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와(餘窩) 목만중(睦萬中)시고(詩稿)
목만중(1727~1810)이 채제공의 별장인 번리의 명덕동을 방문하여 번암채제공과 함께 주변산을 등산하는 등 며칠을 지내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시고이다 당시 채제공은 한성판윤을 하고 있다가 1778년(정조 2)에 다른 정파의 공격을 받아 파직되어 명덕동에 물러나 있었다.
寒食日雨止 陪主人 從臥龍瀑 經明德洞 上後峯
(한식일우지 배주인와룡폭포 경 명덕동 상후 봉)/
한식날 비가 개어 주인을 모시고 와룡폭포를 따라 명덕동을 지나 뒷산 봉우리에 오르다
涉園三日己三回(섭원삼일기삼회)/ 3일동안 셋차례나 전원을 돌아보고
剝盡笞依植杖臺(벽진태의직장대)/이끼 벗어진 곳에 지팡이 놓는 넓은 바위
幽禽遷坐讓人來(유 천좌양인래)/ 새들도 사람에게 자리 양보하여 물러 앉네
纔經禁火烟初己( 재경금화연초기)/금화(禁火)가 막 끝나 연기처럼 일어나다.
正好看山雨復開(정호간산우복개)/비가 막갠 산이 보기에 딱 좋아라
閴寂林盧遠酒店(격적림노원주점)/한적한 숲속 집은 주점에서 멀어
花前悵憶掌中盃(화전장억장중배)/꽃 앞에 술잔이 없어 아쉽기 그지 없네
여와(餘窩)
자료: https://blog.naver.com/chatelain/221608023688