사가 실수로 자신의 손을 베었다가 그 환자의 암세포에 전염된 사례가 있다.
또 장기이식 과정에서 전염된 사례와 임산부로부터 태아에게 암이 옮겨간 예도 있다. 2013년에는 에이즈에 걸려 면역력이 크게 약화된 콜롬비아의 한 남성이 몸속에 기생하는 촌충으로부터 암에 전염돼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암은 단순히 하나의 질병이 아니며, 그 자체가 계속 변화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인류가 탄생한 후 암에 걸렸던 모든 사람들의 암은 각각 다른 분자 변이에 의해 발생했다. 때문에 인간에게서도 언제 태즈메이니아 데빌 같은 전염성 암이 등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